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생활 첫발, 무엇을 느끼고 배울까

  새해를 맞는 글 ②  


생명과학 분야에서 대학원생 연구생활을 막 시작하는 김준 님이 새해를 맞아 '과학을 한다는 것'을 다시 바라보며 생각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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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newyear_lab5.jpg » 출처 / openclipart.org



마 전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송년회를 했다. 종종 동네에서 만나던 친구들도 있고 1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래도 다들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서로 한눈에 알아보니 참 신기했다. 그런데 훌쩍 지나간 듯한 10년이란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을 때면 사뭇 서로 다른 대답이 튀어나왔다. 누구는 군대 갔다 온 뒤 대학에 다니고 있고, 누구는 직장에 자리를 잡아 일을 하고 있고, 또 누구는 진작에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고 등등. 이야기를 하다 보니 취직해서 잘 먹고 잘사는 게 새해 목표라는 사람이 태반이어서, 이제 막 대학원에 입학하는 나는 친구들에게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그 친구들 눈에 비친 나는 먹고 살 걱정도 안 한 채 지긋지긋한 공부를 계속하려는, 조금은 이상하거나 특이한 녀석이었던 것 같다.


'과학자로서 훈련을 받는 고단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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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newyear_lab1.jpg » 벌레. 실험실의 모델동물 중 하나인 예쁜꼬마선충. 출처/ 김준 (이하 동일) 그런 동창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대학원에 가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궁금함도 생겼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주변에 있던 수많은 대학원생 대부분이 대학원 오지 말라는 말을 줄곧 되뇌지 않았던가. 또 종종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고 연구실을 떠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대학원 생활은 정말 힘들어보였다. 그 기억을 떠올려 보니 문득 등줄기가 오싹해져서 그렇게 힘들다는 대학원에 가서 왜 과학을 하려 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론 연구실을 떠난 이들이 대학원 생활을 어렵게 느낀 이유는 각자 달랐을 것이다. 일주일 내내 일하면서도 등록금 제하고 나면 푼돈밖에 남지 않는 낮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생계를 유지하자니 학원 강사 등 부업을 해야 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도 비정규직인 박사후연구원으로 보통 5년씩 일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정규직 일자리 잡기가 아주 곤란하다는 현실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연구가 아닌 사적인 일을 자꾸 시키는 지도교수가 미웠을 수도 있고, 연구실 동료와 마찰을 빚었거나 서로 성향이 영 안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실험이 너무 어려웠을 수도 있고, 공부하다 보니 연구 분야가 취향과 많이 달랐을 수도 있으며, 논문 한 편 쓰는 데 3, 4년씩 걸리는 등 결과가 나오는 데 필요한 오랜 기다림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박사 학위를 따기 전까진 상당수가 조금씩은 불만을 품고 있는 듯했다.

과학자로서 훈련을 받는 과정인 대학원 생활이 이처럼 고단하다는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갓 대학교에 입학한 스무 살 무렵이었다. “학부도 생명과는 좀 그래. 화학과가 취직 더 잘 된다던데 복수전공 꼭 하고 군대 갔다 와서 취직해, 취직.” 학부 때 화학과 복수전공을 하고 대학원을 생명과로 가는 것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할 때마다 주변의 많은 대학원생이 내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게 나 혼자만은 아니었는지, 동기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 안정성이 있어 보이는 삶을 좇아 각종 전문대학원과 좋은 직장으로 떠났다. 대학원에 진학했거나 갈 생각 중인 나와 몇몇은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좋아. 이렇게 경쟁자를 또 한 명 제거했군!”이라고 떠들며 낄낄 웃어대긴 했지만, 막상 집에 와 혼자 생각해 보면 씁쓸해지곤 했다. 입학할 때만 해도 과학을 하겠다는 친구들로 가득했는데 학부를 졸업하는 지금 절반만 남았다면,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될 때쯤이면 대체 몇이나 남아 있을까? 아니, 누구보다 내가 먼저 떠나진 않을까?


