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무엇을 위해 레이스에 매달리는 걸까


00PhD_pic18.jpg » 사진 / 김창대




#18. 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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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티 대지진으로 30만여 명이 죽었을 때[1], 난 성금을 보내는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로 2만여 명이 죽었을 때[2], 난 방사능을 바다로 뿌린 일본에게 분노를 느꼈다. 세월호 침몰로 300여 명이 죽었을 때[3], 난 슬픔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리고 오늘 학교에서 일어난 자살 소식을 들었다. 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신 건강에 좋은 뉴스가 뜨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난 줄담배라도 피우듯 뉴스를 클릭해왔다. 그러다 ‘명문대생 아파트에서 투신’ 기사를 봤을 때는 안타까움에 담배 연기 내뿜듯 한숨 한 번 쉬었다. ‘투신한 D대생 끝내 숨져’[4]로 바뀌었을 때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투신해서 목숨을 건지기란 어려우니까. 하지만 ‘대전 소재 D대생 자살, 학생들 충격’으로 바뀌었을 때, 두개골이 서늘해졌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학교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앞뒤로 누운 삼각형 두 개가 보인다. 어느 언론사가 ‘꿈꾸는 대학교 학생 투신 자살’이라고 까발린 기사 링크가 올라와 있다. 가만히 웹브라우저를 닫았다. 오늘은 더 이상 뉴스도, 학교 커뮤니티도 보지 못할 것 같다.


연구실은 조용했다. 키보드만 인기척을 냈다. 다들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꼈다. 각자의 소리 속에 시간이 흘러간다. 기어코 예능을 하나 켰다. 연예인들이 여행을 다니며 게임을 한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을 검색해 본다. 제목을 보고 흥미 있어 보이는 것들을 골라 저장한다. 이중에 몇 개나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캘린더도 정리하고 이메일도 확인한다.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페이스북에서 친절히 알려준 메일을 지운다. 내년에 또 보내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죽었어도 보내줄까? 핸드폰을 켜서 웹툰을 몇 개 보았다. 캐릭터들이 재미나게 살고 있다.



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연구실 사람들과 학교 식당으로 향했다. 텔레비전에 연합뉴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D대학 학생 자살 소식이 나온다. 고개를 숙여 밥을 바라봤다. 준상이가 옆에 있던 주성에게 묻는다.

강준상(박4): 야, 저거 어느 학교야?

정길이 형이 대신 대답한다.

심정길(박3): 우리 학교잖아.

강준상(박4): 진짜요? 허이구, 왜 그랬대.

하주성(박1): 요즘 학부생들 학점 안 나오면 이공계 장학금 바로 짤린대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는다던데.

강준상(박4): 학점 몇이면 짤리는데?

하주성(박1): 3.0 못 넘으면 짤린다나봐요. 그게 원래 2.0이어서 거의 다 받는 거나 다름없었는데, 그게 3.0으로 올라가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대요.

잠시 정적. 준상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준상(박4): 근데, 3.0이면 좀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잠시의 정적 동안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지금 저 말로써 준상이는 죽음을 그저 현실 도피 방편으로 치부해버렸다. 망자에게 왜 더 열심히 살지 않았느냐고 비아냥대버렸다. 생각이 없는 걸까? 그러나 난 계속해서 밥만 집어넣었다. 말은 꺼내지 않았다.

심정길(박3): 여기 학부는 학점 되게 짜게 주던데. 내용도 굉장히 어렵고.

강준상(박4): 저도 조교 해봐서 그건 알죠. 그런데 열심히 하는 애들은 다들 B 정도는 어렵지 않게 받아가던데요.

하주성(박1): 근데 어차피 상대평가니까 누군가는 3.0 이하가 될 거 아니에요. 처음에 성적 기준 올라갔을 때 학교에서 절대평가 하니까 괜찮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아무리 봐도 상대평가인 과목들이 많아서 학생들이 불만이 많았어요.

심정길(박3): 하긴, 요즘 조교 하면 학생들이 엄청, 뭐랄까, 경쟁적으로 한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있더라.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1점 1점에 엄청 목숨 걸더라고.

전길영(석2): 고등학교 때 공부 잘 하던 애들이 와서 하던 버릇대로 하는 거 아니에요?

심정길(박3): 원래도 좀 그러긴 했는데, 요 몇 년 새는 많이 심해졌어. 다들 신경 많이 쓰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강준상(박4): 어쨌든 진짜 안타깝다. 그래도 좀 살아보지.

심정길(박3): 그러게, 부모님은 어쩔 거야.

