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과학의 날에 '과학기술인 반성' 성명 낸 까닭은?

과학기술 시민단체 과실연,

"국민과 소통, 신뢰 부족을 겸허히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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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날’(4월21일)에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이 성명서를 내는 일이야 이상할 게 없지만, 오늘 ‘바른 과학기술 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 낸 성명서는 정말 이례적인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과학기술이 이룬 성과를 자축하며 서로 격려하며 비전을 밝히는 이 날에, 과실연은 자축이 아니라 ‘과학기술인의 반성’을 화두로 삼는 성명을 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명서의 제목은 ‘국민과 소통하는 과학기술인이 되겠습니다’였습니다. 과실연은 성명에서 “사회와 소통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거듭 되새기면서 “겸허히 반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느닷없이 웬 반성? 그것도 과학의 날 기념 성명서에서? 궁금해졌습니다.


성명을 좀더 찬찬히 읽어봅니다. 과실연은 최근에 과학/기술과 관련한 여러 사회 쟁점들이 잇따랐는데도 과학기술인들이 국민과 충분히 소통하지 못해왔다는 점을 진지한 문제로 받아들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일로는 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참사, 또 이에 앞서 일어난 구제역 사태, 그리고 천안함 침몰 사건, 더 오래 전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광우병 사태 등에서,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받았으며 또 제대로 소통했는지 되돌아 생각해보면, 좋은 기억들은 금세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전문가의 이름을 내건 사람들의 찬반 양론은 오히려 '과학적 진실은 대체 어디 있느냐' '누가 전문가인가' 하는 의구심을 만들어내며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오늘날은 불확실성, 복잡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데도, 이런 불확실성과 복잡성의 쟁점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전문가들의 권위는 제대로 신뢰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입니다.


과실연은 성명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 복잡한 자연과 사회 현상에 대한 과학기술적 논의와 판단에 매우 미숙하다”며 “사회 전반에 합리적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현상의 뒤에 숨어 있는 과학적 진실과 위험에 대해 과학기술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결론으로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깊이 반성하며, 국민들이 국가 사회적 현안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인식하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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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날에 이처럼 '분위기 가라앉히는' 성명서를 낸 배경이 다시금 더욱 더 궁금해졌습니다. 과실연의 집행위원장인 김승환 포스텍 교수(물리학, 사진)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과실연에서 많이들 고민했습니다. 사실 지난해 과실연 5주년을 맞아 반성과 평가를 할 때에 앞으로 새로운 5년을 이끌 화두로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했지요. 사회적 역할을,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이냐? 소통의 방식과 관점이 중요하겠기에 많은 고민들을 했고. 또 그런 소통의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과학의 날 성명서에 그 내용을 담기로 했던 거지요.”


