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그러니 이곳이 생물 과학과 공학의 융합 현장이죠"
한겨레 사이언스온 – 한국과학창의재단 공동기획
‘미래를 여는 첨단과학’ 현장을 가다
(3) 대사공학자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 심층인터뷰
최신의 첨단 과학은 각종 매체에 중요한 열쇳말로 자주 오르내리지만 정작 그 과학 지식의 알맹이는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과학의 ‘결과’는 사회와 더 가까워지지만 과학의 ‘내용’은 더 난해해져 멀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들을 직접 찾아가 몇차례의 집중인터뷰와 함께 실험실 현장 체험도 곁들이면서 그런 난해함의 의미를 풀어본다. 후성유전학, 대사공학, 현대기하학, 기후역학 등 8개 분야를 선정해 차례로 살펴본다.- 한겨레 사이언스온 |
생물의 과학과 공학이 만나 펼치는 신세계. 단세포 미생물은 이제 에탄올·부탄올 같은 에너지원을 생산하고, 철사보다 강한 거미줄 단백질, 다용도의 화학물질인 숙신산이나 값비싼 의약물 같은 고분자 화합물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 됐다. 포도당 같은 먹이를 먹고 뱉어내는 미생물의 대사물질을 이용하기 위해, 인간은 미생물의 어떤 대사회로는 차단하고, 또 증폭하고, 또는 서로 연결함으로써 효율 높은 대사작용을 하는 새로운 미생물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런 미생물의 미래는 기대와 두려움을 자아낸다. 기자 뿐 아니라 과학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기자는 기술의 악용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면, 과학자는 그런 위험 요소의 관리 대책을 요구하며 기술의 선용 책임을 강조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세 차례 인터뷰에서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대사공학)는 활기차고 막힘없는 말투로 미생물 대사공학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얘기를 쏟아냈다.
‘화학공장’ 미생물의 변신
미생물 공학에 자주 쓰이는 대표 주자는 아무래도 대장균일 법하다. 과학자들이 속속들이 가장 잘 아는 미생물이기 때문이다. 이상엽 교수는 대장균 단세포에서 벌어지는 복잡하디 복잡한 대사와 유전자 조절,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조작하고 조절해 새로운 수퍼 대장균들을 만들어왔다. 지금은 10여종의 균주를 다룬다. 바이오 플라스틱이나 숙신산 등을 만들어내는 미생물들이 그의 실험실에서 태어났다.
-미생물들이 화학공정을 대신해서 여러 물질을 만든다는 게 흥미롭군요. 그걸 연구하는 대사공학은 일반 시민한텐 생소한데 간략히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목적에 맞춰 어떤 생명체의 대사회로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목적을 달성하는 게 대사공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에도 적용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 미생물에 적용돼 미생물 대사공학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네요. 조작된 미생물 균주는 높은 효율로 숙신산, 뷰탄올, 에탄올을 만들기도 하고 화학적으로는 합성하기 어려운 의약물질을 만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미생물이 포도당 먹이를 먹고 생체 안 대사과정을 거친 뒤에 분비물을 내보내는데, 그 분비물에 미량으로 섞인 어떤 성분을 다량으로 만드는 그런 기술이라고 보면 될까요? 인위적으로 대사 경로를 바꾸고, 유전자를 변형하는 식으로 어떤 대사 과정은 증폭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과정은 없애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요.
“네, 그렇지요. 하지만 미생물의 분비물만을 쓰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어 플라스틱 고분자는 분비되지 않고 대장균 세포 안에 쌓이게 되지요. 또 자연에는 없는 대사물질을 만들어 대사회로 안에 끼워넣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선 자연엔 없는 새로운 효소를 만들어 이용한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 그의 연구팀은 자연에 없는 효소 유전자들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설계·제작한 뒤 이 인공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 까다롭고 값비싼 화학공정이 대장균 몸 안에서 저절로 이뤄지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성과는 미국 <시엔엔>의 온라인판에서 한때 머리기사로 보도돼 주목받았다.
