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기장과 핵폭탄, 뭐가 더 중요한 기술입니까"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인터뷰

 <오래된 것의 충격> 저자, 영국 기술사학자 데이빗 에저턴

       


우리는 미래, 아니 현재를 제대로 말하고 있는 걸까? 테크놀로지(기술)의 역사를 다룬 그의 책을 뒤적이다 문득 든 의문이다. 그의 책은 우리가 믿어온 이른바 ‘상식’에 도전한다. 흔히들 20세기를 움직인, 21세기를 움직일 기술로 로켓, 핵폭탄, 인터넷, 생명공학, 나노기술 같은 거대 기술을 꼽지만, 그는 이런 생각은 세상을 다 보지 못하는 ‘좁은’ 역사관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콘돔은 여전히 중요한 피임 기술이며, 물결모양의 철판 지붕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새로운 건축 기술이다. 어느 나라에선 오래 전에 사라진 인력거가 세계의 어느 한편에서는 계속 늘고 있는 유력한 운송 기술이다. 지금도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더 많이 생산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기술의 역사는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최근 한국에 온 <오래된 것의 충격>(The Shock of the Old, 번역 출간 예정)의 지은이인 영국 기술사학자 데이빗 에저턴 교수(영국 임페리얼대학)를 만났다. 그는 그런 ‘부분적인’  역사관이 “테크놀로지를 새로움, 혁신, 발명, 미래 가치만으로 보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그런 관념은 “부자나라, 남성, 백인 중심의 관념”이라고 말한다. 각종 ‘새 것’에 적응하기에도 숨이 찬 요즘,  임소연(서울대 박사과정·과학기술학)씨의 통역 도움을 받아 그한테서 ‘오래됨의 가치’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달 17,18일 이틀에 걸쳐 이뤄졌다.

00edgerton1 » 사진 / 한겨레 김명진 기자      


테크놀로지, 새로움, 오래됨

- <오래된 것의 충격>이란 제목이 재밌습니다. 우리가 믿어마지 않는 기술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건가요?

  “우리는 세계에 대해 지성적인 비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움과 혁신의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면 비판 능력을 잃기 쉽습니다. 저는 혁신이나 새로움이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이 사용하는 기계, 구조, 과정(프로세스)에 관한 역사를 쓰고 싶었죠. 선진국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미국을 다 아우르는 기술의 일반 세계사를 쓰고 싶었습니다.”


- 기술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오해한다는 거죠?

  “테크놀로지란 개념에 초점을 맞추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혼돈스럽고 착각을 일으키는 개념이죠. 그래서 저는 테크놀로지라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기계, 어떤 구조, 어떤 프로세스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테크놀로지 자체가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식으로 생각하는 건 유치한 사고방식입니다. 자동차, 잔디깎이기계 같은 구체 기술들, 또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대안 기술들을 서로 비교하며 평가해야 합니다. 잘못된 관념은 또 있습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기술이 발전했다고들 생각하지만 틀린 얘기입니다. 제가 보기에 기술은 세계화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함께 발전했어요. 또 역사에서 과연 어떤 기술이 인간에게 더 중요한가 묻고 싶었습니다. 콘돔이 더 중요한가? 비행기가 더 중요한가? 인터넷이 더 중요한가? 세탁기가 더 중요한가? 나는 그건 답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주장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확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정답은 ‘나는 모른다’일 겁니다.”


- 최근 테크놀로지 발전 흐름을 볼 때 기술이 세계화와 거리가 멀다는 말씀은 일반의 인식과 다르네요.

  “예를 들어 20세기 중반 쯤부터 여러 나라들이 수입품을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나섰습니다.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 기술이 한 예입니다. 이런 류의 기술 개발에는 국가가 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 기술은 국가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놀라운 일이죠.”


모기장과 핵폭탄, 뭐가 더 중요할까?

- 선생님의 새로운 관점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사례를 하나 말씀해주시죠.

  “글쎄요. 핵폭탄을 예로 말씀해보죠. 핵폭탄은 히로시마에 터져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죠. 그런데 그 파괴력은 당시 재래식 폭탄으로도 가능했던 거였습니다. 수백 개 폭탄을 동시에 터뜨리면 똑같이 몇 초 안에 같은 파괴력을 낼 수 있었어요. 핵폭탄만이 전례 없는 파괴력을 지닌다는 관념, 핵폭탄 덕분에 전쟁이 끝났다는 관념을 만들어냈지요. 그건 오해입니다.”