사실 ‘과학기술인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말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국내 과학기술계 단체들에서 강조되어 왔던 열쇳말이었고, 광우병 사태, 신종플루 사태, 구제역 사태 등처럼 사회 현안이 생길 때마다 과학기술 단체들의 여러 토론회들이 열려왔습니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반성’이란 말이 강조되는 이유는 왜인지 궁금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계의 관점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반성하자는 것이지요. 국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통의 방식, 태도가 부족했다는 것이지요. 국과위 같은 과학기술계 현안의 쟁점에 대해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발언했지만 바로 국민이 겪는 쟁점에 대해서는 적극 발언하지 않거나 침묵했던 측면도 있거든요.”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신뢰’를 얻으려면 ‘소통의 방식’ 또는 ‘소통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기술의 쟁점, 또는 사회적인 쟁점에서 찬반의 견해를 달리하는 전문가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때에 전문가들에 대한 신뢰가 생길 수 있지, 이미 한쪽으로 미리 정리된 정보만을 공개 토론의 장에서 제공하면서 다른 목소리를 생략하거나 외면했을 때에는, 아무리 사회적 역할의 기회를 늘린다 해도 과학기술 전문가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방과 공유, 참여의 철학을 믿는 과학기술인이 많아져야 합니다. 신뢰라는 게 전문가라 해서 곧바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통을 통해서 정보가 개방되고 서로 토론하고 논의하고 그러면서 서로 설득하고 서로 이해할 때 신뢰가 생기겠지요. 어려운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계도 이제 이런 부분에 눈을 떠야 합니다. 소통의 방식을 개선하고, 그동안의 방식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소통의 문화가 싹틀까? 김 교수와 통화하며 괜히 기대가 커졌습니다. 시민단체이지만 상당히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과실연이 과연 이전의 소통 문화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소통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든 길을 만들어놓고서 성명서를 낸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 정리하고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를 느껴 과학의 날에 이런 내용의 성명을 낸 것이죠. 그렇다고 아무런 내용이 없는 건 아니고요. 당장 원전 이슈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견해들을 파악할 수 있는 토론모임을 열 계획이고, 또 이미 오래된 주제가 됐지만 구제역에도 여전히 국민의 불안감이 있으니까 다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과학기술인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또 신뢰를 받는 소통으로 자기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방안들을 내부에서 많이 연구도 하며, 여러 미디어를 활용해 커뮤니케이션도 해나갈 생각입니다. 오늘 성명은 그런 고민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참여와 공유, 개방이 이뤄지고, 그러면서 전문가와 시민이 서로 배려하며 참여하는 ‘공론의 장’이 더 많아진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도 이뤄지고 또한 과학기술만으로는 풀 수 없는 사회 쟁점의 복잡성을 인정하며 문제를 한올한올 풀어내려는 우리 사회의 경험도 깊어질 것입니다. 전문가와 시민 사이에 상호 신뢰가 싹을 틔울 수 있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신뢰의 문제에서는 사실이냐 아니냐 (true or not)도 중요하지만 진정성 있는가 아닌가 (truthful or not)도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과실연의 시도가 말이 앞선 성명이 아니라 사회 쟁점 토론의 공정한 조직자, 기획자로서  ‘진정성 있는 소통’의 결실을 맺고 우리사회의 '공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랍니다.




[과실연 ‘과학의 날’ 성명서]


“국민과 소통하는 과학기술인이 되겠습니다”




제44회 과학의 날을 맞아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은 지금까지 국민들이 과학기술계에 보내준 성원에 감사드리고, 그동안 과학기술인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며 겸허하게 반성한다.


우리 과학기술인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나라 발전의 초석이자 원동력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 및 산업현장에서 묵묵히 일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과학경쟁력은 세계 4위권에, 그리고 기술경쟁력도 세계 12위권에 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럼에도 과학기술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해는 아직 높지 않으며, 우수 인재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법적·제도적 문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국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고립을 자초한 우리 과학기술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상은 불확실성, 복잡성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전국을 휩쓴 구제역, 천안함 폭침과 광우병 파동, KAIST의 불행한 사태 등 “블랙스완” 형의 복잡한 현안들이 우리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갈등과 쟁점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되어 있으며, 보다 깊은 수준의 과학적 사고와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점차 늘어나는 재난과 위험의 정확한 진단과 예측, 위험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한 대응시스템과 대처 방안을 마련하려면 과학적 사고와 판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아직 복잡한 자연과 사회 현상에 대한 과학기술적 논의와 판단에 매우 미숙하다. 사회 전반에 합리적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복잡한 현상의 뒤에 숨어있는 과학적 진실과 위험에 대해 과학기술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현안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설명에 대해 국민들의 인식과의 괴리와 신뢰 부족이 느껴지는 것은 지난날 황우석 사태의 사례처럼 우리들의 잘못도 크다. 과학기술인의 본분은 자연을 탐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지만,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내다보며 국민과의 소통과 신뢰를 강화해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국민들께서도 과학기술인들에 대해 더욱 따뜻한 시선과 신뢰를 보내주셔서 과학적 사고와 성숙한 판단을 통해 여러 복잡한 현안을 함께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과실연은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그동안 국민과의 소통 부족을 깊이 반성하며, 국민들이 국가 사회적 현안에 대한 올바른 과학적 인식하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한다.







2011년 4월 21일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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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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