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의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

생물학 연구의 모델동물인 ‘예쁜꼬마선충(별칭 엘레강스)’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발생과 진화를 비롯해 생물학의 굵직한 주제를 담은 최신 논문을 소개한다. 실험실 안과 밖의 진지하고 유쾌한 소통을 시작한다.

굶주리면 춤추는 꼬마선충의 비밀

다우어 유충의 춤사위, '닉테이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탑을 만들어 냅니다. 애벌레들은 탑 꼭대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처절하게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죠. 실제로 야생에서 꼬마선충들이 이처럼 애벌레탑을 만드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굶주린 채 몸을 세워 춤추는 꼬마선충, 즉 '다우어'들이 만들어낸 탑입니다. 실험실에선 어쩌다 두세 마리 다우어들이 서로 몸을 기대며 춤추는 장면을 보이곤 하지만 자연에서는 수백 마리 다우어들이 한 몸체를 이루어 거대한 군무를 추는 경우가 왕왕 발견된다고 합니다. 굶주린 꼬마선충은 왜, 어떻게 춤사위를 펼치는 걸까요?


   00elegans24.jpg » 닉테이션 춤을 추는 다우어 유충(가운데 실 모양). 예쁜꼬마선충은 형제자매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절박한 환경에서 왜 이런 처절한 춤을 추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꼭 절박한 처지에 놓인 다우어 유충들만이 이런 춤을 추는 것일까요? 출처/ 필자 촬영

[이번 글의 주제 논문]


Lee H, Choi MK, Lee D, Kim HS, Hwang H, Kim H, Park S, Paik YK, Lee J. Nictation, a dispersal behavior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is regulated by IL2 neurons. Nat Neurosci. 2011 Nov 13;15(1):107-12.



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의 데이비드 콜만 교수는 2006년 터키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한국이 지구촌에서 사라질 최초의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농담 섞인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콜만 교수가 ‘코리아 신드롬’이라고 이름 붙인 심각한 저출산 문제 때문입니다. 2013년 기준으로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숫자는 1.19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한 쌍이 만나 겨우 한 아이를 낳는 꼴이니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구가 급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저출산이 중대한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 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근원적인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00elegan21_NatGeo.jpg » 구한말의 늙은 아이와 어린 어른. 출처/ 내셔널지오그래픽, 국립민속박물관 오늘날 한국 사회는 아이를 낳아 기르고, 또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나기에 그리 우호적인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혼집을 마련할 수 없는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어렵사리 결혼한 부부는 양육비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출산을 미루고, 힘겹게 태어난 아이들은 입시 전쟁을 치르고 취업 전선에 청춘을 바쳐야 하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갑갑한 현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느라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청년 세대를 가리켜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기 흑백 사진에는 아이와 어른이 한 사람씩 보입니다. 생물학적인 나이로 따지자면 왼쪽 남자가 오른쪽 남자에 비해 훨씬 연장자이겠지만, 당시의 사회적인 잣대에서 보자면 나이든 아이와 어린 어른의 사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상투를 튼 아이만이 혼인해 어른의 지위를 획득했기 때문이죠. 변변한 피임기구도 없던 시절에 혼인은 곧 일가를 이루어 나감을 의미했기에, 생물학적인 측면에서도 상투를 틀었다는 것은 곧 유전자를 퍼뜨리는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때 기준으로 보자면 서른이 넘도록 태반이 혼인하지 않은 혹은 못한 저희 삼포세대는 가히 ‘발달 미숙 세대’라고 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제가 연구하고 있는 꼬마선충에서도 ‘삼포세대’와 비슷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생명체가 자라나고 번성하기가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 처해지면 꼬마선충은 알을 낳고 번식하는 성장 과업을 미루는 대신 오직 생존만을 도모하는 특별한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생활사와 다우어 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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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연재 코너의 주인공인 예쁜꼬마선충은 실험실에서 제공해주는 풍요롭고 안전한 환경에서 약 3일이면 알에서 성체로 완전한 성장을 해냅니다. 한 개체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식을 통해 다음 세대를 생산해내는 전체 과정을 생활사(life cycle)이라고 하는데, 꼬마선충의 생활사는 3~4일 정도로 아주 짧습니다. 즉 성체가 낳은 알이 네 번의 유충 단계를 거쳐 다시 알을 낳을 수 있는 성충이 될 때까지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예쁜꼬마선충은 정자와 난자를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이기 때문에 단 한 마리의 벌레만 키워도 금세 수만 수억 마리로 번식할 수 있습니다.

