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볼라 첫감염은 아이 놀이터 ‘박쥐떼 나무’에서?

독일연구팀, 첫 감염사망 아이 집 근처 박쥐서식 나무 지목

나무 불타 직접 증거는 못얻어…“결정적 증거론 미흡” 한계


00ebola_tree.jpg »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이 처음 발병한 기니의 작은 마을 '멜란도우'의 전경(위)과 박쥐떼가 서식했던 속빈 나무가 불 타고 남은 모습들. 출처/ EMBO Molecular Medicine


번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 사태는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옮은 단일사건에서 비롯했을 것이라는 게 현재 유력하게 추정되는 감염 경로다 (관련 기사: "변이 빠른 에볼라 게놈 해독…연구팀 중 5명 감염 사망"). 이런 추정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자들의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기니 마을의 속빈 나무 안에 서식하던 박쥐떼가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감염 경로의 역추적과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 등을 통해, 이번 에볼라 유행 사태가 2013년 12월6일 기니의 작은 마을 멜리안두(Meliandou)에 사는 두 살바기 어린이(사망)의 최초 감염에서 비롯했다고 파악해 왔다. 인수공통감염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동물에서 아이로 옮은 것으로 추정됐으나, 어떤 동물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옮았는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그 감염 사건의 현장을 지목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독일 로베르트코흐연구소의 인수공통감염 질환 연구자인 파비안 린데르츠(Fabian Leendertz) 연구진은 첫 번째 감염이 발생한 기니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 조사를 벌였으며 최근 그 결과를 유럽 과학저널 <엠보 분자의학(EMBO Molecular Medicine)>에 보고했다. 이들은 보고에서 “(멜리안두에 사는 두 살 남자 아이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첫 사건은) 아이가 집 근처 큰 나무에 서식하는 식충 박쥐들을 사냥하거나 박쥐들을 가지고 놀면서 일어났을 것”이라는 추론의 결과를 제시했다.


무는 지난 3월 무렵 불에 타 지금은 박쥐떼가 살고 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연구진이 이 나무를 첫 감염 사건의 현장으로 지목한 근거는 무얼까?


연구진은 여러 조사를 통해 다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이 나무의 박쥐떼를 용의자로 좁혔다. 먼저 인수공통감염의 에볼라 바이러스가 들판의 야생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됐을 가능성을 조사했다. 하지만 이 지역을 모니터링하고 주변 조사를 한 결과에서, 침팬지나 영양 같은 야생동물 개체수가 같은 시기에 줄지 않았으며 아이의 집 부근에는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지도 않는 것으로 나타나 몸집 큰 야생동물에서 바이러스가 왔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이 지역에서 잡은 167마리 박쥐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으나 여기에서도 이번에 유행한 것과 같은 종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발견하지 못했다.


연구진은 첫 감염사망자 아이의 집에서 50미터가량 떨어진 길가에서 박쥐떼가 서식했다는 속빈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으며,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주 놀았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도 들었다. 그러나 문제의 나무는 지난 3월 불타 지금은 박쥐떼가 서식하지 않았다.


00ebola_tree_bat.jpg » 아프리카에 널리 서식하는 곤충 먹는 식충박쥐 종. 출처/CC. ©Jakob Fahr, iNaturalist.org 연구진은 불 탄 나무 주변에서 박쥐 똥을 비롯해 여러 시료를 수거해 조사했으며, 시료의 디엔에이(DNA) 분석에서 이곳에 떼를 지어 살던 박쥐 종이 식충 박쥐의 한 종(Mops condylurus)일 가능성을 확인했다. 나무가 불타던 당시에 나무에서 수많은 박쥐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주민 증언도 있었다고 이들은 소개했다. 게다가 이 식충 박쥐는 이전 연구들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생존할 수 있어 바이러스를 지니고 다니며 옮길 수 있는 후보 동물로 지목되던 터였다.


