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5500만년전 기후격변으로 지구자기장 남북 역전”

 
  이윤수 지질연 박사. 미국지질학회 ‘지올로지’에 퇴적암 속 ‘잔류자기 화석’ 분석 논문

 “기후격변과 지자기 역전이 동시대에 일어난 증거

  지표면의 기후변화가 지구내부에도 영향 끼쳐 지자기 역전 가능성”    

 

Earth

 

“자철석, 적철석 같은 자성광물 입자들은 '작은 나침반' 같아서 바닥으로 가라앉아 퇴적될 때 지구자기장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간직하게 되지요. 나침반이 남과 북을 가리키듯이, 작은 자철석 입자들도 나란히 정렬하면서 퇴적되니까요.”(이윤수 박사)  


그런 자철석 입자들이 퇴적암에 섞여 수만년, 수천만년, 수십억년을 지나 지금 발굴되면, 퇴적될 당시의 지구 자기장에 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서 공룡 뼈 못지 않게 당시의 지구 상황을 보여주는 일종의 ‘화석’으로 여겨진다. 오래된 퇴적암 지층의 암석을 채취해, 층층이 쌓인 암석 속에서 이런 '지구자기 화석들'을 분석한다면, 지층의 연대는 물론이고 지구자기장의 변동 등을 알 수 있다. 기나긴 지구 역사에서 볼 때에 지구자기장의 북극과 남극은 빈번히 바뀌어왔는데, 오늘날과 같이 나침반의 N극이 북쪽을 가리키던 시기와 반대로 남쪽을 가리키던 시기는 거의 절반씩 있었다는 게 지질학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정설이다.  


오래 전 지구 자기의 역사를 추적하는 고지자기학자들은 수천만~수억년 동안 보존된 ‘지자기 화석’을 찾아내어 거기에 담긴 데이터와 해석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면서 지구 역사에 등장했던 중요한 사건들을 밝혀내고 있다. 이들은 보존된 오래 전 광물의 단서를 현대 과학이 동원할 수 있는 최첨단의 분석 장비를 써서 정밀 분석하고, 다른 기존의 연구 문헌들을 종합해 현대 과학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답을 제시한다.  


최근 이 분야에서 지구자기장의 격변과 기후변화의 상관성에 관해 새롭고도 혁신적인 해석이 국제학계에 발표돼 눈길을 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이윤수 박사와 일본 고오치대학의 가츠토 고다마 교수는 미국지질학회가 주관하는 학술지 <지올로지> 최근호에 발표한 논문 Geology vol.37(Nov., 2009): 1047-1050.">에서 ‘지구 기후가 격변했던 5500만년 전의 이른바 ‘팔레오세-에오세 기온 극대기(PETM)’ 때에 기후격변의 영향으로 지구 자기의 남북이 역전되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지질학에서 ‘팔레오세-에오세 기온 극대기’의 사건은 신생대 중에서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던 기후변화였으며, 그 영향으로 지구 생명체의 대절멸을 초래했던 대표적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략 5500만년 전 무렵에 이런 기후격변이 있었음은 지질학에서 여러 화석 증거들을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당시 급격한 기후변화 때에 지구 자기장의 역전이 함께 일어났으며, 그 두 사건에는 깊은 인과관계의 상관성이 있다는 해석이 제기된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이런 가능성을 결론으로 제시할 수 있었을까? 지구 표면에서 일어난 기후변화가 엄청난 규모의 땅덩어리인 지구의 자기장까지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 연구는 이론적으로 PETM 규모의 기후격변이 지구 회전운동에 변화를 일으켜 결국에는 지구자기장에 어느 정도의 요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한다. 연구팀은 지구 자기의 요동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5500만년 전의 대서양의 퇴적물에서 시추 시료(코어)를 회수해 5mm 간격으로 연속적인 암석의 잔류 자기 추출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그 결과, 예상했던 지구자기장의 요동은 물론이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구자기장의 역전 기록까지 이 지층에 담겨 있음을 확인했다. 이 박사는 "지구 자기장의 변화가 주로 지구궤도 운동의 변화와 함께 일어나는 고유한 주기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기후격변 때 일어나는 대기와 해류 흐름의 변화들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고 말했다.  


