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 구현된 ‘호킹의 블랙홀’

   화제의 연구   

블랙홀의 사건지평선에서 에너지 방출 ‘호킹복사’

이에 빗댄 ‘갇힌 물질상태’에서 음파의 방출 관측


00blackhole.jpg » 거대 블랙홀의 상상도. 출처/ Wikimedia Commons



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지상에서 자세하게 다 관찰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거대한 우주적 사건을 실험장치 안의 사건으로 모사해 관찰하며 우주를 이해하는 데 다가서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지난 6월에는 '탁자 위의 초신성 폭발' 실험이 보고되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거대 에너지의 초신성(수퍼노바) 폭발 과정을 살피기 위해, 연구자는 작은 실험장치에서 레이저 빔을 탄소막대에 쏘아 고에너지 폭발을 일으키고 이때에 일어나는 과정을 관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탄소막대의 폭발은 탄소막대의 폭발일 뿐이고 초신성 폭발은 아니니 거기에는 한계가 분명 있지만 자세히 관찰하기 힘든 초신성 폭발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유비(analogue) 실험' 또는 '모형 실험'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번엔 실험실에서 블랙홀의 모형이 만들어졌습니다. '호킹의 블랙홀'을 구현한 것입니다. 흔히 거대 질량의 천체가 자기중력을 견디지 못해 작은 시공간으로 붕괴해 생성된다는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을 지녀 빛조차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검은 구멍'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블랙홀 바깥으로 결코 아무 것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40년 전인 1970년대에 젊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양자이론으로 볼 때에 블랙홀의 가장자리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에서도 양자요동이 일어나며 그때에 쌍을 이뤄 생성됐다가 소멸하는 입자와 반입자 중 하나가 블랙홀 안에 빨려들어가면 나머지 짝은 소멸하지 못한 채 바깥으로 방출된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호킹 복사’ 이론입니다. 이로써 호킹은 이전까지 변화 없는 검은 구멍으로만 알려진 블랙홀이 실은 역동적이며 에너지를 방출하며 서서히 소멸할 수 있다는 새로운 블랙홀 이론을 제시해 주목받았습니다.


호킹의 블랙홀이 복사 에너지를 방출해도 그것은 매우 미약하기에, 실제로 우주에서 관측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에 실험실에서 모사한 호킹 블랙홀의 실험장치를 통해 호킹 복사를 관측하려는 시도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 시도 중 하나로, 최근에 과학저널 <네이처 피직스(Nature Physics)>에는 극저온의 물질 상태에서 호킹 복사를 보여주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는 연구 논문이 실렸습니다.


00HawkingRad_jeff.jpg » 호킹의 블랙홀을 매우 작은 규모로 빗대어 구현한 실험 장치, 그리고 연구자 제프 슈타인하우어. 출처/ http://physicsworld.com 이스라엘기술연구소(Technion)의 물리학자 제프 슈타인하우어(Jeff Steinhauer)는 블랙홀에 빗대어 빛이 아니라 소리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물질계를 극저온 상태에서 구현하고서 이런 '음향의 블랙홀'에서 미약하게나마 음향이 복사 에너지처럼 블랙홀을 빠져나오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먼저 루비듐(Rb) 원자들을 절대온도 0도(대략 섭씨 영하 273.15도)보다 불과 10억 분의 1도 높은 극저온에 두어, 이렇게 초냉각 된 원자들이 마치 하나의 원자처럼 거동하는 양자유체 성질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보즈-아인슈타인 응축).극저온의 이 응축물질은 양자요동에 의해 생성됐다 소멸하는 음향양자(phonon, 양자화한 진동)가 지나가는 길인 조용한 매질로도 작용한다고 합니다.


소리의 블랙홀을 완성하려면, 음파마저 루비듐 양자유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난해한 설명이 담긴 <네이처><뉴사이언티스트>의 보도를 애써 쫓아가 보면, 레이저를 사용해 슈타인하우어는 음파가 전달되는 매질인 루비듐 양자유체를 음파 속도보다 더 빠르게 흐르도록 해 음파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블랙홀'과 '사건 지평선' 같은 상태를 구현했습니다. 거기에서 음향양자의 쌍 가운데 하나는 지평선에 갇히지만 다른 짝은 지평선을 지나 바깥으로 방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블랙홀과 호킹 복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은 <네이처> 보도의 일부입니다.


