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행복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pic20-3.jpg » '127'의 의미는? 소설 안에 있습니다. 제작 / 김창대



#20.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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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 팩트(fact)[1]는 없다. 관찰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언론은 팩트를 추구한다. 더 많은 곳에 카메라를 들이민다. 하지만 카메라가 닿는 곳이 한계다. 엄밀한 추론을 시도하다가 결국 “의혹이 제기된다”는 표현으로 결론을 비껴간다. 경찰과 검찰은 수사권을 가지고 더 깊은 관찰을 시도한다. 법원은 양측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더 넓은 관찰을 시도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들은 사건 현장에 없었다. 목격자도 소용없다. 그들은 단 두 개의 눈을 가진 관찰자일 뿐이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은 흔히 사실을 왜곡한다.[2] 범인은 모든 것을 알지 않겠느냐고? 범인의 기억은 똑바를 성 싶은가?[3]


관찰이 한계가 있어 문제라면, 해석은 한계가 없어 문제다. 헌법재판소 판사들은 같은 문건을 보고 같은 변론을 듣고 정반대의 의견을 내기도 한다.[4] 같은 날, 같은 나라에서 두 개의 신문사는 전혀 다른 신문을 만든다. 성향이 다른 두 개 이상의 신문을 봐야 한다는 건 심지어 교육계에서도 정설이다.[5]


결국 무엇을 관찰하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다.




리고 여기, 연구 환경 실태조사 결과보고서가 있다. 조금 전에 대학원생 총학생회에서 보내준 따끈따끈한 파일[6]이다. “꿈꾸는 대학교 대학원 연구 환경을 파악하여 환경 개선에 활용함”이 목적이라고 한다. 대학원생 대상의 설문조사 결과와 약간의 분석이 실려 있다. 실상을 파악한다고 해서 환경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여론을 만들어 교수들을 압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몇 주 전에 대학원생 전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 메일이 뿌려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도 설문조사 메일을 받았다. 하지만 답하지 않았다. 귀찮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답해봤자 평균만 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 연구실은 좋다. 인건비도 생활비 걱정 안 할 만큼은 챙겨주신다. 과외나 아르바이트는 당연히 안 해도 된다. 사무원도 고용되어 있어서 자잘한 사무 처리를 할 일도 없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하는 건 아니긴 해도. 교수님이 연구 지도도 잘 해주신다. 너무 잘 봐주셔서 내가 못 따라가긴 해도. 출퇴근 시간도 자율이고, 주말 업무도 없고, 눈치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논문이 나오는 건 아니긴 해도.


그러니 내가 응답을 하면 평균만 올라갈 것이다. 대학원생 전반이 조금 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것이다. 그러면 학생회에서 보도자료를 만들어도 언론에서 기사화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정말 환경 개선이 필요한 곳마저 개선이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평균만 보니까. 표준편차를 써놓아도, 크게 써진 숫자만 보니까. 굳이 그 평균값에 표준편차를 빼보고, 그런 경우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은 애초에 응답하지 않아야, 정말 환경 개선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집단이기주의래도 할 말 없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일하고 단돈 30만원 챙겨가는 수많은 고급인력이 있다. 토요일 오전마다 전체 미팅이 있어서 불타는 금요일은 늘 실험용 초파리와 함께 보내는 수많은 청춘들이 있다. 논문 볼 시간에 증빙 자료와 결산보고서만 들여 보며 사무처리만 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이들을 도울 수만 있다면, 방법이 대수일까. 누가 물어보면 그냥 귀찮아서 안 했다고 하면 되니까. 설문조사 응답률이 25.1%라고  나와 있다. 천 명 조사해서 오천만의 투표 결과를 가늠하는 나라인데,[7] 전체 학생의 4분의 1이 응답했으면 많이 한 것이다. 나는 빠져도 된다.



고서를 좀 더 넘겨본다. 응답자 성비는 어떻게 되는지, 응답자들의 연차[8]는 어떻게 되는지 등이 나온다. 주성이가 우리 방에 들어왔다.

하주성(박1): 이 형, 이거 보고 있네.

김정원(박4): 넌 웬일이냐.

하주성(박1): 왜긴 왜에요. 형 감시하러 왔지. 공부 안 하고 이런 거 보고 있는 거예요?

김정원(박4): 우리 동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좀 알아야 할 거 아냐.

하주성(박1): 이 형, 이유 한 번 기똥차네. 근데 이거 설문조사는 했어요?

김정원(박4): 아니, 귀찮아서….