00elegans22.jpg » 예쁜꼬마선충의 생활사. 출처/ Wormaltas

지만 꼬마선충들이 살아가야 하는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먹이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계절은 바뀌고 날씨는 들쑥날쑥합니다. 꼬마선충이 먹고사는 미생물들이 늘 풍부하게 제공될 수는 없는 조건 속에서 꼬마선충은 어떻게 삶을 버텨내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열악한 환경에 놓인 예쁜꼬마선충의 군집에서 ‘삼포세대’의 청년들과 비슷한 유충이 발견되었습니다. 1975년에 캐사다(Cassada)와 러셀(Russel)은 예쁜꼬마선충 중에서 먹이가 제한되면 다우어(dauer)라고 하는 특수한 유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고하였습니다. 다우어는 독일어로 ‘견디다’라는 뜻입니다.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닌 다우어 유충은 먹을 것이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몇 달이나 생존해낼 뿐 아니라 고온 상태나 각종 화학물질 등 다양한 물리적·화학적 스트레스를 이겨내기도 합니다. 다우어가 아닌 보통 벌레들은 이런 스트레스에 금방 죽어버리거나, 스트레스가 없어도 겨우 한 달 남짓한 기간 밖에 살지 못합니다.


악한 환경을 견뎌내는 강인함을 얻는 대신에 다우어 유충은 생식의 유보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삼포세대처럼 생존을 위해 생식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이지요. 충분한 먹이가 주어진 우호적인 환경에서 꼬마선충은 알에서 태어나 네 단계의 유충단계와 다섯 번의 탈피를 통해 다시 알을 낳을 수 있는 완전한 성체가 되는데, 다우어는 세 번째 유충단계에 정지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점에서 다우어는 발생이 멈춘 상태라는 의미로 ‘휴면 유충’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실제로 다우어들은 활발히 움직이는 다른 유충들과 달리 가만히 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달 동안 살아남은 다우어와 사흘 만에 어른이 된 성충의 사진을 함께 찍는다면, 그 사진은 아까 보여드린 ‘늙은 아이와 어린 어른’ 사진의 선충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00elegans23.jpg » 열악한 환경에서는 다우어로 발생하는 꼬마선충. 출처/ 네이처 다우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 유충과 구분됩니다. 우선 다우어는 섭식 활동을 전혀 하지 않습니다. 먹이를 씹고 삼키는 인두의 활동이 정지되고 소화관도 수축됩니다. 먹이가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유충이기 때문에 섭식 활동에 드는 에너지를 아끼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겠죠. 대신 꼬마선충은 다우어가 되기 직전까지 미리 지방을 몸에 가득 쌓아두었다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조금씩 지방을 태워 에너지로 사용합니다.


또 보통 일반적인 꼬마선충들은 끊임없이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관찰되는 데 비해, 다우어 유충들은 최대한 오랜 동안 버텨내기 위해서인지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고 있는 모습이 자주 관찰됩니다. 피부도 두꺼워져 외부의 각종 유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기도 합니다. 각종 신경세포의 모양이 변하기도 하고, 몸의 신진대사도 완전히 뒤바뀝니다.



