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과학자가 싸구려 저널리즘과 제대로 싸우는 방법"

오철우 201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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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journal3        영국의 한 기후과학자가 “싸구려(shoddy, 가짜) 저널리즘에 대항하고 과학 기록을 바로 세우려면 연구자들이 더 공세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엉뚱하게 인용해 쓴 영국의 한 신문사와 집요하게 싸움을 벌여온 영국 왕립학회의 기후과학자 시몬 루이스(Simon Lewis) 박사가 “기후를 둘러싼 길거리 싸움에서 미디어를 타격하는 방법(How to beat the media in the climate street fight)”이라는 날선 제목으로 과학저널 <네이처>에 쓴 칼럼에서 한 말입니다.    도대체 루이스 박사한테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는 이토록 강한 말투로 언론을 비판하고 권위 있는 과학저널인 네이처는 그의 글을 실었을까요?      

1.

  루이스가 쓴 칼럼, 그리고 그와 관련해 검색되는 보도들을 종합해보면, 사태의 발단은 2009년 말 이후 '기후게이트'로 서구 사회가 떠들썩하던 무렵으로 거술러 올라갑니다. 히말라야의 산악빙하가 2035년도 무렵에 녹아내릴 것이라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보고서 내용이 잘못된 것임이 드러난 데 이어, 아마존 우림이 가뭄에 취약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IPCC 보고서 내용(“아마존 숲의 최대 40%는 강우량이 약간만 줄어도 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도 과학논문이 아니라 환경단체 보고서를 받아 쓴 것이라는 사실이 한 블로거에 의해 새로 밝혀졌습니다. 블로거는 여기에 ‘아마존게이트’라는 말까지 붙였습니다.   여러 언론들이 취재에 나섰습니다. 영국 방송 <비비시(BBC)> 기자가 이 보고서 내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루이스한테 전문가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BBC는 보도에서 ‘맥락으로 볼 때 IPCC의 진술은 넓은 의미에서는 옳지만 표현이 신중하지 못했다. 또 1차 문헌을 인용했어야 했다’는 루이스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언론에서 터졌습니다. <선데이 타임스>라는 영국 신문사의 한 기자가 관련된 과학 논문들을 두고서 루이스 박사를 상대로 자세한 취재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문 지면에 보도된 내용은 루이스 박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과학 논문들을 보내주었고 우리는 논문들을 두고 토의했다. 그는 기사를 다 쓰고나면 보도 전에 그 내용을 전화로 읽어주기로 약속했다. 기사는 정확했다. 관련 데이터가 많지 않기 때문에 아마존의 미래가 어찌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IPCC에 대한 한 블로거의 비난을 제대로 과학에 관한 이야기로 해설해준 것이었으니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내가 틀렸다. 신문의 제목은 “유엔 기후위원회, 우림에 관한 허위 주장으로 망신”이 되어 있었고, 더 심한 일은 내가 그 기사를 지지하는 전문가로 인용됐다는 점이었다. 그 기사는 완전히 개작되었다.” 신문에는 기사와 함께 IPCC 의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사설까지 실렸습니다.   자, 이제부터는 ‘분노한 루이스 박사’의 얘기입니다. 그는 곧바로 신문사에 항의편지를 보냈습니다. 기사에는 항의 댓글을 달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의 편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댓글은 삭제됐습니다. “전문가로서 나의 말과 지위가 여러 다른 신문들에 IPCC 과학자들의 폭넓은 부정을 주장하는 것으로 사용됐다.” 응답없는 미디어를 향해 그는 새로운 행동 전략을 세웠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했습니다. 다른 신문사들에 자신의 주장을 얘기했고 <가디언>에 그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이름난 기후변화 블로그(Climate Progress)도 그를 도왔습니다. 루이스 박사는 이 블로그에 <선데이 타임스> 관계자가 잘못을 시인하는 통화 녹음을 공개했고, 이 블로그는 사태의 진행 과정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도 그의 이야기가 다뤄졌습니다.   루이스는 칼럼에서 “과학자가 적극적인 미디어의 역할을 하는 일은 정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결국에 <선데이 타임스>는 문제가 된 기사를 온라인에서 삭제하고 수정된 기사와 사과문을 대신에 싣기로 합의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습니다. 물론 종이신문에도 사과문이 실렸습니다.         

