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로 보는 '잠의 생물학'

뇌 노폐물 치우고 기억 저장하고…벗겨지는 잠의 비밀


※ 이 글의 원문은 10월15일치 한겨레 테마지면(22면)에 실렸습니다.

00sleep0.jpg » 우리는 왜 잠을 잘까? 얼마나, 어떻게 자는 게 좋을까? 꿈은 왜 꿀까? 최근 신경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잠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위키미디어 코먼스


‘15만명이 참여하는 잠 연구.’

독일 뮌헨의 한 대학이 이끄는 ‘인간 수면 프로젝트’는 사람들이 실제 경험하는 잠의 패턴을 연구하는데, 일반 참여자 15만명의 일상 수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연구진은 대부분의 사람이 평일엔 잠을 평균보다 덜 자며 휴일에 몰아 자는 ‘잠의 사회적 시차’ 현상을 겪고 있다고 과학저널에 보고했다. 또한 사회적 시차가 심할수록 비만도 잦다고 밝혔다.


수면 장애는 현대인이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다. 잠을 잘 자야 다음날이 상쾌하다는 건 상식이지만, 일에 치이면 잠의 상식을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때론 덜 자고도 맑은 정신을 유지할 방법은 없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현대인은 대략 100년 전 사람들보다 두 시간 정도 덜 잔다고 한다. 잠은 왜 필요할까. 얼마나, 어떻게 자는 게 좋을까. 꿈은 대체 무엇이며, 잠에서 깨는 건 어떻게 이뤄질까? 잠에 관한 최근의 과학 연구를 살펴보았다.



왜 잠을 잘까?…“뇌의 노폐물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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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오랫동안 문학과 철학에서 주로 다뤄졌지만,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생명의 언어인 디엔에이(DNA)의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진 1953년은 ‘잠의 생물학’에 관해 처음으로 과학적인 언어가 쓰인 해이기도 했다.


최초의 생리학적 수면 연구는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렘’(REM: 급속 안구운동 수면)이라는 얕은 수면 단계가 보고되면서 시작됐다. 지금은 널리 알려졌지만, 수면은 ‘렘수면’과 그밖의 네 단계인 ‘비렘수면’으로 구성된다. 렘은 약간 깬 듯한 상태로 꿈을 꾸는 단계이다. 렘 이외의 수면 단계(비렘수면)에선 깊은 잠에 빠지는데, 이때는 피로를 풀고 원기를 회복하는 단계로 알려져 있다. 초기 생리학 연구는 뇌전도 신호와 수면 패턴을 관찰하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훨씬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연구에선 우리가 잠을 제대로 못 잘 때 느끼는 피로의 정체가 밝혀졌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연구진은 깨어 있는 동안에 생긴 뇌 안의 노폐물이 자는 동안 씻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특히 자는 동안에 제거되는 ‘아밀로이드베타’라는 분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물질이다. 잠든 뇌가 노폐물을 씻어내는 방식은 우리가 집 청소를 할 때 청소하기 쉽게 집안 물건을 한쪽에 밀어두는 것과 비슷하다. 신경세포 간의 틈새가 넓어지고 뇌척수액 같은 유체의 흐름이 증가한다. 일종의 ‘배관 시스템’에 의해 뇌의 노폐물이 씻긴다는 원리다.



