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새로운 과학의 등장, 새로운 서사의 등장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3)

과학의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바뀔까

김용석 영산대 교수(철학)




이야기의 시작

관찰은 모든 서사(스토리텔링)의 기본 자양분이다. 과학에서도 서사는 생겨나게 마련인데, 특히 과학 서사는 구체적인 관찰 자료에서 서사의 동기와 에너지를 얻는다. 과학적 스토리텔링의 필요성과 가능성은 관찰 결과에서 시작된다. 관찰 자료들을 합리적으로 연계해 핵심 개념으로 설득력 있게 기술하는 것이 과학의 스토리텔링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야기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을 나는 ‘과학적 플롯 짜기(scientific plotting)’라고 부른다.

 

관찰은 물론 관찰의 이면을 포함한다. 다양한 생명체의 존재와 변이 현상을 관찰하며 자연선택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가시적인 자연 현상의 이면에 있는 자연 법칙을 발견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관찰과 개념화. 그리고 변화하는 현상에 대한 서사적 기술의 대표적인 예는 다윈의 진화론일 것이다. 다윈은 생명 진화의 역사를 썼다. 곧 ‘스토리’를 ‘텔링’했다.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허구’의 요소를 지닌다. 그러나 실재를 반영하는 허구이므로 과학적 가치가 있다.

 

학자들은 나름대로 다윈이 성취한 ‘과학 서사 구성’의 이유를 찾으려 했다. 물리학 방법론에 충실한 제이런 러니어는 진화론적 사고는 ‘작업 가설’의 기능에 머물렀기 때문에 “거의 언제나 이야기 방식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됐다”고 주장한다. <다윈의 플롯>이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쓴 영문학자 질리언 비어는 진화론이 이야기의 성격을 지니는 이유를 다윈의 언어 선택과 ‘이야기 짓기’에 관한 특별한 관심에서 찾았다.

내가 볼 때, 러니어는 작업 가설의 기능에 머무는 과학적 모델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때 당시 사회·문화적 억압 때문에 특별한 언어와 표현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비어의 입장은 맥락을 중시하는 과학사회학적 해석이다. 다윈이 성장 과정에서 이야기 짓기에 관심과 능력을 보여주었고 문학에 심취하기도 했다는 것은 ‘전기적 이유’이다. 이런 사회·문화적 맥락과 평범한 전기적 이유에 집중해서는 과학적 탐구의 내적 역동성을 이해하기 어렵다.

 

갈릴레오·다윈 과학의 '플롯'

다윈의 과학적 방법론에서 핵심은 관찰이었다. 다윈은 유별난 관찰자였다. 이는 그가 어릴 적부터 동식물을 열정적으로 유심히 관찰해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글호’를 타고 여행하면서 세계 곳곳의 자연과 생명체들을 볼 수 있었고 특히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관찰 결과가 그의 이론 형성에 결정적이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즉 다윈은 관찰-개념-서술이라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기본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관찰된 ‘결과를 엮어 가는(plotting sequence)’ 능력이 필요했다. 곧 관찰 결과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했다.

 

다윈의 과학 서사를 이해하는 데 ‘이야기꾼’으로서 다윈’을 전제하기 전에, ‘관찰자’와 ‘개념 개발자’로서 다윈을 전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야기꾼으로서 과학자 다윈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토머스 헉슬리가 “이 쉬운 자연선택을 생각해내지 못했다니!”라고 말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에피소드는 자연선택의 개념이 관찰 자료들을 하나의 ‘플롯’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잘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렇게 잘 작동하는 개념을 얻기까지는 다윈이 했던 것처럼 엄청난 변이의 경우들을 관찰했어야 한다. 다윈의 작업은 관찰과 개념이 과학 분야에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 사례이다.

 

갈릴레오망원경 » 갈릴레오의 망원경. 망원경을 써서 더 깊게 하늘을 관측하면서 새로 발견한 우주의 모습은 '우주 서사'를 지구 중심에서 태양 중심으로 바꾸어놓았다.