저 말들에 과자봉지에 담긴 과자만큼이라도 영혼이 담겨 있었으면 좋겠다.

다시 정적. 연구실 사람들끼리 밥 먹을 때 할 말 없어 조용한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만큼 불편한 적은 없었다.

침묵은 주성이가 깼다.

하주성(박1): 이거 샐러드가 학교 식당답지 않게 싱싱한데요?

보아하니 정말 그랬다. 우리가 좋은 타이밍에 온 걸까? 양상추가 아기 피부 같은 탄력과 수분을 자랑했다.

‘싱싱하다.’ 생각해보면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갑자기 무섭게 들린다. 사람들은 갓 캐낸 야채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갓 죽은 것을 좋아한다. 싱싱하게 보관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사체 보관을 잘 하려고 한다. 다시 식판을 보았다. 모두가 죽은 것이다. 죽여서 씻은 것, 죽여서 삶은 것, 죽여서 굽고 양념을 바른 것…. 우리는 죽음을 먹으며 삶을 연장시킨다.


인간도 탯줄이 끊기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어머니가 아이에게 주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일지도.



을 다 먹고 들어오는 길,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뉴스 보고 전화하신 거겠지. 연구실 사람들보고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뒤쳐져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우리 아들 잘 있었냐.”

“네, 엄마. 밥 먹고 다시 연구실 들어가는 길이에요.”

“또 연구할라고?”

“해야죠. 출근도 늦게 하는데. 그래야 졸업하지.”

“뉴스 보니까 니네 학교에서 학생이 자살했다더라.”

“들었어요.”

20대 후반쯤부터는 어머니께 단답형 대답은 잘 안 하려고 해왔다. 나라도 엄마의 애인이 돼주고 싶어서다. 엄마도 여자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엄마를 애인대접 해줄 리가 만무하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길게 대답하기 싫다.

“니는 힘든 거 없제?”

“네,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내 컴퓨터엔 자퇴원이 다운로드 되어 있고[5], 논문이 고구마 줄기처럼 뽑혀 나오는 준상이와 다르게 난 씨앗 하나 제대로 뿌리지 못한 것 같고, 우울증이란 게 뭔지 조금씩 맛보고 있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엄마가 뭘 어쩔 건가. 박사가 힘들다고 박사를 그만두면, 뒷감당은 고스란히 어머니 등골이 맡을 것 아닌가. 그러기엔 난 너무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 정원아, 엄마가 살아보니깐 열심히 사는 거, 뭐 없더라. 그냥 편하게 적당히 해. 알았지?”



일이다. 늘 열심히 살라고 하셨던 엄만데.

“알았어요, 엄마.”

“근데 갸는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한 것 같다더라. 걔 엄마는 어쩌면 좋누.”

정말 죽으면 고통이 끝날까? 아니면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걸까? 걱정은 늘 산자에게로 향한다.

“그러게 말이야.”

이번에도 단답이다.

“근데 요즘 학교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았어? 그 장학금 성적 올라간 것 때문에?”

“여기 애들 공부 진짜 잘 하던 애들만 모였잖아. 그런 애들이 남들 다 받는 것 같은 장학금을 자기만 못 받으면 엄청, 뭐라 그래야 되나, 부끄럽다고 해야 되나? 하여튼 그럴 거 아냐. 그러니까 경쟁도 심해지고 그랬어. 자기 점수만 챙기는 애들이 많아지고.”

엄마가 묻는데 대답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아까 준상이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해버렸다.

“공부 잘해야 장학금 받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거 가지고 자살까지 해버렸으니, 정말 부모는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까.”

한껏 답답해졌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게 당연하다. 함께 살아보지도 않았으니까. 함께 살아 본 준상이도 모르는 데 뭘.

“엄마, 이게 차라리 과에서 1등만 받고 그런 거면 몰라도, 이건 절반 정도는 받고 절반 정도는 못 받는 거잖아. 엄마도 생각해봐. 이건희가 돈 많은 게 부러워, 아니면 엄마 친구가 샤넬 빽 하나 산 게 부러워?”

비유 한 번 참 천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대신 이어 붙였다.

“그리고 장학금 한 번 못 받으면 그게 몇 백인데, 그거 고스란히 부모님이 부담하시는 거 아냐. 그러니까 애들이 어린 마음에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 그래도 우리 아들은 잘 해줘서 고맙다. 너무 힘들 게 하지 말고, 적당히 하고 일찍 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건강하다. 건강이 최고야. 알지?”