충분한 잠이 뇌 건강에 좋은 과학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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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은 잠을 잘 자야 한다고들 말한다. 지난 6월 미국 뉴욕대학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가 이런 상식을 뒷받침했다. 학습 기억은 신경세포 간의 정보전달 과정이 강화되면서 생성된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이때 신경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수신하는 부분을 수상돌기라 하는데, 반복 학습을 거치면 수상돌기에선 버섯 모양의 가지가 생겨 정보 송수신이 더 원활해진다. 연구진은 깊은 잠에 빠지는 비렘수면 단계에서 이런 수상돌기 가지가 잘 생성됨을 밝혔다. 학습 기억의 효과를 높이려면 충분한 잠의 양만큼이나 푹 자는 잠의 질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충분한 잠이 왜 중요한지 보여주는 다른 연구도 있다. 지난 4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초파리 실험 결과에서, 연구진은 어릴 적에 충분히 자는 게 뇌의 정상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아기가 흔히 어른보다 오래 자듯이, 어린 초파리도 어른 초파리보다 더 많이 잔다. 잠을 깨우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신경회로가 어릴 적엔 약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릴 적에 충분히 자지 못한 수컷 초파리는 나중에 구애 행동을 잘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어릴 적의 잠 부족 탓에 페로몬을 인지하는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여러 연구를 보면, 잠을 충분하게 푹 자지 못하는 일이 지속하면 자칫 어릴 적에는 신경회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수 있을뿐더러 성장 뒤에는 학습 부진과 치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 꿈은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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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연구에서 가장 어려우면서 흥미로운 주제는 아마도 꿈일 것이다. 왜 꿈을 꾸는가? 최근의 흥미로운 가설 중 하나는 꿈, 그리고 꿈 이 활발한 렘수면이 의식 발달에 중요한 일종의 가상현실이라고 말한다. 2008년 <네이처 리뷰스 신경과학>에 따르면, 전체 신경계의 활성 정도에 따라 우리의 뇌를 세 가지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신경 활동이 가라앉는 비렘수면, 중간 정도의 활성을 보이는 렘수면, 그리고 활성이 가장 높은 각성 상태가 이런 세 가지다.


그런데 뱃속의 태아에게는 각성 상태 없이 비렘수면과 렘수면만이 존재한다. 자유 의지, 추상적 사고 같은 인지능력의 형성을 위해선 각성 상태의 신경회로가 발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태아는 뱃속에서도 뇌의 활성을 깨어 있는 상태처럼 증가시켜 앞으로 마주할 현실 세계에 대비하는 원초적 의식을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옳다면, 어른의 꿈은 태아 때 연습하던 원초적 의식이 실제 현실을 경험하면서 나타나는 가상현실이다.


자는 동안 렘수면 때보다 뇌 활성이 더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꿈속에서 자신이 꿈꾸고 있음을 알아채는 ‘자각몽’이 그렇다. 자각몽은 꿈과 자의식에 관한 연구에서 자주 다뤄진다. 그동안 자각몽을 꾸는 시기에는 두뇌 정면의 넓은 영역에서 서로 다른 신경세포들이 동시활성을 나타낸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이 영역은 일반 수면 상태에서는 활성이 낮아지고 깨어 있을 때 활성화하는 곳이다. 올해 4월엔 <네이처 신경과학>에서, 두뇌 정면에 미세 전류를 흘려 신경세포의 동시활성을 일으키면 인위적으로도 자각몽을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비슷한 현상이 가장 원시적인 수면 행동을 보이는 동물로 알려진 예쁜꼬마선충에서도 보고됐다. 길이 1㎜ 안팎의 꼬마선충은 신경세포가 302개뿐일 정도로 신경계가 단순한 동물이다. 올해 과학저널 <셀>에 실린 연구를 보면, 자고 있는 꼬마선충에서 신경세포들의 활성은 서로 분리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특정한 두 신경세포의 동시활성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잠자는 선충을 깨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최근 연구들은 우리 의식이 잠의 세계에서 나와 바깥세계와 접속하는 것이 신경세포들의 동시활성을 통해 이뤄짐을 보여준다.



여전히 남은 숙제들, 잠 연구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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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잠을 둘러싸고 많은 물음이 있고 과학은 수수께끼 풀이에 매달린다. 잠들고 꿈꾸게 하는 신경회로와 이를 조절하는 뇌의 작동 방식은 무얼까? 또한 실험 동물을 이용한 잠 연구가 서로 다른 유전정보를 지닌 우리 개인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숙제다.


잠은 동물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과정이다. 아무리 바빠도 건너뛸 수 없다. 하지만 얼마만큼 자야 충분한지는 알기 어렵다. 나폴레옹처럼 하루 3시간 수면으로 충분한지, 아인슈타인처럼 10시간씩 자는 게 좋은지는 개인차가 너무 커 일반화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의 수면 행동과 습관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려는 빅데이터 연구나, 신경회로와 분자들이 합주하는 잠의 비밀에 접근하려는 연구를 통해 잠에 관한 물음은 조금씩 풀려나가리라 기대한다.

[최명규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후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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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규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과정
선생님과 동료들 덕분에, 과학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초짜 과학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오직 저 한 사람 재밌고 행복한 일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과학이 단지 편리한 세상만이 아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보 전진이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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