닉테이션, 굶주린 선충의 절박한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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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어 유충은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것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움직임을 최소화 하며 몇 달을 버텨내고, 두꺼운 피부로 각종 외부의 해로운 것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우어 유충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매우 특이한 행동을 나타냅니다. 종종 움직이다가 기회가 되면 가냘픈 몸을 세워 격렬하게 흔드는 신비로운 춤을 추는 것입니다. ‘닉테이션’이라고 불리는 이 몸짓은 먹이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일반 꼬마선충에서는 관찰되지 않는 다우어만의 춤사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00elegans24.jpg » 닉테이션 춤을 추는 다우어 유충. 출처/ 필자 촬영 쁜꼬마선충은 형제자매들이 굶어 죽어나가는 절박한 환경에서 왜 이런 처절한 춤을 추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꼭 절박한 처지에 놓인 다우어 유충들만이 이런 춤을 추는 것일까요? 닉테이션이라는 흥미로운 몸짓의 비밀은 제가 직접 연구하고 있는 핵심 주제이기도 합니다.


생물학자들은 어떤 생명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고자 할 때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하나는 ‘근접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궁극 원인’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근접 원인이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이며, 궁극 원인은 ‘왜’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타워펠리스 펜트하우스를 털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고 합시다. 이 사건에 대한 근접 원인이란 청년이 어떻게 타워펠리스를 털 수 있었느냐에 대한 대답이 되겠습니다. 알고 보니 이 청년이 전직 국정원 직원 출신이며, 불법적으로 카톡을 감청해 집이 비는 날과 집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현직 국정원 요원으로 신분을 속이고 건물로 들어가 집에 침입했다는 수사 결과가 바로 이 사건의 근접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궁극 원인이란 왜 국정원까지 다니던 청년이 절도범이 되어야 했느냐에 대한 대답이 되겠습니다. 온갖 스펙 쌓기와 폭풍 경쟁을 뚫고 국정원에 합격했으나 댓글만 달고 있는 자신의 신변을 비관한 나머지 국정원을 나왔고, 그러다가 생활고에 시달려 범행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청년의 진술이 바로 궁극 원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와 비슷하게 생물학자들이 생명 현상의 근접 원인을 찾을 때는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즉 자세한 ‘기작(메커니즘)’을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즉 닉테이션의 경우에는 그저 바닥을 기어다니기만 하던 꼬마선충이 어떻게 다우어 시기에만 격렬한 춤을 출 수 있게 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인 기작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닉테이션의 근접 원인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궁극 원인을 찾을 때는 그 일이 ‘왜’ 일어났나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인데, 생명 현상에서는 이 과정에서 진화적 관점이 작동하게 됩니다. 닉테이션을 예로 들자면 밥도 안 먹는 다우어 유충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이 춤을 추는 데엔 분명 뭔가 벌레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겁니다. 여기서 도움은 바로 벌레의 ‘생존과 번식’, 즉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플러스가 된다는 의미이며, 이는 생물학 용어로 흔히 ‘적응’이라고 표현합니다. 특정 행동의 궁극 원인을 좇는 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행동이 무엇에 대한 어떤 ‘적응’인가를 알아내는 것과 밀접히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꼬마선충은 굶으면 왜 춤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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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충 하면 많은 사람들이 대개 기생충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꼬마선충은 다른 많은 기생성 선충들과 달리 제 한 몸 어디 빌붙지 않고 혼자 벌어먹는 어엿한 ‘자유생활형’ 동물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닉테이션 행동은 기생충과 자유생활형 선충을 가리지 않고 많은 선충에서 발견됩니다. 심지어 어떤 선충들은 닉테이션에 응용 동작을 가미해 ‘점프’를 하기도 합니다. 몸을 동그랗게 만 뒤 반동으로 튀어 오르는 겁니다. 기생충들이 이런 닉테이션 행동을 하는 이유는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기생하는 숙주에 ‘들러붙기’ 위해서이죠. 흥미롭게도 기생충들은 닉테이션 행동을 숙주에 감염하는 기생형 유충 단계에서만 보이는데, 바로 이 기생형 유충 단계는 꼬마선충의 다우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닉테이션이라는 선충계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고 응용되는 특징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00elegans25.jpg » 숙주의 몸에 달라붙기 위해 활용되는 닉테이션 행동과 점프. 출처/ Wormatlas

