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기원: 다시 힘 얻은 '45억년 전 거대충돌' 가설

고해상 시뮬레이션에서 원시지구와 이웃천체 충돌 가능성 구현

수천 개 작은 천체들이 합종연횡 하는 격동의 태양계 초기 모사


00MoonFormingImpact.jpg »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거대충돌 가설을 나타낸 그림. 원시지구에 화성 크기의 거대충돌체가 부딛힌 뒤 달이 생성됐다는 이 학설은 현재 달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가설이다. 그림 출처/ NASA/JPL-Caltech


“여러 인류 문화의 설화에서, 태양계는 가족사(事)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옛 스칸디나비아인과 남미 잉카인은 태양과 달이 우리 형제이며 자매라고 믿었다. 아메리카 원주민 신화에서 태양과 달은 남편과 아내였다. 요즘에는 달이 어머니로 그려지곤 한다. 이제 과학자들은 약간 비틀어 다른 천상의 이야기를, 지구인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더 어울릴 법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잃어버렸던 형제자매의 돌연한 출현.”


과학저널 <네이처> 최근호의 사설은 머나먼 옛날에 있었던 태양계 가족사의 드라마를 다루는 듯한 문학적 감수성을 한껏 보여주었다. 45억 년 전, 태양계 형성 시기에 "수천 개의 혈기왕성한 원시행성들이 태양 둘레를 휙휙 날아다니며 서로 충돌하며, 일부는 더 작은 조각으로 쪼개지고 다른 일부는 떠도는 물질을 집어삼켜 형성된다. 태양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채 떠돌던 이런 원시행성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지구라 불리는 행성이었다." 이어 "무대"에는 지구보다는 작은 원시행성이 등장하고 이 원시행성은 지구에 부딛히는 거대 충돌을 일으켜 달을 형성한다.


달이 어떻게 생겨나 지구의 이웃이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여러 과학적 가설들이 제시되는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거대충돌 가설'을 더욱 뒷받침하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자, 네이처 사설이 이렇게 정겹게 맞아주었다. 이스라엘 공과대학 테크니온(Technion)과 프랑스 연구진은 거대충돌 가설을 뒷받침하는 상세 시뮬레이션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최근 발표했다.


[지구와 달의 거리]

00Moon_to_Earth_scale.jpg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arth-moon-to-scale.svg


[질량 크기 비교]

 달

  7.347 673×1022 kg (지구의 0.0123배) 

 화성

  6.4185×1023 kg (지구의 0.107배)

출처, 위키백과


유력한 거대충돌설…남은 난점

00dot.jpg

Big_Slash.gif » 테이아가 생겨난 뒤 지구로 끌려 와 부딪히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낸 것. 애니메이션의 재생 단위는 1년으로, 지구는 매년 같은 시각에 같은 자리에 돌아와 있으므로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남극에서 바라본 모습 (이 기사에서 다룬 연구논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설명과 그림 출처/ 위키백과, "거대충돌가설"

'달의 기원'과 관련해선, 떠돌던 천체가 지구 중력에 포획돼 달이 됐다는 포획 가설, 달과 지구가 비슷한 시기에 형성됐다는 동시생성 가설 등도 제시됐으나 여러 약점이 지적되면서, 현재는 1975년 이래 거대충돌 가설(Giant Impact Hypothesis)이 가장 유력한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태양계 형성 시기에 화성 만한 크기의 거대 충돌체(giant impactor)가 지구에 부딪혔으며 이때에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지구 둘레를 돌다가 뭉쳐 지금의 달이 되었다는 것이 요지다. 지구와 충돌했을 가상의 충돌체에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인 ‘테이아(Theia)’라는 이름이 붙었다 (참조: NASA 자료).


그런데 근래 들어 거대충돌 가설에도 약점이 지적되었다. 네이처의 해설 기사는 기존 가설에 대해 제기되던 대표적인 물음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화성과 대부분 운석들은 그토록 [지구와] 다른데도, 어떻게 각자 생성된 커다란 두 행성 천체의 충돌이 화학적으로 유사한 지구와 달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네이처, 해설 기사)


네이처 뉴스 보도에 따르면, 거대충돌 가설에서 달이 생성되려면 지구와 부딛힌 가상의 충돌체인 테이아는 지구 질량의 15% 정도인 대략 화성 규모의 천체일 것으로 모사된다. 또한 현재의 지구와 달의 화학적 구성으로 볼 때 현재 달의 80%는 충돌체 테이아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지구와 유사한 지금 달이 생성된 데에는, 지구와 충돌한 테이아가 애초에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비롯해 지구와 비슷한 지질학적 구조를 지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2007년 태양계 형성 시기를 모사한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이처럼 서로 비슷한 원시행성 천체가 충돌할 확률이 1%가 안 된다는 결과가 발표되었고, 이렇게 낮은 확률은 거대충돌 가설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네이처 뉴스는 이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른 설명 모형들이 모색되었으나, 이번에 발표된 시뮬레이션 연구결과는 기존에 흔들리던 거대충돌 가설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것이 되었다고 전했다.



