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빅데이터 연구, 국제물리학 저널에 실려

이상훈·김범준 교수와 영국·미국 등 공동연구팀 논문

본관 인구의 분포 패턴과 이주 메커니즘의 모형 제시


  화제의 연구  

00jokbo1.jpg » 족보. 출처/ http://physics.aps.org


백 년 동안 기록된 족보 기록이 물리학자들의 분석을 거쳐 국제 물리학 저널에 소개됐다. 족보의 혼인 기록에는 서로 다른 집안 간에 오고가는 이동의 데이터가 담겨 있을 테고, 수백 년의 흔적을 기록한 족보는 이주 패턴을 보여주는 빅데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멀게는 13세기부터, 가깝게는 19세기부터 기록된 10개 본관의 족보를 통계물리학 기법으로 분석해 본관 인구의 분포 패턴과 이주의 메커니즘을 찾아낸 다국적 연구팀의 논문이 물리학저널 <피지컬 리뷰 엑스(Physical Review X)>에 실렸다. 성균관대학의 이상훈 연구교수(책임저자, 제1저자)와 김범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메이슨 포터 교수 등과 함께 ‘중매장이여, 내 짝을 찾아주오: 과거 혼인을 통한 인구의 이주’라는 독특한 제목의 논문을 이 저널에 최근 발표했다. 한국의 10개 본관 족보에 나타난 22만여 건의 혼인 기록에 어떤 본관 인구 이주의 패턴이 있는지 찾아보려는 통계물리학적 시도의 결과이다.


이번 논문은 미국물리학회(APS)의 누리집에 흥미로운 이색 논문으로 소개되었으며, 공저자가 속한 옥스포드대학의 수리연구소 누리집에도 관련 소식이 짧게 실렸다.


연구팀은 애초에는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중력모델’을 사용해 혼인과 이주의 패턴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즉, 두 본관 간의 혼인 건수는 두 본관 인구 수의 곱에 비례하고 본관 지명(예컨대 김해 김씨의 김해) 간의 거리에는 반비례하는 뉴턴 중력 방정식의 패턴이 나타나리라는 가설이었다. 이런 중력모델은 지역간 교통량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지만, 이번 연구에서 본관 인구의 혼인 기록에선 그런 패턴을 찾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이상훈 연구교수는 “실제 분석해보니 인구의 곱에는 비례했지만 거리와는 무관하게 나타났는데 이는 아마도 조선시대만 해도 이미 사람들이 본관 발생지뿐 아니라 전국에 널리 퍼져 본관 지명이 의미를 많이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00jokbo2.jpg » (a) 김해 김씨(金海 金氏)와 (b)학성 이씨(鶴城 李氏)의 인구 분포(2000년 인구조사 자료). 각 본관의 유래가 위치한 (a)김해와 (b)울산(옛이름 “학성”)을 각각 화살표로 표시했다. 김해 김씨는 전국에 고루 분포하는데 반해 학성 이씨는 본관인 울산 지역에만 주로 분포한다. 자료와 설명/ 김범준 교수

구팀은 족보의 빅데이터에서 다른 의미 있는 특징이 없는지 찾아나섰다.