-흔히 이런 미생물은 ‘화학공장’으로도 불리는데 실제로 화학공장을 대체한 사례는 있나요?
“점점 많아지고 있죠. 이미 세계적인 화학기업 듀폰이 1990년대 중반부터 설계·조작된 미생물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요. 최근엔 여러 다국적 화학기업들이 이런 바이오 공장을 짓고 있거나 지을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지에스칼텍스와 우리 연구실이 이런 공정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진화하는 가상세포들
그의 연구실에서 이렇게 많은 미생물의 변신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가상세포’ 덕분이었다.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인 가상세포는 어떤 생물종의 세포 안에서 이뤄지는 대사와 유전자 조절, 그리고 신호전달 과정을 컴퓨터 알고리즘을 따라 구현해낸다. 물론 모든 생명현상의 원리가 입력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가상세포는 어떤 생물종의 대사 반응이나 유전자 조절 과정을 인위적으로 바꿀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컴퓨터 화면에 미리 보여주기 때문에, 생명현상을 연구하거나 특정 물질을 고효율로 생산해내는 미생물을 제작할 때 쓰임새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가상세포는 주로 어디에 쓰입니까?
“가상세포는 말 그대로 세포를 가상으로 컴퓨터에 구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물 실험을 직접 하지 않고서도 컴퓨터에서 가상으로 할 수 있고 거기에서 얻은 획기적이거나 눈에 띄는 실험 결과만을 골라 실제로 실험을 할 수 있게 하지요. 예를 들어 대장균의 어떤 대사산물을 얻기 위해서 대장균의 유전자 세 개를 동시에 없애려 한다면, 유전자 세 개를 없애는 대략 1억6600만번 되풀이해야 할 겁니다. 불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가상세포 프로그램을 돌리면 6~9주 정도면 끝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생물학에서 어떤 가설을 검증할 때에 이런 가상세포를 이용하면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해주지요. 그래서 가상세포는 새로운 미생물을 제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생물학의 기초연구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알려진 정보를 입력해서 가상세포를 만들지만, 알려지지 않은 생명현상의 정보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요. 그런 복잡함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가장 많이 연구가 이뤄진 대장균의 경우에는 1000개의 반응과 800개의 대사물질 정보를 가상세포에 입력해두고 있습니다. 메트릭스의 규모로 보면 1000 곱하기 800입니다. 이런 복잡함을 풀 수 있는 여러 수학적 기법을 쓰고 있지만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다 알 수 없고 다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생명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여러 기법을 써서 진짜 세포의 반응을 모사해내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요.”
-가상세포로는 단세포 생물만 연구하나요?
“아직 발표단계는 아니지만 인간 가상세포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단세포도 어려운 일인데, 식물이나 다른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 인간 가상세포를 구현하겠다는 건 욕심 아닐까요?
“저는 화학물질 생산을 위해선 미생물만을 공학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식물이나 다른 동물은 생각하지 않고 있고요. 다만 인간 가상세포는 치료제 개발을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하기 위해 3년 전에 시작한 것이지요. 최근에 마무리 단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주로 항생제 내성균에 대한 새로운 치료 약물을 찾는 연구에 활용될 걸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학과 과학을 융합하는 공학
얘기를 들을수록 그가 전하는 ‘공학’의 정신과 기법이 새롭게 다가왔다. 미생물 공학의 연구자들은 ‘최적의 공정’과 ’최고의 효율’을 추구한다. 또 반도체의 전자회로처럼 생체 대사의 ‘회로’를 그려넣고 설계하고, 그 ‘유전자 부품’을 조작하며 ‘유전자 모듈’을 제작해 끼워넣는다. 모든 지식을 알고난 뒤에야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목적을 위해 우회하는 기법을 잘 아는 것도 공학이다. 이 교수는 “생명현상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미래에도 다 알기 힘들 것”이라며 “그렇지만 모른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 파악되지 않은 복잡한 중간과정을 ‘블랙박스’로 여기면, 무엇이 투입돼 무엇이 산출되는지에 관해 정밀한 지식을 갖출 때 공학은 가능하다.
