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1)

급변하는 합성생물학과 유전체 혁명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유전체공학연구실)




“만들 수 없으면 이해할 수 없다.”

이는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한 말로 합성생물학자들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의 일부 또는 전체를 인위적으로 설계해 만드는 과정을 통해 생명현상을 이해하려는 새로운 생물학이다.

 

1_게놈 »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끝난 지 몇 년 만에 적은 비용으로 한 사람의 유전체를 초고속으로 해독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개인 유전체의 분석이 대중화하는 시대를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 제공

합성생물학의 출현 배경은 화학의 발전 과정과 유사하다. 19세기 초까지 화학자들은 단순한 무기물로부터 복잡한 유기물을 합성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828년 독일의 화학자 뵐러에 의해 소변에 포함된 유기물인 요소를 무기물로부터 합성할 수 있음이 증명되면서 화학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화학자들은 신약, 폴리머 등 유용한 물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분자의 합성 실험을 통해 다양한 화합물의 성질과 반응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생명과학은 이러한 화학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밟고 있다. 개별 단백질, 유전자 등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생화학, 유전학의 수준에서 이제는 유전자를 마음대로 합성하고 새로운 조절 네트워크를 설계할 뿐 아니라 인공적으로 유전체를 합성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화학자들이 분자를 합성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물질의 성질과 반응성을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이제 생물학자들은 생명체를 합성하기 시작하면서 생명현상을 보다 깊이 있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인공 생명체’, 공상과학 아닌 현실과학


합성생물학의 가장 도전적인 프로젝트는 인공 생명체의 합성이다. 불과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인공 생명체에 대한 언급은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주제였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하는 생명공학 기술과 차세대 DNA 시퀀싱 및 DNA 합성 기술에 의해 이제 인공 생명체의 합성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가 되었다.


인공 생명체 연구에서 가장 앞서 있는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는 최근 미생물의 최소 유전체에 해당하는 수십만 개 염기쌍 DNA를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유전체치환을 통해 한 미생물의 유전체를 제거하고 다른 종의 유전체를 삽입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제 미생물의 원래 유전체 대신에 합성한 유전체를 주입하여 인공 생명체를 만드는 과정만 남았는데 이러한 기념비적인 일은 당장 올해 안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크레이그 벤터는 인공 생명체 합성이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탄소화합물을 생산해 배출하는 인공 생명체를 합성하거나 환경오염물질을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미생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공학과 유전체공학의 차이
1_DNA모형_위키 » 생명 유전의 기본물질인 이중나선 디엔에이의 모형. 출처: Wikimedia Commons


합성생물학이 인공 생명체 합성과 같이 기본적으로 바텀업(bottom-up)을 지향한다면 유전체공학은 톱다운(top-down) 방식의 혁신이다. 유전체공학은 인간을 포함해서 동물, 식물, 미생물의 유전체를 개량하고 교정하는, 재설계(re-programming) 기술을 의미한다.


유전체공학(genome engineering)과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은 어떻게 다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널리 사용되고 있는 유전공학은 제한효소를 사용해 시험관에서 DNA를 자르고 붙여 만든 재조합 DNA를 세포에 무작위로 주입하는 기술을 뜻한다. 유전공학은 생명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생명공학 산업의 초석이 되었으나 세포 내 유전체를 개량하고 교정하는 데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문제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재조합 DNA가 유전체 상에 무작위로 삽입됨으로써 필수적인 유전자를 망가트릴 수도 있고 원치 않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또한 유전공학 기술은 세포 내에 존재하는 유전체를 자르고 붙이고 교정하는 데 사용할 수도 없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재단사

21세기 들어 새롭게 출현한 유전체공학은 이러한 유전공학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되었다. 즉 유전자가위를 맞춤 제작하여 세포 안에서 유전체 일부를 잘라 낼 수도 있고 외부 유전자를 정해진 위치에 삽입하거나 염기서열을 원하는 대로 교정하는 것이다.