먼저 본관 인구의 분포에는 특정한 패턴이 나타났다. 본관 발생지뿐 아니라 널리 퍼져 존재하는 형(물리학 용어로, 에르고딕형/ergodic)이 있고, 본관 발생지를 중심으로 본관 인구가 몰려 거주하는 형(물리학 용어로, 비-에르고딕형/non-ergodic)이 있는 것으로 분류됐다 (아래 일문일답 설명 참조). 전국에 퍼져 있는 김해 김씨가 앞의 경우라면, 울산에 주로 거주하는 학성 이씨는 뒤의 경우다. 이 박사는 “에르고딕과 비에르고딕은 사실 통계물리학 개념에서 가져온 것인데, 그런 통계역학 개념으로 인간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런 본관의 분포 모형을 체코의 성씨 거주 자료와 비교해 분석했다. 여기에선 한국사회는 전국에 널리 퍼진 본관과 한 지역에 주로 몰린 본관이 섞여 있는 데 비해, 체코는 대부분의 성씨 인구가 한 지역에 몰려 있는 분포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김범준 교수는 “한국에선 길에서 만난 김해 김씨가 어디 출신인지 알기 힘들지만 학성 이씨를 만나면 울산 출신일 가능성이 아주 높은 특징이 눈에 띈다”며 “체코사회는 한국의 학성 이씨처럼 대부분 성씨가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데, 이처럼 사회마다 어떤 독특한 구조가 성씨 또는 본관 인구의 서로 다른 분포를 만들어냈다고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00jokbo3_LSH_KBJ.jpg » 이상훈 연구교수(왼쪽)와 김범준 교수. 본관은 애초 발생지에서 다른 곳으로 점점 퍼져 이주하는 데에도 어떤 패턴을 읽을 수 있을까? 연구팀이 이번 연구논문에서 새롭게 찾아낸 것은 본관 인구가 역사적으로 보아 크게 두 가지 이주의 메커니즘을 보인다는 것이다. 하나는 본관 인구가 애초 발생지에서 본관이 실제 많이 거주하는 무게중심점 지역까지 점차 퍼져 있는 확산형(diffusive)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발생지에서 점차 퍼지는 패턴과는 다르게 본관 인구 전체가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주한 듯한 대류형(convective)도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패턴은 족보뿐 아니라 실제로 현대의 인구센서스 데이터에서도 정량적인 모델로 확인된다고 한다. 


족보의 빅데이터 분석에선 다른 혼인 문화의 특징도 나타났다. 족보에는 동성동본의 성씨를 지닌 며느리 수가 통상의 이론모형에서 예측되는 것보다 훨씬 더 적게 기록돼는데, 이는 현재 법으로 허용된 동성동본 혼인의 금기문화가 예상대로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매우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됐다.


족보 데이터를 오래 연구해온 김범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우리 기록문화 유산인 족보가 인류학적 이주에 관한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해외에 알리고 역사 자료의 새로운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에는 두 교수 외에 한국의 족보 기록에 관심을 기울여온 영국 옥스퍼드대학 포터 교수,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대학원생 로빈 프랑크,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대니얼 에이브람스 교수가 공저자로 참여했다.


   ■ 일문일답/ 교신저자 겸 제1저자 이상훈 연구교수

문에서 주요 개념으로 쓰인 에르고딕성(ergodicity)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무척 크군요. 결국에 특정 본관의 인구 분포는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전체 평균에 가깝게 폭넓게 퍼져 있다는 의미인지요?

 "에르고딕성(ergodicity)이라는 말은 사실 물리학에서 어떤 대상이 모든 가능한 상태 공간(phase space)을 지나가느냐를 보여주는 의미인데, 우리는 이 에르고딕성(ergodicity)이라는 말을 이번 연구에서 일종의 비유로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리학에 익숙한 용어를 찾다보니 이 말을 쓰게 된 것인데,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본관”과 “지역적으로 분포하는 본관”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자를 ‘에르고딕(ergodic), 후자를 ’비-에르고딕(non-ergodic)’이라고, 통계물리학의 용어를 빌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논문의 첫 문장과 결론 부분을 보니, “사회 물리학(social physics)”의 개념이 등장하는군요. 큰 흐름은 인간을 입자로 보면서, 우리가 사회성(the social)이라고 여기는 현상에 있는 통계물리학적 특징을 찾아내는 물리학 연구가 이번 연구와 맥을 함께하는 것인지요? 또한 19세기에 그런 개념이 이미 등장했다는 설명도 눈에 띄는군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실은 우리도 논문 도입부를 쓸 때 최근에 물리학자들이 복잡계를 연구한 것을 인용하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문헌을 열심히 조사하다보니 이미 그런 개념이 19세기에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통계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도 사실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interaction) 같은 것을 기체 분자의 움직임에 적용해 통계물리학의 개념을 고안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요즘 사회물리학을 얘기할 때에는, 거꾸로 기체분자 간의 운동처럼 사람 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비유를 하기도 하는데 흥미로운 일입니다."

 

논문의 내용에서, 본관 데이터로 볼 때에 혼인과 거리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니 ‘중력모델’이 나타난다는 것인지요? 즉, 혼인의 건수는  두 본관 인구의 곱에 비례하는 관계라고 볼 수 있는 건지요?

