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이공학도, 우리들이 사는 세상"

숱한 과제에 시달리고 퀴즈에 쫓기고 실험실에서 죽치는 생활엔 힘겨움과 고민도 숨어 있지만 이공계의 젊음은 여전히 팔팔하고 꿈도 많다. 다양한 갈래의 이공학도들이 그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전한다.

벌레밥 챙기고 장비 정리하고…2주만에야 본 꼬마선충

조범식의 ‘후배에게 들려주고픈 실험실 이야기’

  “이 글을 통해 학부생연구원으로 살고 있는 나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학부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고충, 연애, 진로, 취미활동, 군 입대 등등 술자리에서 술 한 잔 마셔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1] 학부생연구원으로 실험실에 있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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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수업이 발생유전학 10시 자연대 118호….’

학기가 시작된 3월, 새로운 시간표와 새로운 수업에 적응하기에 바쁜, 여느 대학생과 다르지 않은 생명과학과 4학년 생활이다. ‘또 과제야 또…’ ‘4학년인데 들어야 하는 과목이 왜 이리 많아’라는 투덜거림은 잠시 접어두고, 나에게 수업말고 주어진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실험실 생활’이다.


옆 건물인 사범대에 다니는 친구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했다. “자연대 사람들은 집에 안 가? 불이 항상 켜져 있어….” 생각해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대의 불은 항상 켜져 있는 것 같다. 생명과학과가 있는 5층은 특히나 그렇다. 나인 투 식스? 나인 투 파이브? 생명과학과 대학원생들을 보면 제발 나인 투 나인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생명과학과 대학원생들은 나보다는 세포가 먼저, 나보다는 실험에 사용될 쥐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쉴틈 없이 실험하고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험실 생활을 하는 학부생인 나는?



나의 오기였는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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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내 전공인 생명과학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한다. 대학생이라면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주로 대학교와 전공을 이야기를 하지 않나? 나도 그랬다. “안녕하세요. ○○대학교 4학년 생명과학과 조범식이라고 합니다.”


러면 십중팔구, “아~ 생명공학과? 거기 대학교가 공대가 유명하지? 대학교 참 잘 갔네” 한다. “아닌데….”이런 대답을 들으면 1, 2학년 때에는 생명공학과가 아니라 생명과학과라고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해서 정정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 “공학이나 과학이나~”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대답이 속상하기도 하고, 근래에 들어선 듣는 사람에게 괜히 무안함을 주지 말자 생각해서 “아~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만다.


생명과학과는 과연 무엇을 하는 학과일까? 학부생인 내가 보는 생명과학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분야는 생물을 분류하는 분야이고, 다른 한 분야는 모델 동물을 대상으로 그 동물 안에서 어떤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는 분야이다. 전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올 만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후자는 연구원들이 흰 가운과 흰 장갑을 끼고 쥐를 다루는 방송 장면을 떠올리면 얼추 비슷한 것 같다.


그럼 나는 왜 전공으로 생명과학과를 선택했는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과학탐구 영역에서 생물 1, 2, 화학1을 선택했고 모의고사 점수도 나름 잘 나왔기에 대학 입시 원서를 쓸 때 지원서를 온통 생명과학과로 도배했다. 선생님과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생명과학이 좋으면 의대나 약대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방송에서 수술하는 장면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는 나는, 의사보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결정적으로는 성적이 의대나 약대에 갈 만큼 좋지 못했다.


의 오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당히 내가 원하던 대학교의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1학년 일반생물학 실험수업 때 교과서나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하얀 생쥐를 본 것, 현미경을 통해 세포의 모습을 본 것은 너무 흥미로웠다. 고등학교에서는 1년에 한 번 만지기조차 힘들었던 현미경을 실험수업 때마다 조작해 보고 무언가를 관찰하고, 내가 마치 과학자가 된 듯했다.