유전자가위는 DNA 염기서열을 특이적으로 인식해 절단하는 가위 역할을 하는 인공 효소로서 유전공학에서 사용하는 제한효소와 큰 차이가 있다. 미생물에서 분리해 사용하는 제한효소는 대부분 4~6 개의 염기쌍을 인식해 DNA를 절단하는데 이를 동물, 식물세포 내에 도입하면 그 표적 염기서열이 너무 많아 유전체를 수십만 개로 산산조각 낸다. 반면 유전자가위는 20 개 내외의 염기쌍을 인식하도록 설계된 인공 제한효소이기 때문에 유전체의 한 위치만을 자르고 그 결과 연구자가 원하는 변이를 정확히 원하는 장소에 도입할 수 있다.


유전체공학의 활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유전병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를 정상으로 교정하는 새로운 개념의 유전자치료에 활용할 수 있고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 유전자를 제거한 가축을 만들 수 있다. 병충해에 강하거나 가뭄에 저항성을 보이는 벼와 옥수수를 만들 수 있으며 알러지를 일으키지 않는 개와 고양이를 만들 수 있다. 즉, 인간을 포함해 가축, 가금류, 어류, 애완동물, 농작물, 수목 등 우리 주변 모든 생명체의 유전체를 교정하고 개량할 수 있다.


DNA 작문?…읽고 쓰고 해석하고 교정하고
합성생물학만화2 » 과학저널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린 '합성생물학의 모험' 한 장면. 출처: http://www.nature.com/nature/comics/syntheticbiologycomic/index.html

향후 10년간 합성생물학과 유전체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폭넓은 활용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것은 차세대 DNA 시퀀싱 기술과 생명정보학, 유전학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차세대 DNA 시퀀싱 기술의 발전으로 30억 쌍에 달하는 인간 유전체 전부를 일주일 이내에 100만원 남짓한 비용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기술은 초기에는 범법자, 군인 등 일부를 대상으로 적용될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수천만 국민 전체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규명하는 데에까지 이를 것이다.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식물의 경우에도 품종 개량, 원산지 추적 등 다양한 목적으로 개체별로 적용될 것이다. 이를 통해 얻어진 방대한 정보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생명정보학과 유전학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개인의 유전체 30억 쌍 염기서열을 규명해 놓고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 하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유전체를 읽고 해석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유전체를 고쳐 쓰는 유전체공학 기술이 21세기 생명공학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합성생물학과 생명정보학, 유전체공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유전체를 읽고 쓰고 해석하고 교정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향후 10년 아니 그 이후의 생명과학, 의과학, 생명공학의 핵심적 기능을 담당할 것이다.



유전체 혁명에 대한 성찰

합성생물학과 유전체공학이 만들어낼 미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험실에서 만든 생명체가 뜻하지 않게 환경을 오염하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례로 1970년대 미국의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학이 소재한 캠브리지 지역에서는 일시적으로 유전공학을 금지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지난 40여 년 동안 전 세계 수천 개 분자생물학 실험실에서 매일 유전공학 기술을 사용해 왔지만 지금까지 우려했던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합성생물학과 유전체공학 분야에서도 적절한 안전장치와 기준을 도입함으로써 예상되는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정성에 대한 문제제기와는 별도로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생명체를 만들고 개조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성찰은 숙제로 남을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과학기술자 개인의 몫이 아니다. 이는 예술가에게 미에 대한 추구보다 진리 탐구를 요구할 수 없고 변호사에게 의뢰인을 변호하기보다 의심할 것을 요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으로 <사이언스 온>이 이런 과학적 담론에 대한 성찰과 토론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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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3 » 글쓴이 / 김진수 서울대 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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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3. 과학문화 | 새로운 과학,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등장 (김용석 영산대 교수)

4.인지과학 |  뇌, 몸, 환경은 하나라는 강한 외침이…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

5. 나노기술 | 들뜬 기대 접고 현실의 혁신에 도전 (현택환 서울대 교수)

6. 우주와 물질 | 지상최대의 실험…물리학은 수능시험 중 (이종필 고등과학원 연구원)

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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