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합성게놈' 통째로 이식, 박테리아 종을 바꾸다

미국 벤터 연구팀, 자연의 박테리아 게놈을 모사한 인공게놈 합성해 박테리아 이식 성공

유전자 단위 넘는 게놈 차원의 유전자조작 …"고마운 미생물 공장' 기대, "바이오에러" 우려



  00venter2'유전체(게놈) 혁명'이 또하나의 새로운 국면에 이르고 있다. 사람 유전체의 30억 염기쌍 서열 정보를 고속으로 '읽는' 기술이 급속히 진전하는 가운데, 염기쌍을 설계도대로 합성해 유전정보를 '쓰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유전체 정보의 읽기와 쓰기 기술의 진전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상황으로 볼 때에, '읽기'의 정점에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 염기서열 자동해독(시퀀싱) 기술이 있다면, '쓰기'의 정점에는 유전체를 통째로 합성·제작해 새로운 기능의 생물을 만들려는 크레이그 벤터의 '합성생명'이 있다.


지난 5월21일(미국 시각) 미국 생명공학자 크레이그 벤터가 이끄는 연구팀이 게놈을 합성의 인공기술로 제작했으며, 그것을 박테리아 세포에 넣어 제대로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 보고서("화학적 합성 게놈에 의해 제어되는 박테리아 세포의 창조")를 과학저널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사이언스>는 따로 보도한 뉴스에서 벤터 박사 연구팀이 지난 15년 동안 꿈꿔왔던 '인공세포 창조의 꿈'이 마침내 실현됐다고 보도했다. 일부 유전자를 화학 반응으로 합성하고 이를 생물체에 집어넣어 '부분적 합성생물체'를 만드는 일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유전체 전체를 인공으로 만들어 만든 '인공 게놈 합성생물체'는 처음이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 독보적 성과를 내어왔던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JCVI)의 이번 성과는 예고돼왔던 터라, 이번 합성세포 탄생을 두고 곧바로 찬사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  어떻게 만들었나?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보도를 보면, 대니얼 깁슨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하고 벤터 박사가 교신저자로 참여한 벤터 연구소의 연구팀(총 24명)이 이번 연구에서 쓴 방법은 벤터 연구소가 지난 15년 동안 하나하나씩 실현해온 여러 요소 기술들을 한데 엮어 '합성 생명 창조의 공정'을 완성한 것이다. 이미 연구팀은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라는 박테리아에 있는 자연상태의 디엔에이를 다른 종의 박테리아인 미코플라스마 카프리콜룸(M. capricolum)의 세포 안에 이식하는 기술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또 합성해 인공으로 만든 미코플라스마 게니탈리움(M. genitalium)의 유전체를 효모 세포에 복제하는 데 성공한 기술도 갖추고 있었다.


이번 실험에서는 먼저 자연 상태의 M. 미코이데스 박테리아 유전체를 모방한 합성 게놈을 만들어냈으며, 이것을 세포의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제어하면서  M. 카프리콜룸 박테리아의 세포에 집어넣어 '합성 게놈'이 '자연의 게놈'처럼 작동하는 것을 확인했다. 자연의 '원본 게놈'을 흉내낸 '사본 게놈'을 인간의 손으로 써서 만든 셈이다. 인공으로 합성해 만든 M. 미코이데스 박테리아의 게놈은 총 108만 염기쌍으로 구성됐다. 이렇게 다른 박테리아 세포에 넣어진 합성 게놈은 자기복제와 번식 등의 생명체 기능을 제대로 구현해냈다. <네이처>는 자연의 원본 게놈에 있는 몇몇 유전자들이 사본 게놈에서 삭제됐을 뿐 원본인 자연 게놈과 사본인 합성 게놈 사이엔 큰  차이가 없었으며,  소수의 염기서열 에러가 나타났을 뿐 유기체의 기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매우 세심하고 복잡한 기술이 도입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자연 상태의 디엔에이에는 종마다 다르게 생화학 물질인 '메틸기'가 고유하게 달라붙어 있는데 인공의 합성 게놈의 디엔에이에는 이런 메틸기가 붙어 있지 않아, 이식 때 쉽게 외래 물질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연구팀은 이런 거부반응을 줄이고자 합성 게놈의 디엔에이에 메틸기를 붙이는 방법을 개발해냈고, 또한 합성 게놈을 이식받는 카프리콜룸 박테리아에선 이식을 방해하는 특정  기능을 제거했다.