렇다면 기생충이 아닌 꼬마선충은 왜 닉테이션을 하는 걸까요? 힌트는 역시 자연에 있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물학자는 꼬마선충이 달팽이나 딱정벌레, 쥐며느리 같은 다른 동물에 붙어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했습니다. 꼬마선충은 이런 동물들을 전혀 먹지도, 먹을 수도 없는데 말이죠. 먹이로서 가치가 없다면 꼬마선충은 왜 이런 동물들 위에 올라타 있는 것일까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꼬마선충보다 이런 동물들이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겁니다. 심지어 달팽이조차도 말이죠. 꼬마선충이 한 나절 꼬박 이동할 거리를 쥐며느리는 순식간에 달려갈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꼬마선충은 이런 동물들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꼬마선충이 달팽이 택시를 타는 것과 닉테이션 춤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갑자기 물도 먹을 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고 상상해 봅시다. 며칠을 굶주리며 떠돌아다니다 마침내 사막 한 가운데에 쭉 뻗어 있는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차들을 발견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차를 태워달라는 몸짓을 펼치지 않겠습니까.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서 말이죠. 히치하이킹에 성공한다면 차를 타고 한참을 달려 젖과 꿀이 흐르는 휴게소에서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는 서식처, 지나다니는 벌레들 속에서 꼬마선충이 몸을 세워 흔드는 저 춤사위가 혹시 이와 마찬가지로 히치하이킹 댄스는 아닐까요? 다른 벌레에 탑승하는 데 성공한 히치하이커들은 벌레가 더 좋은 서식처를 찾으면 재빨리 하차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요?


테이션을 연구하는 저희 실험실에서는 닉테이션이 히치하이킹 댄스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플라스틱 통 안에 한쪽에는 굶어서 다우어가 생긴 플레이트를 놓고 닉테이션을 할 수 있게 거즈를 덮어 주고, 다른 한쪽에는 아무 선충도 없지만 풍족한 먹이가 있는 플레이트를 넣어 준 후, 초파리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분양받아서 20여 마리를 통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하기 위해서 초파리를 넣지 않은 통, 플레이트에 거즈를 덮어주지 않은 통과 함께 약 하루 정도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결과 오직 초파리를 넣어주고 거즈를 붙여둔 통 안에서만 새로운 플레이트에서 꼬마선충이 발견되었습니다. 꼬마선충 다우어가 닉테이션 댄스를 통해 초파리 헬기를 타고 풍족한 가나안 땅으로 히치하이킹에 성공한 것이지요. 꼬마선충이 닉테이션을 통해 다른 동물에 히치하이킹 할 것이라는 추측은 다른 과학자들도 한 적이 있었지만, 저희는 그것을 실험을 통해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왜 닉테이션을 하는가”에 대한 적응적 설명, 즉 궁극 원인에 대한 설명의 실험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00elegans26.jpg » 닉테이션 하는 다우어와 초파리가 함께 있는 실험군에서만 새로운 먹이로 선충이 이동. 출처/ 주제 논문[1]



춤추는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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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테이션 댄스가 왜 꼬마선충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옆구리로 바닥에서만 기어다니던 친구들이 어떻게 벌떡 일어나 이런 격렬한 춤사위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거의 없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닉테이션 행동에 대한 근접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닉테이션의 기작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니까요.


테이션에 대한 근접 원인을 밝히기 위해 저희 연구팀은 핵심적인 가설을 세웠습니다. 바로 이 춤은 ‘꼬마선충의 유전체 안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닉테이션은 유전자에 의해 빚어지는 선천적인 댄스라는 가설이이지요. 세상에는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만 출 수 있는 멋진 춤도 있지만, 누구나 자신의 신체 부위를 제각기 흔들며 출 수 있는 막춤도 있습니다. 춤을 출 수 없는 인간을 떠올리기란 정말 쉽지 않고, 저는 춤이 없는 문화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인간은 틀림없이 춤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꼬마선충의 막춤, 닉테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기본적으로 ‘유전학’을 하는 연구실입니다. 유전자를 이리저리 다루는 일을 주된 업무로 하고 있지요. 닉테이션이 ‘꼬마선충의 유전적 춤 프로그램’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저희가 유전학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전학자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유전자를 망가뜨려 그 기능을 없애 보는 것입니다. 일명 ‘돌연변이 연구’입니다. 특정 유전자가 특정 형질에 중요하다면 그 유전자가 망가졌을 때 바로 그 형질도 문제가 생길 게 분명하다는 논리이지요.


