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중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6)



우주와 물질에 관한 물음 얼마나 풀릴까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물리학)


6_우주배경복사_사이온 »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의 WMAP 위성은 전 우주에 걸친 우주배경복사에서 소규모의 온도 요동이 존재함을 보여준 바 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우주를 누비는 첨단의 관측위성들 덕분에
우리는 전례없는 정밀도로 우주를 바라본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정체 규명은 중요 과제다


기초과학, 특히 물리학은 만물의 기원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우주는 무엇으로 어떻게 언제 만들어졌을까 하는 물음들은 인류가 이 땅에 나면서부터 품었던 궁금증이었으며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철학과 과학이 발전했다.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지금 인류의 모범답안은 ‘소립자들에 대한 표준모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세상에는 전자나 쿼크처럼 상급 단위의 물질을 만드는 기본단위로서 구성입자(페르미온, fermion)와, 빛과 접착자(쿼크들을 서로 접착시킨다)처럼 힘을 매개하는 매개입자(보존, boson) 두 종류의 소립자가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표준모형은 중력을 제외한 자연계의 세 가지 알려진 힘, 즉 전자기력과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을 설명한다.

 

 

1960년대 이래 표준모형 굳건, 그러나 딜레마들은

 

표준모형은 1960년대부터 구축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이론적으로 완성되었고 1980년대에 결정적인 실험적 증거들로 확증되었으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다양한 실험을 통한 정밀검증을 거치며 가장 성공적인 이론으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표준모형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지만 적지 않은 난점 또한 안고 있다. 첫째, 표준모형의 소립자들이 질량을 갖기 위해서는 ‘힉스’(Higgs)라고 불리는 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힉스 입자는 그 존재가 예견된 지 50년 가까이 흘렀지만 실험적으로 검출되지 않고 있다.

 

둘째, 표준모형으로는 우주의 암흑물질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암흑물질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로서 우주 전체 에너지 밀도의 약 22%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암흑물질의 정체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암흑물질의 존재 자체가 표준모형의 큰 난점이다.

 

셋째, 표준모형은 극도의 미세조정을 해야 하는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원리로 보면 힉스입자는 순간적으로 다른 입자들을 만들고 이 입자들이 다시 힉스 입자로 합쳐지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이 과정은 힉스 입자의 질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우리가 힉스 입자를 발견한다면 그 질량은 이 모든 효과를 다 더한 결과이다. 실제 힉스 입자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100배를 크게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론상 힉스 질량에 대한 양자보정은 한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니까 만약 우리가 양성자 질량의 100배에 가까운 힉스 질량을 측정한다면 이 값은 무한히 큰 양자보정 값들을 매우 정밀하게 더하고 빼서 조정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물리이론으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 척도까지만 생각해 보더라도 이 정밀도는  10³² 정도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에서 과연 이러한 초정밀 미세조정이 정말 일어나는 것일까?

 

넷째, 표준모형에는 중력이 빠져 있다. 표준모형은 한마디로 전자기력과 약력, 강력에 대한 상대론적 양자이론이다. 거시세계에서의 중력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잘 설명하고 있지만, 중력을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LHC들 둘러싼 기대와 긴장..몇 가지 예측 시나리오


 

6_힉스이벤트_위키 » 두 개의 양성자가 충돌하면서 생긴 힉스 입자의 붕괴를 그린 가상도.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제공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 2008년 9월 제네바 소재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를 가동시켰다. 가동 직후 사고를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LHC는 지난 2009년 11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LHC는 27㎞의 둘레와 양성자 질량의 1만4천배에 달하는 충돌에너지가 말해주듯 인류가 지금까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거대한 실험 장치이다. 그래서 향후 물리학의 10년은 LHC의 10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지금 물리학은 LHC라는 초특급 수능시험을 보고 있는 셈이다.

 

LHC의 실험 결과는 물리학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과학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LHC가 힉스 입자만 발견하고 만다면 무척 실망스러울 것이다. 표준모형을 약 50년 만에 실험적으로 확증하게 된 것 자체가 큰 성과이겠으나, 표준모형의 여러 난점들은 여전히 미결 과제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적어도 LHC가 힉스 입자는 물론이고 표준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학의 징표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초대칭성(supersymmetry: 보존과 페르미온 사이의 대칭성)과 덧차원(extra dimension)이 유력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두 번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LHC는 21세기 과학의 대표적 기념비로 기억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에 LHC에서 힉스 입자를 포함해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스티븐 호킹은 LHC가 가동될 즈음 이 마지막 시나리오에 100달러를 걸었다. 힉스 자가 없으면 지금까지의 물리학에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는 게 그의 이유였다. 하지만 힉스 자조차 발견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이 근 반세기 동안 헛다리를 짚었다는 뜻이니까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예컨대 가장 믿을만한 인간의 인식체계로서의 과학은 자신의 위대한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며 그 신뢰성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1993년 미국에서는 LHC보다 훨씬 더 큰 입자가속기인 초전도초대형충돌기(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SSC: 둘레 87km, 충돌에너지는 양성자 질량의 4만 배) 계획을 완전히 폐기한 것을 하나의 계기로 해서 이른바 ‘과학전쟁’이 촉발되었다. 과학전쟁은 과학의 본질을 둘러싼 논쟁으로, 과학적 내용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결정되는 비우월적 지식체계라는 사회구성론자들과, 과학지식의 특수함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이 세 번째 시나리오가 당첨된다면, 물론 호킹은 내기에서 100달러를 따서 기쁘겠지만, 과학계 전체는 1990년대의 과학전쟁보다 훨씬 더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LHC 이후에 계획 중인 전 세계의 대형 과학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폐기됨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과학자들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



첨단 우주관측위성들 활약..“10년 내 극적 발견 기대”

 

물질의 기원 뿐만 아니라 우주의 기원을 추적하는 작업도 향후 10년 안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관측 장비 특히 관측위성의 발달로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정밀도로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예컨대 우주의 나이(137억년)나 에너지 분포 등에 대해 우리는 1%미만의 정밀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무엇보다 우주의 에너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암흑물질(22%)과 암흑에너지(72%)의 정체를 규명하는 것이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리고 현재의 우주를 있게 한 우주의 초기상태에 대해서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초기 우주의 급팽창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아울러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뜨겁게 뒤섞여 있던 초기우주에서 어떻게 지금의 은하와 별과 행성이 만들어졌는지 그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큰 진전을 이룰 전망이다.

 

이를 위해 여러 첨단 관측위성들(WMAP, PLANCK, PAMELA, FERMI 등)이 우주를 누비고 있다. 이 밖에 일반상대성이론이 예견하는 중력파를 우주에서 직접 검출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인 ‘리사’(LISA, Laser Interferometer Space Antenna)도 과학자들의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리사는 2018~2020년 발사될 예정으로, 중력과 우주의 기원에 관한 획기적인 정보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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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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