00venter1 » 재창조된 생명. 위 영상에서 파란 색은 이식된 합성 게놈을 나타내며, 아래 영상은 자기복제를 하고 있는 합성 미생물. 출처/ Science

연구팀은 합성한 게놈이 자연상태의 게놈과는 다른 것이며 합성 게놈을 벤터연구소가 만들었음을 기록해두고자, 합성 게놈의 디엔에이 염기서열에 숨겨진 '워터마크'도 함께 넣어두었다. <네이처>는 "합성 게놈의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사람이 연락할 수 있는 전자우편 주소, 웹 주소(URL)와 이름, 문장들이 합성 게놈의 염기서열에 '워터마크'로 담겼다"고 전했다.   벤터 연구소 연구팀은 그동안 미생물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 유전자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미생물의 유전체를 개조해 신재생 에너지나 약물을 생산하는 합성 미생물을 만들어낸다는 구상을 좇아 연구해왔다.

00synthetic » 유전자 합성과 조립, 이식의 방법으로 합성 미생물을 개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원리 개념도. 한겨레 자료그림

 

 

■ 합성세포 탄생의 의미는?


이번 연구를 '생명 창조'로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엄밀한 의미에서 따져볼 때에 자연의 박테리아에 있는 유전체를 모사한 것이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식으로 인공생명을 창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지 처치 하버드대학 교수는 "108만 염기쌍의 게놈을 합성해낸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도, "새로운 생명을 창조했는가? 사실은 아니다"라고 의미 확대를 경계했다. 그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보면, 이번 유사-합성 박테리아는 자연의 박테리아와 다르지 않다. 옛 문헌의 사본을 찍어낸다고 해서 [생명의] 언어를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이번 연구는 기존의 유전자 조작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도약' 또는 '돌파구(breakthrough)'가 될만한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구현된 수준으로 봐서는 '인간이 생명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은 섯부르고 지나친 평가이겠지만, 유전자 규모가 아니라 게놈 또는 염색체 규모에서 생명을 조작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실증해보였다는 점에서는, 기존의 유전공학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체공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조 "DNA 읽기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유전자 조작 넘어 인공으로 만든다" -<한겨레>). 실제로 여러 전문가들도 비록 자연의 게놈을 모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의 상태처럼 작동하는 합성 게놈을 실제로 만들었다'는 점을 크게 부각해 평가하고 있다. 즉, 유전자 단위 수준을 넘어 게놈 차원에서 생명의 기능을 설계하고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넓어질 것이며, 이번 인공세포 또는 합성세포의 탄생으로, 합성생물학과 유전체공학은 더 큰 진전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편으로는 합성 게놈을 이식한 합성생물체의 등장이  예기치 않은 부작용인 '바이오에러'나 합성생물 기술을 악용하는 '바이오테러'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합성생물학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로 대두함에 따라, 인공생명 또는 합성생명의 창조가 몰고올 긍정적인 효과는 높이되 생물테러 가능성 같은 부정적인 영향은 통제하려는 논의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말에 미국 정부는 유전자 합성을 악용한 생물테러를 우려해 ‘유전자 합성 가이드라인’까지 마련해 공시한 바 있다 (아래 상자글 참조).


[참조]

유전자합성 ‘생물테러’ 악용 우려도

미, 독성 유전자 생산감시 지침 공시…연구자 윤리교육 필요 커져   연구자들은 합성생물학을 ‘두 얼굴의 과학’이라고 말한다. 인류에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생물기계’를 만들어 크나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위험한 유전자가 자칫 생물테러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미국 정부는 독성이나 병원균 유전자를 지닌 인공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200개 염기쌍 이상의 유전자를 합성할 땐 생명공학기업들이 스스로 감시망을 가동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해 공시했다. 유전자 합성을 주문하는 고객의 신원을 확인하고, ‘위험한 유전자’ 정보를 모은 데이터베이스와 연동해 주문 내용의 안전성을 확인하게 한 것이다. 세계 생명공학기업들도 현재 업계 자율의 지침을 마련중이다.   국내 연구자들도 생물 안전과 안보를 위해 사회적 제도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상엽 카이스트 교수는 “유전자 합성 기술을 악용하는 ‘바이오 해킹’은 통제하기 힘든 위협이 될 수 있다”며 “과학자의 윤리·인성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사장은 “대유행병이 생기면 치료제 기술을 ‘공공자산’으로 선언해 영리활동을 금하는 국제규약을 유엔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며 “유전자 합성 재료의 유통을 통제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훈기 박사(서울대 강의교수)는 “한국 정부도 위험에 대비하는 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2009년 12월16일치)


