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레오 갈릴레이.
유명세 탓일까?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우주 관측 데이터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계속 제기되면서 갈릴레오의 명성과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새 해석들은 이렇다. 갈릴레오가 자신이 만든 천체관측 망원경으로 수집했던 별들의 관측 데이터들이 오늘날의 과학지식으로 분석해볼 때 잘못된 계산 결과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관측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한다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마냥 지지하는 근거로 삼기 어려운데도 갈릴레오는 이를 근거로 코페르니쿠스 가설을 지지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해석과 주장을 제기한 이는 미국 켄터키주 제퍼슨커뮤니티대학의 물리학자 크리스토퍼 그래니 교수이며, 이런 주장을 권위 있는 과학저널 <네이처> 뉴스판이 잇따라 보도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네이처]
"회절 현상에 속아넘어간 갈릴레오" [네이처]
"갈릴레오, 데이터 무시하고 코페르니쿠스를 지지"
» 코페르니쿠스 이전에 서양 중세의 우주관을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체계도. 우주 중심에 지구가 있으며 지구를 둘러싼 7개의 천구에 달과 태양, 그리고 행성들이 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천구에는 수많은 별들이 붙어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은 8개 천구들이 지구 둘레를 돈다고 보았다.
» 원통 안에서 일어나는 빛의 회절 현상 '에어리 원반'. 출처: Wikimedia Commons 먼저 그래니 교수는 지난 2009년
<더 피직스 티처>라는 과학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갈릴레오가 자신의 원통 망원경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해낸 별들과 지구의 거리는 실제보다 무려 수천배 짧은 것으로, 당시에 갈릴레오는 망원경에 나타나는 빛의 회절 현상을 몰라 이처럼 잘못된 계산을 하게 됐을 것이라는 요지의 해석과 주장을 폈다. 별빛이 관측자 눈까지 오는 데엔 망원경의 원통 안을 거쳐야 하는데 망원경 안에서 일어나는 (경계면이 흐릿하게 퍼져 보이는) 빛의 회절 현상을 고려하지 않아 별의 크기가 실제보다 크게 관측됐다는 것이다. 갈릴레오는 별들을 모두 태양과 동일시해 별들의 크기 기준으로 별과 지구의 거리를 계산했다. 빛의 회절 현상은 갈릴레오 당시엔 알려지지 않은 과학 지식이다. 이런 해석과 주장은 당시 과학 지식의 한계 때문에 갈릴레오가 피할 수 없었던 '착시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중세 전통의 천문학자들을 비판하면서 ‘감각에 속지 말고, 이성과 기하학에 의지하라’는 논지의 주장을 강하게 펼쳤던 학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감각의 오류를 면치 못한 갈릴레오도 체면을 구길만한 일인 것 같다. 저자 그래니 교수가 과학저널에 더 다듬어 발표하기 이전에 올려놓은 글은 공개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org)’에서 볼 수 있는데, 비전문가가 읽기는 어렵다. 더 심각한 해석과 주장은 갈릴레오가 스스로 관측한 데이터를 곧이 곧대로 충실하게 해석했다면,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귀결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니 교수는 <피직스 인 퍼스펙티브(
Physics in Perspective)>라는 과학저널에 게재 예정인 논문에서 이런 해석과 주장을 펼쳤다. 논문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지만, <네이처> 뉴스판은 논문의 주요 내용을 화제의 뉴스로 다루고 있다. 그래니 교수는 2008년 문제의 글을 발표한 뒤에 갈릴레오와 동시대를 살며 별들을 관측했던 다른 천문학자 지몬 마리우스(Simon Marius, 독일인)의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고서 둘을 비교했다. 그랬더니 마리우스의 관측 데이터에서도 망원경 안의 회절 현상을 고려하지 않아 잘못된 별의 거리 계산들이 나타났다. 회절 현상 탓에 망원경에 맺히는 별의 크기가 실제보다 큰 탓에, 지구에서 떨어진 별의 거리가 실제보다 더 가깝게 계산됐다는 것이다.
»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체계.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지구 중심의 우주 체계를 뒤엎고 태양 중심의 우주 체계를 제안했다. 그 체계에서는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를 포함한 다른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돈다. 별들이 지구 둘레를 회전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지구의 회전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의문이 제기된다. 코페르니쿠스 태양중심설은 중세 전통의 프톨레마이오스 지구중심설에 맞서 ‘별들은 천구에 붙어 있다’는 지구중심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별들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움직이지 않는 별처럼(붙박이별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갈릴레오가 계산한 별의 거리가 실제보다 짧다면 이런 논거는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토록 멀리 있는 별들의 거리가 실제보다 가깝게 관측됐다면(물론 회절 현상 때문에 잘못 관측한 것이다), 비록 잘못된 관측 데이터라 해도 이런 데이터를 충실하게 해석했다면, 과연 코페르니쿠스 가설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겠느냐고 그래니 교수는 반문한다. 오히려 (비록 잘못 관측된 것이지만) 일단 관측된 데이터를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해석했다면, 지구정지설의 변형 가설인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게 마땅한 귀결이었을 것이라고 그래니 교수는 말한다. 실제로 다른 천문학자인 마리우스는 자신의 관측 데이터를 곧이곧대로 해석해 티코 브라헤의 우주체계를 지지하는 과학자로 남았다. 티코 브라헤의 우주체계는 지구는 운동하지 않으며 지구 둘레로 달과 태양이 돌고, 다른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축으로 삼아 회전한다’는 가설을 말하며 당시에는 중세 전통 우주체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교한 가설로 받아들여졌다.
» 다른 천문학자 지몬 마리우스는 갈릴레오와 비슷한 관측 데이터를 얻었으며, 그런 데이터가 티코 브라헤의 우주체계에 맞아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림은 티코 우주체계.
그래니 교수는 <네이처> 인터뷰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관측 데이터를 충실하게 해석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서 볼 때에 결국에는 (지구는 태양 둘레를 돈다는) 올바른 결론에 도달했다”며 “어떻게 관측 데이터를 무시하고서 결국에 올바른 것으로 판명된 관점을 견지하게 됐는지는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다른 과학사 학자는 “갈릴레오가 코페르니쿠스주의를 강력하게 믿고 있었기에 그가 반대되는 논거를 빼고서 과학적 가설을 주장했다 해도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실은 뭘까? 그래니 교수의 갈릴레오 사료 연구와 결론은 충분한 것일까? 갈릴레오는 더 많은 다른 증거들로도 지지되는 태양중심설의 신념을 더욱 중요시하는 바람에 관측 데이터의 해석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일까? ______ • 고침: 독자 kyj1213님의 지적으로 “빛의 회절 현상을 고려하지 않아 별의 크기가 실제보다 작게 관측됐다는 것이다”는 본래 문장의 오류가 발견돼 “…실제보다 크게 관측됐다…"로 고쳤습니다. 2010년 3월11일 오전 11시2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