“실험실의 진공에서 음파 쌍들이 존재했다가 소멸하는데, 이는 우주의 진공에서 존재했다가 소멸하는 입자-반입자 쌍을 모사하는 것이다. 이런 음향의 사건 지평선 부근에 형성되는 것들은 호킹 복사에 비견할 수 있다. 탐지장치가 포착할 정도로 이 음파를 증폭하기 위해서, 슈타인하우어는 유체를 조작해 첫번째의 음향의 사건 지평선 안쪽에 두번째의 음향의 사건 지평선을 만들었다. 음향은 두번째 사건 지평선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돌아온다. 음파는 반복적으로 외곽 지평선에 충돌하면서 더 많은 음파 쌍을 만들어내고 결국에 탐지할 수 있을 정도까지 호킹 복사를 증폭한다.”(네이처 뉴스 보도에서)


의 실험실에서, 실험장치는 우주였으며 극저온의 루비듐 양자유체는 소리조차 탈출하지 못하게 가두는 블랙홀의 중력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생성했다가 소멸하며 요동하는 음파 쌍은 입자-반입자 쌍에 비유되었습니다. 블랙홀의 가장자리에서 입자-반입자 쌍이 서로 떨어져 일부가 블랙홀 바깥으로 방출되듯이, 음향양자도 소리의 블랙홀 세계에서 바깥으로 방출될 수 있었습니다. 슈타인하우어는 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이 음향양자 신호를 증폭해 결국 사건 지평선 바깥으로 나온 신호를 포착해낸 것입니다.


물론 그가 5년 동안 실험 장치를 개발해 관측한 것이 실제의 블랙홀은 아니기에, 그 결과가 호킹 복사 관측을 곧바로 입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이처 뉴스 보도에도 이번 결과의 의미와 더불어 다른 연구자의 회의적 견해도 실렸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거대하고 극한적인 현상을 정밀한 실험장치 안으로 끌어들여 그 사건의 일부를 엿보려는 실험은 흥미롭고도 신기합니다. 아마도 거대한 우주적 사건을 실험실에서 모사하려는 연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블랙홀의 호킹 복사 실험과 관련해, 박성찬 성균관대 교수(물리학)는 “실험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극한 물리 현상을 나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유사하게 구현하고 또한 알려진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는지 검증하려는 노력이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며 "물론 엄밀한 증명이나 발견으로 볼 수는 어렵겠지만 이론적 가설이 유사 실험을 통해 검증 받을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발전이라 볼 수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논문 초록

양자장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을 결합함으로써,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방출할 것이라는 예측이 제시돼 왔다. 하지만 실제 블랙홀에서 나오는 관측 결과를 얻기는 지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그런 복사를 탐색하려는 관심은 유사한 물질계(analogue systems)를 만들어 연구하려는 데에 쏠려 왔다. 이번에 우리는 좁고도 저밀도로 밀집한 상태, 극저온의 원자 보즈-아인슈타인 응축(BEC) 상태를 구현했다. 이것은 전하를 띤 블랙홀에서 그런 것처럼, 유사한 블랙홀 지평선과 그 내부 지평선을 갖추고 있다. 우리는 블랙홀과 유사한 물질계가 방출하는 호킹 복사를 관측했음을 보고한다. 그것은 지평선들 사이에서 블랙홀 레이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우리는 또한 두 지평선들 사이에서 지속되는 음파가 지수함수적으로 증대함을 관측했다. 그것은 호킹 복사의 음-에너지(negative energy) 파트너와 그 내부 지평선에서 반사된 음-에너지 입자들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면서 그 결과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가증폭적인(self-amplifying) 호킹 복사를 관측한 것이다. (논문 초록에서)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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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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