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민의 "추리과학소설 '해석기관'"

과학자를 동경했지만 수학 성적 때문에 문과로 진로를 튼 대학생 성여울, 그리고 과학자의 길을 걷던 중 불의의 사고로 꿈을 접고만 도나혜 석사. 서먹한 자취방 룸메이트인 그들에게 차례로 찾아오는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 두 사람은 과학지식과 경험과 증거를 열쇠삼아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마음을 바꾸는 것 -관성의 법칙 ②

◐ 전편 '관성의 법칙 ①'에서 이어집니다.

00openclipartorg3.jpg » 출처 / openclipart.org (이하 같음)

제1화. 관성의 법칙




“과학자, 특히 위대한 과학자가 마음을 바꾸는 것은 연약함의 징표가 아니다. 그것은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가설을 검증하고 또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에른스트 마이어(미국의 동물학자)





서는 찾아냈지만, 그걸로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게 돌아갈 리가 없었다. 역대 캠프 참가자 명단은 캠프 홈페이지(대부분의 브라우저로는 들어갈 수도 없고, 모바일 페이지는 엉망진창이며, 쓸데없이 많은 이미지 때문에 매우 버벅대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애의 이름은 8기 참가자 명단에 끼어 있었으니 그 때의 아이작 뉴턴이 바로 폭행사건의 범인일 터. 그런데 뉴턴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얻어맞은 사람 본인이었다.


“해결했다 싶으면 문제가 생기고, 또 고치면 이번엔 다른 문제가 터지고. 항상 그렇지.”


“그러게 말예요. 자기가 자길 때렸을 리는 없고.”


머리를 싸매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거의 맞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서 잘못 생각한 거지? 이제는 정말로 전문가의 도움을 구해야 했고, 인간이 아는 한 가장 확실한 문제풀이 방법을 공부했던 나의 룸메이트는 곧 전문적인 해결법을 내놓았다.


“적어도 우린 아까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잖아. 그러면 뭐든 할 수 있어. 다른 기에도 뉴턴이 다 하나씩 있었던 거지?”


“네, 다 있어요.”


“그럼 전부 연락해 봐야지. 얘가 8기였으니까, 한 5기에서 11기 정도까지 뉴턴이란 별명 붙었던 애들 연락처를 구해다가 한번 물어보자고.”


“진심이세요?”


그렇게 되물었지만 언니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과학의 과정이란 종종 이렇게 지루한 단순작업이고, 모든 가능성을 하나하나 확인해봐야만 풀 수 있는 문제도 있게 마련이라면서. 다행스럽게도 캠프 홈페이지에는 각 참가자들의 출신 초등학교가 나와 있었고, 현대사회에는 소셜 네트워크라는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관측장비가 존재한다. 이름을 알고 나이를 알며 어느 초등학교를 나왔는지도 안다면 연락을 취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어린이 과학캠프 역대 참여자들의 모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낸 쪽지에 답장이 돌아온 것은 딱 하루가 지나서였다. 답장을 보낸 사람은 10기 캠프 때의 뉴턴. 그리고 내용은 이러했다.


“‘직접 만나 뵙고 얘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혹시 서울 쪽에 사신다면 오늘 밤에, 보내드린 주소에서 뵐 수 있을까요?’ 와, 이거 완전 수상한데요.”


이번에 폭행당한 녀석도 밤중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변을 당했다. 적혀 있는 주소는 지난번의 범행장소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이렇게나 비슷하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의심할 만 했다.


“우리가 뭔가 비밀을 캐내려고 한다는 걸 들킨 거야. 그래서 행동을 취하려는 거지.”


“어떻게 할까요? 나가지 말고 경찰을 부를까요?”


내 말에 언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였다.


“관찰을 해야지. 관측대상이 먼저 움직여 줬다는 건 기회야. 움직임을 관측하면 성질을 알 수 있으니까.”


“와, 위험한 사고방식이시네요. 그렇게 이걸 해결하고 싶으세요?”


이번에는 고개 끄덕. 뭐, 나도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언니처럼 문제를 못 풀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숙제하다가 귀찮아져서 도중에 자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니까. 하지만 과학은 정말로 좋아했고, 천재들의 위대한 발견과 발명, 그 모든 경이로운 것들이 어린 시절의 나를 매혹시켰다. 수학이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한동안은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과학자와 같이 뭔가 수수께끼를 풀고 있고- 또 수학은 필요가 없다. 그게 내게는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아파트 앞 놀이터의 그늘에 나는 꼭꼭 숨어 있고, 언니는 놀이터 한가운데서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관측을 한다고 반드시 뭔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실험실에서는 항상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고 언니는 말했지만 그래도 밤에 기껏 나왔는데! 적어도 뭔가 소득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생각하던 도중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불의의 사태에 대비했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언니였다.