2.

  이런 루이스 박사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언론에 대한 기후과학자들의 깊은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 기후과학자들은 언론이 기후변화를 보도하면서 기후 시스템의 복잡성을 단순화해 오해와 과장을 낳았을 뿐 아니라, 더욱이 일부 언론매체들은 기후변화 회의론에 쉽게 휩쓸려 무책임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 왔습니다(사실 이런 불만은 기후게이트 이후에 생긴 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다. 2009년에 출간된 어느 기후과학자의 책에는 이런 불만이 구체적으로 실려 있다. 그 책의 일부를 문단 아래에 덧붙인다) 최근에는 기후과학자들이 직접 나서서 기후게이트로 인해 손상된 기후과학의 권위를 되찾고 대중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미디어에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자는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후게이트로 위축됐던 기후과학자들이 기후변화 회의론에 대응해 적극 발언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번역] (Mojib Latif, Climate Change: The Point of No Return (London: Haus Publishing Ltd, 2009), pp. 139-143)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최고의 선은 관심이다. 미디어(공적·사적 소유의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 신문, 저널, 잡지, 인터넷)의 과잉으로 인해, 저널리스트가 시청자, 청취자, 독자, 또는 인터넷 사용자의 관심을 끄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동시에, 시민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가려내는 일도 훨씬 더 어려워졌다. ‘제대로 된’ 정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여기에서 논하지는 않겠다. 아무튼 이런 발전의 결과는, 적어도 기후 논쟁의 경우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후 보호를 위한 조처들을 사회에서 시행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 미디어가 없었다면 기후 문제는 지구촌의 최대 정치 현안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디어는 기후 연구가 혼자서 해낼 수 없었을 어떤 일을 이뤄낸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의 지속적인 보도들은 기후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에 전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미디어 보도에 관해 들려오는 일부 불만들은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저널리스트들은 자주 과장법의 양식에 의지한다. 눈에 띄는 사례 하나는 1986년 여름 <슈피겔(Der Spiegel)> 잡지의 표지 사진이다. 사진은 몽타주 기법으로 독일 쾰른성당이 범람한 물에 절반쯤 잠긴 모습을 표현했다. 더 최근의 사례는 롤런드 에머리치(Roland Emmerich)의 영화 <더 데이 애프터 투모로(The Day After Tomorrow)>이다. 지구온난화가 새로운 빙하기로 이어질 수는 없다는 게 과학계에서 동의되는 바인데도, 이 영화와 다른 여러 미디어에는 명백하게 잘못된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반대로 최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주제를 가볍게 다루는 경우도 있다. 몇몇 저널리스트들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인쇄 부수를 늘리기 위해, 기후 문제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실 기후 문제에 관해 같은 얘기를 다시 듣는 일은 아주 따분하게 마련이다. 관심을 끌려면 새로운 게 필요하다. 관심을 끄는 데에 ‘전문가 논쟁’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런 일이 실제의 기후학계에 존재하지 않을 때에도, 이런 논쟁에 관한 이야기는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과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특정한 미량기체들을 대기에 배출해서 지구온난화가 초래됐다고 보는 기본 명제는 전세계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독일에서 ‘발트슈테르벤’(Waldsterben, 삼림 고사)으로 알려진 현상은 과학적 주제를 미디어가 어떻게 무책임하게 다루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삼림 과학자들은 ‘발트쉐덴(Waldsch?den, 삼림 손상)’이라고 얘기해도, 미디어에서 삼림 문제는 언제나 ‘발트슈테르벤’이라는 전문 유행어를 써서 논의된다. 삼림 손상은 이 분야의 연례보고서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듯이 오늘날처럼 심각한 수준으로 일어난 적이 없다. 그러나 삼림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비난에 직면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의 예측이 옳았다 해도, 미디어는 마치 과학자들의 예측이 잘못된 것처럼 이 주제를 다룬다. 일부 미디어에서는 기후 연구를 포함해 환경과학 전분야의 연구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그릇된 결론을 이끌어낸다. 이런 사례는 미디어에 나타나는 과장법과 종말론적인 언어 선택이 전체 연구 분야의 신뢰를 어떻게 깨는지 잘 보여준다. 이로 인해 환경과학의 신뢰가 엄청나게 상실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비슷한 경우를 기후 문제에 관한 대중 토론에서도 볼 수 있다. 