세심하고 풍부한 관찰을 기본으로 한 과학적 패러다임 전환의 예는 다윈 이전에 물리학에서도 있었다. 갈릴레오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망원경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우주를 더 멀리 관측하며 '더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대단한 일로 여겼다. 관측 결과를 일기 쓰듯 일지에 기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야만 ‘별들의 이야기’를 과학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으로써 갈릴레오는 ‘우주 서사’의 주인공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꿀 수 있었다.

 

도구와 관찰은 갈릴레오의 과학적 탐구에서 핵심적이었다. 갈릴레오는 수학 교수답게 추상화하는 작업에 익숙했던 학자였다. 그러나 그가 근대과학에 준 가르침은 관찰의 중요성이었으며, 이와 함께 ‘잘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라’는 것이었다. 곧 필요한 관찰 방식으로 충분한 관찰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갈릴레오가 “전에 보지 못한 무수한 별들을” 볼 수 있었듯이, 학문 연구자들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새로운 과학적 패러다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글로브’ 시대의 과학 서사

이제 21세기의 두 번째 10년 동안에 새로운 과학 서사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나는 그 대표적 사건으로 인간의 우주 진출이 본격화를 들고자 한다. 우주 진출의 역사는 수 십 년이 되었다. 인간이 지구 궤도 여행을 한 지는 50년이 넘었고, 달에 착륙한 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이 지구 궤도를 벗어난 곳에서 장기적으로 일상생활을 한 적은 없다. 내가 ‘본격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당장 10년은 아니겠지만 인간이 지구를 더나 지구가 아닌 우주의 어딘가에 상주할 가능성은 더욱 구체화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지구 이후’의 시대, 곧 ‘포스트 글로브’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인간이 지구 밖의 별에 상주한다면 ‘관찰의 조건’이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 우선 관찰의 시각이 바뀌고 그에 따라 사물을 보는 관점이 바뀔 것이며 그런 조건에서 얻을 수 있는 지속적인 관측 기록은 지구에서 확보한 그것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가까이는 우선 달 기지 건설을 들 수 있다. 20세기 말에 이미 미국과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일본도 새로운 밀레니엄의 4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달 기지를 건설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달 기지 건설의 경쟁은 이미 가속화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25년까지는, 어쩌면 그 이전에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달에 기지가 건설될 것이다. 2009년 11월에 미항공우주국(NASA)이 달에 위성 충돌 실험을 한 결과 상당량의 물이 얼음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전문가들은 향후 달 기지 건설 계획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달에 있는 물을 동력원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 표면의 물을 전기분해한 뒤에 수소는 로켓 연료에 산소는 우주인들의 호흡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식수 활용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달 기지 이후에는(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는 일이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야기의 과학적 전개와 문학적 전개의 상호작용

생명공학, 나노과학, 인지과학, 천체물리학 등에서 얻어질 새로운 발견도 새로운 관찰의 시각을 가져다줄 것이며, 또한 새로운 구체적 사실들을 우리에게 전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개념화를 일으키며, 설득력 있는 스토리텔링이 시작될 수 있다.

 

엄청난 관측 자료에서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하려면 ‘구슬을 꿰듯이’ 자료의 추론적 구성이 필요하다. 지속적 관찰은 추론적으로 연관이 있을 수 있는 또다른 관찰 대상을 예측하게 해준다. 곧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준다. 지금 젊은 과학자들은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풍부하고 자세한 자료와 지식을 갖고 우주를 연구할 세대이다. 우주 기지에서 획득할 수 있는 관찰 자료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설득력 있는 과학적 스토리텔링을 위한 경쟁은 흥미진진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물리학과 생물학의 깊이 있는 연계를 비롯해 여러 학문 분야의 방사선적 연결은 지금의 학제적 연구를 훨씬 넘어서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과학의 스토리텔링은 세밀한 관찰을 통한 거대 서사이다.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탐구와 창작은 그 모순을 역으로 활용할 것이다. 탐구와 창작의 관계를 논할 때 중요한 것은, 과학적 이론에 스며든 문학적 전개방식을 드러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야기적’ 접근법이 과학 탐구에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위한 훌륭한 연구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사이언티픽 플롯팅'은 자연 법칙을 발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허구 구성의 과정에서 사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과학 연구에서 이 점은 오랫동안 간과돼왔다.


