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과학과 사회, 왕자와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2)

과학과 사회의 소통은 어떻게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 동안에 과학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인식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세계사의 시야에서 봤을 때 나는 지난 10년간 과학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에 대한 각성이 크게 높아진 점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는 일방향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했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은 과학에 대해서는 무지몽매한 존재이므로 과학이 계몽을 통해 시민들의 과학적 무지와 비합리성을 교정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비유컨대 사회와 과학의 관계는 세상 모르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그를 깨워 멋진 세계를 보여줄 ‘왕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과학자와 시민의 쌍방향 소통으로

 

2_GMO시위 »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행위극. 새로운 과학 연구의 등장은 생활 안전성을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반응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의 문제도 남긴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2000년에 영국 상원 과학기술위원회가 펴낸 <과학과 사회> 보고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계몽주의적 인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위원회는 이 보고서에서 과학 연구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내재돼 있음을 인정하고 과학과 사회 사이에 더욱 더 유기적인 상호작용, 즉 과학자와 시민 사이의 쌍방향 대화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받아 영국의 권위 있는 과학자단체인 왕립협회(Royal Society)는 2001년부터 6년 동안 ‘사회 속의 과학’(Science in Society)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흥미롭게도, 2000년대에 들어와 뚜렷하게 나타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영국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발전된 나라들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됐다. 그것은, 현대 사회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한편으로 사회에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사회·윤리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과학기술을 둘러싼 갈등과 논쟁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과도 직접 연관돼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전자 조작식품의 안전성, 생명복제의 윤리성, 정보기술에 의한 인권 침해 가능성,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의 안전과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 환경호르몬의 인체 영향, 나노기술의 가능성과 우려와 같은 과학기술 관련 주제들이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논쟁을 야기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이 사회에 끼치게 될 영향에 대한 논쟁을 보자. 이 논쟁에서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낙관적이고 옹호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은 유전자 치료를 도입해 난치병이나 유전병을 제거할 수 있으며, 동식물의 종자를 개량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런 낙관론의 근거이다. 반면, 유전자 조작기술의 발달은 기본적으로 생명복제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유전자 조작을 거친 식품의 안전성이 아직은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과학자와 시민사회 안에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판적 견해에 대한 과학기술자들의 태도이다.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비관론이나 비판론을 단지 과학기술적 무지의 소산이라고만 몰아부치는 경향이 있었다. 과학기술은 과학기술에 대해 과학적 훈련과정을 거쳐 전문 지식을 지닌 전문가들만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결과였다.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는 기본적으로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과학기술 갈등과 논쟁도 더 많은 과학기술과 더 나은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굳건히 믿는다.

 


전문가의 지식 전문성, 시민의 생활 전문성

 

과학주의와 전문가주의가 한편에서 여전히 강하게 존재하지만, 영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이 2000년대에 들어와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과 참여를 중시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과학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저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에, 주지하듯이 1990년대 내내 영국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광우병 파동으로 인해 정부와 과학 시스템에 대한 시민의 불신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높아지자 정부와 과학계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더 개방적이고 소통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과학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려고 한 것이다.

 

2_과학사회 » 2004년에 나온 영국 왕립협회 보고서 <사회 속의 과학>. ‘과학과 사회’가 아니라 ‘사회 속의 과학’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또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처럼 소통과 참여를 키워드로 하는 인식 전환이 나타난 것이 꼭 과학시스템에 대한 신뢰 저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관계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기술학(STS)이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어 과학기술자의 전문성도 매우 제한적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시민들이 생활에서 체득한 전문성도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 해결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음을 집중적으로 밝혀낸 것도 과학자와 시민의 쌍방향 소통과 시민의 참여를 증대시킨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상 삶에서 얻은 시민적 전문성을 통해 일반 시민도 과학기술의 문제 상황에서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러한 실제적(substantial) 관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시민 참여가 바람직하기 때문에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규범적 관점이나, 과학 시스템의 정당성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민 참여를 승인하는 도구적 관점과 더불어 2000년대에 들어와 과학기술에 대한 ‘참여적 거버넌스’를 확산시킨 배경이 되었다.

 

이처럼 과학에 대한 신뢰 회복의 필요성과 시민 참여의 실제적 효과에 대한 믿음이 어우러져 지난 10년 동안 많은 나라들에서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더욱 더 상호적이고 참여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땠는가? 일단 겉모습으로는 우리나라도 2000년대에 들어와 이전과는 달리 과학기술의 사회적 차원이 눈에 띄게 강조돼왔다.

 

내가 1990년대에 과학기술정책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할 때만 해도 과학기술정책이란 산업정책과 경제정책의 하위 분야쯤으로 여겨져 과학기술의 사회적 측면을 연구하겠다는 연구계획서를 발표하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 과학기술을 단순히 경제성장의 도구로 여기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을 통해 삶의 질이나 공공복지를 향상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청사진이 종종 발표되고 “국민과 함께 하는” 길을 걷겠다는 방법론도 제시되곤 했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국가과학기술정책을 논의하는 장에 예전과는 달리 관료와 전문가만이 아니라 인문사회학자와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하는 일들도 종종 생기곤 했다. 나도 과학기술과 사회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사회학자의 자격으로 가끔 초대되어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자문을 요청받기도 했다.

 


소통, 형식 아닌 내용을 채워야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난 10년 동안의 우리나라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부분적으로는 개방과 참여의 방향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런 개방과 참여가 사실은 매우 형식과 의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유전자조작 식품과 생명복제를 둘러싼 갈등, 핵폐기장과 관련된 부안 사태 등을 거치면서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 소통과 참여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일부 실행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폐쇄적 전문가주의와 기술관료주의 문화로 인해 그 대부분은 일회적이고 형식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게다가 지난 2008년 봄을 뜨겁게 달궜던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를 계기로 하여 과학과 사회의 관계가 다시 전통적인 계몽주의 모형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상황마저 현재 펼쳐지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많은 ‘선진’ 국가들에서는 과학자와 시민 사이의 소통과 참여를 증대함으로써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과학과 사회의 상호작용 극대화가 과학기술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의 합리적인 발전을 가능케 하는 지름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또 다른 10년을 맞이하는 지금, 우리는 과학과 사회의 쌍방향적 소통과 참여를 강조하는 이런 세계사의 흐름이 무엇을 의미하고,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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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 글쓴이 /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과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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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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