태양계 형성 시기의 '과정'을 추적

00dot.jpg

이스라엘 공과대학 테크니온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이번 연구는 초기 태양계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상세한 시뮬레이션을 수행해 기존 거대충돌 가설의 약점을 보완하고 그 가설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해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네이처 사설의 표현을 빌리면 이전 연구의 "리메이크(remake)"이자 그보다 성큼 더 나아간 성공작인 셈이다.


네이처의 해설 기사를 00MoonSimulationexample_NAS.jpg » 지구와 충돌체의 충돌, 그리고 그 여파로 달이 생성되는 과정을 모사한 시뮬레이션의 한 사례 (이 기사에서 다룬 연구논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출처/ NASA 보면, 이번 시뮬레이션에서는 지구 안쪽 궤도에서 태양 둘레를 도는 수천 개의 작은 원시행성체들을 분포하게 해 모사했는데, 작은 원시행성체들이 충돌과 합병을 거치며 점차 서너 개의 큰 행성체가 형성하는 과정을 추적했다. 그러면서 지구 행성체의 형성에 기여한 작은 원시행성체들, 마지막으로 충돌한 행성체 등의 궤도를 추적했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 시뮬레이션 방식은 예전 연구를 좇았으나 모사한 초기 태양계에는 더 작고 더 많은 원시행성들을 분포시킴으로써 그 분석의 해상도를 높였다는 점이라고 한다. 다음은 이스라엘 공과대학이 발표한 보도자료의 일부이다.


“태양계 내 행성의 형성에 관한 시뮬레이션들은 서로 다른 행성들이 실제로 서로 다른 성분구성(composition, 조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태양계 내 여러 행성들의 물질 분석에서 확인된 바와 같다. 이런 연구들은 전통적으로 최종 행성들의 성분구성만을 연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이번 새로운 연구에서, 연구진은 행성들뿐 아니라 그 행성체에 가해진 충돌체들의 성분구성도 함께 고려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많은 경우에 행성들, 그리고 이와 충돌한 충돌체들이 각기 독자적으로 생성되었다 하더라도 매우 유사한 성분구성을 공유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연구자들은 달과 지구 간의 유사성은 달의 모체가 된 테이아와 지구 간의 유사성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테크니온 보도자료)


즉, 달은 애초부터 구성성분에서 20%가량이나 지구와 유사한 충돌체가 지구와 거대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생성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이처 사설은 달의 기원을 좇는 과학 탐구의 여정이 종결은 아님을 역시 드라마의 감수성을 담은 문학적 문체로 환기시킨다.


"고성능 연산 컴퓨터는 현실적인 대본을 제시한다. 원시지구와 테이아가 태양에서 대략 같은 거리를 둔 궤도에서 같은 물질로 형성되었으며 그리하여 서로 충돌해 달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다섯 중 하나라고 말해준다. 사실, 그건 영화의 종영 자막이 올라가기 이전에 느슨한 결말을 모두 다 매듭짓는 상투적인 그런 결말은 아니다. 최고 스토리의 여지는 후속편에 남겨져 있다." (네이처 사설)


이번에 발표된 새로운 시뮬레이션의 결과도 주목받을 만하지만, 과학저널에선 보기 드문 독특한 문체의 네이처 사설도 눈에 띈다. '달의 기원'에 쏠리는 자연스런 관심이 인류의 오랜 문화와 내러티브에 깊게 녹아 지금 우리한테도 전해져 오고 있음을 네이처의 사설은 보여주는 듯하다.


  ■ 논문 초록

“지구-달 시스템의 속성 대부분은 [태양계 초기의] 생성 과정(accretion process) 후기에 일어난 행성배아(planetary embryo, 거대충돌체)와 성장하는 지구 간의 충돌로 설명할 수 있다. 여러 시뮬레이션들은 결국에 모여들어 달을 형성한 물질 대부분은 이 충돌체에서 기원함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지구와 달의 동위원소 성분구성을 분석해보면 이 둘이 매우 유사함이 나타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다른 태양계 천체의 성분구성은 지구, 달의 것과는 눈에 띄게 다르며, 이는 서로 다른 태양계 천체들이 서로 다른 성분구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은 거대충돌 시나리오에 도전적인 과제가 된다. 왜냐하면 달을 형성한 충돌체(impactor)가 원시지구(proto-Earth)와는 다른 성분구성을 지녔으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행성의 생장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며 행성 성장의 먹이구간(feeding zone)을 추적하여, 달을 형성한 충돌체들(impactors)을 수치로 평가했다. 우리는 동일한 시뮬레이션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행성들이 서로 다른 성분구성을 지니며, 그렇지만 거대 충돌체들의 성분구성은 그것들이 충돌한 행성들과 통계학적으로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행성-충돌체 쌍들 중에서 많은 수가 거의 동일한 구성성분을 지니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나타났다. 그러므로 지구와 달 간의 성분구성에 나타나는 유사성은 후기 거대 충돌로 인한 자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00Moon_NASA.jpg » 달. 출처/ 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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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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