 "이 부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표현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두 본관 인구의 곱에는 매우 잘 비례하게 나타나는데, 본관의 지명(예컨대 김해 김씨의 김해)으로 추론한 거리와는 무관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결과가 실제로 거리와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본관 지명과 무관하게 여러 지역에 널리 퍼져(에르고딕형 본관), 본관의 지명 정보만으로는 실제로 신랑과 신부가 산 곳을 추론하기 힘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본관 인구의 ‘퍼진 정도’를 조사하기로 한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1985년과 2000년 인구센서스에서 조사된 행정구역별 본관의 수 자료를 사용해, 우리나라 본관은 실제로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본관과 몇 개의 행정구역에만 분포하는 지역적 본관, 이렇게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번 논문의 주요 발견을 정리하면, 특정 본관은 전 지역에 폭넓게 분포하는 성격을 보여주는데, 이와 별개의 분포 패턴을 보여주는 현상이 발견됐다는 것인지요? 즉 확산(diffusive)과 대류(convective)형의 이주라는 두 패턴이 어떻게 어울려 있는지 살펴보는 게 한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인지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원래의 목적은 중력모델로 족보의 혼인 데이터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거리와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 본관 인구의분포를 함께 살펴보자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결론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나라 본관이 크게 두 종류(전국적 & 지역적)로 나뉜다는 것일 듯합니다.

  나중에 질문한 확산/diffusive과 대류/convective의 이주 패턴은 (물론 관련은 있지만) 본관 인구 자체의 분포와는 약간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가 이 둘을 구분한 것은 본관 발생지(김해 김씨의 김해, 경주 이씨의 경주 등)에서 현재 거주지까지 그 거리를 따지면 본관이 전국적인지 지역적인지 예측할 수 있을까 해서 나온 것입니다.

 만약에 단순히 확산형 이주 패턴만으로 본관 인구가 이동했다면, 본관 발생지에서 현재 거주지의 무게중심점(centroid)까지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만큼 오랫동안 본관 인구가 퍼져갔다는 얘기일 테니, 그래서 오래된 본관의 인구는 전국적일 가능성이 높겠죠. 하지만 우리 연구 결과에선 그 거리가 멀어지지는데도 오히려 지역적 본관의 분포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경우에는 단순 확산만으로는 인구이동이 다 설명되지 않고, 결국에 한꺼번에 (전쟁 등의 이유로?) 본관 전체가 어딘가로 중간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이주했다는 뜻입니다. 최근에 수도권 인구집중 같은 것도 이런 단순 확산의 패턴에서 벗어나는 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답글 중에 “하지만 우리 연구 결과에선 그 거리가 멀어지지는데도 오히려 지역적 본관의 분포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음을 발견했습니다”라는 대목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군요.

 "우선 에르고딕과 비-에르고딕의 구분과 확산형과 대류형의 구분이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 에르고딕(ergodic): 전국적으로 널리 퍼진 본관, 대표적으로 김해 김씨

 - 비-에르고딕(non-ergodic): 특정 지역에만 분포된 본관, 대표적으로 학성 이씨

 즉 에르고딕과 비-에르고딕의 구분은 본관에 대한 것입니다. 에르고딕 본관이 있고 비-에르고딕 본관이 있다는 것이지요. 질문에 담긴 혼동은 혹시 에르고딕이 곧 확산형이고 비-에르고딕이 곧 대류형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확산형과 대류형이라는 개념은 개별 본관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두 가지 형태의 다른 이주 매커니즘”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겁니다. 본관들을 쭉 모아놓고 통계를 냅니다.

 (1) 김해 김씨의 경우 본관의 발생지(김해)에서 현재 무게 중심점(서울 정도)까지 그 거리가 제법 멉니다. 그리고 김해 김씨는 ergodic입니다.

 (2) 학성 이씨의 경우 본관의 발생지(울산)에서 현재 무게 중심점(울산 정도)까지 그 거리가 가깝습니다. 그리고 학성 이씨는 non-ergodic입니다.

 여기에서 (1)과 (2)가 모두 확산의 매커니즘으로 바라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멀리 이동한 본관이 에르고딕이고 그렇지 않은 본관이 비에르고딕이라는 것이지요.