미디어는 ‘기후 문제’나 ‘기후 변화’보다는 ‘기후 재난’을 다루기를 좋아한다. 이런 용어의 선택 탓에, 일부 미디어는 기후 연구자들의 예측이 잘못됐다고 판정해버린다. 재난이 일어나지는 않았음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기후 과학자라면 아무도 ‘기후 재난’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의 기후 모형에서 나온 계산 결과를 최근 수십 년 간의 실제 추세와 비교해보면, 계산 결과가 과학적인 관측값과 아주 견실하게 상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기후 모형들이 매우 그럴듯한 것으로 입증되어 왔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 저널리스트들한테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무엇보다 메시지에는 진지함이 담겨야 한다. 저널리스트 자신의 견해 때문에, 기사를 팔려는 충동 때문에 메시지가 크게 왜곡되어 메시지가 모호해지거나 잘못 전해져서는 안 된다. 미디어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될수록 객관적으로 보도하려는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오늘날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자세한 배경 취재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미디어는 과학이 대중의 영역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오류에 쉽게 빠져서는 안 된다. 기후는 매우 복잡한 물리계이며 매우 난해한 수학적 방정식으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과학적 문제들은 과학의 영역에서 논의되어야 하고, 미디어의 역할은 과학계에서 유지될 수 있는 연구결과들을 알리는 일에 제한되어야 한다. 물론 지식 격차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과제는 미디어가 할 일에 포함된다.   전문가의 역할도 여러 측면들에서 비판적 조명을 받아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제시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고, 대부분의 저널리스트들은 과학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오해는 생기게 마련이다. 더욱이 과학자들은 일반인이 과학의 언어를 과학자가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이해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반인들은 자주 가정법의 구문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간과한다. 그것은 대체로 확률에 관한 얘기가 전적으로 또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오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신들이 하는 공식적인 말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저널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전문가들도 자신의 연구 주제를 띄우기 위해, 예컨대 특정 측면들을 부각함으로써 자신의 주제를 추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은 특별히 중요한데, 순수 혈통의 과학자들은 누구나 자기 연구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름의 형성 같은 어떤 과정이 기후 모형에서  정확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형 자체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지금 예로 든, 구름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기후 모형의 전반적인 결과들과 기후 문제 전체를 의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 이런 불확실성들을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세심하게 고려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금 대중적인 기후 논쟁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지구 기후 변화의 원인과 결과에 관해 널리 퍼진 그림 하나가 지배하고 있다. 오존 구멍과 온실 효과 같은 복잡한 쟁점은 미디어에 의해(심지어 주립 방송국의 저녁 뉴스 방송에서도), 또한 대중에 의해 자주 뒤죽박죽이 된다. 사회에 어떤 확고한 지식의 기초를 세우는 일은 분명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중 사이에는 인간 활동의 결과로서 기후가 이미 변화했다는 인식, 그리고 변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은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기후에 끼친 인간의 영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저널리스트와 전문가 사이의 관계와 관련해, 두 진영 간에 어떤 종류의 연대가 생겨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과학 쪽에서 볼 때에는 미디어 작업이 단지 필요악인 게 아니라 과학이 사회에 자리를 잡는 데에 실제로 중요한 기본 요소라는 통찰이 있어야 한다. 정책에 대한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과학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쟁점을 단순화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저널리스트들의 요구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저널리스트들은 특정한 과학적 쟁점들을 마음대로 단순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일부의 복잡한 과학적 문제들은 선정적인 보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저널리스트들과 전문가들은 같은 배에 타고 있다. 