[뉴스] “한국 배타주의, 기질 아닌 경직된 문화 때문”

국제 연구팀, 33국 6800명 조사 <사이언스> 발표

인구밀도·자연재해 등이 원인…한국 경직성 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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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는 마약을 마음대로 팔 수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사형을 당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껌 씹는 일이 예사롭지만 싱가포르에서는 금지 대상이다. 한국에서 순응은 높이 평가되는 덕목이지만 브라질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런 문화적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한국 사회가 다른 문화 구성원을 외계인이나 비정상인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나라가 규범이 많은 경직된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며, 이런 문화는 조밀한 인구밀도, 자원 부족, 잦은 외부와의 전쟁, 자연재해와 질병의 위협이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메릴랜드대의 미셸 겔펀드 교수(심리학)를 비롯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한국·미국 등 세계 33개국 대학생과 직장인 6823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조사를 통해 문화적으로 경직된 사회와 느슨한 사회를 구분한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 26일치(현지시각)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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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경직성-유연성’이라는 새로운 분석틀을 도입해 사회 간 심리적·행동적 차이의 원인을 분석했다. 경직성은 어떤 문화 안에 지켜야 할 규범이 뚜렷하게 존재하는지와 그 규범이 어느 정도 지켜지는지를 나타낸다.



연구팀은 조사 참가자들에게 장례식이나 입사면접, 병원, 공원 등 15가지의 일상적 상황에서 말다툼, 음식먹기, 연애하기, 노래부르기, 키스 등 12가지 행동이 얼마나 타당한지를 물었다. 경직된 사회는 180개의 상황-행동 조합에서 타당한 행위로 여기는 비율이 느슨한 사회보다 적었다. 또 참가자들에게는 “수용되는 사회적 규범이 많다고 보느냐” “부적절한 행동에 강한 비난이 따르느냐” 등 6가지 질문이 주어졌다. 두 조사 결과는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연구팀은 또 이들 조사 결과와 해당 국가의 인구밀도, 자연재해, 자원의 부족 정도, 질병, 범죄율, 전쟁 등 경제문화 및 역사적 요소들과의 비교해 이들 사이에도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을 확인했다. 예를 들어 인구 10만명당 무죄석방률은 일본이 0.3명, 한국이 2.45명인 데 비해 홍콩은 67.85명, 뉴질랜드는 96.32명이었다. 일본과 한국이 경직된 문화 국가그룹에, 홍콩과 뉴질랜드는 느슨한 그룹으로 분류된 것과 일치한다. 삶에 대한 만족도, 국민총생산(GNP), 국가경쟁력은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조밀한 인구밀도와 긴 분쟁의 역사를 가진 파키스탄이 가장 경직성이 높은 나라로 분류됐다. 말레이시아, 인도, 싱가포르, 한국, 노르웨이가 그 뒤를 이었으며, 가장 느슨한 국가군에는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헝가리, 이스라엘, 네덜란드, 브라질 등이 포함됐다. 겔판드 교수는 지난 25일 논문 발표에 앞서 연 사이버 기자회견에서 “이스라엘은 독특하게도 여러 사회적 위협과 분쟁을 겪고 있음에도 아주 느슨한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가 짧고 문화적으로 느슨한 지역인 동유럽에서 이민자들이 많이 유입됐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경직된 국가의 국민들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군대에 의해 통제되는 정부에 대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며 시위나 파업 등 사회 조직에 대한 거부행위가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반면 역설적이게도 경직된 국가의 국민들은 사회가 변해야 한다면 그것은 혁명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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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김기범 다문화사회심리연구소 연구교수가 한국과 미국만을 따로 떼어 분석한 연구에서는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보다 자신의 의사나 욕구보다는 주변인들의 기대나 사회규범에 더 충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살아오면서 평소 얼마나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고, 자신의 성취를 위해 노력했는지를 나타내는 ‘자기 성장에 대한 집중도’는 한국 사람들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창조성·개방성에서 미국 사람들에 뒤지는 것으로 해석됐다.


우리나라는 헤이르트 호프스테더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명예교수가 2001년 세계 74개국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도 집단주의와 불확실성 회피가 강한 국가로 구분된 바 있다. 집단 내 개인 간의 구속력이 얼마나 약한가를 점수로 매긴 ‘개인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전체 국가 중 63위로 집단주의성이 높았다. 또 불확실하거나 미지의 상황에 대해 느끼는 위협 정도를 나타내는 ‘불확실성 회피 지수’에서는 23위를 기록했다.


김기범 교수는 “이번 연구는 타문화의 심리적·행동적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문화 간 편견과 갈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사회심리학)는 “문화의 차이를 인간의 내재적 속성이나 유전적 요인이 아니라 생태환경과 사회적 요인에서 찾으려 한 의미 있는 연구”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조사 대상 국가 수가 적고 질문이 집단주의에 기울어져 있으며 설문 대상자가 젊은층에 치우쳐 균질하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설문조사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30살이었으며, 직장인의 경우 평균 경력이 8년이었다. 응답자들의73.5%가 자신들이 중산층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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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선임기자
때론 현미경으로 과학, 과학자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때론 멀리서 망원경으로 방관하는 문과 출신 과학기자. 과학과 대중의 소통과 과학기자의 역할에 관해 연구 중.
이메일 :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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