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실수로 노벨상 날아가?' 이상한 뒤범벅 인용 보도

"노벨상위원회 실수로 한국인 물리학상 날아가.. 노벨위 '실수 인정'" 보도를 되짚어보니


    00graphene » 그래핀 구조. 출처/wikipedia.org      


월터 드 히어(Walter de Heer)라는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물리학) 분이 지난 17일(현지시각) 노벨위원회에 보낸 편지 한 통이 지구촌 과학계에서 연일 화제가 됐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이차원 물질인 그래핀에 대한 획기적 실험”을 해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와 안드레 가임 박사를 올해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드 히어 교수는 수상자 선정이유를 밝힌 노벨위원회의 문건('과학적 배경')에 중요한 진술 오류가 있다며 정정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 쟁쟁한 권위를 지닌 노벨상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겠지요.


이어 논란은 확산됐습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과학저널 <네이처>가 18일("비판받는 노벨상위원회")과 24일("노벨상 문건이 논란을 촉발하다") 두 차례에 걸쳐 드 히어 교수의 편지를 상세히 다루는 기사를 전하면서 올해 노벨물리학상의 선정을 두고 과학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역시, ‘권위 있는 과학저널’과 ‘권위 있는 과학상'의 충돌이라는 점 때문에 이 논란은 더욱 더 주목받았습니다. 국내에서도 관심이 쏠리는 기사이죠. 이번 수상자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의 업적을 그래핀 연구 분야에서 냈던 김필립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가 노벨상 수상자에서 빠져 국내에선 아쉬움이 무척 컸던 터라 이 논란은 국내 언론에서도 증폭돼 비쳐졌습니다.


드 히어 교수는 왜 화 났나? ... 과장된 수상자 업적찬사에 문제제기

이번 논란의 사태에서, 드러난 발단은 역시 드 히어 교수의 편지였습니다. 그가 화가 난 이유는 뭘까요? 노벨위원회와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 물리학 분과 앞으로 보낸 그의 편지를 보면, 그는 노벨상 수상자의 업적과 선정 이유를 정리한 왕립과학아카데미 물리학 분과의 문서가 수상자의 연구 업적을 적절하게 평가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핀 연구의 역사는 길고도 길며 여러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서 기여해왔는데, 문서에서는 수상자들의 2004년과 2005년 논문을 마치 '그래핀의 발견 '처럼 평가하고 묘사했으며, 수상자들이 이룬 제한된 업적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해 평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00heer » 월터 드 히어 교수. 출처/physics.gatech.edu 드 히어 교수는 다섯 가지 항목으로 문서의 오류를 지적됐습니다. 첫째로 그는 노벨위원회의 문건에 실린 그림의 설명이 잘못 됐다고 지적합니다. 노벨위원회 문건에는 수상자들의 2004년 논문(<사이언스> 발표)을 인용하며 단원자층 그래핀 박판을 관찰한 것처럼 설명한 그림이 실려 있는데, 정작 2004년 논문은 단원자층이 아니라 복층 구조의 그래핀 박판(그래파이트)을 다룬 것이므로 그림 설명이 명백하게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또 다른 지적으로는, "(그래핀 유사 구조들이 1960년대에 알려져 있었지만 실험의 어려움이 있었고 그런 구조가 실제로 가능한지에 관해 의문이 있었다"는 노벨위원회 문건의 표현도, "그래핀 구조는 2004년 이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특정 조건의 그래핀이 존재할 수 있음이 보엠(H-P Boehm) 같은 연구자에 의해 입증되고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재현됐으며, 다른 조건의 그래핀들의 존재 가능성도 입증돼 왔다는 거죠. 보엠은 그래핀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분이라고 합니다.


좀 더 복잡한 지적도 이어집니다. 노벨위원회의 문건은 이번 두 수상자의 2004년 업적을 물리학계의 '경이(a surprise)'로 평가했지만, 드 히어 교수는 관련된 연구는 2005년 논문에 해당하는 것이며, 수상자들이 보여준 그래핀의 화학적 안정성은 과학 원리로 볼 때에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라며 노벨위원회의 평가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핀이 한층 한층 쌓여 있는 육각형의 탄소 박판들로 구성돼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하나의 박판을 격리된 형태로 생산할 수는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2004년 노보셀로프와 가임 연구팀이 그런 단일 층을 떼어낼 수 있고 그것이 안정적임을 입증했을 때에 그것은 물리학계에 경이로 다가왔다.” (노벨위원회 '과학적 배경' 문건)


이 표현은 다음과 같이 교정돼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핀이 한층 한층 쌓여 있는 육각형의 탄소 박판들로 구성돼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연구자들은 기판 위에 하나의 박판을 쌓는 방법들을 개발해왔다. 2005년 노보셀로프와 가임 연구팀은 산화 실리콘 탄화물 웨이퍼에 단일의 그래핀 박판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을 보여주었다.”


또한 수상자들의 업적이 그래핀의 응용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노벨위원회의 평가도 지나친 것이라고 드 히어 교수는 주장했습니다. 거대 그래핀 박판을 제조하는 기술은 이번 수상자의 그래핀 제작법과는 무관하게 연구되고 있으며, 다른 응용 기술도 그러하다는 겁니다. 오히려 "가임과 노보셀로프의 방법은 전자학 분야의 응용에는 사용될 수 없으며, 그런 목적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들이 사용된다"고 반박하는군요.