그들은 서로 의지한다. 두 집단이 모두 다 대중 토론의 상태에 만족스러움을 느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지구 기후 변화라는 사태에 관해 충분한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루이스 박사의 얘기들 들으며, 언론매체들이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나 다시 생각해봅니다. 당연히 문제의 당사자인 <선데이 타임스>는 전통 매체들이 행하는 잘못된 관행들 중에서 가징 크게 문제가 될법한 문제를 저질렀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얻은 정보(취재내용)가 쓰고 싶은 한쪽 방향의 이야기에 맞춰 가공된 것이지요. 흔히 취재원한테 100을 취재한다 해도 제한된 지면의 한계 때문에 실제 기사에는 취재 내용의 10만을 요령있게 간추리거나 뽑아서 쓸 수밖에 없습니다(정도와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실 이런 간추린 인용의 문제는 기사만이 아니라 학술논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취재원의 말을 기사에 옮길 때에 '선의의 변형'은 불가피하겠지요. 그렇더라도 기사의 전체 맥락이 어떠하며 그런 맥락 속에서 취재원의 말이 어떤 의미로 인용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전문 저널리스트라면 숙고해야만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데이 타임스>는 ‘아마존게이트’라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만한 주제의 덫에 걸려 다양한 취재원의 인용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행히 다른 언론매체들은 루이스의 주장을 기사로 다룸으로써 이런 잘못된 인용의 문제를 바로잡는 데 기여했습니다.   공개적인 글에서 누군가의 말을 옮겨적을 때에는 신중해야 하겠습니다. 맥락에 맞게, 발화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는 자리에 옮겨야만 제대로 된 인용이 되겠지요. 사실 들은 말을 ‘절대적인 의미에서 그대로’ 글로 옮기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 쓰는 이가 얼마나 '상식적인 최선'을 다해 다른 이의 말을 올바르게 인용하려고 노력했는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절대적인 잣대는 없을 테니까, 합리적인 상식의 수준에서 볼 때에 용인될 수 있는 수준에서 기사는 전문가의 진술을 인용해 작성돼야 할 것입니다. 늘 전문가나 전문지식을 주로 취재해야 하는 과학 보도에서는 늘 이런 고민거리들이 따라 다닙니다.   이와 더불어 루이스 박사의 얘기를 추적해 읽다보니 미디어의 주체들이 이제는 매우 다양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아마존게이트의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블로그였습니다. 개인 블로그의 영향력으로 인해 BBC와 <선데이 타임스> 같은 전통 매체들이 취재에 나섰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루이스 스토리에 등장하는 주체들 중에는 당연히 블로그도 포함돼 있다 할 것입니다. 블로그는 주인장 블로거의 활약에 따라 전통 매체와 견줄만한 또 하나의 중요한 매체가 된 것입니다. 또한 루이스 박사도 싸움의 과정에서 자신을 ‘미디어’로 인식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자신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여러 매체들에 알렸고, 사태의 진행 과정을 기록에 남겨 다른 매체에 전했습니다. 일종의 취재, 보도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그가 칼럼의 맨 마지막에 쓴 글귀는 “한숨을 쉬며 신문을 덮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그의 육성이 궁금해 사이언스온은 그한테 언론과 과학의 관계에 관해 묻는 메일을 보냈으나 당연히 응답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언론이 그한테 입힌 상처를 생각하면 바다 건너 듣도보도 못한 매체의 기자가 보낸 편지에 그가 응답할 리는 없겠다).   루이스 박사 같은 과학자와 전문가들도 이제는 개인이나 집단 차원에서 여러 가지 뉴미디어 매체를 활용해 독자적인 매체 기능으로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단체의 웹사이트들은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영역을 점차 늘리고 있거나 그런 기능에 더 높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연구자 개인의 블로그들도 꽤나 생겨나고 있고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제 대중언론 매체들은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장을 넓히기 시작한 과학자, 전문가들과 어떤 관계로 만나 소통하고 취재하며, 여러 매체들을 통해 검증될 수 있는 대중매체의 스토리텔링에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유익한 저널리즘의 이야기로 담아낼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아직 잘 모릅니다. 이처럼 기후게이트로 촉발된 언론과 기후과학의 '불편한' 관계는 숨어 있던 문제들도 드러내어 던져주는 하나의 계기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과학 언론은 과학자들이 '싸구려 저널리즘'이라고 경멸하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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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트위터 : @water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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