“뉴턴? 뉴턴 맞지?”


후드티를 뒤집어쓴 상대는 그 말에 흠칫 놀라더니, 곧바로 주먹을 꼭 쥐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순간 뭔가 일이 잘못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언니는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황색 가로등 불빛 아래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은색 갈고리 의수가 내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었지만. 덕분에 공격하려던 녀석은 놀라 뒤로 넘어졌고, 내가 달려가서 제압할 때까지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아무 것도 못 가르쳐 줘!”


그렇게 말하는 녀석은 선이 가는 남자아이. 지난번 사건의 범인도 이 녀석인 걸까? 하지만 두 번째로 저지르는 일치고 얘는 너무 어설펐다. 장소도 다르고. 입을 꼭 다물고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범인을 내려다보며 나는 그런 가설을 언니에게 말해주었다. 언니도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기지. 어째서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했을까. 우연일 리는 없지. 넌 어떻게 생각해?”


“둘이 연락하고 있었던 거 아닐까요? 어쩌면 둘이 아닐지도 모르고요. 역대 뉴턴들이 전부 다 합의를 해서, 누군가 뒤를 캐는 것 같으면 불러내서 혼을 내 주기로 했을지도 모르죠.”


“설득력 있는 가설이네. 하지만 중요한 건 원인이지.”


어째서 뉴턴들은 이런 일을 저지른 걸까? 얻어맞은 사촌동생이며 지금 붙잡혀 있는 이 녀석이며, 도대체 왜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걸까? 이 애들이 숨기려고 하는 비밀이란 과연 뭘까? 관측대상이 말을 해 주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모은 주변 정황을 데이터삼아 다시 가설을 세워보는 수밖에 없었다.



고 있는 사실들을 머릿속으로 차례로 떠올려,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연결해 본다. 과학소년이었던 중학교 동창의 사촌동생은 어린이 과학영재 캠프에서 ‘뉴턴’이었지만, 중학교 들어서부터는 겉도는 외톨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갔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자면 캠프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했으니 어쩌면 그 캠프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다른 '뉴턴'이라는 애들한테 갑자기 연락을 취했는데, 그렇게 연락이 된 뉴턴 중 하나에게 얻어맞았다. 그리고 지금 다른 뉴턴이 똑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해 비밀을 지키려 했다. 처음 사촌동생을 때린 녀석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비밀을 캐지 않을까 두려워해 다른 뉴턴들에게도 연락을 한 걸까? 어떻게 대처할지 급히 약속을 한 걸까?


00openclipartorg2.jpg 하지만 이 아이들 사이의 접점은 캠프뿐이다. 그것도 전부 다른 해에 들어갔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다면 몇 년에 걸쳐 일어났겠지. 아이들 대상의 캠프에서 몇 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한 아이의 삶을 흔들어놓을 만한, 하지만 관련된 사람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일이라면…….


“뭔가 생각이 난 얼굴이네. 말해 봐, 성여울.”


“우으, 하지만 제 가설이 틀렸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없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야.”


냉정한 얘기였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입을 꼭 다문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조심스러워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나도 캠프 갔었으니까 알아. 애들한테 별명 지어주는 사람이 누군지. 인솔 교사 중에 하나가 담당하잖아.”


내가 캠프에 갔던 것은 꽤 오래 전이니, 나한테 마리 퀴리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이 아이들을 담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만일 지금부터 내가 펼쳐놓을 가설이 사실이라면.


“뉴턴이라는 이름……, 그건 그 자식이 마음에 드는 남자애한테 붙여 주는 이름이었니? 너한테도, 그리고 다른 애들한테도?”


명확한 반응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표정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다. 울기 직전의 얼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기에 이것은 밝혀야 하는 진실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 거라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너한테 그런 짓을 한 자식이 나쁜 거야. 그러니까 부끄러워할 필요도 숨길 필요도 없어.”


그 말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온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했던 가설이, 내 간절한 바람과는 상관없이 명백한 사실임을 증명하는 울음소리였다.



결국 그 애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마음이 개운치 않은 이야기였다. 내가 참가했던 캠프에서 몇 년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니. 언니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희미한 감정의 떨림은 느껴졌다.


“적어도 알아냈잖아.”


“그래요. 적어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알아냈죠.”


과학이 너무 좋아서 갔던 캠프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충격으로 겉돌던 아이가 어느 날 진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오래 전 일이기에 자신의 증언만으로는 범인을 잡아넣을 수 없다는 걸 알았고, 다른 피해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캠프에 참가했던 다른 아이들에게 연락을 해 본다. 하지만 정작 연락을 받은 피해자는 진실이 밝혀지는 걸 원치 않았다. 부끄러워서, 수치스러워서, 자신의 삶이 무너질까봐 두려워서 입막음을 하려 든다.