 대류형 이주(convective migration)의 매커니즘은 이런 일반적인 (1), (2)를 따르지 않는 본관들도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본관의 발생지에서 현재 무게중심점까지 그 거리가 제법 먼데도 비-에르고딕인 본관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가상의 어떤 본관 인구가 발생지는 부산 쪽인데 현재 대부분 서울에만 있고 발생지인 부산에는 거의 없을 수 있지요. 그런 본관들도 존재한다는 것이고요. 그러한 본관들의 존재는 본관이 집단으로 서울 쪽으로 “완전히 이주”한 상황으로만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이나 산업화가 그런 특이한 현상의 배경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의 대상은 멀게는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10개 본관의 오랜 족보 기록에서 혼인 건수 20여 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또한 인구센서스 데이터를 함께 사용해 분석한 것인지요?

 "우리가 논문에서 주로 다룬 것은 혼인 수가 가장 많은 하나의 족보였고, 다른 9개에 대해서도 분석한 결과 비슷한 결과가 나옴을 확인하였습니다. 인구센서스 데이터는 본관의 지리적 분포(ergodicity)를 정량화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1985년과 2000년 인구센서스에 나타난 각각의 분포가 있기 때문에 이 둘을 이용해 그 기간에 본관 인구가 어떻게 이동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해보기도 하였습니다."


논문에서 대도시 서울로 인구가 쏠리는 현상도 어떤 식으로건 설명되는지요. 족보 데이터에  나타난 이주 기록과 도시화 이후 인구집중의 이주 현상은 전체 그림에서 어떻게 이해되는지요?

 "앞에서 설명 드린 확산형과 대류형의 구분으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단순한 확산의 매커니즘만으로는 본관의 실제 발생지와 현재 거주지 사이의 관계를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자연적 확산이 아닌 거대한 외부 요인(전쟁, 산업화)에 의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차적인 문제이지만 궁금한 게 더 있습니다. 논문 제목(“Matchmaker, Matchmaker, Make Me a Match: Migration of Populations via Marriages in the Past”)이 독특한데, 이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요? “중매장이여, 중매장이여, 내 짝을 찾아주오”라는 뜻인 듯한데, 구전가요에 있는 표현인가요?

 "이 제목을 제안한 것은 공저자인 옥스퍼드대학의 포터 교수님인데, ‘지붕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이라는 뮤지컬에 등장하는 노래 가사라고 합니다. 제목을 눈에 띄게 짓고 싶으셔서 재미있는 이름을 생각해 내신 것인데, 그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유명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리고, 영어저널 논문의 저자 이름에 한글 표기가 되는 건 거의 처음 본 듯한데요. 이건 새로운 건 아닌지요?

 "사실 미국물리학회 저널인 <피지컬 리뷰> 시리즈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 저자 이름 뒤에 괄호를 치고 자국어 표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이 주로 이 학회 저널에 투고할 때 사용하는 LaTeX이라는 조판 프로그램의 특성상 한글 입력이 그렇게 용이하지는 않아서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죠. 하지만 이 논문은 주제의 특성상 한글 이름을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고요. 우리가 좀 더 뿌듯한 것은 저자 이름만이 아니라 본문 중에 등장하는 ‘족보’ 라든지 ‘본관’ 그리고 감사의 글에 등장하는 정하웅 교수님의 성함도 한글 병기가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도해보고 저널 측에서 저자 이름 외에 한글 표기는 안 된다고 하면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저널 측에서 그것을 끝까지 실어 주어서 개인적으로는 나름 뿌듯합니다."



   ■ 일문일답/ 족보 데이터 10년 연구 공저자 김범준 교수

보 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연구를 오래 해오셨는데, 어떤 게 있었는지 아주 간략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전에 제가 참여 했던 연구 중 족보를 이용한 성씨 관련 논문은 모두 세 편 정도입니다. 이번 논문에서 사용한 것과 같은 10개 집안의 족보를 이용한 다른 연구에서도 각 집안에 시집 온 여자들의 성씨와 생년 정보를 사용했습니다. [1] 한 연구 논문에서는 우리나라의 성씨 분포가 외국과 다른 이유를 수학적 모형으로 제시하고 그 해를 구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했고 여러 다른 나라와 성씨 분포를 비교해보았습니다. [2] 다른 논문에서는 족보 자료를 이용해 과거의 한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성씨 분포를 살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독특한 성씨 분포가 최소한 500여 년 전에도 비슷했다는 것을 주요 결론으로 제시했습니다. [3] 또다른 논문은 공저자인 스웨덴의 민하겐 교수님의 통계적 모형을 이용해 과거 우리나라 성씨 분포를 이해하려는 시도였고 여기에서 수백 년 동안 그 통계적 특성이 변하지 않았음을 이용해 더 과거로 돌아가면 서기 500년 즈음에는 김씨가 1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론된다는 흥미로운 결과도 얻었습니다."
 [1] http://journals.aps.org/pre/abstract/10.1103/PhysRevE.76.046113
 [2] http://statphys.skku.ac.kr/Papers/jkps_kiet1.pdf
 [3] http://iopscience.iop.org/1367-2630/13/7/073036/


물리학자가 왜 족보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요?