-말씀을 들으면서 상당한 수준의 생물 과학이면서 또한 ‘공학적인 너무나 공학적인 생물학’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공학이지요. 오남용을 피하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서 무엇을 집어넣어 무엇을 얻는 전체 공정을 최적화하는 게 이 연구의 기본이니까요. 하지만 생물학의 기초가 없어선 안 돼요. 그러니 생물 과학과 공학의 융합이지요. 컴퓨터도 알아야 하고 생물학 실험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더러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와 공동연구도 해야 하고, 생명현상의 복잡계를 다루다보니 상당히 여러 학문들이 융합될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도 하지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복잡함을 어떻게 다 다루는지 그게 궁금했는데, 그런 융합이 있어 가능한 것이군요.
“혼자서는 다 못해요. 우리 실험실 안에서도 아주 이질적인 웻(wet) 팀과 드라이(dry) 팀이 모여 있지요.”
-웻 팀, 드라이 팀이라면?
“흔히 젖은 대상을 다루는 생물학 실험 팀을 웻 팀이라 부르고, 컴퓨터의 가상세포를 다루는 팀을 드라이 팀이라고 부릅니다. 실험실 사회에서 쓰는 말이지요. 그런데, 두 집단은 아주 이질적입니다. 그래서 늘 이 두 집단이 얼마나 활발하게 상호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 연구의 성패가 갈린다고 보고 있지요. 그래서 이런 융합의 문화는 아주 중요합니다.”
합성생물의 미래, 기대와 두려움
더러 생명공학은 미래를 먹고산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이제껏 없었던 방법으로 물질을 풍요롭게 생산해내는 미래는 장밋빛이다. 또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것은 생물다양성을 해치고 먹을거리의 위험을 높이는 어두움이다. 흔히 유전자변형 농작물은 한두 개의 유전자만을 건드리지만, 지금은 미생물 유전자를 수십 개나 한꺼번에 조작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 시대다. 새로운 합성생물학은 미생물의 게놈 자체를 인공으로 설계하고 합성하는 게 가능함을 이미 보여주었다. 과연 생명공학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유전자변형 작물의 수준을 뛰어넘는 생명공학의 시대가 빠르게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미생물 대사공학에서 다루는 것들도 모두 유전자변형 생물체(LMO)죠. 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창조 생명체(LCO), 또는 유전자 인공 생명체(LAO) 같은 용어 말입니다. 자연에 있는 유전자를 변형한 게 아니라 직접 설계하고 합성한 유전자를 쓰기에 창조(Created), 또는 인공(Artificial) 같은 말이 더 정확한 용어가 될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유전자 합성기술이 너무 간편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적인 우려도 생겨나고 있는듯합니다.
“국가안보의 문제로도 논의되고 있지요. 얼마 전에 미국 연구팀이 인공으로 만든 합성게놈을 만들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을 때, 이런 기술이 생물테러에도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요하고도 우려할 만한 기술로 여기고 전문가들한테 기술 평가를 정식으로 의뢰했지요. 실제로 현재 여러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굴뚝 화학공장’을 대체하는 ‘바이오 기반 화학공장’의 신기술로 주목받지만, 이처럼 우려의 대상이 되는 것도 현실이군요. 이런 기술을 모두 쓰지 말자가 선언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기술의 유용성을 살리면서 위험성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를 합성하는 단계, 합성 유전자를 유통하는 단계에 대해선 관리와 통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연구자와 유전자 합성회사들은 모두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지녀야 하겠지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내에서도 논의가 될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위험만을 부각하다보면 좋은 점이 버려질 수도 있지요. 적절한 균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지원:한국과학창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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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종기사] '바이오 화학공장'의 신세계... '감독'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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