기술 방식으로서 은유와 유비


일리야 프리고진은 고전물리학을 “결정론적이고 가역적이며 정적인 궤적들의 기술”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기술에는 모든 것이 명확해서 은유적이고 유비적인 것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과학에서 은유나 유비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논하는 것은 수식의 사용보다는 다윈이 그랬던 것처럼 추론적 작업에나 어울릴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우주 기지에서 획득할 관측 자료는 지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풍부함과 다양함을 지닐 것이다. 이런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고 의미 있는 과학적 추론과 수식화를 끌어내는 작업의 초기에 어느 정도 은유와 유비는 불가피할 것이다. 은유는 다양한 대상들 사이에서 상이성과 유사성의 미묘한 관계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유비는 서로 다른 것들을 함께 놓고 탐구할 때 그 구성 요소들을 하나씩 비교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순서의 감각이 있다. 유비는 추론과 논증의 성격이 강하므로 은유처럼 상징적 이미지보다는 서사적 해석에 가깝다.

글쓰기_한겨레자료사진 » 한겨레 자료사진.

실제로 과학적 기술에서 은유와 유비를 사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들과 과학적 발견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20세기부터 줄곧 있어왔다. 토머스 쿤은 과학자들이 질량, 전기, 열, 혼합물 같은 과학의 기초 용어를 자연 현상에 적용할 때, 각각의 언어가 가리키는 것을 필요하고도 충분하게 결정하는 기준을 세워놓고 있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곧 계량화를 기본으로 하는 과학 분야에서도 전문 술어의 ‘의미’에 은유적 요소가 스며들어 있음을 주장한 것이다.

초기 폭발에 의한 우주생성 모델인 ‘빅뱅’에도 은유가 스며 있다. 항성과 행성의 상호 역학 관계에서 ‘지구가 돈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상징적 이미지를 제공하는 은유의 한 형태이다. 이것으로 과학적 성과가 단순히 은유와 유비를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는 서사 창출의 능력이 또한 과학적 탐구의 능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은유와 유비는 새로운 서사 패러다임을 찾아내기 위한 수색대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과학 탐구의 지속성을 가져오므로 중요하다. 한 때 은유였던 것은 실재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학과 다양한 학문 예술 분야와의 접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과학의 아포리아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끝?

서사는 변화와 시간을 전제한다. 최근 물리학자들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시공간과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를 상상하고 있다. 파이어트 허트는 “시간에 대한 미래으 과학적 이해가 이전의 모든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시간의 특성에 대한 재평가가 실재와 허구 사이의 엄격한 구분을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와 시간이 없다면 이야기는 끝난다. 이야기 없는 세상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 상상은 서사의 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지난 2세기 동안 가장 위대한 과학자였던 다윈과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곧 시공간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임을 인정했다. 먼 미래의 과학은 시간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프리먼 다이슨이 말했듯이 “지금부터 천 년 뒤에 과학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상상할 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 더 이상 없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앞으로 만 년 뒤라면 또 어떠할까? 그러한 시기라면 예측이 아니라 상상의 차원으로 넘어간다. 다이슨은 “십 년은 과학 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 전형적인 시간 단위”라고도 했다. 과학과 기술에서는 10년 단위의 미래 예측이 적절하다. 그것이 의미 있는 미래 예측일 수 있다.


2010년, 우리는 지금 21세기의 ‘두 번째 10년기’의 첫 해에 들어섰다. 포스트 글로브의 시대에 새로운 과학 서사는 지금부터다. 그것이 어떤 내용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주 기지 시대의 관찰은 ‘열린 관찰’이다. 인간이 상주하는 우주 기지에서 수확한 새롭고 엄청난 양의 관찰 자료 앞에서, 엄밀한 과학자는 또한 상상력 풍부한 작가가 돼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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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 글쓴이 / 김용석 영산대 교수(철학),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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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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