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두려운 초파리의 '공포감정' 연구 눈길

미국 연구진, 초파리의 공포 감정 표출 행동모델 제시

유전학 축적된 초파리 통해 원초적 신경회로 연구제안


00fly.jpg » 초파리. 출처/ Wikimedia Commons


리도 공포를 느낄까, 그 공포를 어떻게 느낄까? 사람이 느끼는 공포 감정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위협에 대한 공포의 방어 반응이 초파리에서도 관찰된다는 연구결과가 제시됐다. 이미 유전학 분야에서 매우 자세히 연구된 대표 모델동물인 초파리가 공포 감정의 모델동물로도 연구된다면 감정과 연관되는 원시적인 신경회로를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한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의 연구진(책임저자 David Anderson)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낸 논문에서 시각적 위협이 가해질 때 초파리의 방어 반응에서는 감정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른바 ‘감정 원소’, emotion primitive)들이 나타난다면서 초파리가 감정의 신경회로를 연구하는 데 모델동물로 다뤄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00flyfear1.jpg » 초파리의 공포 반응을 관찰하는 실험 장치. 주걱 모양의 회전판을 이용해 움직이는 그림자를 만들어 원형 통 안에 든 초파리한테 위협 자극을 주면서 초파리의 반응을 관찰한다. 출처 / Caltech 연구진은 초파리의 공포 반응을 관찰하기 위해 별도의 실험장치를 설계했다.


한복판에다 먹이통을 두고서 굶주린 초파리들이 먹이를 찾아 먹도록 했다. 그러면서 위협 자극이 가해질 때 초파리들이 어떤 회피와 방어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고자, 초파리들의 머리 위로 회전하는 그림자가 수시로 나타나게 하는 장치를 만들었다(오른쪽 사진). 그러면서 초파리들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모니터링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초파리의 동작을 분석했다.


그런데 이 연구를 이해하려면 먼저, 초파리의 공포 감정을 우리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게 이해하고 관찰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런 현상이 파리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두 가지 점에서 곤란합니다. 첫째, 파리의 뇌는 인간 뇌와 아주 다르죠. 둘째, 파리의 진화역사는 인간의 진화역사와 너무나 다르죠. 그러니까 파리도 감정을 지닌다고 확실하게 입증해도, 이때의 감정은 인간의 감정과는 같은 게 아닐 겁니다.”(칼텍 보도자료)


연구진은 “그렇기 때문에 곤충에서 감정을 관찰하려는 연구에선 객관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이건 생쥐이건 곤충이건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감정의 원초적인 어떤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감정’을 구성하는 원초적인 기본요소를 다섯 가지로 제시했다. 어떤 종류의 자극에 반응이 일어나느냐 (유의성 valence: 사람이 총소리에 공포를 느끼듯이), 자극이 있고나서 반응이 지속되느냐 지속성, persistence: 총소리를 듣고서 한동안 공포가 이어지듯이), 자극이 클수록 반응도 커지느냐 (비례성 scalability: 총소리가 여러 차례 날 때 공포가 커지듯이), 자극이 가해질 때의 상황이 어떠하느냐에 상관없이 반응이 나타나느냐(맥락일반화 context generalization: 총소리를 들을 때 밥먹고 있건 일하고 있건 상관없이 공포가 일듯이), 다른 상황의 자극이 주어져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나느냐 (상황초월성 trans-situationality: 총소리와 유사한 굉음이 들릴 때 공포가 일듯이) 등이 감정 구성의 원초적 요소들이라고 연구진은 제시했다.


실험에서는 초파리들이 이런 공포 감정의 요소를 잘 보여주었다.

다음의 동영상에서, 초파리 한 마리는 머리 위로 그림자가 휙 지나가자 위협을 느꼈는지 흔한 공포 반응으로 몸과 날개를 꼼짝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얼어붙기(freezing) 행동을 보여주며 뒤이어 갑자기 펄쩍 뛰면서 그림자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행동을 보여준다.


[ 동영상 https://youtu.be/c2P73Mgi3UQ ]


다른 동영상은 머리 위로 그림자가 지나가자 먹이통 주변에 모여 있던 여러 마리의 초파리들이 보여주는 공포 반응을 담았다. 그림자라는 위협의 자극이 많아질수록 공포 반응은 커진다. 얼어붙기를 보여주거나 펄쩍 뛰어오르거나 놀란 듯이 달아나는 모습이 뚜렷해진다.


[ 동영상 https://youtu.be/FSfZxLmu38Y ]


더욱 다양한 상황에 나타나는 다양한 공포 반응의 모습을 다음의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 http://authors.library.caltech.edu/57549/


이런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반복적인 시각적 위협 자극에 대한 초파리의 반응은 포유류의 ‘공포’와 유사한 듯한 감정 원소들을 드러낸다”면서 초파리의 공포 감정을 표출된 행동으로 측정할 수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은 이어 이런 감정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할 수 있는 모델동물로서 초파리가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제안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후속 연구들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논문 요약

 감정 상태의 밑바탕을 이루는 신경회로 메커니즘은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다. 초파리(Drosophila)는 신경회로 기능을 해부하는 데 강력한 유전학적 연구방법이 되지만 초파리가 감정과 유사한 행동을 보여주느냐는 지금까지 분명하지 않았다. 최근에 우리는 모델동물도 “감정 원소(emotion primitives)”를 드러내는 내적 상태를 표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을 한 바 있다. 여기에서 “감정 원소”는 “공포(fear)”나 “불안(anxiety)”과 같은 특정한 인격화 감정들(anthropomorphic emotions)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감정들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일반적 특징을 말한다. 이런 감정 원소들로는 비례성(scalability), 지속성(persistence), 유의성(valence), 그리고 여러 맥락들에 대한 일반화(generalization)가 있다.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이런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자극(“그림자”)에 대한 초파리의 방어 반응들이 순수하게 반사적인지 또는 기저에 있는 감정 상태를 표출하는 것인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우리는 닫힌 영역에 제한된 초파리들이 머리 위에서 움직이는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도록 하는 새로운 행동 연구 장치를 보여준다. 반복적 자극은 초파리의 이동 속도와 펄적 뛰어오르기, 그리고 간혹 얼어붙기 행동을 비례적으로 더 강화하고 더 지속적이게 만들었다. 이 자극은 또한 초파리들이 먹이통에서 벗어나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부정적인 유의성(valence)과 맥락일반화(context generalization)를 보여주는 것이다.
 놀랍게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극으로 인해 흩어졌던 초파리들이 먹이통으로 되돌아왔으며, 이는 방어적인 내적 상태가 사라지는 게 천천히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 지연은 애초 흩어지게 만든 자극이 더 클 때 더 길어졌다. […] 우리 결과는 반복적인 시각적 위협자극에 대한 초파리의 반응들이 포유류의 공포와 유사한 듯한 감정 원소들을 드러내는 내적 상태를 표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이런 상태를 보여주는 메커니즘의 기초는 유전학적으로 쉽게 다룰 수 있는 곤충 종에서 연구될 수 있을 것이다. (논문 요약에서)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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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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