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8번 문항, 실수인가 함정인가?

   취재수첩  

실수와 함정, 무엇이 더 위태로울까


한쪽에선 8번 문항이 출제 오류라고 말하는 게 문제에 드러난 모호함을 가장 명쾌하게 설명해주며 오류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구구해진다고 말합니다. 다른 한편에선 논란이 된 부분은 출제자가 심어놓은 함정일 뿐 엄밀하게 따지면 오류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출제실수설과 함정출제설, 무엇이 맞을까요? 저는 은근히 단순실수일 뿐이길 기대합니다. 만일 함정출제였다면 ‘함정에 빠진 74%’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비춰질까요?





저께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에 올린 글 "'‘생명과학 수능문제 논란 뭡니까' 과학자와 기자의 페북 수다"가 발행된 뒤, 여러 곳의 댓글과 이메일을 통해 몇몇 반응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외계어 같은 소리냐” “고교생들이 이런 문제를 왜 풀고 있느냐”처럼 자연과학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접한 당혹스러움도 있었고, “다른 문제의 오류 가능성도 짚어달라” “내가 출제하면 문제를 이런 식으로 내겠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다른 문제의 논란은 살피고는 있으나 쉽지 않네요).


00exam1.jpg 저번 글은 페이스북 친구인 국내외 생명과학자 세 분과 페이스북에서 우연찮게 얘기를 나누기 시작해 무려 160여 건의 댓글로 이어간 수다와 토론을 담았습니다. 그 대화는 자연스럽게, 2015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생명과학Ⅱ(과학탐구) 제8번 문제 정답 처리에 오류가 있으며, 이는 출제 과정에서 오타 같은 단순실수 탓에 빚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다달았습니다. 물론 네 사람의 2시간여 대화에서 나온 결론일 뿐이지만, 세 명의 생명과학자는 최신 생물학 지식을 갖춘 중견 과학자이고 시험문제를 다룬 교과서의 관련 대목을 확인하며 얘기를 이어간 것이니, 나름대로 배경지식과, 논리, 근거는 갖추었다고 봅니다.


런데 또다른 반응을 접했습니다. 8번 문제에 출제자가 숨겨둔 함정이 있을 뿐이고 좋은 문제는 아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오류는 없다는 견해였습니다. 한겨레 교육담당 기자가 전한 고교 생물교사와 입시학원 강사의 이야기는 대체로 이런 견해 쪽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8번 문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에는 대체로 문제 출제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와, 출제자가 함정을 심어두었지만 엄밀하게 말해 오류는 아니라는 견해, 이렇게 두 가지 견해가 현재 논란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글은 실수출제를 했다는 견해와 함정출제를 했다는 견해에 대해 나름대로 펼쳐보고 정리해본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 판단으로 출제실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현장 교육자들의 말씀을 들어보면 함정출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 글은 기본적으로는 이른바 '출제실수설'에 다소 치우져 작성되었습니다.)



‘출제실수’를 주장하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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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문항은 잘못 출제된 문제이며, 이런 출제오류는 아마도 보기 지문(위 그림)에서 ㉡을 ㉠으로 잘못 쓴 오타 같은 단순실수에서 빚어졌을 것이라는 게, 굳이 이름 붙여 ‘출제실수설’이라는 견해의 요지입니다.


  잠깐만요.

이번 8번 문항 논란을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문제의 배경지식에 관해 먼저 얘기해야 하겠지요. 저번 글에서도 나온 얘기이지만, 좀 더 다듬어서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일단 8번 문항이 “그림 (가)는 야생형 대장균의 젖당 오페론과 조절 유전자를 나타낸 것이며…”로 시작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유전자 발현의 중요한 메커니즘 중 하나인 ‘오페론’, 특히 젖당을 분해하는 대사작용인 ‘젖당 오페론’을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게 분명하니, 이와 관련한 교과서 설명을 풀어보겠습니다.

8번 문제 논란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는 유전자 둘(구조유전자·조절유전자), 그리고 작동부위, 억제단백질, 프로모터, RNA중합효소 이렇게 여섯입니다. (여기에서 구조유전자와 프로모터, 작동부위를 합쳐 ‘오페론’이라고 부르는데, 오페론 학설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입니다).

