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교수와 대학원생, 인격적인 관계는 가능한 걸까?


00pic15.jpg » 한겨레 자료사진




#15. 백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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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생 환영회, 고기는 익어 가는데 분위기는 쉬이 익지 않는다. 고기 굽는 사람이야 고기를 들춰봤다가 뒤집었다가 하지만, 나머지는 그저 손가락만 꼼지락댈 뿐이다. 이럴 때는 신입생을 이용하면 좋다.


  하주성(박1): 교수님, 그럼 자기소개 시간 좀 가질까요?

  권대성(교수): 그래.

  하주성(박1): 자자, 그럼, 신입생들의 자기소개를 들어보겠습니다!

모두가 박수를 친다. 신입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 한길이가 먼저 일어선다. 주성인 다시 고기를 뒤집는다.


  이한길(석1): 안녕하십니까! 저는 꿈꾸는 대학교 아초스(ARCHOS) 연구실에 들어오게 된 이한길이라고 합니다.
 

잠시 눈치를 본다.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말을 잇는다.

  이한길(석1): 나이는 26살이고, 사이언스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다시 한 번 눈치를 본다. 주성이가 도움 아닌 도움을 준다.

  하주성(박1): 주량은 얼마나 돼요?

  이한길(석1): 소주 한 병 정도 마십니다.

  권대성(교수): 그래, 세 병 정도 된다고?

  이한길(석1): 네? 아뇨, 한 병이요.

  권대성(교수): 보통 주량은 삼분의 일쯤으로 얘기하던데….

  이한길(석1): 아, 아닙니다, 정말 한 병입니다.

  하주성(박1): 교수님, 시간당 한 병인가 봅니다. 요즘엔 주량에 시간 개념이 도입됐잖아요.

  이한길(석1): 네?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 그럼 좀 마시는 모양이지? 자 먼저 한 잔 받아.

 

교수님이 소주병을 들자 한길이가 급히 두 손으로 잔을 든다. 모두의 시선이 소주잔에 모인다. 한길은 85%쯤 채워진 잔을 한 번에 마신다. 자동으로 찌푸려지는 얼굴을 금세 편다. 모두가 박수를 친다. 짝짝짝짝.

주성이가 눈짓을 주자, 연정이가 일어난다.

 

 서연정(석1):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꿈꾸는 대학교 아초스(ARCHOS) 연구실에 들어온 서연정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수님과 너무도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최고로 잘 팔린다는 크리스마스이브 나이! 스물 네 살이고요, 꿈꾸는 대학교에서 학부를 마치고 석사과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술은… 잘 못해요. 주량은… 소주 세 잔 정도?

 

모두가 박수를 친다. 이번에도 교수님이 소주병을 든다.

  권대성(교수): 그럼 이거 마시면 두 잔 남는 건가?

  서연정(석1): 교수님이 주시는 건, 특별히 예외가 될 수 있을 건 같은데요?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그래. 근데 저기 보영이는 소주 세 병씩 마시고 그러는데, 넌 어째 좀 적다.

 

거짓말인 걸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가 웃는다. 주성이는 맞장구치며 보영을 향해 엄지손가락까지 치켜든다. 보영이는 “아닙니다”라고 하면서도 말꼬리를 올린다든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꼬리를 올린다든가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연기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트렌드가 누군가를 놀려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인데, 이번이 자기가 놀림을 당하는 차례라면 한 번쯤 희생해줄 수 있는 거니까. 나도 맘 편히 웃어 넘겼다.

교수님이 연정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서연정(석1): 보영 선배님보단 약하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연정이가 보영이를 보고 싱긋 웃는다. 다시 교수님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은 후, 고개를 뒤로 돌리고 한 번에 들이켠다.

 

  서연정(석1): 교수님! 그럼 제가 감히 한 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연정이가 소주잔을 돌려가며 윗부분을 휴지로 슥슥 닦더니 교수님께 살짝 내민다.

  권대성(교수): 허허허, 그래. 한 잔 줘 봐라.

 

요즘 들어 학생들이 술을 드리려 해도 그 잔을 되돌려 한 잔 더 먹이시기 일쑤인 교수님, 이번엔 웬일로 곱게 잔을 받아든다. 연정은 다소곳이 소주잔의 65%쯤을 채운다. 잔을 채운 듯하면서도 가장 적게 따른 양이다. 나이를 보면 대학 졸업하자마자 진학한 것 같은데, 저런 기술은 어디서 배운 거지?

 

 

식의 모든 것은 교수님이 결정한다. 메뉴를 결정하고, 술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고, 누가 그 날의 제물(?)이 될지도 결정한다. 아마도 교수님은 메뉴 결정을 학생들에게 맡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애인이 “아무거나 먹을래”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교수님이 가장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고르기 위해 애쓴다. 보통은 몇 번 가봐서 교수님이 괜찮다고 했던 음식점 중에 고른다. 괜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실패를 하고 싶지 않으니까. 교수님이 갑자기 “거긴 너무 많이 간 것 같지 않냐?”라거나 “거긴 지난번에 좀 안 좋던데”라고 하는 건, 솔로들에게조차 연애 스트레스를 체험할 기회를 주시는 거다.