하지만 좋았던 만큼 회의감을 준 것도 실험이었다. 일반생물학 실험수업이 총원 50명으로 진행되다 보니 내가 실험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점, 긴 실험 시간에 실험보다 옆 친구와 잡담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점이 불만이었다. 지금 4학년이 되어서 돌이켜 보면 대학원생이나 교수님이 학부 1학년 실험에 무슨 기대를 가지고 실험을 하도록 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1학년 때는 실험을 조금 더 하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거 완전 가사노동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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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안은 채 1학년 생활이 끝날 즈음, 일반생물학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공고를 하나 내셨다. ‘겨울방학 동안 실험실 생활을 해보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소개서를 들고 내 방에 찾아오시오.’


는 바로 ‘아! 저게 내가 하고 싶던 거다!’ 하고 그날 바로 자기소개서를 써서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교수님은 간단한 면접 뒤에 승낙해 주셨고 나는 그때부터 예쁜꼬마선충을 모델로 연구하는 발생유전학 실험실에 나가게 되었다. 학부생으로서 나의 실험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처음 실험실 생활은 아직도 생생하다. ‘밥을 만들라’고 했다. 예쁜꼬마선충이 먹을 밥을!

‘응? 이것도 실험의 일부인가?’


다른 일거리로는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팁(액체 물질을 딸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용품)을 통에 꽂으라고 했다.

‘이거 완전 가사노동 아니야?’ ‘선충은 언제 볼 수 있는 거지?’


첫 2주 정도는 선충을 본다기보다는 밥 만들기와 팁 꽂기가 대부분인 실험실 생활이었다. 물론 이것이 실험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바로 실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밥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대학원생들이 내심 섭섭했다. 섭섭함이 점점 커질 무렵, 대학원 형의 지도를 받아 실험대 앞에 앉아 선충을 직접 보고 백금 선을 이용하여 한 마리 한 마리를 만져보게 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예쁜꼬마선충이 진짜 예쁘게 보일 정도로 기뻤던 거 같다.

‘이걸 노린 건가?’

00JBS_lab2.jpg » 현미경으로 처음 예쁜꼬마선충을 보았을 때. 사진제공/ 조범식

험실의 가사노동에 익숙해지고 선충이 예뻐 보일 무렵, 교수님께서 ‘사수’와 ‘부사수’를 정해 주셨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익숙한 이 단어는 실험실 안에도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사수는 부사수에게 실험을 가르쳐주고 부사수는 사수를 도와 실험을 진행하고 배워가는 관계이다.


나는 학부생이었기 때문에 나처럼 실험실에 들어간 친구와 함께 박사과정에 있는 형의 부사수로 지정되었다. 처음 모시게 되었던(?) 사수 형은 시간이 꽤 오래 흘러간 지금도 가끔씩 연락하며 지낸다. 첫 사수를 좋은 사람을 만나 마음 편하게 실험실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복이었다. 대학원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도교수님 이외에 실험실에서 사수가 부사수들에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얼마나 힘들고 고된 실험실 생활이 되느냐, 아니면 매일 가고 싶은 실험실이 되게 하느냐를 결정하는 큰 요소라고 한다. 운이 좋게 나는 첫 실험실부터 사수가 좋았던 것이 복이었고 이후의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사수 형을 보고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실험실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실험실 첫 사수가 아닐까?



후배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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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선충 실험실에서 1학년 겨울방학, 그리고 2학년 1, 2학기를 보냈다. 실험실 생활이 날이 갈수록 익숙해졌지만 가장 큰 산처럼 느껴졌던 군대가 점점 목을 죄어 왔다. 전문연구요원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바람과 대학원생 형들의 조언을 따라 2012년 1월 육군으로 입대를 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지만 나로서는 참 잘한 선택이었다.