그러나 드 히어 교수는 편지에서 그래핀을 제조하고 관측하는 매우 간단한 기법을 개발한 두 수상자의 공로는 뛰어나고 중요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드 히어 교수가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도 두 수상자의 업적을 "그래핀의 발견"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며, (수상자의 업적을 극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이런 식의 평가는 오래 전부터 여러 분야들에서 이뤄져온 여러 그래핀 연구의 역사를 두 수상자 중심의 역사로 바꾸는, 그래서 실재와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 될 수 있기에 노벨위원회 문건의 평가는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이처, 이와 별개로 '김필립 공동수상 자격' 논란 보도

권위 있는 과학저널 <네이처>가 드 히어 교수의 편지 내용을 지난 18일(영국시각) 매우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24일에도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다시 한 번 더 실었습니다(아마도 온라인판 기사와 인쇄판 기사의 차이인 듯합니다만). 대부분의 보도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드 히어 교수의 편지 내용을 요약해 전하는 형식입니다.


<네이처>는 여기에 더해 이번 노벨물리학상 선정을 둘러싸고 물리학계에서 제기되는 여러 논란들을 함께 다뤄 보도했습니다. 거기에는 2005년 <네이처>에 이번 두 수상자의 논문과 함께 따로 논문을 냈던 김필립 교수 연구팀이 노벨상 선정 대상에서 빠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요지의 과학자들 반응이 실렸습니다. 노벨위원회 문건의 평가에 드러난 '실수'(mistake, 18일치) 또는 '오류'(error, 24일치)라는 표현의 지적도 나옵니다. 수상자인 가임 박사의 말도 있군요. "김필립 교수는 중요한 기여를 했기에 노벨상을 그와 공동 수상했다면 기뻤을 것이다." 이와 함께 그래핀 연구가 아직 성숙한 단계가 아니므로 이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은 때 이른(premature) 일이었다는 반응도 기사에 실렸습니다. 결국에 노벨위원회의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 선정에는 그래핀 연구 분야 과학자들한테서 폭넓은 동의를 받아내지 못한, 석연찮은 측면들을 지니게 됐다는 얘기이겠지요.


네이처 기사에는 노벨위원회가 "일부 실수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다는 대목도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드 히어 교수가 제기한 문제들, 즉 노벨위원회의 문건에 나타나는 그림 설명의 잘못, 2004년 논문에 대한 평가 문제 등의 '실수 지적들'에 대한 인정이었습니다(물론 '편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네이처>가 제기했던 `김필립 교수 과소평가' 부분도 이런 인정의 범위에 포함될 수 있겠습니다만). 이 기사에서 김필립 교수의 문제는 별개의 논란이지요.


국내 언론 ‘노벨위 실수 때문에 김필립 누락’? '노벨위, 잘못 인정'?

국내 언론에 이런 논란이 보도됐습니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노벨위원회의 실수로, 김필립 교수가 노벨상을 못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드 히어 교수가 노벨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김필립 교수가 마땅히 노벨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내용도 인용되어 실렸습니다.

 

"노벨상위원회의 실수로 한국인 과학자가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을 놓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노벨상 위원회에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한 드 히어 교수는 ‘위원회가 자신의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많은 학자는 김 교수가 공동 수상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노벨상위원회도 이에 대해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웹 버전에서는 잘못 게재된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상을 번복하거나 추가로 김 교수가 공동수상자로 선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국내 한 일간신문의 보도)


이건 뒤죽박죽입니다. 드 히어 교수는 노벨위원회의 문건에 나타난 두 수상자의 업적 평가가 지나치게 두 수상자 중심으로 기술돼 있으며 다른 연구자들에 의한 그래핀 연구의 흐름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으며, 2004년 논문에 대한 평가가 잘못됐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노벨위원회는 이런 드 히어 교수의 지적 일부를 인정했으며, 그것을 수정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논란과 별개로, <네이처>는 2005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업적을 낸 김필립 교수가 공동수상자가 되지 않은 것은 석연찮다는 과학계의 논란을 전했습니다. 위의 기사를 보면 이런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기사에서는, 마치 드 히어 교수가 김필립 교수를 두둔하며 노벨위원회가 실수를 했다며 항의성 편지를 보냈고, 노벨위원회도 그런 실수를 인정한 것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네이처>가 전했듯이, 김필립 교수의 업적은 수상자인 가임과 노보셀로프 박사와 충분히 견줄만한 것이고, 그래서 실제로 그가 노벨상 수상자에서 빠진 일은 많은 국내외 학자들한테 아쉬움과 의아함을 던져주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드 히어 교수의 편지와 네이처 보도들을 볼 때에 그것은 ‘노벨위원회의 실수’와는 관련이 없는 또다른 논란거리입니다. 노벨위원회의 엉뚱한 실수 때문에 억울하게도 김필립 교수가 노벨상 수상자에서 제외됐다는, 그런 상황을 믿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뒤범벅 인용 기사의 해프닝이었습니다.


[수정] 본문 중에서 잘못된 표기 오류인 "~것으라고"를 "~것이라고"로 고치는 것을 비롯해 대여섯 곳의 맞춤법 실수를 고쳤습니다. 2010. 12. 01. 오전 1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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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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