머리 지끈거려도 호기심은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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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newyear_lab2.jpg » 실험대 모습. 가운데 잔뜩 쌓여 있는 것이 모델동물인 벌레가 밥 먹으면서 살아가는 곳이다. 주변 사람이야 어찌되었건, 나는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아직 등록금을 내지 않았으니 재고할 기회가 남아 있어. 대신 군대에 가야겠지.” 주변에서는 여전히 진심 섞인 농담을 한다. 또는 아주 굳센 다짐을 한 사람으로 여기고 가끔 중학교 동창들처럼 대학원에 왜 가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내가 어떤 일을 계기로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 과학을 배우려고 마음먹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은 내가 먼저 나서서 주위에 있는 대학원생들에게 왜 과학을 하냐고 되묻기도 한다. “왜 하지?”라는 장난기 어린 반문이 가장 많았지만, “재미있으니까”라는 대답이 다음으로 많았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시 메아리처럼 내게 울려 퍼진다. 오지 말라는 그 수많은 만류를 무릅쓰고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유가 뭐였지?

아보면 몇 가지 계기가 보인다. 학부 때 연구실에서 생활한 기간이 꽤 긴 편인데, 언젠가는 아침 아홉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잇따라 해야 하는 실험이 잡힌 적이 있었다.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던 터라 전날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아침 일찍 출근해 실험을 시작했는데, 예상과 달리 실험 결과가 반대로 나와 새벽 세 시가 넘어가도록 실험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핏 계산해 보니 몇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더 이상 짓누르는 눈꺼풀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세 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다시 실험하자.’ 짐도 챙기지 않은 채 연구실 문만 잠그고 재빨리 기숙사로 향했다.

방금 전 침대에 누운 것 같은데 자명종 소리가 귀청을 때렸고, 눈을 뜨니 벌써 아침 7시였다. 머리가 여전히 띵해 빈속에 캔 커피 두 개를 연달아 마셨는데 그러고 나자 한숨부터 나왔다. “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잠도 못 자고 이렇게 사는 거지?” 그런데 힘들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덜터덜 연구실로 향하는 길에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근데 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거야? 어떤 유전자가 영향을 끼친 거지? 어떻게 하면 그걸 밝힐 수 있을까?’ 머리가 지끈거리는데도 호기심이 먼저 이는 걸 보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하, 어쩔 수 없나보다. 이번 생애에는 아무래도 과학을 해야겠어.”

00newyear_lab3.jpg » 벌레 얼리는 마무리 단계. 각종 시약 처리 뒤에 섭씨 영하 80도에서 보관한다. “김준! 사진 찍지 말고 얼른 움직여, 벌레 다 죽겠다!” 사진 찍는라 실험할 때 집중하지 않는다고 살짝 혼났다. “힘들고 엄청나게 못하지만, 그래도 재밌는데 어떡하겠어. 이러고 살아야지.” 내 이야기를 듣던 한 친구는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학교가 애를 버려놨어.” 예전에 누군가 했던 이야기도 떠오른다. “결과 안 나오면 진짜 힘들지. 하기도 싫고. 전에 한번 내가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도 왜 아직까지 연구실을 안 떠났나 생각을 좀 해봤거든? 아무리 생각해도 자연이 나랑 ‘밀당’해서 그런 것 같아. 실험 안 되고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면 난 안 될 사람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는데, 그쯤이면 한 번씩 결과가 나와요. 그러고 나면 또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 방금 전까지 때려치우려고 했던 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재미있고 막 설레는 거야. 그렇게 계속 조련 당하니까 힘들어도 그때 생각하면서 버틴 거지. 그러다가 더 이상 이 연구는 도저히 못하겠다 싶으니까 이번에는 교수님이 졸업하라고 하시더라. 이제 새로운 연구실에 자리 잡고 새 출발해야지.”

해소할 수 없는 궁금증을 풀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는 매력에도 끌렸다. 책을 읽거나 논문을 읽다 보면 가끔 글의 초점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신기한 현상을 보고한 부분을 맞닥뜨리게 되는 때가 있었다. 다른 이들이 연구한 뒤 작성한 논문을 읽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재미있지만, 때로는 그런 특이한 현상을 직접 연구해 보고 싶다는 갈망이 일었다. 한번은 같은 학과 선배에게 내가 읽은 논문 내용과 이러저러한 실험을 해보고 싶다며 신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가 끝난 뒤 그는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벌레가 그렇게 재밌다니 준이 넌 진짜 과학 열심히 해라.” 또 한번은 다른 사람이 “그냥 공부해도 재밌긴 한데, 연구하면서 공부하면 진짜 재밌지 않아?”라고 물었는데, 나는 그 말에 정말 공감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씩 웃어 보였다.