이 논문에선 이런 새로운 데이터가 믿을만한 것임을 입증하는 데 많은 부분이 할애됐다. 덕분에 미국지질학회 학술지 <지올로지>의 동료심사도 통과할 수 있었다. 이어 기후변화와 지자기 변동의 상호 연관성에 관해 기존 연구문헌들과 지구 시스템 모델을 이용해 분석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재난 수준의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면 지구 핵의 자기 유동 역학과 대기권-수권 사이에 연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과학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core » 고지자기학 연구를 위한 퇴적물의 시추 시료(코어)를 회수하는 장면. 사진 이윤수 박사 제공  


기후격변은 대기권, 수권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나타났는데, 이런 급격하고 큰 규모의 변화가 지구 내부 시스템에도 영향을 끼쳐 지구자기장의 변화를 초래했다는 게 이 논문의 요지다. 논문의 결론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해양과 대기 변화가 PETM의 시작 무렵에 지구 규모의 격변 수준으로 격렬하게 일어났음에 주목한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대기와 해류, 기후의 순환 피드백시스템의 복합적 연계를 거쳐 대기 패턴도 또한 바뀌었을 것이다. 이런 대규모의 변화는 지자기가 공조(resonance)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제공했으며, 지구 대기권과 수권의 상호작용은 지구 핵과 맨틀의 경계에 있는 ‘자기-유동-역동영역’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즉, 갑작스런 대기권과 수권의 변화는 지구 멘틀과 지구 외핵 사이에 눈에 띄는 마찰력 변화를 일으켰으며, 결국에 지구 회전율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는 곧 지구자기장의 ‘요동’을 넘어서는 ’역전’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5500만년 전 기후격변의 시작과 함께 지구 자기장의 요동이 시작됐으며, 마침내 3만6천년 뒤 지구 자기장의 역전이 초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 논문이 지금 주목받는 이유는, 5500만년 전 기후격변이 지금의 지구온난화와 매우 유사한 지질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지구생명체의 대절멸을 초래했던 PETM 때는 지구온난화가 1만년에 걸쳐 일어났으며, 그 때와 비슷한 규모인 오늘날의 온난화는 수백년이라는 훨씬 더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다”며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직면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지구온난화 자체보다도 너무 급격한 ‘온난화 속도’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또한 지구 자기가 역전되는 과정에는 지구자기장이 90%가량 약해진다는 게 대체적인 학설인데, 이는 생명체에 유해한 우주선과 태양 플라스마가 대량으로 지구 대기권으로 유입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뉴스 속 한마디

 

QLYS. 사이언스온: 광물에서 5500만년 전의 지자기 흔적을 발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과학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퇴적물이 침전할 때 당시의 자기 특성이 암석에 반영되는지요? 일종의 ’지자기 화석’과 같은 이미지로 비치는데 무척 흥미롭습니다.   


A. 이윤수 박사(사진): “지구는 매순간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암석 한켜 한켜에 저장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암석은 일종의 ‘지구의 블랙박스’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옛 지구 자기 즉 고(古)지자기는 눈에 안 보이는 화석으로, 고지자기학자들은 암석 시료를 대상으로 극저온 초전도자력계 같은 장비를 이용해 그런 지자기 화석을 측정·분석해 해독하고 있습니다.”  


Q. 온: 이번 연구의 의미와 한계는? 기존 연구들이 이미 밝힌 것과 이번 연구에서 새롭게 제시한 독창적 성과는 무엇인지요? 논문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니, PETM이나 지자기 역전 사건은 이미 학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요.  


A. 이: “PETM이나 지자기 역전은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PETM 시기에 지자기 역전이 있었는지는 몇 연구에서 한두 점 정도의 시료 데이터로만 제시됐지, 이런 주제를 직접 논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깊은 퇴적암석의 시추 시료(코어)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강한 자기 환경(시추 장비, 시추선 실험실 등)의 영향으로 생기는 ‘2차 자화’, 그리고 코어를 길게 반으로 잘라 한쪽은 연구용, 다른 한쪽은 보관용으로 나누는데 두 쪽 코어의 비대칭성 문제, 초전도 자력계의 측정 유효범위, 퇴적물 속 자성 광물의 비대칭 분포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초정밀 규모로 PETM 때에 지자기 역전 사건이 있었음을 확인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단 한 차레의 기후 격변으로도 지구 자기장의 역전이 일어날 수 있음을 제안한 것입니다. 즉, 단 한 차레의 기후격변이라도 지표 시스템(수권·대기권)과 지구 내부 시스템(핵·맨틀권)이 공조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Q. 온: PETM 당시는 얼마나 기온이 올랐는지요? 논문에 보면, 대기권 수소-탄소 요동이 심했으며 오늘날의 상태에 비견될 만하다는 표현도 나오는데. 그 시기가 왜 주목받는지 설명해주시지요.  


