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특집]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2020 과학'을 바라보는 2010년의 열 가지 시선 (7) |
앞으로 10년 과학기술정책의 흐름 전망
박상욱 이학/과학기술정책학 박사
21세기 두번째 10년의 과학기술정책은 무엇을 목표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 지난 첫번째 10년 동안에 과학기술 정책의 관심은 기후변화와 신재생에너지, 국민 안전과 직결된 분야에 쏠렸으며,그동안 과학기술의 불모지였던 저개발국에 대한 관심 등으로 넓혀져 왔다. 앞으로 10년의 과학기술정책도 이런 큰 흐름 위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 어려운 일이지만, 그 흐름에 나타날 과학기술정책의 주요 테마들을 조심스럽게 전망해본다.
첫번째 테마: 공공안전, 위험관리, 규제
과학기술의 발전이 삶의 질을 개선해왔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수행되는 작업들과 내 생활을 연결짓는 이도 드물다. 과학 연구현장과 일상 생활인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과학기술정책이 ‘과학을 위한’ 정책에 머무르고 논문, 특허 등 몇가지 통계 수치로 표현되는 거시적 성과에 치중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변화의 조짐은 먹을거리 문제에서 생겨났다. 1980년대 영국에서 터진 광우병 사태가 그 시발 점이었다. 식품안전에 대한 대중과 정부의 관심이 폭발했다. 이어 유전자조작생물(GMO) 식품이 논란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면서 그 원인과 파급효과, 그리고 적절한 해법을 찾는 데에 최신 과학이 동원돼야 한다. 특히 유전자조작식품의 경우 바로 과학이 그것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고 어떻게 규제, 관리해야 하는가?
식품안전 분야 외에도, 기후변화 탓에 이용이 확대될 원자력과 나노 입자의 다 알려지지 않은 위험, 줄기세포 치료술의 임상 적용 등 생명과학 분야에서 검증이 필요한 기술을 비롯해, 과학기술과 관련된 안전과 위험관리의 수요는 커지는 추세가 이어졌다. 최근 경제위기를 겪으며 방임적 신자유주의와 신공공관리론이 비판대에 오르며 적절하고 효과적인 정부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과학기술 분야 위험 관리의 필요성과 때맞춘 이런 분위기는 과학기술정책에서 ‘규제’라는 새 분야를 열고 있다. 과학기술정책 하면 흔히 “진흥”이나 “육성” 등의 단어만 떠올리는 분들에게 “규제”라면 생소할 것이나,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자는 것이 아니니 오해는 금물이다.
두번째 테마: 지속가능성 – 기후변화,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녹색성장
기후변화는 강력한 사회적 동인을 제공하는 일종의 종말론이다. 다른 종말론들과 구별되는 점은, 그것이 진행중인 자연현상이며 과학기술에 의해 관측되고 검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신재생에너지를 사용을 확대함로써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정 필요하다면 지구공학 기술을 활용해 지구를 식히며, 그래도 변화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면 그에 대비하는 것…, 이 모두가 과학기술에 의존한다. 물론 에너지 저소비 사회로 나아가는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신재생에너지 기술과 지구공학 기술은 연구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태양광, 풍력발전 등 실용화가 진전된 분야에서도 ‘화석연료 대비 경제성’ 확보에는 이르지 못했기에 지속적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또한, 에너지 시스템은 사회적 영향이 크고 막대한 인프라 투자를 요구하는 대규모 기술 시스템이기에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중요하다. 경제성이 확보돼 시장에 맡기기 전까지는 적절한 시험, 보급, 확산 정책이 필수적이다. 유망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틈새공간을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지구를 소비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일은 인류가 지향할 바이므로, 과학기술정책은 다소간 규범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적 운송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산업에서 새로운 기회를 낳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내세우는 녹색성장론이 이것이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는 기술 변혁기에는 변화를 바로 읽은 과학기술정책을 통한 시장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 지구 기후변화는 과학기술 연구에 ‘신재생 에너지’ 개발 같은 영역의 관심사를 증폭시켰다. 사진은 영국 연안에 있는 풍력발전 시설의 모습. AP/연합뉴스
세번째 테마: 개도국과 저개발국의 개발
과학의 발전과 과학 지식이 세계 공동의 소유라면, 그 과실에서 소외된 저개발국들의 비참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자면, 과학적 성과물은 ‘그들만의 리그’에서만 공유되어 왔다. 과학기술정책이란 국가 수준에서 볼 때 매우 이기적인 것이었다.
