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조정 뇌영역(브로카), 정작 발성 동안엔 잠잠”

"감각 정보 조직화, 문장 계획, 입운동 등 통합·조정"

뇌질환 환자 관측, '브로카영역' 역할과 연결망 규명


00brocaarea.jpg » 왼쪽 눈의 위편 안쪽에 있는 뇌의 브로카 영역(색 표시)은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측두엽피질과 입 운동을 제어하는 운동피질과 상호작용하면서 말하기 과정을 계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어 능력을 잃은 ‘실어증’ 가운데에는 ‘브로카 실어증’이란 것이 있다. 언어를 듣고 읽으며 이해하는 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언어 표현을 하는 데에는 장애를 보인다고 한다. 다음은 한 종합병원 누리집에 실린 간결한 설명이다.


“브로카 실어증은 운동 실어증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이해하는 능력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는 다 알아 듣고 있으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환자에게 ‘오른손을 들어보세요’라고 하면 환자는 실제로 그 뜻을 이해하기 때문에 오른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말해보세요’라고 하면 어떤 뜻인지는 알지만 표현 능력에 장애가 있어 본인의 이름을 아예 말하지 못하거나(말하려는 노력으로 의미 없는 음절을 말할 수 있음) 이름 중에 한 글자만 이야기하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삼성서울병원 누리집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카이스트 뇌과학연구센터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왼쪽 눈의 위편 안쪽에 있는 브로카 영역은 그동안 ‘말의 자리(seat of speech)’로 불릴 정도로, 말하기 능력과 관련해 주목받아온 뇌 영역이지만 그것의 역할과 기능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미국 연구진이 뇌질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관측 데이터를 바탕으로 브로카 영역이 뇌에서 일어나는 말하기 흐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관찰, 분석해 과학저널 <미국과학한림원 회보(PNAS)>에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새롭게 밝혀진 점은 브로카 영역이 소리를 내어 말하기 직전에 가장 크게 활성을 띠었으나, 정작 말을 하는 동안에는 활성이 맘추는 것으로 관찰됐다는 것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연구진은 병원에 입원한 간질 환자 7명을 대상으로 발작을 일으키는 뇌 부위를 찾는 진료 과정에서 듣거나 읽고서 말로 표현하는 동안에 언어와 관련한 뇌 부위에서 활성이 어떻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지 살폈다. 환자들의 피질 위쪽에 전극을 꽂고서, 이들이 1음절 단어를 듣거나 읽고나서 발성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전기적 신호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측정과 분석에선, 기존 학설에서 알려진 대로 브로카 영역이 말하기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 과정은 다른 영역과 상호작용 하는 연결망의 흐름을 띠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 감각 신호를 받아들여 조직화하는 측두엽 피질(temporal cortex)과 입 동작을 제어해 발성하게 하는 운동 피질(motor cortex) 사이에서, 브로카 영역은 일종의 중개자이자 조정자로서 소리 내어 말하기 이전에 말하기 문장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브로카 영역은 발성 직전에 가장 크게 활성을 띠었으나 소리 내어 말하는 동안에는 잠잠한 것으로 관측됐다고 보고했다.


다음은 존스홉킨스대학 보도자료에 실린 연구자들의 말이다.


“우리는 말하는 동안에 뇌에서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처음으로 서로 다른 언어 과제를 행하는 동안에 뇌의 서로 다른 센터에서 일어나는 활성화의 순간(timing)을 매우 정밀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 발성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늘 여겨져 왔지만 지금까지는 그 정확한 역할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브로카 영역이 말하기 발성을 수행한다기보다는 발성 계획을 진전시키며 발성되는 것을 모니터링 하면서 말하기 흐름에서 오류를 수정하고  조정을 행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공저자 나산 크론[Nathan Crone])


“(신경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뇌의 언어 센터를 두 가지의 영역으로 나누어 왔습니다. 하나는 말을 인지하는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생산하는 영역입니다.) 이번 연구의 발견 덕분에 우리는 이분법을 완화하는 견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브로카 영역은 말의 생산을 위한 센터일 뿐 아니라 뇌 영역을 가로지르며 정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지요.”(교신저자 아딘 플린커[Adeen Flinker])


말하기를 준비하고 발성하는 과정에서, 뇌의 언어 연결망 가운데 브로카 영역은 정보를 조직화해 문장을 만들기, 그리고 입을 움직여 발성하게 하는 말하기의 전체 흐름에서 조정자 또는 매개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지만, 실제 소리를 내어  말하는 동안에는 활성을 멈추고 있는 셈이다. 존스홉킨스대학의 보도자료는 이런 특징에 빗대어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를 준비하고 계획해서 운동 영역이 발성할 수 있게 하는 “뇌의 대본 작성자(scriptwriter)”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가 실어증의 진단과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논문 발췌 번역

의미 (Significance)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나, 피질 언어 연결망의 역동적 과정(dynamics)에서 그것이 행하는 특정한 역할은 대체로 밝혀지지 않았다. 글이나 말을 목소리로 반복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이런 역동적 과정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피질 기록을 사용하여, 우리는 브로카 영역이 측두엽피질에서 나타나는 단어의 감각 표상과 운동피질에서 이에 상응해 일어나는 발음의 동작 사이에서 활성화의 연쇄 과정을 매개한다는 것, 그리고 놀랍게도 발음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그 활성화가) 정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로카 영역이 말하기에서 행하는 역할에 관한 고전적인 인식과는 달리, 우리 연구결과는 브로카 영역이 개개 단어의 생산에 참여하지 않지만, 발음에 앞서서 말할 단어의 생산과 관련되는 대규모 피질 연결망을 가로지르며 정보 처리를 변형하는 과정을 조정한다(coordinates)는 것을 보여준다.
 
초록 (Abstract)
한 세기 넘게 신경과학자들은 인간 피질의 언어 연결망이 단어를 말로 바꾸는 역동적 과정(dynamics)에 관해 논쟁해왔다. 비록 전두회의 왼편 안쪽에 있는 전두엽 브로키 영역이 이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다른 언어 영역들과 관련되는 브로카 영역의 동원 타이밍을 자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신경외과적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피질 표면 기록을 사용하여, 우리는 피질의 신경군들에 나타나는 활성의 전개(evolution), 그리고 그들 간의 그랜저-인과적 상호작용(Granger causal interactions)을 연구했다. 우리는 제시된 단어 발성 동안에 신경활성의 시간적 연쇄가 단어에 대한 측두엽 피질의 감각 표상에서 이에 상응하는 운동 피질의 발음 동작으로 진행됨을 발견했다. 브로카 영역은 측두엽영역과 전두 운동영역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이런 (말의) 연쇄를 매개한다. 말하기와 관련한 브로카 영역의 역할에 관한 기존 인식과 반대로, 브로카 영역은 놀랍게도 조용했다. 더욱이 발음 동작들의 새로운 연결들이 무의미한 단어의 자극(nonword stimuli)에 대응해 생산되어야 할 때에, 신경활성은 브로카 영역에서 증강하지만 운동 피질에서는 그러하지 않는다. 이런 독특한 데이터는, 브로카 영역이 말하기와 관련한 대규모의 피질 연결망을 가로지르며 정보 변형을 조정한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브로카 영역은 운동 피질이 수행해야 하는 적합한 발음 코드(articulatory code)를 정식화하는(formulate) 것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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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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