잘하고 있는 게 아니라 대학원에 그런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말하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엄마 아들만 잘 하면 끝이냐고 따지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늘 같은 잔소리만 늘 같은 거짓말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일찍 잘 게요.”

“그래, 그럼 들어가라.”

는 죽은 그 학생을 모른다. 그가 왜 죽기로 결심했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성적 때문인 걸로 단정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동조해버렸다. 핑계는 있다. 그들이 그 학생이 열심히 안 해서, 그 학생이 약해서 자살한 것이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난, 설사 성적 때문에 자살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그리고 문화의 문제는 곧 구조와 정책의 문제이다. 하지만 내 항변은 의미가 없었던 것 같다. 되려, 그가 성적 비관으로 자살했다는 추측만 더 굳건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학생의 성적조차 알지 못하는데.


학교 밖 친구 몇몇에게 연락이 왔다. 하나 같이 뉴스를 보았다며, 너는 괜찮으냐고 했다. ‘나는 삶에 대한 의지가 충만하니 걱정마시라’며 대충 넘겼다.

이름도 모르는 그 학생 덕에, 나는 불편한 이야기를 반복해야 했다. 귀찮았다.



늘은 다들 빨리 퇴근하는 분위기다. 나도 9시쯤 연구실을 나왔다. 연구 더 해서 무엇 하리,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오늘이니, 기숙사에서 빈둥대다 일찍 잠이나 청하련다.


여름[6] 밤공기가 고맙게도 선선했다. 머리카락 틈새로 미지근한 공기가 비집고 들어간다. 머리가 맑아온다. 나는 비로소 외면하고 있던 생각과 대면했다.

 

그는, 왜 떨어졌을까?

 

약한 심성 탓이었을까?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까?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을까? 극한 상황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그들처럼 정신력이 강했다면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약한 사람이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치료를 요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하다고 모두 죽음을 택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약하기 때문에 투신한 것도 아니다.


아니면, 실연을 당한 걸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을까?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신 걸까? 왕따를 당했을까? 누군가가 그랬다. 자살은 결코 한 가지 이유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니면, 정말 성적 탓이었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나가던 한 학생이, 대학에서 더 이상 잘 나가지 못 하게 되자, 게다가 그로인해 부모님이 몇 백만 원을 더 짊어지게 되자, 그 정서적·경제적 부담을 못 이겨낸 걸까?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다시 출발선에서부터 시작해보겠다고 한 걸까?


미국의 한 정신의학자가 과거 100여 년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7] 미국에서 인구 만 명당 살인율과 자살율은 공화당 집권기에 엄청나게 올라가고, 민주당 집권기에 거의 그만큼이 내려갔다고 한다. 물론 공화당이 집권했다고 무조건 살인율과 자살율이 폭등하는 건 아니었지만, 폭등하는 일은 공화당 집권기에만 나타났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는 일은 민주당 집권기에만 나타났다고 한다.


물론 공화당이 직접적으로 살인과 자살을 늘리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살인과 자살의 진짜 원인은 ‘불평등’이다. 공화당은 불평등을 높이는 정책을 썼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고, 사람들을 더 폭력적으로 만든 것이다. 타인을 향해서든 자신을 향해서든. 당연히 공화당이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사회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돈’이 ‘성적’으로 치환되어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좋은 성적이 졸업 후의 많은 돈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될 거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팽배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인식을 어른들이 심어주기 때문이다. “넌 공부 열심히 해서 큰 사람 되어야 한다.”고 어른들은 강조한다. ‘큰 사람’에 돈을 많이 벌지 못 하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 다는 건 상식이다.


그 와중에 학생을 ‘장학금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는 정책이 나왔다. 이 정책은 불평등을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수치심을 심화시키고, 가정에까지 연결시켰다. 그리고 가장 연약한 학생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이런 결론, 참 섣부르고 명쾌하다. 나는 유서 한 번 읽어보지 않고 그를 성적 비관자로 명명했다. 성적 비관이 자살의 원인이며 정신력이 약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을 거라는 낭설을 결론 삼았다. 자기 성적을 비관하게 만든 원인으로는 사회를 지목했다. 미국의 사례를 분석함으로써 근거를 더했다. 물론 그 ‘사회’에서 나는 빠진다. 나는 책임을 벗고 분노할 자격을 얻었다. 참 쉽다.



숙사 로비에 도착했다. 게시판에 택배가 온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주문한 것이 없어도 괜시리 한 번씩 쳐다보고 가게 된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 이름 하나가 오늘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택배가 왔는데 가져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문연구요원이라 훈련소[8]라도 간 걸까?