하주성(박1): 이거 제 친구는 무서워서 못 했다던데.

김정원(박4): 왜?

하주성(박1): 사실대로 적어내면 교수님이 누가 했는지 찾아내려고 할 거 아니에요.

김정원(박4): 이거 익명이잖아.

하주성(박1): 에이, 그래도 적은 거 보면 딱 알죠. 형, 이거 아직 다 안 봤죠?
김정원(박4): 어, 이제 6페이지야.

하주성(박1): 그럼 이거 좀 봐 봐요.

주성이가 키보드 화살표키를 한참 눌러 어떤 페이지를 보여준다. ‘중요한 기타 의견’란에 ‘전산학과’라는 표시와 함께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지도교수보다 늦게 퇴근하면 안 되는데, 교수가 평균 새벽 2시에 퇴근합니다.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욕먹습니다. 4시 넘어 퇴근 할 때도 많습니다.”[9]


하주성(박1): 이거 보면 딱 어떤 교수님인지 알 거 같지 않아요?

주성이 말대로, 딱 한 명 떠올랐다. 가끔 밤늦게 복도를 돌아다닐라치면 꼭 한 번쯤 마주치게 되는 그 교수님.

김정원(박4): 아, 그 분?

하주성(박1): 그 분이죠. 우리 과에 또 누가 있어요.

김정원(박4): 근데 다른 사람일 수도 있잖아.

하주성(박1): 그래봤자 똑같죠. 그 분이랑 그 다른 사람이랑 둘 다 열 받는 거죠. 그리고 학생들 더 볶아대겠죠.

김정원(박4): 그렇겠네.

하주성(박1): 학생을 위한 거면 이런 거 좀 조심해줘야 되는데, 하다못해 말이라도 다시 써주지. 에효, 걔네들 분위기만 더 안 좋아지겠구나.

정말 날 감시하러 온 건지, 졸음을 쫓으려 돌아다닌 건지, 주성이는 도로 나갔다.



쨌거나 다행이다. 나처럼 운이 좋은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은 것처럼, 매우 심각한 사람들이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면, 평균은 안전할 테니까.


그러고 보면 평균만한 왜곡도 드물다.[10] 박사과정 학생의 월급 평균이 127만 원이라고 하면, 한 달에 127만 원을 받는 어떤 학생 한 명만 떠오르니까 말이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입 같다. 아직 학생이니까, 허리띠 졸라매고 졸업할 때까지만 버티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진실은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30만 원 밖에 못 받는 사람에게 존재한다. 학교 식당에서만 삼시세끼를 해결해도 기숙사비조차 안 남는, 그래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과외를 해야 하는, 그러다 시간이 부족해 졸업이 늦어지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또한 200만 원이나 받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200만 원을 핑계로 하루 16시간씩 일하고도 모자라 주말에도 불려나가는 한 사람에게 존재한다.


연구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평균 20% 빠른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었다고 하자. 사실은 프로그램은 A는 50% 느려지지만, 프로그램 B가 70% 빨라지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 중앙처리장치는 정말 빠른 걸까? 프로그램 A만 사용하는 사용자에게는 느릴 것이다. 결국 사용자가 어떤 프로그램을 쓰느냐에 달렸다.[11]


다시 한 번 화면에 떠있는 말을 본다.


“지도교수보다 늦게 퇴근하면 안 되는데, 교수가 평균 새벽 2시에 퇴근합니다. 할 일이 없어도 무조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욕먹습니다. 4시 넘어 퇴근 할 때도 많습니다.”


한 사람이 그려진다.


그의 꿈은 대학교수였다.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지도교수님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연구하시는 분이다. 존경스러웠다. 교수님은 자기보다는 더 늦게까지 해야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맞는 말이다. 아직 배우는 입장이니까. 훌륭한 제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새벽까지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연구 빼고 다른 삶은 아예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점점 친구가 줄었다. 술 한 잔은커녕 식사 한 끼 함께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에게도 채였다. 이별 통보를 받기 위해 여자친구를 만나고 온 날도, 연구는 안 하고 어딜 돌아다니느냐며 욕을 먹었다. 잠이 유일한 여가 생활이 됐다. 그나마 일요일에만 가능했다. 토요일도 출근해야 했다.


그는 교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렇게 몸 축내가면서 실적 쌓으면 뭐하나. 그렇게 돈도 얻고 명예도 얻는다 한들, 병마저 얻어서 일찍 죽을 것 같은데. 교수쯤 되려면 대학원 때도 열심히 공부하셨을 것이다. 이제 지겹지도 않나? 아니, 혼자만 그러던가, 왜 학생들의 행복추구권마저 박탈하느냔 말이다.