연구진은 현장 조사, 주민 인터뷰, 디엔에이 분석과 기존 연구성과들을 종합해 첫 감염사망자 아이한테 에볼라 바이러스를 옮긴 것은 몸집 큰 야생동물일 가능성이 희박하며 아이들이 자주 놀던 곳인 속빈 나무의 식충 박쥐떼가 에볼라 감염의 출발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지만 '사건의 재구성'이 완결된 건 아니다. 연구진이 제시한 증거가 어느 정도의 '증거력'을 지느냐는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무에 살던 식충 박쥐를 직접 잡아 조사한 게 아니라는 점, 그리고 아이들이 박쥐떼가 사는 나무에서 자주 놀았다는 증언에 무게를 둔 추론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 보고서가 전하는 증거가 ‘결정적이지는 않다’는 견해도 곧바로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야생동물의 에볼라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연구자는 이번 조사 보고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으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게 확실하다”고 평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 뉴스는 전했다. 야생동물 조사 규모가 너무 적어서 박쥐 아닌 다른 야생동물에서 바이러스가 왔을 가능성을 확실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보고서를 낸 연구진도 “그렇게 감염되었을 것으로 보인다(might have been infected)”는 식으로 확실성이 덜한 표현을 매우 신중하게 쓰고 있다.


첫 감염이 발생한 지역 현장에서 야생동물을 조사하고 주민 증언을 들으면서 감염사망자의 집 주변 나무에 살던 박쥐떼를 유력한 감염 용의자로 지목해 조사함으로써, 연구진은 '흥미로우면서도 과감한' 첫 감염 기원의 시나리오를 추론해 냈으나 여전히 그 증거는 정황 증거를 넘어서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첫 감염 사건의 재구성에는 다른 후속 연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참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감염 경로를 역추적해 확인하는 연구는 감염 예방와 대처에 매우 중요하다. 지난 2013년 12월 6일 기니에서 첫 감염자가 발생한 이래 서아프리카에서 계속되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의 유행 사태는 현재까지 감염환자 2만 명, 사망자 최소 7840여 명의 희생자를 낳고 있으며, 이는 1976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이래 이미 가장 큰 규모로 기록되고 있다.


  보고서 초록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심각한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 유행은 인수공통감염이 기니 멜리안두에 사는 두 살바기 남자 아이한테 전파된 단일 사건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야생동물 조사, 인터뷰, 박쥐와 환경 시료에 대한 분자분석을 사용해서 인수공통감염의 기원을 조사했다. 우리는 몸집 큰 야생동물에서는 동반 발병의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지표가 된 사례(2살 아이의 첫 감염)에서는 식충 박쥐 종(Mops condylurus)이 서식하는 속빈 나무에서 아이들이 놀면서 감염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may have been infected). 이 계통의 박쥐 종은 이전에도 에볼라 바이러스 발생의 잠재적 원천으로서 논의됐으며 이 박쥐 종이 감염 실험에도 생존한다는 실험 데이터도 제시돼 왔다. 이번 분석은 에볼라 바이러스 출처의 후보 범위를 식충 박쥐를 포함해 확장시켜주며, 에볼라 바이러스 서식지를 이해하려는 폭넓은 시료 채취 노력이 중요함을 다시 보여준다.

[개요]
-모니터링 데이터에서는 몸집 큰 야생동물이 최근에 개체수 감소를 겪지 않았으며 따라서 서아프리카에서 유행하는 에볼라 바이러스 질환의 원천으로서 역할을 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일박쥐 사냥과 도살은 기니 남부에서 흔한 활동이라, 직접적인 인간 접촉을 늘려준다.
-어린이도 또한 마을 안이나 주변에서 사냥 활동을 하며 식충 박쥐와 접촉하고 있다.
-과일박쥐의 큰 서식지는 멜란도우 마을 안 또는 근처에 존재하지 않는다.
-감염사망자인 두 살바기 어린이는 식충 박쥐(Mops condylurus)의 서식처인 속빈 나무에서 놀다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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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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