그래, 결과가 다 일어난 다음에, 원인을 찾은들 무슨 소용이더냐. 이미 죽었는데 뭐 하러 원인이나 찾고 있나. 원인을 제거해서 예방해야하지 않느냐고? 그럴 의지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현실적인 측면이 있다며, 어쩔 수 없다며 또 외면할 것이 아닌가. 나도 이미 그렇게 묵인된 규정들을 다시 한 번 묵인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용케 잘 버티고 있는 것뿐이다. 수능으로 한 줄 세우는 것이 문제라고 뉴스에서 떠들 때, 우수 학생들을 뽑고 싶어 하는 대학들의 욕망과 우수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욕망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결책은 한 줄 세우기 밖에 없다고 자위했던 사람이다. 하나의 죽음을 서둘러 외면하고 다시 나의 생존에 감사하며 살아갈 사람이다. 긍정이나 열정 따위의 힘을 빌어서.


그래, 어쩌면 그는 그나마 꽤 앞에 서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 뉴스라도 되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요즘엔 노숙자의 죽음이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무섭다. 혹시 기숙사 택배 게시판에 오래도록 남아 있던 이름도 그런 건 아닐까? 이제는 그 이름이 지워진다 해도, 그 지워진 사유를 몰라 두려워할 것 같다. 아냐, 훈련소에 갔을 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죽음은 지워야 한다. 최대한 빨리 지우고 우리는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 그 ‘살던 대로’가 죽음을 향해 세차게 달려 나가는 길일지라도.


며칠간은 언론이 그의 죽음을 기억해줄 것이다. 하지만 3일장이 끝나고 나면, 언론도 더 이상 뉴스거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뒤따라 우리도 잊게 될 것이다. 나도 머지않아 죽음을 잊고 삶에 목맬 것이 뻔하다.


삶이란 게 어차피 죽음으로 향한 길이라면, 레이스를 벌일 필요는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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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동경, “아이티 지진 참사 4주년…‘끝나지 않은 비극’”, 연합뉴스, 2014년 1월 13일,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1/13/0601230100AKR20140113030100087.HTML

[2] 조준형, “일본 원전사고 3주기,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2014년 3월 10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4/03/10/story_n_4933673.html

[3] 손상원·박철홍, “세월호 실종자 시신 102일 만에 발견…여학생 추정(종합2보)”, 연합뉴스,  2014년 10월 28일,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0/28/0200000000AKR20141028175354054.HTML

[4] 이 소설의 배경인 가상 대학의 이름은 ‘꿈꾸는 대학교’, 영어로는 ‘Dreaming University’이다.

[5] 제1화 <새벽 세 시>  http://scienceon.hani.co.kr/153375

[6] 여름: 혹시 눈치 채신 분이 있을까 싶은데, 이 소설은 사실 시간적 배경을 가지고,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7화에 나온 딸기파티는 4월, 11화에 나온 친구 결혼식은 5월, 13화와 14화에 나온 신입생 환영회는 5월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지요. 이번 17화의 배경은 6월입니다.

[7]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교양인 출판.

[8] 박사학위 과정 동안에 연구하는 것으로 병역 의무를 대체하는 것을 ‘전문연구요원’ 제도라고 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업체에서 근무하는 것과 비슷한데, 근무지가 학교라고 보면 된다. ‘산업기능요원’과 마찬가지로 병영생활은 하지 않지만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은 받는다. 이를 간단히 ‘훈련소 간다.’라고 표현한다.


  ■ 작가의 말

이번 편은 최소한 10배는 더 잘 썼어야 했습니다. 훨씬 더 오래 고민하고 반복해서 고쳤어야 했습니다. 그랬다 해도 고통 속에 스러져간 망자들에 대한 예를 갖추기엔 부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여기까지입니다. 누(累)가 되지는 않기를.

제가 좋아하는 자우림의 노래 ‘해피 데이(HAPPY DAY)’ 가사를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라도 인생은
 같은 결말을 준비해 놓았지.
 빠르던 늦던 언젠가는
 우리들은 모두 죽음을 맞으리.
 
 어디서 와 어디로 가나, 우리는 모두 사라지리.
 여름 밤의 불꽃놀이처럼 허무한 끝을 맞으리.
 그러니 허공에서 빛나는 동안만은 부디
 HAPPY HAPPY DAY.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오.
 그저 그런 승리를 위해서 단 한 번의 인생을 날린다니.
 
 마지막 날이 온다면
 아마도 후회만이 가슴 속에 가득히 남아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사랑한 모든 것이여, 안녕, 안녕히.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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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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