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연재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시즌Ⅱ



pic-s2e02.jpg » 자료사진 / http://pixabay.com

[지난 회의 줄거리]

권대성 교수가 학교를 옮기게 되고, 연구실 학생들에겐 멘탈파쇄가 일어난다.


 

#2.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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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박1)은 스트레스 호르몬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옥상이었다. 악! 소리를 질렀다. 끊었던 담배나 다시 피울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주먹으로 난간을 쳤다. 있는 힘껏 쳤다. 퉁. 충격이 왔지만 무시했다. 다시 한 번 쳤다. 퉁. 칼 맞은 사람 간지럽힌다고 간지럽겠느냐. 계단으로 내려갔다. 목적지는 없다. 빠르게 내려갔다. 3층, 2층. 손잡이를 주먹으로 쳤다. 데엥. 여운이 뒤를 좇는다. 더 빠르게 내려간다. 1층 마지막 계단을 딛는 찰나, 발을 헛디뎠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았다. 생존본능이 그를 바로 세웠다.


그 순간 생존본능이 정신마저 재부팅시켰나보다. 하긴,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정신상태였으니까. 주성은 갑자기 차분해졌다. 천천히 걸어서 문밖으로 나갔다. 여름이지만 그리 덥지 않았다.


주도권을 잡은 이성이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을 해보면 좋겠다고 속삭였다. 가능한 선택지들을 놓고 이익과 손해를 따져보는 것이다.

1) 지도교수를 서류상으로만 옮긴다.

   - 4~5년을 서자로 살아야 한다. 눈칫밥에 비만 될 수 있다.

   + 하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 아, 지속할 만한 연구가 있긴 하던가?

2) 새로운 연구실로 옮긴다.

   - 새로 하게 되는 연구와 케미[1]가 안 통할 수 있다.

   - 연차초과[2]의 지름길이다.

   - 교수님이 재떨이 던지는 연구실로 갈 가능성도 있다.

   + 지도교수가 내 옆에 있다.

3) 박사를 포기하고 취직하기

   - 박사 1년차 전부가 의미없어 진다.

   - 야근생활을 남들만큼 일찍 시작한다. 아참, 지금도 맨날 야근하지.

   + 두어 달만 벌어도 아이패드 에어2를 살 수 있다.

4) 재벌 3세와 결혼해서 땅콩 실컷 먹기

피식. 주성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이 생각나다니. 그러다 불쑥 질문이 하나 떠올랐다.

‘왜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한 걸까?’



성은 걸음을 멈추었다.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정답이 필요했다. 이제까진 예능을 볼 것이나 논문을 읽을 것이냐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인생 전체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석사 과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박사과정에 온 것 같다. 이왕 연구란 걸 시작했는데 2년만 하고 그만 두긴 너무 짧았다. 당장 취직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주변에서도 많이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이 바닥의 진로 중에 박사학위를 받아서 손해 볼 분야도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냥 시작했던 것 같다. 박사과정 입시서류라도 떠올려보려 애썼다. 석사과정 입시서류를 대충 베꼈던 기억만 난다.

‘그렇다면 석사는?’

주성은 질문을 이어보았다. 그런데, 석사도 비슷했다. 학부 4년을 배워봤지만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도 대학원에 많이들 갔다. 취직할 때 석사학위가 있으면 2년 경력은 쳐준다니 손해도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다.


세상에. 학부마저 비슷했다. 주성은 과학고등학교를 나왔다. 잠 줄여가면서 과학 공부를 했으니 이공계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해 보였다. 과학고등학교에서 이공계가 아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없다시피 했다. 이공계는 위기라고 떠들기라도 하지, 인문계는 취업 안 되는 게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니 굳이 인문계로 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갔다.


그렇다면 이제 과학고등학교 입학 이유다. 주성은 이 프랙털(fractal) 구조[3]가 과연 깨질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어려서 잘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다. 중학생 때 공부를 잘 했다는 건 확실히 기억나니까. 주성은 전교 1등은 놓친 적이 거의 없었다.


‘아.’ 중3 때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났다. 담임선생님이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단지 성적이 좋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이 해주셨던 말씀도 생각났다. “너, 6살 때 과학자가 꿈이었는데, 기억 안 나?” (물론, 부모님은 주성이 6살 때 매달 꿈이 바뀌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 욕심이 생겼던 것 같다. 성적이 좋으면 당연히 과학고등학교에 멋지게 합격해서 학교에 플래카드도 걸리고 부모님도 기쁘게 해드려야 하는 것 같았다. 전국에 공부 좀 잘 한다는 학생들은 다들 과학고등학교에 지원했으니까. 아. 프랙털은 역시 프랙털이다.