 "저와 이상훈 박사가 연구하는 통계물리학 분야에서는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거시적 패턴을 이해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득 분포 패턴이나, 지진 크기의 분포, 또 주가 낙폭의 분포 등이 모두 다 통계물리학자들의 관심사 중 하나이죠. 1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성씨 분포의 패턴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연구에 사용할 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 하다가 몇 도시의 전화번호부, 그리고 당시 몸담고 있던 학교의 출석부도 구해 성씨 분포를 연구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만약에 전산화한 족보가 있다면 과거에 그 집안에 시집 온 여자들의 성씨를 이용해 수백년 간의 성씨 분포도 연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생겼던 겁니다. 사실 제가 했던 연구는 족보 연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족보 자료를 활용한 성씨, 본관 연구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번 연구팀이 다국적인데 어떻게 구성됐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족보 기록이 해외 연구자의 눈에는 어떻게 비치는지요?

 "이번 연구에선 이 박사와 옥스포드대학의 포터 교수, 두 분이 허브 역할을 했습니다. 이번 연구는 저의 성씨 분포 연구를 알고 있던 이 박사님이 제가 정리해 갖고 있던 족보 자료를 이용해 공동연구를 하자고 먼저 제안해 이뤄졌습니다. 함께 연구한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족보 자료는 정말로 신기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선조의 기록 문화가 잘 발달해 무려 몇백 년 전에 만들어진 족보가 여전히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모양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교회에 개인의 출생에 대한 오래 전 기록이 남아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 족보처럼 한 집안의 가계도가 아주 오랜 동안 꾸준히 기록되어 보전되는 예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논문 초록

 사람의 이동성 연구는 기본적으로 중요하며 또한 크나큰 잠재적 가치를 지닌다. 예를 들어, 그것은 효율적인 도시 계획을 촉진하며 유행병에 직면했을 때 방제 전략을 개선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은행권의 흐름, 이동전화 기록, 수송 데이터와 같은 풍부한 데이터가 새로 발견되면 현대인의 이동성에 나타난 특징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곤 한다. 불행하게도, 비교할 만한 역사적 데이터의 부족 때문에 과거의 인구 이동성 패턴을 연구하는 데에는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이 연구논문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장기적 이주에 대한 분석을 제시한다. 그런 장기 이주는 도시화나 관념의 확산과 같은 과정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의 족보(jokbo)에 있는 데이터 기록이 과거 750년부터 나타나는 결혼을 통한 이주 패턴을 평가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장기적 인간 이동성에 관해 두 가지 생성 모델을 응용해, 지리적 정보와 결혼 기록의 상관성을 정량화하고자 한다. 이런 분석을 통해 우리는 본관의 지리적 분포에 나타나는 폭넓은 다양성이 이런 모델을 직접 응용하는 데에 흥미로운 과제가 됨을 발견했다. 본관 성씨의 서로 다른 지리적 분포를 사용해서 우리는 이들이 한국 전역에 얼마나 폭넓게, 균일하게 펴져 있는지와 관련해 본관의 에르고딕성(ergodicity)을 정량화했으며, 이 결과를 체코의 성씨를 사용해 얻은 결과와 비교했다. 인구 이동을 좀 더 자세히 살피고자, 우리는 또한 지역간의 인구 이동 연결망을 구축하고 검토했다. 한국 내 에르고딕성과 이주 사이의 상관관계에 바탕을 두어,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이주 패턴을 찾아냈다. 즉, 확산형(diffusive) 이주와 대류형(convective) 이주가 그것이다. 우리는 인구 이동에서 확산형 대 대류형 효과의 분석이 서로 다른 문화권을 가로지르는 이동성과 이주 패턴을 연구하는 데에 폭넓게 응용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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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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