- 핵폭탄 하나와 재래식 폭탄 하나를 비교하면 ‘전례 없는 파괴력’은 맞는 얘기 아닌가요?

  “그렇게 본다면 맞습니다. 제 말은 그런 파괴 효과가 당시 재래식 기술로도 가능했다는 겁니다.”


- 어떤 의미가 있는 말씀인지요?

  00edgerton4“얘기되지 않는 측면도 봐야 어떤 기술을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반드시 핵폭탄이 있어야 했던 건 아니었다는 말입니니다. 같은 효과를 내는 다른 대안 기술들과 비교해 평가해야 한다는 겁니다.”


- 책에선 모기장, 인력거, 재봉틀 같은 작은 기술과 로켓, 비행기, 핵발전 같은 거대 기술을 동등하게 다루셨는데, 비교될 수 있는 겁니까?

  “(극단적인 예가 되겠지만) 비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어느 정도로 사용되나? 모기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합니다. 또 어떤 용도에 어떤 효과를 내나? 모기에 물리지 않기 위한 용도에서 수백만 장의 모기장과 핵폭탄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죠. 말라리아 예방에선 모기장, 약물, 살충제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겠죠. 전쟁에선 핵폭탄과 재래식 무기의 효과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안이 될 수 있는 기술을 함께 비교해야 특정 기술의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 빅뱅의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해서 높게 평가해선 안 되죠.”


‘기술의 미래’는 낡은 담론

 - 이런저런 미래 기술이 인류에 번영과 편리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자주 듣습니다.

  “연구자들은 흔히 몇 년, 몇 십 년 뒤에 어떤 기술이 실현되면 큰 혜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은 새로울 게 없습니다. 먼 미래에는 테크놀로지가 평화를 가져다주고 인간 노동을 대신해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되풀이되고 있죠. 이런 미래 담론은 첨단을 말하지만 사실은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 방식이죠. 예를 들어 정보기술(IT),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이 미래를 만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술은 1950년대엔 로켓, 핵발전, 전자공학이었고, 1930년대엔 전기, 비행기, 라디오였습니다. 하지만 혁신은 물리, 화학, 유전학, 엔지니어렁 등 전 범위에서 일어나지 특정 기술 분야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지요.”


- 기술의 미래 담론은 왜 되풀이된다고 보시나요?

  “사람들은 그런 얘기가 낡은 것임을 잘 모릅니다. 또 미래 담론들이 과거엔 어땠는지 그 역사를 모릅니다. 사람들은 너무 새로워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을 정도로 새롭고, 오래됐다고 느끼지 못할 만큼 새로운 것을 새롭다고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 미래 담론이 연구개발의 동기가 될 수 있지 않나요?

  “(상투적인) 미래 담론이 연구개발의 동기가 된다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담론은 선전(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혁신과 개발의 이유는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 미래 담론이 없을 때에 오히려 좋은 연구의 동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이라는 것은 불확실하고 위험할 수 있고 미래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길 원하는지 성찰해야 하고, 또 사회란 무엇이고 에너지란 무엇이며 노동과정과 소비는 무엇인지 이런 것들에 바탕을 두어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 담론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진짜 혁신을 할 수 있습니다.”


- 유전자변형 작물(GMO)이나 나노기술의 안전성 논란, 생명윤리 논란처럼 여러 기술 논쟁이 있지요. 연구자들은 환경주의자들이 부정적인 미래만 부각한다고 말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문제죠. 다만 ‘지엠오를 반대하는 환경주의자’와 ‘지엠오를 찬성하는 연구자’ 간의 논쟁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입니다. 지엠오가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식량 조달의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식량 증산 방법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분법으로 나누어) 지엠오가 유일한 방법이냐 아니냐로 보는 건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지엠오 자체가 아니라 논쟁 방식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혁신’ 강박증, 현실을 가리다

- 현대인한테 테크놀로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영국 신문들에는 ‘테크놀로지 섹션’이 따로 있습니다. 거기서 보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기술은 전자제품, 휴대전화, 컴퓨터 등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이 기술 자체에 대해 비판적이다, 지지한다 이렇게 일반화해 말할 순 없겠죠. 하지만 휴대전화, 자동차 같은 특정 기술에 대해선 충분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흔히 기술을 홍보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에 저항하는 건 나쁘다’고 말하지만, 제 생각엔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저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기술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걸 다 쓸 수 있습니까?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저항하고 거부하는 일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부분이지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 그러면 교수님에게 테크놀로지는 어떤 이미지인가요?