닉테이션은 꼬마선충의 여느 행동과 마찬가지로 300여 개로 이루어진 신경회로의 작동을 통해 일어납니다. 신경전달물질은 바로 이 신경회로를 이루는 신경세포들 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핵심 인자입니다. 꼬마선충의 유전체 안에는 다양한 신경전달물질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데, 각각의 신경세포는 자신이 이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은 이 유전자로부터 합성해 냅니다. 저희 연구팀은 신경전달물질을 합성하는 유전자가 망가진 다양한 돌연변이를 연구하는 데서 닉테이션 행동을 풀기 위한 힌트를 찾아냈습니다.


꼬마선충의 신경전달물질은 도파민,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등으로 인간의 신경이 이용하는 신경전달물질과 매우 비슷합니다. 저희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중에서도 아세틸콜린을 만들어 내는 유전자가 망가졌을 경우에만 닉테이션 행동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이는 특정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진 아세틸콜린이 닉테이션 행동을 조절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세틸콜린 유전자가 다우어가 춤추는 데 꼭 필요한 유전자였던 것이죠.


‘춤 유전자’를 찾아낸 저희는 다음 단계로 춤을 추는 데 필요한 신경세포를 찾아 나섰습니다. 아세틸콜린 유전자가 망가진 돌연변이에 특정 신경세포에서만 아세틸콜린 유전자를 도입해주는 형질전환 동물들을 만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이 ‘구조(rescue)’라고 부르는 실험 방법입니다. 저희는 IL2라고 불리는 6개의 신경세포 꾸러미에서 아세틸콜린 유전자를 ‘구조’했을 때 아세틸콜린 돌연변이의 닉테이션 장애가 회복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00elegans27.jpg » IL2 신경세포가 매개하는 닉테이션 행동 조절 기작. 출처/ 주제 논문 [1]

IL2 신경세포들이 닉테이션 춤을 조절하는 핵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확인하기 위해 저희는 몇 가지 실험을 더 수행하였습니다. IL2 신경세포들을 제거한 실험과 반대로 IL2 실험을 인위적으로 활성화한 두 가지 실험이 결정적 증거를 제공하였습니다. 닉테이션을 조절하는 IL2 신경세포들을 제거한 형질전환 꼬마선충은 정상 꼬마선충에 비해 닉테이션 행동의 현저한 결함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광유전적 방법을 이용해 IL2 신경을 인위적으로 활성화시켜주자 다우어의 닉테이션 춤이 유도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2011년 이런 연구 결과를 담아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예쁜꼬마선충의 닉테이션 행동에 대한 깊이 있는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저희 논문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참고문헌으로 인용하기도 했는데, 다윈도 역시 히치하이킹을 통한 종의 분산 행동에 주목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종의 분산 행동을 세포 수준의 메커니즘까지 규명한 거의 최초 사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벌레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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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동화에서 애벌레들은 서로를 타고 넘으며 거대한 탑을 만들어 냅니다. 애벌레들은 탑 꼭대기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처절하게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죠. 그 끝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 끝에 올라간 애벌레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증언하는데도, 애벌레들은 아집에 가까운 희망을 붙들고 꼭대기를 기어 올라갑니다.


런데 실제로 야생에서 꼬마선충들이 이처럼 애벌레탑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닉테이션 하는 다우어들이 만들어낸 다우어탑입니다. 실험실에선 어쩌다 두세마리의 다우어들이 몸을 기대며 부비부비 닉테이션을 하는 광경을 마주치게 되지만, 자연에서는 수백마리의 다우어들이 한 몸체를 이루어 거대한 군무를 추는 경우가 왕왕 발견된다고 합니다. 1mm도 채 되지 않는 다우어들이 눈으로도 보일만한 구조물을 이루어 흔들거리는 이유는 아마 지나가는 동물들에 더 잘 히치하이킹하기 위함일 겁니다.