등장요소를 하나씩 살펴보지요. 우선, 젖당 먹이가 있을 때에 젖당을 분해해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작동하는 유전자가 바로 여기에서 ‘구조유전자’입니다. 그 곁에는 억제단백질을 만들어 구조유전자의 작동을 억제하는 ‘조절유전자’가 있습니다. 유전자가 이렇게 둘입니다. 여기에서 기억해둘 점은, 조절유전자가 ‘젖당이 있건 없건’ 언제나 조금씩 억제단백질을 만들어 구조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억제단백질이 구조유전자의 작동부위를 막고 있는 것이죠. 늘 작동하는 일종의 ‘마개’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젖당이 있으면, 조절유전자 외에 구조유전자도 작동합니다. 젖당이 마개인 억제단백질을 구조유전자의 작동부위에서 떨어뜨리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지요. 마개가 떨어져나가 억제자가 없어진 구조유전자에서는 젖당분해 효소 등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00exam3.jpg » 출처 / 생명과학2 교과서(교학사)
그 작업은 아르엔에이(RNA)중합효소가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라는 부위에 결합하면서 시작됩니다. RNA중합효소는 유전자의 디엔에이(D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DNA --(전사)→ RNA --(번역)→ 단백질>의 과정 중에서 RNA를 만드는 효소이며, 유전자의 염기서열 중의 앞쪽 부위인 프로모터에 결합함으로써 비로서 그 작업을 개시합니다. 프로모터는 유전자 발현의 시작인 RNA중합효소가 작업을 개시하기 위해 결합하는 유전자의 한 부위이지요. 

그러니 ‘젖당이 있건 없건’ 억제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조절유전자에서는 ‘젖당이 있을 때’나 ’젖당이 없을 때나’ 상관없이 RNA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억제단백질을 만들어낼 터이지요. 또한 구조유전자에서는 ‘젖당이 있을 때’ 억제단백질이 떨어져 나가니까 ‘젖당이 있을 때에’ RNA중합효소가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젖당분해 효소 등을 만들어내겠지요.


런 오페론의 작동 메커니즘을 다룬 문항이 논란 대상입니다.


저번 글에서 다룬 페북 수다에서, 생명과학자들은 현행 생명과학Ⅱ 교과서(교학사)에 실린 ‘젖당 오페론’의 설명 대목을 읽어보았고, 교과서 설명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오페론 설명 대목을 다루는 제8번 문항에서 ‘보기 ㄱ’의 설명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보기 ㄱ은 “젖당이 있을 때 야생형 대장균에서 RNA중합효소는 ㉠에 결합한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젖당이 있을 때 젖당분해 효소 등을 만들기 위해 RNA중합효소가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8번 문제 그림에서 ㉡)에 결합한다는 오페론의 작동 과정과 다른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8번 문제에서 ㉠은 사실상 조절유전자를 가리키는데, 보기 ㄱ에서 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에 결합한다는 설명은 너무 어색하고 문제 취지에도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현재 생물학 지식으로 보면, 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DNA 정보를 전사하는 기능의 RNA 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도 역시 결합하지만, 오페론 학설을 묻는 이 문항에선 조절유전자보다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교과서의 설명은 옳고 이를 바탕으로 출제한 문항에서 보기 ㄱ의 설명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며 “출제과정에서 ㉠과 ㉡이 뒤바뀌는 오타 실수가 빚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젖당 오페론이 젖당이 있을 때에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초점이 된 문항에서 느닷없이 젖당이 있건 젖당이 없건 RNA중합효소가 결합하는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관해 묻지는 않을 게 상식적이고, 이렇게 볼 때 “젖당이 있을 때 RNA중합효소는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한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저번 글을 참조해주세요).

00exam7.jpg » [오른쪽] 교과서의 그림에서 RNA 중합효소는 구조 유전자의 프로모터 부위에 결합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왼쪽] 시험문제의 그림 (가)에서 보면 (ㄴ) 부위가 프로모터이다. 그러나 시험문제에서는 이런 교과서의 설명과 달리 RNA 중합효소가 (ㄱ) 부위에 결합한다는 설명이 올바른 것이라고 잘못 정답 처리를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출처/ 수능문제, 생명과학2 교과서(교학사)



‘함정출제’를 주장하는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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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교육 현장에서는 8번 문제에 오류는 없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8번 문제가 좋은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보기 ㄱ이 야생형 대장균에서 ‘(1)젖당이 있을 때 (2)RNA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에 결합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조절유전자에서는 젖당이 있을 때나 젖당이 없을 때나 RNA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RNA 전사가 상시적으로 일어나며 그래서 상시적으로 억제단백질이 만들어집니다. 오페론 구조에 있는 구조유전자는 다릅니다. 구조유전자에서는 젖당이 없을 때에는 억눌려 있다가 젖당이 있을 때에 억제에서 벗어나며 이때에 RNA중합효소가 구조단백질의 프로모터에 결합해 RNA 전사를 개시해 효소분해 효소 등을 만듭니다.


