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은유로 푸는 과학: 게놈, 에피게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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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체학자들은 유전 정보를 얘기할 때 ‘책’의 비유를 즐겨 쓴다. 유전체(게놈)는 생명의 설계도가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이라는 염기서열 암호로 기록된 ‘생명의 책’이다. 그래서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판독하는 일은 자주 디엔에이를 ‘읽거나’ ‘해독하는’ 일이 된다. 이제 과학기술은 화학적으로 염기서열을 이어붙여 인공으로 유전자를 합성할 수도 있는데, 이런 유전자 합성은 ‘디엔에이를 쓴다’라고도 말한다.


유전물질 전체를 뜻하는 게놈이 ‘생명의 책’이라면, 염기서열 단위를 이루는 디엔에이 낱개는 ‘철자’다. 생명 현상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염기서열 정보의 단위인 유전자는 ‘철자’들이 모여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나 ‘문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신생 학문 분야인 후성유전학에서도 비슷한 비유가 있다. 후성유전물질(에피게놈)은 흔히 유전자를 ‘수식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후성유전물질이 어떤 디엔에이 염기서열 부위에 달라붙어 그곳 유전자의 작동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런 ‘수식’은 수식되는 것(유전자)의 성질을 규정하는 구실도 하지만 쉽게 바뀌는 가변성도 지닌다.


후성유전물질의 특성을 ‘도서관’의 비유에 견주기도 한다. 후성유전학자인 김영준 연세대 교수는 그런 도서관의 비유를 즐겨 쓴다. “학급에 책이 30권 정도면 정리하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책의 수만권이라면? 책 정보를 조직화하지 않으면 쓸 수 없어요. 어떤 책을 찾을 때 수만권을 하나하나씩 검색하는 것보다는 자주 찾는 주제의 책들을 따로 눈에 띄는 곳에 정리해두면 필요할 때 쉽게 찾을 수 있겠지요. 비슷하게 생물이 다세포 생명체, 고등 생명체로 진화하면서 디엔에이 염기서열의 길이는 엄청 늘어났지만, 한 개체의 세포마다 자주 쓰는 유전자들이 달라져 디엔에이 정보를 조직화하는 데에 후성유전물질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전체학·후성유전학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은유들도 생겨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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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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