00elegans28.jpg » 닉테이션 하는 다우어들의 탑. 출처/ Wormatlas

이런 집단 닉테이션 현상을 비롯해 아직 닉테이션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왜 다른 상태가 아니라 다우어 상태에서만 춤을 출 수 있는지, 자연에서는 어떤 자극에 반응해 닉테이션 춤을 추게 될지, 닉테이션 춤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연구를 하고 있는 저희 입장에선 아직 갈 길이 한참 멀고, 멀고도 멉니다.


어쩌면 닉테이션 춤은 누군가에겐 작은 벌레의 별 의미 없는 몸짓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바로 그 작은 벌레들에게는 가녀리지만 생명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희망의 몸짓입니다. 궁핍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장가도 못가고 아이 낳을 생각도 못하는 핍진한 상태일수록, DNA 깊은 곳에 새겨진 댄스 프로그램에서 실행되는 이 춤에 저는 매혹을 느낍니다. 아니, 굶으면 춤추는 꼬마선충이라니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참고문헌


[1] Lee H, Choi MK, Lee D, Kim HS, Hwang H, Kim H, Park S, Paik YK, Lee J. Nictation, a dispersal behavior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is regulated by IL2 neurons. Nat Neurosci. 2011 Nov 13;15(1):107-12.


Cassada, R.C., and Russell, R.L. The dauerlarva, a post-embryonic developmental variant of the nematode Caenorhabditis elegans. Dev. Biol. 1975. 46, 326?342.


Golden, J.W., and Riddle, D.L. The Caenorhabditis elegans dauer larva: developmental effects of pheromone, food, and temperature. Dev. Biol. 1984. 102, 368?378.


Patrick J. Hu, Dauer, Wormbook. 2007


Wolkow, C.A. and Hall, D.H. Dauer Behavior. WormAtlas. 2011


이대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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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예쁜꼬마선충이라는 모델 생명체로 행동의 유전적 기반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과학자보다는 성찰하는 과학자를 지향합니다. 글을 읽고, 쓰고, 나누는 데서 큰 기쁨을 얻습니다. 말하는 연구자, 글쓰는 과학자를 꿈꿉니다.
이메일 : phman11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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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10. 06

    잠의 생물학잠을 자는 동안 신경들이 제각기 활성화하는 것을 보면, 이 현상은 예쁜꼬마선충에게 일종의 꿈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꿈은 프로이트 이후에 무의식과 욕망의 발현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

  • 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마음의 작동을 보는 '신경망 시각화 기법' 어디까지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이대한 | 2014. 09. 15

    '신경세포와 그 작동을 보다'칼슘은 우리 몸에서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기본 원소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칼슘의 중요한 쓰임새는 그뿐이 아닙니다. 칼슘은 신경망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매개 물질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

  • 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바이러스와 인간, 경쟁과 공존의 경계에서 만나다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성상현 | 2014. 08. 12

    인간유전체 속에 숨어 있는 바이러스의 비밀생명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인간은 바이러스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은 바이러스를 정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질병학을 넘어 바이러스와 인간 사이에 벌...

  • '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길들여짐'의 슬픈 유전학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최명규 | 2014. 07. 07

    '실험실의 모델동물'사실 작물 재배나 목축을 통해 사람이 다른 생물의 유전체에 인위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목축업자가 아닌, 생물학자들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실험실에서도 비슷한 종류...

  • 순수 클론은 없다순수 클론은 없다

    논문 읽어주는 엘레강스 펜클럽김천아 | 2014. 06. 16

    유전자 발현과 그 과정의 '잡음'순수한 의미의 클론(clone)은 없습니다. 동일한 유전자, 동일한 환경을 가진 개체에도 유전자의 '잡음'이 나타납니다. 잡음이 부여한 다양성 덕분에 어떤 개체는 살아남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물은 다양할 여지를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