[참조] 

  자서전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으로 본 벤터

크레이그 벤터 지음·노승영 옮김/추수밭·2만5000원    디엔에이가 이중나선 구조임을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처음 발견한 제임스 왓슨의 자전적 회고록 <이중나선>(1967)은 과학 발견의 극적 드라마를 보여준다. 두 젊은 과학자가 이름난 과학자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때로는 우연한 행운과 도움을 얻고서, 마침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이뤄 역사적 발견에 이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한다.   게놈(유전체) 시대의 본격 시작을 알린 미국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63)의 자서전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에도 비슷한 이야기의 짜임새가 묻어난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자였던 벤터가 민간 기업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30억 쌍 인간 게놈을 해독하는 ‘대장정’에 나서면서 겪은 여러 어려움과 모험, 승리가 주된 줄거리다. 그는 디엔에이를 무작위로 빠르게 분석하는 혁신적 기법을 개발해 마침내 2000년 인간 게놈을 해독한 첫 과학자로 기록됐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2001년 2월16일치는 283명 공동저자의 47쪽짜리 논문과 더불어 1.5m에 달하는 게놈 지도를 실어 역사적 위업을 기념했다.   하지만 과정은 “전쟁”이었다. 그가 개발한 ‘발현 서열 꼬리표’(EST) 기법이나 ‘전체 게놈 산탄총 분석’ 기법(일명 ‘샷건 기법’)은 디엔에이 조각들을 무작위로 분석한 뒤 ‘그림 맞추기’처럼 컴퓨터로 겹치는 부분을 이어 붙여 전체 지도를 완성하고, 아르엔에이(RNA)를 이용해 유전자들을 빠르게 식별해내는 혁신이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지원하고 18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는 경쟁 관계에 놓였다. 이 경쟁을 벤터는 어떻게 기억할까? 책에서 둘의 경쟁은 ‘중세와 현대의 대결’ 식으로 그려진다. 디엔에이 조각을 하나씩 순서대로 분석하는 기존 기법은 “중세 수도사”의 방식이었고, 벤터의 기법은 “디엔에이 부호를 읽어내는 공장”의 방식이었다. 물론 결승점에서 먼저 웃은 이는 벤터였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이중나선>의 제임스 왓슨이 <게놈의 기적>에선 벤터의 앞길을 가로막는 인물로 그려진 점은 인상적이다. “왓슨 패거리”는 정부 관료집단과 정부 쪽 게놈 프로젝트에 선 과학자들이며, 벤터는 혁신에 나서는 과학자다. 책에선 게놈 과학사의 산증인인 벤터의 연구 개인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불과 2년 만에 인간 게놈을 해독한 ‘기적’ 같은 일을 해냈고, 이후 바닷물에 떠 있는 미생물 게놈들을 통째로 분석해 수많은 신종 유전자들을 찾아낸 새 기법을 제시했다. 이제 그는 게놈의 ‘분석’에서 ‘종합’으로 나아간다.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 박테리아를 만드는 일을 “내가 추구할 마지막 과제”라고 여기는 그는 ‘인공생명체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과학, 산업, 그리고 정치”라는 3부 제목처럼, 이 책은 주식시장과 경영권 다툼, 특허 전쟁에 출렁이는 기업 연구소의 과학 활동 면모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과학은 산업이다. 또 과학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경쟁 관계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슬쩍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과학은 정치다. ‘실패를 두려워해 실험을 피하지 말라’ ‘훌륭한 아이디어를 위대하게 만드는 건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방법이다’ 같은 격언의 생생한 경험담이 이어진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 2009년 4월11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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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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