나는 정말이지 서투르다, 그래도 한발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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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 시절에 대학원생을 많이 만났고 또 연구실에 다녀보면서 대학원생의 삶을 조금씩 엿볼 수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바라보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훈련을 받으면서 나도 그 현장에서 함께하고 싶었다. 옆에서 지켜본 연구실 현장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보통은 책상에 앉아 논문을 읽거나 자료를 정리하다가 시간이 되면 실험대로 옮겨 실험을 한다. 컴퓨터로 실험을 대신한다면 프로그램을 짜고 구동시킨다. 안 되면 처음부터 다시. 결과가 나오면 새로운 질문이 생기고, 이것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험을 어떻게 할 것인지부터 시작해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등 다양한 주제로 정말 자주 의논한다.

00newyear_lab4.jpg » 현미경 책상 위. 벌레 실험을 하려면 현미경은 필수! 오른쪽에는 벌레를 옮기는 데 필요한 각종 실험 도구들이 놓여 있다. 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논문이나 최근에 발표된 연구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다. 그러면서 활발하게 토론하며 그 결과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이고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 어떤 보탬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무얼 더 할 수 있을지 분석한다. 때로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과학자들과 토론하러 외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가기도 한다. 가끔은 연구비를 어디서 어떻게 구해올지 회의하고 글 쓰고 발표 준비하며 연구실을 꾸려갈 비용을 충당한다. 그렇게 연구 성과가 충분히 쌓이고 나면 논문을 쓰고, 학술지에 제출하고, 거절 당하면 다시 고쳐서 다른 곳에 내는 등 온통 논문 제출을 위한 작업에 몰두한다. 그리고 논문을 게재하든 누군가 졸업을 하든, 하여튼 좋은 일이 생기면 다 같이 모여 맛있는 것도 먹는다. 그렇게 과학을 한다.

런 모습을 옆에서 구경만 할 때도 힘들었는데, 요새는 직접 하려니까 정말이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논문도 잘 읽지 못하고 실험하는 것도 시원찮으며 시시때때 열리는 토론의 장에는 끼어들기는커녕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이다. 세금만 축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에 빠져 조금 걱정도 되고 내 멍청함과 게으름에 한숨도 푹푹 나오지만, 그래도 감성 충만해지는 새벽녘에 논문을 읽다 보면 가끔 감탄이 절로 나오며 행복해진다. “캬! 이거 진짜 재밌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실험은 또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이런 실험으로 구현시키다니.” 그러고 나면 어차피 할 줄도 모르면서 언젠가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설렌다. 이런 즐거움이 계속된다면 대학원 생활을 남들이 걱정하는 것보다는 훨씬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서른 살이 된 연구실 선배의 생일잔치 자리에서 “김준은 언제 서른 살 되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저야 이제 4년 남았죠.”라고 답했고, 누군가 석박사 과정이 짧아야 6년이니 서른 살을 연구실에서 맞이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에이, 그거야 모르는 일이죠. 석사 마치고 나갈지 어떻게 알아요?”라고 농을 던졌고, 다른 사람이 옆에서 “그럼 그럼. 그 전에 쫓겨날 수도 있는 거고”라며 농담을 받아 다 함께 크게 웃었다. 물론 그 농담이 사실이 되어 몇 년 뒤에는 상황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과학자가 되고 싶다.

2014년 12월31일. 연말이라 다들 저녁 약속이 있는지 일찍 퇴근하고, 밤 늦게야 약속이 있던 나는 할 일을 마무리 하고 일곱 시 반쯤 짐을 쌌다. 반응이 막 끝난 시료를 기계에서 꺼내 냉장고에 넣고, 한쪽 문을 잠근 뒤 반대쪽으로 나와 전등도 모두 끄고 나니 오후 여덟 시였다. 도어락 덮개를 덮으니 적막한 복도에 삐빅, 문 잠그는 소리가 울렸고, 동시에 무언가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우리 연구실 한 해 마무리를 내가 하네. 게으름 덜 피우고 좀 더 열심히 하면, 새해에는 지금보다 눈곱만큼은 더 잘할 수 있겠지?’ 이제 막 연구에 발을 내디딘 나는 정말이지 서투르다. 그래도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 언젠가 과학을 조금은 더 잘하면서 그걸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김준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사과정(입학예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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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생(석사과정)
“먹고 살 걱정 하는 세상을 넘어, 놀고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포스텍에서 학부를 졸업하고서 2015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열정과 기쁨을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지향합니다.
이메일 : ecological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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