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알고리즘은 '창의적인 명화'를 찾아낼 수 있을까?
미국 연구진, 15-21세기 6만점 작품 대상 '창의성' 정량화 시도 눈길
» 15-21세기 서양의 미술 작품들이 보여준 독창성과 영향력의 네트워크를 평가해 창의성 점수를 매겨 보여주는 도표. 가로축은 15-20세기의 작품 발표 시기를 보여주며 세로축은 연구진이 구성한 창의성 점수를 보여준다. 출처/ arXiv.org, A.Elgammal et al.(2015)
과연 컴퓨터 알고리즘이 미술 작품의 예술성 또는 창의성(creativity)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이런 과제에 도전한 컴퓨터과학 연구자들의 시험적인 결과가 보고됐다.
미국 럿거스대학교 컴퓨터과학부 연구진은 15~21세기 서양의 미술 작품 6만여 점을 대상으로 독창성과 영향력을 평가해 가장 창의적인 작품들을 가려내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했다며 그 연구결과를 학술 데이터베이스 ‘아카이브(arXiv.org)’에 최근 논문(예술 네트워크에서 창의성 정량화하기")으로 발표했다.
예술적 감성이라는 주관적인 요소를 이런 컴퓨터 분석 작업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먼저, 연구진은 컴퓨터의 시각 기술(vision technology)과 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해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관련 보도와 논문의 설명을 보면, 컴퓨터의 시각 기술은 그동안 그림들에서 공간, 질감, 형상, 색조, 균형, 대비, 조화, 비례 등과 같은 예술적 개념을 정량화해 분석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으며 이를 이용하면 미술 작품들을 자동으로 작은 분류군(classeme)으로 나누어 비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15-21세기 서양의 미술 작품들을 방대한 양으로 저장한 ‘위키아트(WikiArt)’ 같은 예술작품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모두 6만2000여 점에 이르는 미술 작품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무엇이 더 창의적인가’를 평가하는 데엔 ‘독창성’과 ‘영향력’을 정량화하는 기법이 활용됐다. 이전에는 없던 독창적인 그림인가, 그리고 이후에 비슷한 작품들을 많이 낳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느냐를 평가해 '창의성 점수'를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평가 기법을 ‘네트워크 과학’의 이론을 통해 구현했다. 15-21세기의 6만여 작품들 각각을 하나의 ‘노드(연결점)’로 설정하고서, 시각 기술로 파악한 유사한 패턴의 작품들끼리 연결선을 그어 예술 작품의 연결망(네트워크)을 구성했다. 당연히 연결선이 많을수록 그 작품은 영향력과 독창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는데, 이런 네트워크 이론은 한 사회에 전염병이 퍼질 때 ‘수퍼확산자’를 찾아내거나 사회연결망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인물을 찾아내는 데 쓰이는 기존의 '네트워크 중심성 이론'을 활용한 것이다.
결과는 어떠할까? 과연 이런 분석과 평가의 컴퓨터 알고리즘은 창의적인 미술 작품들을 골라낼 수 있었을까? 연구진은 컴퓨터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분류하고 평가하고 가려낸 창의적인 작품 목록들에는 이미 예술사학자들이나 예술가들한테서 높게 평가받은 명화들이 다수 포함되었다며, 이런 점은 이 컴퓨터 알고리즘이 예술적 창의성을 평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Christ crucified)’,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The Scream)’, 클라우데 모네의 풍경화 ‘샤일리의 건초더미(Haystacks at Chailly at Sunrise)’는 이번 컴퓨터의 창의적 미술작품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대표적인 명화로 두드러졌는데, 이는 기존 평가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기존 평가와 달리 알브레흐트 뒤러(Albrecht Durer) 등의 그림은 창의적 작품으로서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한 사례도 있다.
이번 연구는 컴퓨터가 시각 테코놀로지를 활용해 예술 작품을 얼마나 평가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 결과물이다. 실험적인 만큼 한계도 있다.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제한된 서양 작품’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시각 정보만으로 예술성을 평가했다는 점, 그리고 알고리즘에 반영된 평가 기준도 제한적이라는 점 등은 여전히 컴퓨터의 창의성 평가가 제한적임을 보여준다. 지난 역사에 등장했던 기존 작품을 대상으로 분석한 이번 컴퓨터 알고리즘이 미래에 영향을 끼칠 현재 작품의 창의성, 즉 독창성과 영향력을 평가하는 데에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이다.
그러나 연구진이 논문의 결론 부분에서 밝혔듯이, 컴퓨터 시각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의미 있는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즉, 컴퓨터 시각 기술에 바탕을 두어 몇 가지 요소로 짜인 알고리즘이 자동 실행하여 수만 점의 작품들 가운데에서 기존의 예술 작품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물을 산출했다는 점은, 컴퓨터 시각 기술과 네트워크 이론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술적 창의성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의 요소들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결과인 듯하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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