주성은 답을 찾았다.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했다. 고로, 나는 박사과정에 있다.’


주성은 자기가 남들보단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입시 실패 한 번 없이 좋은 대학교에 있지 않은가. 인생을 상대평가 하면 A0쯤은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수강신청 한 적이 없었다. 정해진 커리큘럼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주성이 다른 길로 가야 했을까? 모르는 일이다.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길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다른 길이 더 낫다고 들어본 적은 더더욱 없으니까.


어른들은 말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지만 내 주변엔 나보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어쩌란 말인가. 따지고 보면 그들도 숲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다. 지나온 길을 회상할 뿐인 것 같다.



칠 뒤, 꿈꾸는대학교 전산학과 정기 교수회의[4]가 열렸다. 안건으로 서연정(석1)과 이한길(석1)의 연구실 배정 문제가 올라왔다.

권선필(교수): 거기 재배정할 학생이 이 둘 뿐인가요?

학과장: 졸업 예정인 학생은 서류상으로만 지도교수를 옮기기로 했으니 학과사무실에서 서류만 잘 처리해주면 될 것 같고요, 박사과정 학생 몇 명은 생각할 시간을 좀 달라고 했답니다.

사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 건 꾸며낸 말이었다. 박원식과 하주성은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되어 연락을 해보았지만 며칠 있다 연락할 거라는 문자가 하나 온 것이 끝이었다. 더 이상은 메시지를 보내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권선필(교수): 이왕 옮길 거면 빨리 처리하는 게 본인한테도 나을 텐데.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삶을 수학 교과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식에 의해서 재깍재깍 전개되지 않으면 답답해한다. 본인들의 과거는? 전부 편집해서 알짜배기만 남겨두었다.

김충섭(학과장): 박사과정 학생들은 개별적으로 지도교수를 컨택해서 옮길 수 있도록 해도 괜찮을 것 같은 데요.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김호진(교수): 지금 박사 학생이 거의 없는 연구실도 있는데, 학생 데려가는 데 우선권은 줘야하지 않나요?

박민석(교수): 그래도, 박사과정 학생이면 본인이 연구하던 게 있을 텐데, 무작정 바꾸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던 분야가 다르면 지도하기도 쉽지 않잖아요.

김호진(교수): 흠, 그렇긴 하네요.

김충섭(학과장): 그럼 또 반대하는 분, 계신가요?

이로써 넘어갔다. 하지만 석사학생은 다르다. 회사로 치자면 박사과정 학생은 경력직, 석사과정 학생은 신입이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회사의 필요에 따라 배치된다.

김충섭(학과장): 그럼 석사과정 학생들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주세요.

김호진(교수): 석사 학생들은 올 봄에 석사 신입생 받지 못한 연구실들이 먼저 뽑아갈 기회를 갖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봄학기 때 각 연구실에 배정된 인원을 다 채운 연구실들은 빼고, 나머지 연구실들을 대상으로 원래의 프로세스를 거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야 공평하지 않을까요?

김호진 교수의 연구실은 학생이 별로 없다. 올 봄엔 김호진 교수 연구실을 3순위에 쓴 석사과정 학생이 배정됐다. 그 학생은 배정 이틀 후 교과석사[5] 과정으로 바꿨다. (교과석사 과정은 연구실에 소속되지 않는다.)


그 학생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교수들이 많았다. 김호진 교수는 평소 다른 교수들의 좋은 술친구이기 때문이다. 매너도 좋고 유머도 있다. 연구비도 잘 따와서 학과에 도움도 된다.


물론 일부 교수들은 알고 있었다. 김호진 교수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학생들 사이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를. 하지만 앞에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충섭(학과장): 이 문제는 표결에 부쳐 보도록 하죠. 방금 김호진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으로 하는 데 반대하시는 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찬성하는 사람 들라고 했으면 몇 명은 안 들었겠지만.

학과장: 그럼 김호진 교수님 의견대로, 올 봄에 할당된 배정 인원을 다 못 채운 연구실들만을 대상으로 원래 연구실 배정 프로세스를 진행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죠.



틀 뒤, 서연정과 이한길에게 메일이 날아왔다. 교수회의에서 통과된 내용에 대해서다. 메일을 보자마자 한길이가 옆 방에 있는 연정이에게 찾아왔다.