00exam22.jpg » RNA중합효소에 의해 DNA에서 RNA가 만들어지는 전사 과정. 출처/ 생명과학2 교과서(천재교육) 그러니 젖당이 있을 때 RNA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에 결합한다는 설명은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8번 문항이 젖당 오페론의 메커니즘을 묻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젖당이 있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묻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젖당이 없을 때도 그렇지만 젖당이 있을 때 조절유전자에서 상시적으로 억제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니, 보기 ㄱ은 틀리지 않다는 것입니다.


고교 생물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들려주신 말씀의 요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RNA 전사 과정을 다 배우거든요. 전반적인 지식을 묻는다고 봐야죠. 오페론만 생각해서는 안 되고요. 젖당이 있을 때에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도 결합하고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도 결합하니까요, 즉 ㉠과 ㉡에 다 결합하니까 ㉠(조절유전자)에 결합한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봐야지요.”

“만일 보기 ㄱ이 틀린 설명이라고 한다면, 그러면 젖당이 있을 때에 RNA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에 결합하지 않는가 하고 물을 수 있고, 이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에 이것도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틀린 설명으로 볼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론 (오페론 메커니즘을 묻는 문제이니까) 보기에 ㉠이 아니라 ㉡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아마도 출제자가 함정을 만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좋은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렇더라도 오류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젖당이 있을 때 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에도 결합하는 건 맞는 설명이긴 하니까요.”


른 학원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다른 기자가 취재해 전해준 메모를 정리했습니다).


“저도 틀렸거든요 이 문제를. ‘ㄱ’을 틀린 걸로 해서 택했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류가 별로 없어 보여요. 그런데 만약에 이 문제를 원안 대로 하면, 오류는 없어 보이지만 정말 치사한 문제가 되고요. 차라리 복수정답에 한 표를 던져요. 이걸 복수정답 처리를 안 하게 되면, 여기에 관련된 다른 문제를 낼 때 참 불안하게 돼요.

 그림을 하나 그려보세요. 앞에 프로모터가 있고요, 조절유전자가 있어요. RNA중합효소가 둘 중 하나에 붙는 거예요. 프로모터와 조절유전자 둘 중 하나에 붙어야 하거든요. RNA중합효소는 프로모터에 붙는 거예요. 지금 문제는 ‘RNA중합효소가 조절유전자에 붙는다’, 이게 보기 ㄱ이예요.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되냐 하면요, ‘결합한다’가 문제가 돼요, 사실은. 왜냐하면 RNA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붙잖아요, 근데 프로모터에서 시작해서 조절유전자를 주욱 스치게 돼요. RNA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붙은 다음에 계속 조절유전자를 스쳐 지나가요. 그 조절유전자를 스쳐지나가면서 RNA를 만들 거든요. 그럼 그 상태는 결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RNA 중합효소 결합의 개시점은 프로모터이지만 전사 과정에서 조절유전자랑 붙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보면 오류는 없어요. 그런데 고교생이나 제 입장에선 화가 나는거죠. 그러니까 오류는 없지만 치사하다는 게 이해가 되세요? 그러니까 프로모터가 두 군데가 있거든요. RNA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의 프로모터에 붙을 수 있고 오페론 구조유전자의 프로모터에도 붙을 수 있어요. 문제에서는 그림을 제시하면서 이쪽 프로모터에 붙느냐 조절유전자에 붙느냐는 뉘앙스로 문제를 냈는데, 그럼 당연히 프로모터에 붙지 조절유전자에 붙는다고 생각한 수험생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보기 ㄱ의 지문이 조절유전자와 결합한다고 한 거고 그게 맞다는 거죠. 저도 가르치는 입장에서 당연히 틀린 게 되는 거예요. 정말 화가 나는 문제죠.”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장에서 수많은 문제를 풀어온 교사와 강사는 대체로 출제 문제를 좋게 보지는 않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출제자가 심어놓은 함정이 있고 배배꼬아 놓은 문제이지만, 그 자체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오류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함정은 있지만 보기 ㄱ이 틀린 설명이 아니라는 견해에 대해 앞서 페이스북 수다를 나누었던 생명과학자들은 잘 수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제실수’Ⅱ: “깨어 있을 때 심장은 뛴다” -옳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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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수다에 참여했던 미국 대학의 생물학 교수는 몇 가지 비유를 들어서, 보기 ㄱ을 옳은 설명으로 본다면 이는 매우 어색한 설명이며, 출제기관 또는 출제자가 애써 옳은 설명이라고 주장하는 식임을 비판했습니다. 관련 대목을 이곳에 옮깁니다.