“얻어맞고 병상에 누워서 생각했겠죠. 자기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진실을 폭로하려고 했는데, 정작 다른 피해자들이 그걸 원치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하려는 일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래서 그 애도 입을 다물어버린 거예요.”


명쾌하고 고통스러운 해답. 이걸로 처음에 궁금했던 수수께끼는 거의 풀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궁금증은 해결되었을지언정 현실의 문제는 전혀 해결된 것이 없었으니까. 여전히 그 애는 입을 다물고 있고 다른 피해자들도 숨어있으며 성범죄자는 멀쩡히 살고 있으니까.


“경찰한테 넘길까?”


과학자 언니는 그렇게 물었다. 이번에 고개를 젓는 것은 나였다.


“수사가 제대로 될지 확신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작자 얼굴도 직접 좀 보고요.”



접 보고 싶다는 것은 좋은 태도라고 나혜 언니는 말했다. 그래서 그 주 주말에 우리 둘은 캠프 사무실까지 찾아갔고, 아직까지 인솔교사로 있는 문제의 성범죄자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만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어떻게 증거를 얻어내느냐 하는 것. 증거가 없으면 과학도 수사도 성립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작자가 자백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건 나한테 맡겨.”


나혜 언니가 그렇게 말했으니 믿어 봐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휴게실 소파에 앉아 핸드폰만 두 손으로 잡고 불안하게 만지작댔다. 곧이어 정장 차림의 성범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옆자리의 과묵한 언니가 나설 차례였다.


“일선에서 과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물리학도로서 배우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마터면 놀라서 폰을 놓칠 뻔 했다. 놀랍도록 부드럽고 어쩐지 작위적인 목소리. 평소엔 그렇게 차갑던 사람이 어떻게 저런 목소리에 저런 말투로 말을 할 수가 있지? 그렇게 의문을 품었지만 곧 해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마 이건 과학자로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지도교수님이나 다른 중요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만 튀어나오던 목소리겠지.


“오, 그렇게 안 보였는데 과학자였나요? 나이가 거의 박사쯤……,”


“석사입니다. 일이 좀 있어서.”


“석사면 이제 시작이죠. 열심히 해야겠네요!”


이윽고 내가 따라갈 수 없는 과학 토크가 시작되었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과학교육으로 흘러갔다. 아이들에게 과학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떤 실험이 안전하고 적절한지, 그리고 과학자를 꿈꾸는 아이들의 롤 모델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 그 시점에서 마침내 익숙한 사람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건 당연히 뉴턴이죠! 천재, 천체의 움직임을 밝히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미적분에 광학에! 미숙아로 태어났지만 과학을 바꿔놓았죠. 제 목표는 그 뉴턴처럼 천재적인 아이를 발견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캠프에서 인솔교사를 하고 있는 거고요.”


“해변에서 놀면서, 보통보다 조금 더 매끈한 자갈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는 소년. 그래요, 그런 애가 취향이셨군요.”


그렇게 대답하며 언니는 핸드폰을 꺼냈다. 다음 순간 녹음되어 있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날 놀이터에서 녹음해 둔, 캠프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낱낱이 고백하는 아이의 목소리.


“지도교수님이 그러셨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실험노트를 쓰고 모든 걸 기록해 두라고. 심판의 날이 왔을 때 오직 기록과 데이터만이 네 연구의 진위를 판별해 준다고.”


상대의 얼굴이 납빛으로 굳어졌다. 하지만 오래도록 몰래 성추행을 저질러오면서 들킬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멍청이겠지. 아무래도 이 자식은 순순히 심판을 받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낮추고 이렇게 잘난 듯 말하는 걸 보니까.


“그게 충분한 증거일 거 같아요, 젊은 아가씨? 애들 중에 몇 명이나 증언해줄 거 같아? 밝히고 나면 사회생활 끝장날지도 모르는데? 그래요, 똑똑한 애들을 좀 만지긴 했지. 하지만 걔네가 그걸 말할까? 절대 그런 일 없었다고들 할 걸?”


이런 말까지 들었다면 더는 신경 쓸 것도 없었다. 나와 언니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네 지도교수님이 한 말은 과연 사실이었다. 이러니까 기록을 해야 되는 것이다. 아까 전부터 두 손으로 꼭 잡고 있던 핸드폰의 동영상 기능으로. 내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집어넣는 순간 상대도 그 사실을 눈치 챈 것 같았지만, 깨달음이 행동으로 채 이어지기도 전에 우리 둘은 이미 휴게실을 달려 나서고 있었다.



