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길이 DNA는 세포핵에 어떻게 접혀 담겨 있을까?
미연구팀, 인간 게놈 ‘DNA 고리매듭 지도’ 발표
고리 1만곳 “구조가 유전자 조절 기능에도 관여”
» 20번 염색체에 있는 210만 염기(2.1 Mb) 규모 영역에 8개 영역(domain)이 있으며 그 가운데 6개가 끝부분의 CTCF 단백질 결합으로 다른 영역과 구분되는 고리매듭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림. 연구팀은 인간 유전체에서 이런 고리 지점을 1만 개 가량 찾아냈다. 출처/ Cell
과학책에서 자주 보는 디엔에이(DNA)는 긴 두 가닥의 염기서열이 이루는 이중나선 구조의 모습이다. 하지만 길게 늘이면 길이가 2미터 가까이 되는 DNA 가닥이 세포핵 안에 그 길이 그대로 늘어져 있을 리는 없다. 당연히 세포 핵 안에서 DNA는 고리를 이루거나 감기거나 하는 여러 방식으로 응축 꾸러미를 이뤄 촘촘하게 담겨 있다. DNA 가닥이 세포핵 안에서 어떻게 꾸려져 있는지, 어떻게 접혀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지, 그 접힘의 구조(achitecture)를 밝히려는 연구가 이어지는데 최근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연구결과 하나가 발표됐다.
최근 미국 연구팀은 5년가량 새로운 분석 기법을 개발해 인간 유전체(게놈)에서 DNA가 어떻게 접혀 있는지 그 3차원 구조를 분석해보니 신발끈처럼 고리 모양을 한 ‘루프(loop)’ 구조가 30억 염기쌍의 인간 유전체에서 1만 곳가량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DNA 고리의 3차원 지도 자료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생물학 저널 <셀(Cell)>에 실렸다. 연구에는 미국 베일러의대와 하버드·매사추세츠고대 브로드연구소 등에 속한 연구자들이 참여했다(책임저자 Eric Lander).
연구팀은 인간과 쥐의 아홉 가지 세포를 대상으로 유전체 안에 DNA 루프가 어느 지점에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비교적 자세하게 보여주는 지도를 작성했으며, 이를 통해 유전자가 발현하는 데 DNA 구조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1차원 선에서는 멀리 떨어진 두 지점도 고리를 이루면 한 점에서 만날 수 있듯이, DNA 루프는 멀리 떨어진 염기서열 부분을 맞닿게 해줌으로써 유전자 주변에 있지 않으면서도 유전자 조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 지도의 구실을 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1만 개의 고리 구조를 밝힌 이번 지도에서는 1차원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3차원 고리 구조에서는 가까운 곳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는 숨은 유전자 스위치 수천 개를 발굴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다음은 공동 제1저자 연구원인 수아스 라오(Suhas Rao)가 보도자료에서 전한 말이다.
“우리는 접힘 구조(folding)가 곧 조절 작용(regulation)임을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습니다. …유전자의 켜짐과 꺼짐, 그 이면에는 접힘 구조의 변화가 있지요. 세포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연구팀은 고리가 맞닿는 지점에서 '시티시에프(CTCF)'라는 단백질이 접합자 구실을 하며, 거의 모든 경우에 이 단백질이 서로 ‘마주보는’ 방향을 이룰 때 매듭이 형성된다는 독특한 특징도 발견했다(아래 그림 참조). 다음은 책임저자인 에릭 랜더 교수의 말이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CTCF 단백질이 고리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루프를 형성하는 이 단백질들은 서로를 향합니다. 유전체의 '음'과 '양'인 셈이지요.”
» 접합자 구실을 하는 CTCF 단백질이 '마주볼' 때 둘이 결합해 고리가 형성된다. 출처/ http://youtu.be/dES-ozV65u4
연구팀은 인간과 쥐의 아홉 가지 유형 세포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1만 여개의 DNA 루프 지점을 찾아냈으며, 이를 바탕으로 세포의 유형이나 동물종이 달라도 루프 구조는 비슷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포유류가 1차원의 비슷한 유전체 염기서열 정보를 공유할 뿐 아니라 3차원의 유전체 접힘 패턴도 비슷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DNA가 어떤 지점에서 접히고 고리를 이루는지 유전체 차원의 지도가 처음 작성됨에 따라, 이 지도가 특정한 유전자의 발현 조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먼 거리의 DNA 영역을 탐색하는 데에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이런 DNA 고리 지도가 “이미 질병과 관련된 것으로 발견된 DNA 염기서열 부위가 있다면 그것이 (멀리 떨어진) 어떤 유전자에 닿아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DNA를 세포핵 안에 둔 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in situ Hi-C)을 개발하고, 분석한 조각 정보를 종합해 전체 지도를 작성할 수 있는 컴퓨팅 알고리즘을 개발해, 3차원 구조를 갖추고 있는 세포핵 안의 DNA 구조물을 분석해내는 성공했다. 분석 해상도를 보통 유전자 크기보다 더 작은 ‘1000염기(1Kb)’ 수준으로 낮춰, DNA 고리 구조에서 유전자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연구의 성과를 높이는 요인이 됐다.
<사이언스>는 보도에서, 연구팀이 2009년에 이미 DNA 고리 구조를 파악하는 Hi-C 기법을 처음 개발했으나 식별할 수 있는 단위(해상도)가 보통 유전자 크기보다 훨씬 큰 ‘100만 염기(1Mb)’에 달해 한계에 봉착했다가 이번에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개선해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유전체 전체의 DNA 고리 지도는 앞으로 좀 더 세밀한 개선 연구와 더불어 세포핵 안의 3차원 공간에서 유전자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접근법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연구팀은 DNA 고리 지도를 다른 연구자도 활용할 수 있게 연구자료 웹사이트( http://www.aidenlab.org/juicebox/ )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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