해외 생명과학자

ㅎㅎ 여전히 뜨거운 논쟁. 그래서 제 말씀이 보기 ㄱ은 영 말이 안되는 표현이지만(논문에 절대 이렇게 안 씁니다. 교과서에도요), 과학적으로 틀렸다라고 말하기는 또 애매한, 그러니까 한 마디로 아주 나쁜 보기 설명이지죠.

약에 오타가 아니었다고 한다면,

첫째, “젖당이 있을 때”란 표현은 아주 부적절한 표현이예요. 마치 “사람은 깨어 있을 때 심장이 뛴다”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깨어 있든 잠들어 있든 심장이 뛰는데 말이죠. 그런데 누가 이 표현이 말이 안 된다 하니까 그럼 깨어 있을 때는 심장이 안 뛴다는 말이냐 하고 우기는 격.

둘째, “조절유전자에 붙는다”라는 표현도 혼란스러운 표현이예요. 지나가는 친구랑 하이파이브를 했는데, “친구랑 손이 붙었다”라고 하는 격? 스치고 지나가는 게 더 맞는 표현이잖아요. 어쨌든 손과 손이 붙지 않았었냐 우기면 뭐...

기자:

첫째 비유는 금세 이해되는데, 둘째 비유는 이해하기가...

해외 생명과학자

mRNA를 합성하려면 중합효소가 일단 프로모터에 붙고 유전자를 쭉 읽으면서 지나가는 거거든요. 그걸 ‘붙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다는 말이었어요. 부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데 경부고속도로에서 고속버스를 탔다고 하는 격? 말이 이상하지만 틀렸다고 하긴 그런 거죠. 고속도로에서도 계속 버스를 타고 있는 중이니까요...

기자:

아, 부산 버스터미널에서 탔다고 해야 하는 격이군요...


애써 말하면 보기 ㄱ을 틀린 설명이라고 말할 수 없고 말은 될 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왜 굳이 그렇게 말해야 하는지, 왜 그런 것을 수험생에게 묻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수와 함정, 무엇이 더 위태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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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 문제에 함정이 있었을 뿐 오류는 없다는 견해도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함정출제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출제자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배배꼬아 숨겨놓은 의도와 함정을 간파해야 하는 건 수험생의 필수 테크닉이 된 걸까? 일반적인 생물학 학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묻는 문제에서, 그것도 교과서에 유사한 설명과 그림이 이미 있고 그것을 응용해 제시한 문제에서, 일반적인 이해 여부를 묻는 게 아니라 허를 찌르는 문제를 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제자의 함정과 의도를 간파하는 수험생과 일선 교사와 강사들의 눈을 피해 점점 더 새로운 함정과 새로운 배배꼬임이 등장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이번 출제오류 논란은 함정출제 흐름의 막바지에, 함정 숨긴 문제가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서면서 빚어진 것은 아닐까?


8번 문항의 '보기 ㄱ' 논란이, 교과서에 있는 ㉡을 시험문제에서는 오타 같은 단순 실수 탓에 ㉠으로 잘못 입력됐기 때문인지, 아니면 출제자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보기 ㄱ의 지문에서 ㉠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실수설은 8번 문제가 잘못 출제됐다고 말하며, 함정설은 8번 문제가 배배꼬이긴 했지만 오류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단순실수였다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는 노력과 대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수능 출제에서는 이런 실수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항이 함정일 뿐이었다면?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아마도 변별력을 위해 함정출제는 계속될 터이고 배배꼬는 테크닉은 새롭게 출현할 것입니다. 문제에 함정은 없는지 배배꼬임은 없는지 경계하며 찾아내려는 수험생들의 노력도 더해질 것입니다. 내년 수능에선 또 어떤 함정이 등장할까?


물론 시험문제엔 함정이 있고 시험문제가 묻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함정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문제 푸는 요령의 간극이, 앎과 풂의 간극이 너무 크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제대로 아는지를 묻는 물음도 제대로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8번 문항 논란 사태를 보면서, 이 문항이 단순실수에서 빚어진 것일뿐이라는 결론이 나오길 저는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 실수한 것일 뿐이고 아는 것을 시험하는 중요한 장에서 필요하지 않았던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배배꼬임과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만일 출제자가 함정출제를 했을 뿐이라면…, ‘함정에 빠진 74%’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의미로 비추어질까요?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 많은 시간을 내어 얘기를 나눠주신 세 분의 국내외 생명과학자,

그리고 일선 교사와 학원강사의 견해를 전해준 사회정책부 기자의 도움으로 작성될 수 있었습니다.

※ 이 글은 한겨레 사이트에도 발행되었습니다. 작은 부분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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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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