대하고 3학년 1학기로 복학해, 나는 선충을 연구하는 실험실에 다시 돌아갔다. 하지만 많이 바뀐 실험실 분위기에 회의감을 느꼈고,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실험실을 옮기기로 생각했다. 군 생활 동안 나의 흥미를 돋운 신경과학 분야를 더 알고 싶어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님 실험실로 옮기기로 했다. ‘다른 분야가 궁금하면 인턴 생활을 해보지 그래?’ 물론 해봤다. 이것도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00JBS_lab1.jpg » 교생실습 당시에 달았던 이름표와 실험도구 파이펫. '생명과학 학부생연구원'으로서 느끼는 뿌듯함과 꿈이 담겨 있다. 사진제공/ 조범식 2015년 3월 개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봄, 새내기 15학번들과 그 위의 14, 13학번들이 현재 내가 있는 실험실의 교수님을 찾아왔다고 한다. 후배들이 실험실이 궁금하고 실험을 하고 싶어 한다고 교수님께서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1학년 때 가졌던 패기를 후배들도 역시 가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하나라도 더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최소 세 학번 최대 다섯 학번이나 차이 나는 선배가 말을 걸면 무서워 덜덜 떨 후배들을 생각하면 내가 다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뭔데 이야기를 해주냐고? 단지 선배니까? 앞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있는 시스템 신경생물학 실험실의 교수님은 신임교수님이어서 위로 대학원생이 없고 학부 연구생 5명이 1호 제자들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2학기부터 실험실에서 초기 셋업을 했고 방학 때는 대학원생처럼 실험실에 나와 실험했다.


다른 교수님들한테서 ‘아니 무슨 학부생들을 이렇게 실험을 시켜?’라는 말도 나왔다는데, 그러면 나름 열심히 하는 학부 연구생 아닐까? 그렇다는 건 내가 후배들에게 실험실 이야기를 해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 글을 통해서라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고, 그래서 후배 아닌 자연과학 학부생들이 이 글을 통해 실험실을 선택하거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앞으로 학부생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실험실 대학원생들의 고충, 연애, 진로, 취미활동, 군 입대 등등 술자리에서 술 한 잔 마셔야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내가 모든 고민 있는 후배들과 술을 마실 수는 없으니까…….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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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나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많은 걱정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실험실 생활, 학부생 생활, 아르바이트 학원강사, 지금도 충분히 대학생으로는 남들 부럽지 않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무언가를 하나 더 한다고?


이언스온의 필자 모집 글을 실험실 책상에 놓고도 지원할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던 도중 지도교수님께서 보낸 메시지 하나가 지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이언스 온 글 쓰려고? 소일거리 삼아 한 번 써봐, 초파리 이야기 해보는 건 어때?’ 교수님의 관심이 감사했다. 사이언스온도 교수님을 통해서 알게 됐고 글쓰기도 지지해 주시는 분도 교수님이시니. 교수님의 관심에 보답하고 싶어 지원서를 썼다.


물론 교수님이 사이언스온을 소개해 주신 이유는 내가 교수님과 이야기하면서 과학 대중화를 이루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서 내가 어떻게 아픈지 의사의 설명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의사, 약사의 말이면 무조건 수용하는 사람들, 과학이라면 그저 지루하고 어려운 과목으로만 인식하는 사람들, 이런 생각을 가진 모든 이에게 과학, 그 중에서 생명과학을 일상 생활에 접목해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게 나의 꿈이다.


사이언스온 연재를 계기로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전에 일반인은 제쳐두고 먼저 우리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안 되겠지? 이번 연재가 생명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들에게는 전공 선배에게 듣는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미래 모습이 될 수 있으니 저렇게 하자 혹은 하지 말자’ 하는 팁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전공자에게는 생명과학에 대한 이해, 생명과학 대학원생들에게는 학부생 때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비판과 지적은 언제나 환영이다.


조범식 한양대 시스템신경생물학 실험실 학부생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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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범식 한양대학교 시스템신경생물학 연구실 석·박통합과정 대학원생
대중들에게 생명과학을 널리 알려주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패기로 이상을 좇아 살아가며 어떤 일이든 집념을 가지고 끝까지 하고야 마는 고집쟁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먼 훗날 강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멋지게 이야기 할 날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2016년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원 생활(석박통합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메일 : ciou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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