이한길(석1): 연정아, 너 메일 온 거 봤어?

서연정(석1): 어,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김국현(박3): 뭔데?

이한길(석1): 저희 연구실 배정에 대한 건데요, 봄학기에 배정된 결과 있잖아요, 거기서 학생 못 받은 연구실들 중에서 골라서 면접 보고 하래요.

김국현(박3): 비슷한 분야 연구실이 아니라?

이한길(석1): 네. 연구실 목록도 같이 왔는데, 이게….

김정원(박4): 어떤데 그래?

뒷자리에 있던 정원까지 합세해서 연정에게 온 메일을 보았다.

김국현(박3): 야,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이 중에서 고르라고?

김정원(박4): 왜 봄학기 때 신입생 안 들어갔는지 딱 알겠구만...

석사 신입생들이 기피하는 연구실은 두 종류다. 연구 분야가 팍팍하거나 교수님이 괴팍하거나. 연구 분야가 팍팍한 경우는, 한국에서 취직할 곳이 별로 없는 경우나, 아니면 학문 자체가 범인(凡人)에겐 너무 어려운 경우다. 교수님이 괴팍한 경우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기사를 찾아보라.

김국현(박3): 너네도, 어떤 연구실에 가면 안 되는지, 들어둔 건 있지?

이한길(석1): 알죠. 아니까 이러죠.

서연정(석1): 아 진짜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그냥 남아 있으면 안 돼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남아 있겠다고 했죠.

김국현(박3): 교수회의 통과했는데, 가능할까?

김정원(박4): 그래도 말은 해봐야 되진 않아?

김국현(박3): 솔직히 안 될 것 같아서 하는 얘긴데, 너네들, 분야보다는 교수 보고 가라. 정말, 내가 대신 미안하다.

김정원(박4): 이거 진짜 나이 들고 소개팅 하는 거 같지 않냐? 왜, 나이 들고 솔로인 사람은 꼭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잖아.

어른들은 말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고. 하늘 높이 올라간 그들은 숲만 본다. 그래서 한 그루씩 죽어가는 나무는 보지 못한다.


그 때, 갑자기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하주성(박1): 하이, 여러분! 제가 없어서 좀 덜 시끄러웠죠?

주성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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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케미: 최근 들어 방송에도 나오는 신조어. ‘화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chemistry’의 첫 두 음절을 나타낸 것이다. ‘케미가 통한다’는 ‘화학 반응이 일어날 것 같다’, 즉 ‘죽이 잘 맞는다’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방송가에서는 두 사람 사이에 연기 호흡이나 개그 호흡이 잘 맞을 때 ‘두 사람 사이에 케미가 통한다’라고 하며, 남녀 사이에 사랑이 싹틀 때도 비슷한 표현을 쓸 수 있다.

[2] 연차초과: 대학교의 기본 재학 기간이 4년인 것처럼, 석사과정의 기본 재학 기간은 2년, 박사과정은 4년 정도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각 과정에 지정된 재학 기간을 넘겨 학교를 다니는 것을 ‘연차초과’라고 한다. ‘연차초과’를 한다고 학교에서 바로 잘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원금이 삭감된다거나 기숙사 배정이 후순위로 밀리는 등의 불이익을 주는 학교도 있다. 문제는 박사과정의 경우 5년 걸리는 것은 부지기수고, 6년, 7년, 8년 혹은 그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

[3] 프랙털(fractal): 어떤 도형 혹은 모양의 일부분이 전체 부분과 동일한 형태를 갖는 것을 말한다. 가수 “노라조”의 뮤직비디오 <니 팔자야>에도 등장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4%84%EB%9E%99%ED%84%B8

[4] 교수회의: 이 소설의 필자는 대학원생이며 교수회의는 근처에도 못 가봤다. 다른 부분은 매주 현실적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교수회의 부분 만큼은 철저히 상상에 의존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5] 교과석사: 보통 석사학위 과정은 학위논문을 작성해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대신 수업을 더 듣는 것으로 대체해서 석사학위를 받는 과정이 존재하는 학교도 있다. 이 때 받는 학위를 ‘교과석사’라 한다.


   ■ 작가의 말

그렇다고 어른들만 탓하고 싶진 않아요. 어른들의 성장 배경엔 더 큰 제약과 더 큰 고통이 존재했었을 테니까요.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 가고 있을까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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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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