  “주변의 모든 것들이죠. 탁자, 건물, 버스, 비행기 그런 것들.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구조나 기계를 만드는 전문성, 그리고 만드는 것뿐 아니라 작동하고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전문성. 기술은 사람이 만든 것이며 자연에는 없고 한때는 새로웠던 모든 것들이지요.”


- 뭉뚱그린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들이군요.

  “그렇습니다. 실제 사용하는 것을 중시해야 합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발명과 혁신도 중요합니다. 다만 혁신성에만 매몰돼 기술을 얘기해선 안 된다는 거죠. 어쩌면 (혁신만을 강조하는) 테크놀로지라는 말은 폐기하는 게 좋습니다. 대신에 한쪽에는 혁신과 발명이 있고, 다른 쪽에는 기계, 장치, 구조, 과정이 있는 게 더 낫습니다.”


-실재의 현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담론과 말이 지배한다고 보시는군요.

  “그건 아니고 실재의 현실이 지배하고 있죠. 문제는 그것을 제대로 기술할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실재의 것, 물질세계를 기술하는 방식 중 하나를 만든 사람들이 환경운동가들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투입-산출의 문제, 에너지 문제, 쓰레기 문제로 얘기하죠”


정보시대, 변화의 속도

- 지금 정보화 사회에는 기술에 대한 어떤 오해가 있다고 보십니까?

  “흔히 정보화 지식사회에선 우리 삶이 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며 완전히 다른 단계의 사회로 나아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반대입니다.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물질 소비가 일어나고 더 많은 물질이 선박으로 운송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납니다. 또 온라인이 곧 신문을 대체하고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할 것처럼 말하는데 여기에도 오해가 있습니다. 정보기술이 많은 것을 바꾸고 있지만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지난 20년 동안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 급격히 발전했습니다. 2000년 전후의 변화와 1900년 전후의 변화를 비교하면, 1900년대의 변화가 더 급격했죠. 최근 변화는 아주 놀랄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세계의 몇몇 이름난 신문들조차 경영난을 겪고 온라인 신문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죠.

  “저는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뜻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고 책도 살아 있습니다. 어떤 것은 우리 생각보다 더 천천히 변할 겁니다. 책은 아직도 중요하고 가장 성공한 온라인 비즈니스는 종이책을 파는 아마존입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비대칭은 여전히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사실 모든 것에는 새로움과 오래됨이 섞여 있죠.”


- ‘변화에 적응해야 생존한다’는 시대 분위기에서 스마트폰 열풍을 좇아가는 측면도 있는데요.

  “개인의 선택과 사회의 선택은 구분해야 합니다. 소비자 개인이 쓸 일이 별로 없어도 휴대전화를 업그레이드할 때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최신 유행을 남들에게 보여주려 할 수도 있고 새 기능을 원할 수도 있고. 도덕적으로 따질 일은 아닙니다. 덧붙여 생각할 점은 흔히 하나의 기술, 하나의 세상만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조건에서 다양한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1945년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 중 하나는 가난한 나라가 많아졌다는 건데, 그래서 기술의 새로움은 여전히 나라마다 다릅니다. 가난한 나라에선 파형철판 지붕이 지금도 새로운 기술로 쓰입니다. 인력거도 1900년 이후에 계속 증가하는 중요한 기술이죠.” [글 오철우 기자, 사진 김명진 기자]


인터뷰 후기

 

00edgerton2 » 사진 / 한겨레 김명진 기자  인터뷰를 마친 뒤에 에저턴 교수한테 즉흥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가 자주 썼던 단어들 중에서 ‘오래된 것, 새로운 것, 테크놀로지, 미래, 역사’ 이렇게 다섯가지의 열쇳말에 대해 그만의 독창적인 뜻풀이를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휘갈기는 필체로 빠르게 재치 있는 답안을 내놓았다.