최근 들어 이런 이기성을 반성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있다. 개발학(development studies)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움직임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 교수 등을 비롯해 ‘잘못된 세계화’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세계가 저개발국 빈곤의 퇴치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진보적인 학자들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저개발국 국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저비용의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지원해 디지털 양극화를 완화하고, 기술인력을 양성하고 과학교육을 제공함으로써 인적자본을 마련하는 것, 나아가 그들 나름의 혁신 생태계를 갖추는 것을 과학기술정책이 도울 수 있다.
네번째 테마: 지식경영, 지식경제
네 번째는 과학기술정책의 영원한 테마인 지식의 문제이다. 인문학 지식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과학기술 지식이다. 태생적으로 과학기술 지식은 경제적 성과와 더 가까이 있고, 따라서 과학기술 지식은 일종의 투입 요소, 나아가 지식자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수준 높고 방대한 지식 스톡을 가진 국가, 기업, 또는 개인은 혁신, 즉 지식을 돈으로 바꾸는 것에 능하다. 이것이 경쟁력의 실체다.
“과학기술 수준이 국가 경쟁력이고, 지식경제사회에서는 지식이 밑천이다”라는 말을 상식처럼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신고전파 경제학이 지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머뭇거린 탓에 지식경제의 이론적 기반은 뒤늦게 마련되는 중이다. 아직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지식경제사회의 비전’이 실천적 정책과제와 함께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정책은 지식의 확산과 전승(교육), 생산(연구개발), 유동(인적교류, 연결망, 기술이전), 사유화(지적재산), 활용(혁신), 그리고 피드백에 이르는 순환을 원활히하는 데에 여전히 가장 큰 목표를 둘 것이다. 이를 기업 수준에서 다루면 기술경영전략이 된다. 지식의 순환과정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에 과학기술정책의 틀이 기술경영에 응용된다. 이 분야에서 이름난 대학들은 2000년대부터 과학기술정책학과 기술혁신경영학 과정을 통합했다. 이런 조류는 향후 몇 년간 더욱 뚜렷해 질 것이다.
맺는 말
요약하자면, 앞으로의 10년은 ‘삶의 질을 높이는 과학기술’이 부각되고 그에 따른 과학기술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한다. 질 높은 삶이란, 안전하고 건강한 삶, 환경친화적인 삶, 과학기술의 성과를 다함께 누리는 것을 포함한다.
나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알면서도 동시에 과학기술의 고마움을 좀 더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과학기술 발전이 사회와 경제에 긍정적으로 기여토록 하는 기존의 과학기술정책의 의의는 여전히 강조될 것이며, 민간부문으로 확대 전파될 것이다. 이왕 개인적 바람을 하나 추가하자면, 더 많은 사람들이(특히 과학기술인들이)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위에서 전망했듯이 하는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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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 '2020 과학'을 내다보는 2020년의 열 가지 시선 (9~12일 연재)
1.생명과학 | DNA 읽기 시대에서 DNA. 작문 시대로 (김진수 서울대 교수)
2. 과학과 사회 | '왕자'와 '잠자는 미녀'의 관계 벗어나기 (이영희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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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과학정책 |열쇳말, '성장'에서 '삶의 질'로 (박상욱 과학기술정책학 박사)
8. 지구환경 | 지구공학의 '플랜B'가 지구 살릴 대안이 될 것인가? (오재호 부경대 교수)
9. 두 문화 | 과학과 인문학,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런 만남을 (홍성욱 서울대 교수)
10. 기초과학 | 한국과학 '창조적 기초체력'은 갖췄나? (민경찬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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