지만 또 한 사람이 그려졌다.


그의 꿈도 대학교수였다.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갔다. 새벽에만 몇 시간씩 자면서 끊임없이 공부했다. 논문을 여러 편 쓸 수 있었고 특허도 여럿 냈다.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하지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교수는 3년짜리 계약직이었던 것이다. 정교수, 즉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실적이 많이 필요했다.


실적은 교수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졸업 후에 좋은데 취직하려면 실적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벌써 정규직이라도 되는 양, 해만 지면 집으로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자기보다 먼저 퇴근하지 못하게 했다. 학생들은 표정이 굳었다. 열정은커녕 피곤만 가득해보였다. 그래도 실적은 조금씩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진 않았다. 정교수가 되는데도, 그리고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가는 데도. 더 노력해야 한다.


그는 학생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실적이 제대로 내지 않으면 박사학위를 받는다 해도 별 볼일 없어진다.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원생 때 했던 것보다 훨씬 덜 공부하면서도, 훨씬 더 불만을 가진다. 이럴 거면 대학원에 왜 온 건가? 다 자신들을 위한 것인데 말이다.


그 교수만의 잘못은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그에게는 ‘잘못’조차 아닐 것이다. 오히려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연구 실적에 따라 지위가 주어지고 돈이 주어지고 안정이 주어지는 체계 속에서, 그의 선택은 최대 다수의 최대 효용을 끌어내는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책입안자나 관료들을 탓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누구를 정교수로 승진시킬 것인가? 누구에게 연구비를 줄 것인가? 어떤 기준이 합리적일까? 논문 실적 같은 계량화할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 가능성이나 포부 같은 걸 본다고 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연, 학연, 혈연이 판치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신고를 할 것이고, 공무원 몇몇이 잘릴 것이고, 다시 객관적 지표가 도입될 것이다. 아니면, 실적에 상관없이 충분한 기간 동안 지원해준다고 하자. 일단은 돈이 부족하겠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몇몇 교수는 게을러질 것이고 많은 교수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단한 걸 만들어보고 싶어서 실적을 못 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자 혹은 어떤 국회의원이 혈세 낭비라며 날을 세울 것이다. 그러면 보완책이랍시고 최소 실적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면 다시 객관적 지표가 고개를 들게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 한다. 다른 문화를 겪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여유가 없다.



“어? 이거 보고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렸더니, 교수님이다.

김정원(박4): 앗, 네.

권대성(교수): 안 그래도 이것 땜에 왔어, 이거 뒤로 좀 넘겨봐 봐.

뭐지? 뭐가 문제지? 우리 랩 누군가도 기타 의견에 뭘 썼나? 그럴 만한 거 없는데…. 있다면 주성이가 말해줬을 텐데….

권대성(교수): 여기 이거 봐봐. 출근 시간이 몇 시라고 돼 있냐?

교수님이 보여주신 페이지에는 연구실 출근, 퇴근 시간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절반도 한참 넘는다.

권대성(교수): 봐, 다들 10시엔 출근하잖아. 그치?

김정원(박4): 아, 그러네요. 헤헤.

권대성(교수): 너네도 좀 일찍 좀 와봐, 아침에 미팅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사람이. 내일 사성기업 프로젝트 미팅하기로 한 거, 몇 시였지?

김정원(박4): 오후 2시였습니다.

권대성(교수): 2시? 오케이. 그 때까지 자다가 오는 건 아니지?

김정원(박4): 하하, 설마요, 오후 2신데요.

권대성(교수): 그래. 중간보고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봐.

그리고는 나가셨다.

심각한 말투는 아니었다. 친할아버지가 나한테 “공부 열심히 해라”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혼난 건, 혼난 거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대학원생의 박한 현실을 알림으로써 교수들을 혼내려는 목적을 가진 보고서를 가지고 내가 혼난 것이다. 난 참 복에 겨운 놈이다.


매일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그 교수님도 우리 교수님과 같은 세계를 살고 있다. 같은 정부 정책 아래에서, 같은 연구소, 같은 기업들과 일한다. 그런데도 우리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자유를 준다. 자율적으로 일하게 한다. 존중한다. 분명히 실적에 대한 압박을 받으실 텐데도. 교수가 정부 정책은 못 바꿔도, 연구실 하나는 확실하게 바꿀 수 있구나. 교수님이 자랑스러웠다. 애사심 같은 것이 솟았다.