A. 이: “최근 15년간 이 분야에서 선구적인 지구과학자들(제임스 제이코스 James Zachos 교수 등)의 연구들을 보면, 지구 역사에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했던 5500만년 전의 이른바 ‘팔레오세-에오세 기온 극대기(PETM)’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갑자기 지구 해수의 온도가 초기 1만년 사이에, 섭씨 5~9도나 급상승했으며, 심해의 저서성 유공충과 플랑크톤부터 하늘의 새에 이르기까지 지구 생명체에 엄청난 규모의 절멸을 초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생대 최대의 격변이었지요. 0Zachos지구 모델링 연구에 의하면 바다 아래에서 2조~3조톤의 가스하이드레이트가 한꺼번에 해리되면서 대기중 이산화탄소가 1800ppm까지 급증했는데, 그것이 당시 지구 해류의 흐름까지 바꾸어 놓았습니다. 특히 오늘날 지구온난화가 아무 대책 없이 진행될 경우에는 이런 PETM의 규모와 흡사하다는 것에 지구과학자들은 주목하고 있지요. 문제는 그렇게 지구 자기장의 남극과 북극이 역전될 때 지구자기장이 90%가량이나 약해지고, 그렇게 되면 태양 플라스마와 우주선(cosmic ray)의 유해한 영향을 지구 포유류를 비롯해 생명체들에게 끼칠 수 있다는 점이지요.”  

▶ 참조 그림(오른쪽): 신생대 지구의 심해 산소동위원소 기록(Zachos 외, Science, 2001)로부터 편집). 세로축(Ma)은 지질시대(단위 100만년)이고, 가로축의 δ18O는 지질시료(퇴적층 속의 미화석시료나 빙하시료)와 표준평균바닷물(SMOW)로부터 구한 (18O/16O)비를 이용하여 구한 값으로써, 기후변화의 지시자로 쓰인다. δ18O 값이 작을수록 따뜻한 기후를 나타내며, 55Ma에 PETM에 갑자기 값이 튀는 것을 보여준다. (이윤수)      


Q. 온: 이 논문을 잘못 읽으면, 현재의 기후변화에 대해 과잉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논문을 보는 적절한 감상법은 어떤 것일까요?  


A. 이: “중요한 지적입니다. 지구온난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인한 과도한 온실가스의 배출입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만 하더라도 지구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은 현재 연간 30억톤 정도입니다만, 인류가 배출하는 연간 이산화탄소 양은 이미 60억톤을 넘었습니다. 인간이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은 명확하다는 것이 저를 포함해 기후를 연구하고 있는 지구과학자들의 정설입니다. 다만 그것이 가까운 미래, 우리 지구와 지구생명체에 얼만큼, 그리고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에 대해선, 이견들이 있고 그런 견해를 좁히는 문제가 금세기 지구과학자들에게 남은 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기후변동에는 매우 복잡한 주기를 지니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는데, 널리 알려진 <투모로> 같은 기후 영화들에서 보이듯이 어느 하나의 영향만을 극적으로 부각해, 실제 지구 기후변동의 본질과는 다른 혼동을 주는 예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Q. 온: 말씀을 듣다보면, 지구자기장의 남북이 우리가 굳게 믿는 것처럼 그리 견고하지 않으며, 지구 표면의 기후와 대기권·수권의 격변으로도 지자기 역전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제기한 게 가장 큰 의미를 지니겠군요.  


A. 이: “네, 그렇습니다. 단 PETM과 같은 하나의 기후격변 사건으로도 지구자기장의 남북극이 바뀔 수 있다는 증거와 논리를 제시한 것입니다. 이번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국제통합해양시추프로그램(IODP)와 국제대륙과학시추프로그램(ICDP) 같은 국제 규모의 거대 연구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난 수십년 동안 지구과학자들이 합심해 엄청난 성과를 이뤄왔기 때문입니다. 저희 연구팀의 새로운 연구성과는 지구 연구의 작은 징검다리에 불과합니다. 어찌 보면 지질학계에서 새로운 논란거리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땅은 견고해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지구의 대륙들이 붙어 있었다가 떨어져 나왔다는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처음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정설로 받아들여지듯이, 이번 기후격변 사건에 의한 지구자기장 역전설도 학계에서 모니터링되고 있으며 언젠가 검증되리라고 생각합니다.”  


Q. 온: 지난 3월 중순부터 몇 차례에 걸쳐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하는 동안에 늘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질학, 고지자기학이 흥미로운 분야임을 다시 알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고침] 취재원의 지적에 따라 뉴스 속 한마디 안에 있는 일부 문구들을 고치고("최근 5년간" → "최근 15년간", "미국 지구과학자" → "지구과학자",  "우주선(주로 태양 플라스마)이" → "우주선과 태양 플라스마가" 등), 이 분야에서 자주 인용되는 도표를 새로 추가합니다. 2010년 4월29일 오전 10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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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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