주일 후. 무사히 확보해 경찰에 넘긴 증거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 뉴스에서는 성범죄자의 구속 이야기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가능한 한 피해자들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는 연락도 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은 이 모든 움직임을 시작한 첫 번째 원인, 동창의 사촌동생이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너 때린 애한테도 연락 받았어. 이게 맞는 일 같다고,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고마워요, 누나들.”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서 한참 동안 침묵. 상담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상처가 치유되기까지는 한참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전문가들이 할 일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은 그저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넬 뿐. 하지만 나혜 언니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과학, 좋아하니?”


“좋아했죠.”


다시 침묵.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나도 좋아했어. 그래서 과학자가 되려고 했지.”


적어도 시시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표정으로부터 알 수 있었다. 목소리도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나혜 언니는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정말로 힘든 일이 많더라고. 연구도 힘들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일들이 힘들 때가 있어. 실험실 사람들하고 인간관계 문제를 겪거나, 돈이 부족하거나,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 과학이란 건 천재들이 혼자서 짠 하고 해답을 찾아내는 그런 깔끔한 게 아니었어. 나쁜 사람도 있고, 나쁜 일도 생기고……, 결국은 전혀 다른 나쁜 일 때문에 그만두게 됐지만.”


그렇게 말하며 언니는 오른손의 갈고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물어볼 때가 아니었다. 질문을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언니였다.


“한번 그만두게 되면, 다시 시작하는 건 정말로 힘들어. 그리고 아무런 계기 없이 갑자기 마음을 먹고 다시 시작하게 되지는 않아. 그런데 넌 용기를 내서 진실을 말하기로 했어……. 그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알려줄 수 있을까? 뭐가 널 움직이게 했는지?”


00openclipartorg1.jpg 아, 결국 언니에게는 하나 더 의문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가설 설정과 자료 수집과 같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었다. 당사자가 직접 해답을 말해주었으니까.


“로제타요. 혜성 탐사선. 작년 말에 혜성에 탐사 모듈을 내려 보냈다는 뉴스를 보고서-”


“로제타가? 진짜로?”


이렇게 외친 것은 나였다. 2004년 3월에 유럽우주국에서 발사한 로제타라는 혜성 탐사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지만, 그래도 한때 과학자를 꿈꿨기에 그런 것은 과학선생님보다도 더욱 잘 알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로 성공했구나!


“그래! 탐사선 얘기 작년에 뉴스에서 해주더라! 그게 그거였구나! 어땠대? 잘 착륙했대?”


“조금 문제는 있는데 그래도 데이터 보내오고 그랬다고……,”


“와, 진짜 어떻게 그런 걸 성공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진짜 멋지지 않아?”


간호사에게 주의를 받기 전까지 나는 흥분한 채로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진정해야지, 진정해야지. 쟤 얘기가 아직 안 끝났고, 나혜 언니는 답변을 못 들으면 잠을 못 자는 성격이라고 했으니까.


“아무튼, 그 뉴스를 보고 생각했어요. 정말 대단하다고, 저런 걸 정말 좋아한다고. 과학을 생각할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나서 한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런 멋진 걸 그런 일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마음을 먹은 거예요. 그것뿐이에요.”


나혜 언니는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은 때로는 그런 것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애플파이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멋진 혜성 탐사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자가 모를 리가 없었다.



취방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검색을 해 봐야 했다. 뉴턴이니 과학캠프니 하는 소리를 오랜만에 하도 들었다가, 이제 로제타 소식까지 귀에 들어오고 나니 찾아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신기하네요. 완전히 흥미를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는 데에 학위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수학도 필요가 없고요. 아, 동영상 찾았다! 어떻게 이런 궤도로 움직이게 계산을 할 수가 있는지 저는 도저히 모르겠다니까요.”


경탄으로 가득 찬 외침에 과학자 언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우주는 공기저항이 없는 세계니까 뉴턴역학이 깔끔하게 적용되고, 어마어마한 돈과 머리 좋은 사람들이 합쳐지면 정말로 정밀한 계산을 해낼 수 있다고.


“뉴턴역학 그런 거 다 까먹었는데, 그, 관성의 법칙 같은 거요?”


“멈춰 있는 것은 계속 멈춰 있고, 움직이는 것은 계속 그대로 움직인다. 뭔가 외부의 힘이 가해지기 전까지는.”


“그건……, 알 것 같네요.”


수학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 관성의 법칙이 만들어낸 로제타의 궤도에, 인간이 쏘아올린 탐사선이 혜성까지 도달하는 머나먼 여정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다. 오래도록 눈을 감아왔던 만큼 더욱더. <제1화 끝>


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대학원생(화학전공)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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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 광주과학기술원 석사과정 대학원생, 화학 전공
화학 전공 대학원생 겸 초보 작가. 과학이 좋은지 글쓰기가 좋은지 계속 갈팡질팡했지만, 지금은 죽을 때까지 갈팡질팡하기로 결심했다. 제대로 갈팡질팡하는 것도 어렵다는 사실을 매일 느끼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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