교수님께 불만을 가진 적이 있다. 연구실 분위기를 약간만 더 빡빡하게 만들어주면 더 성실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뭘 연구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한동안 아무 방향도 제시해주지 않으실 때도 불만이었다. 결국 모든 것이 교수님 뜻대로 결정되는 회식 자리도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 정도면 됐다 싶다. 그 정도면 참 행복한 것이다.



자는 절대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내게 주어진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한다. 나도 그걸 믿었었다. 비교하지 않으려 애썼고, 사소한 행복을 크게 느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국 행복은 상대적인 것 같다. 못 가진 사람을 보고서야,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고서야 내 풍족함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올백을 받지 못한 모든 아이의 부모는 행복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보기 전까지는.[12]


어쩌면 절대적인 행복을 찾았다는 사람도 사실은 상대적인 행복을 느끼는 건 아닐까?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내가 보기엔, 행복은 절대적으로 상대적이다.


내일부터는 일찍 출근해야겠다. 아무 때나 출근해도 되니까, 교수님이 좋아하는 시간에 출근해야겠다. 아침 공기도 좀 즐기고. 그리고 연구 좀 열심히 해야겠다. 이렇게 연구하기 좋은 환경을, 좀 누려야겠다. 오늘은 예능 한 편도 안 보고 연구만 할 거다. 페이스북도 이따 퇴근하고 나서 볼 거다. 평균 새벽 2시 넘어 퇴근하는 그 학생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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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팩트(fact): ‘사실’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요즘 인터넷상에서 ‘검증된 정보’, ‘진실’ 정도로 의미가 확장되어 널리 쓰인다.

[2] 크리스토퍼 차브리스·대니얼 사이먼스 공저, 김명철 옮김, <보이지 않는 고릴라>, 김영사 출판

[3] 이와 관련한 소설로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출판)이 있다.

[4] 대표적인 예로,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판결이 있다. 같은 자료가 제공되고 같은 변론을 듣고, 1명의 판사와 8명의 판사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5] 정종법 기자, “논술 잘하고 싶다면 신문 읽어라”, 한겨레, 2012년 2월 6일,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17677.html

[6] 따끈따끈한 파일: 파일을 내려 받으면, 그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디스크에 새로운 값을 쓴다. 이를 위해 디스크 내부 구조가 물리적으로 움직이거나 전기신호의 상태가 바뀐다. 이 때 (극미량이겠지만) 열이 발생한다. 따라서 ‘따끈따끈한 파일’은 적절한 표현이다. 정말로 따끈따끈하다. 전기신호로 저장되는데 이게 0에서 1로 바뀌면....약간의 열이 발생......

[7] 미디어 리서치, “KBS 대선 기획 8차 여론조사 결과보고서”, 2012년 11월 25일, http://news.kbs.co.kr/special/pdf/20121125.pdf

[8] 연차: 대학원생에게 ‘학년’에 해당하는 말이다. 석사과정에 들어가면 석사 1년차, 그로부터 1년이 지나면 석사 2년차라고 부르는 식이다. 석사 3년차, 박사 5년차부터는 실제 연차로 말하기보다는 ‘고년차’, ‘n년차’ 등으로 말하는 것이 예의이다. 복학생이 동아리 모임에 가서 학번 밝히기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9] 출처는 없습니다. 상상입니다.

[10] 게르트 보스바흐·옌스 위르겐 코르프 공저, 강희진 옮김,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작은 책방, 166-168쪽
[11] 그래서 평균적으로 많이 빨라지더라도, 크게 느려지는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는 좋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단, 많이 빨라지는 프로그램이 상당히 널리 쓰이는 프로그램들(웹서버 등)이라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12] 김경미, “이제 학원 안 다녀도 돼”,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4년 04월 22일,  http://www.huffingtonpost.kr/kyungmee-kim-/story_b_5184167.html


  ■ 작가의 말

친한 형이 얼마 전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리고 취직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에요. 그런데 어떤 연구소에서 계약직 제의가 들어왔대요. 나쁘지 않은 자리래요. 계약직으로 있다가 정규직 되면 좋은 자리래요.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당연히 정규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래도 박사학위를 받으면 안정적인 일자리는 보장됐었잖아요. 이제는 그마저도 아닌 걸 보니까, 비정규직이 얼마나 늘어난 건지가 피부로 다가와서요.

이 상황에서, 계약직이라도 좋으니 취업만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을 느껴야 할까요, 행복하지 못한 세상을 바꿔나가려고 해야 할까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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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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