물음: ‘당신에게 ____는 어떤 의미입니까?  


△ 오래된 것: “한때 새로웠던 것(what was once new).”

△ 새로운 것: “곧 오래된 것이 될 예정인 것(what will soon be old)”

△ 테크놀로지: “우리가 버려야 할 개념(a concept we should do without)”

△ 미래: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어떤 것(something I will never know)”

△ 역사: “내 글쓰기의 대상(what I write)”


실재의 세계에서 새로움과 오래됨은 뒤섞여 있으며, 혁신과 새로움의 가치에 매몰된 테크놀로지 개념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 보여주지 못하며, 기술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확신에 찬 전망을 할 수 없고, 역사는 저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역사 저술가가 기록하는 대상이라는 뜻일 것이다. 다섯 문장 안에 이틀간의 인터뷰가 멋지게 요약됐다.


그를 “전통적인 생각을 뒤집는 전복자”라고 봐도 되느냐고 묻자, 그는 “전복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도전하는 사람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현재 영국 임페리얼대학 교수인 그는 지난 20년 동안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상의 인식에 도전하는 여러 글을 써왔다.  지난 14~20일 서울대 ‘비케이21 과학기술과 사회문화 사업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으며 서울대와 카이스트에서 강연했다. /글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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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싣지 못한 인터뷰 부분


- 적정기술과 두 문화에 관해


- 적정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별로. 가난한 나라와 연관해 적정기술이라는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 저는 사실 거리를 두고 싶습니다.”


- 베푼다는 느낌이 드는 개념이라서 그런가요? 적정기술은 작은 기술, 지역 기술이라 교수님께서 당연히 관심을 가지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제가 관심을 두는 것은 실제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 어떠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 어떤 기계이냐 하는 것이지 부유한 나라가 디자인해 제공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쓰고 있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건 너무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제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적정기술은 NGO들이 가난한 나라를 위해 만들어 제공하는 기술입니다. 저는 그것들보다는 그들 자신들이 만들어 쓰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적정기술을 비판하거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가난한 나라들이 사용하는 기술과 NGO가 만들어준 새로운 기술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실제로 만들어서 쓰는 기술과 구분되어야 하지요. 예를 들어 가난이라는 게 20세기의 산물인데, 보통 가난을 기술이 겹핍된 상태라고 생각하고 18세기, 19세기 식의 기술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가난하다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상이지요.


- 한국에 오셔서 ‘과학과 문학’ 사이의 두 문화에 관한 강연을 해주셨는데, 영국인 스노가 처음 만든 개념인 ‘두 문화’라는 게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셨는데, 그렇다면  두 문화는 실재하는 겁니까? 아니면 허상일 뿐인가요?

  “허상(illusion)이죠.”


- 네? 한국에는 문과/이과의 두 문화가 많이 얘기되고, 어떤 때에는 서로 자기 문화가 상대 문화에 의해 지배되고 있어 자신의 문화를 더 키워야 한다, 두 문화가 소통을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이런 점에서 볼 때엔 상당히 의외의 말씀으로 들리네요.

  “교육의 측면에서 문과/이과의 문화가 따로 존재한다는 건 인정합니다. 사실은 교육의 전공(specialty) 측면에서는 그게 두 개가 아니라 그 이상이지요. 게다가 교육적인 문과/이과를 문화와 연결하는 게 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 집안에 형제자매의 전공이 여럿이라면 그 집안은 서로 다른 여러 문화들에 속해 있는 건가요? 과학자라 해도 먹는 음식이 다르고 보는 영화 취향이 다르고 쓰는 폰이 다르고 휴가 계획이 다르고 선거 때에 누구에 투표할지의 성향이 다 다릅니다.

  두 문화라는 개념은 오히려 두 영역 간의 상호 이해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재하지도 않는 분리를 더 만드는 데에만 도움이 됩니다. 생물학과 수학이 다르고 언어학과 문예창작이 다르지요. 영국이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수출했는데 두 문화 아이디어는 절대 그 중 하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스노가 만든 불행한 창작물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나쁜 아이디어가 더 강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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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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