 

이제 교수님이 술 공격을 시작하신다. 오늘의 주목표는 신입생들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절대 자신의 손에 피를, 아니 자신의 간에 술을 묻히고 싶지 않아 한다. 교수님은 지휘관이다. 전쟁이 나면 지휘관들은 벙커에 들어가서 전략을 짜지 않는가. 직접 싸우는 것은 병사들이다.

 

  권대성(교수): 길영아, 신입생들이 목 마르단다.

길영이 자기 잔을 들고 와서 신입생들의 소주잔을 채운다. 그리고 자신의 잔을 그들의 잔과 부딪친다. 신입생들은 원샷을 한다. 물론 신입생들은 목마르다고 한 적이 없다.

 

  권대성(교수): 준상아, 얘네들 이름은 아니?

이번엔 준상이가 자기 잔을 들고 온다. 연정이에게 이름을 한 번 묻고는, 함께 소주 한 잔 원샷을 한다. 한길이에게도 이처럼 한다.

 

이처럼 한 곳에서 국지전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면, 다른 테이블에서는 술을 극도로 자제하게 마련이다. 언제 불려갈지 모르니, 간 체력을 예비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이 다른 학생들이라고 곱게 살려두고 싶어 하시는 건 아니다. 이럴 때는 “짠 파도타기” 권법을 쓴다.

 

1단계. 조용히 자신의 잔을 든다. 이러면 옆 학생은 자연스레 잔을 들 수밖에 없다.

2단계. 자신의 잔과 따라 올라온 옆 학생의 잔을 부딪친다. 잔과 잔의 부딪침, 속칭 ‘짠’이다. 잔을 부딪칠 경우, 잔을 든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 이 바닥의 규칙이다.

3단계. 잔을 들고 있는 손, 혹은 턱을 사용하여, 옆옆 학생을 가리킨다. 이것은 ‘짠’을 옆으로 이어가야 함을 의미한다. 교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힘이므로, 이어갈 상대가 선배든 형이든 상관없다.

 

‘짠 파도타기’를 통해 모든 학생은 술을 마시게 된다. 이것은 수학적 귀납법[1]으로 증명할 수 있다.

0) 먼저, ‘짠’을 하는 사람은 술을 마셔야 하며, 이것은 술자리에서의 공리[2]이다.

1) 첫 번째 사람인 교수님은 두 번째 사람을 골라 ‘짠’을 했다.

2) 교수님에 의해 k번째 사람은 k+1번째 사람이 누구이든 ‘짠’을 이어간다.

따라서 모든 참석자는 ‘짠’을 하게 되며, 즉,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소주잔이 너무 작아서일까? 교수님이 드디어 핵폭탄을 투하하기로 한다.

 

  권대성(교수): 주성아, 사이다 한 병 시켜봐라.

  하주성(박1): 드디어 ‘사주’ 마는 건가요?

 

‘사주’는 우리 연구실 전통주(?)로, 사이다와 소주를 섞은 술을 의미한다. 물론, 양과 비율이 매우 중요하다. 양의 표준은 1700cc나 3000cc 맥주를 주문했을 때 나오는 작은 맥주잔을 80%쯤 채우는 것이다. 하지만 음주자의 주량에 따라 조절 가능하다. 핵심은 비율인데, 사실 비율이랄 것도 없다. 소주로 전부 채우고, 사이다는 사이다 병뚜껑만큼만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페트병 뚜껑이 아닌 유리병 뚜껑 만큼이라는 것이다. 그 이상의 사이다를 넣게 되면 사주 본연의 맛을 잃고 단맛만 남게 된다. 치맥(치킨+맥주)에 중독된 사람이 치콜(치킨+콜라)은 너무 달아서 싫어하는 걸 생각하면 된다.

 

맥주잔 두 개에 사주가 만들어졌다. 하나의 양은 표준, 다른 하나는 절반이다. 한길이 앞에 표준잔이, 연정이 앞에 절반잔이 놓여진다.

 

  하주성(박1): 자자, 이거 원샷하면 돼. 하나도 안 써. 사이다 맛만 나.

  이한길(석1): 원샷이요?

 

맥주잔에 따라진 소주를 처음 본듯한 표정인 한길이가 채 다 놀라기도 전에 주성이가 말을 잇는다.

  하주성(박1): 자자, 신입생들이 우리 연구실 전통주인 사주를 마시겠습니다. 박수!

 

학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한다. 물론, 편치만은 않다. 사이다가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권대성(교수): 자, 그럼 다음 차례는 누구지?

 

결국 사주가 한 바퀴를 돈다. 마지막엔 교수님도 드신다. 취하지 않으려 서둘러 고기 몇 점을 집어먹었지만, 곧 몸이 달아오른다. 띵해진다. 하지만 혈압이 제 자리를 찾기도 전에 계속 잔이 파도를 탄다. 내 눈으로 보이는 세상도 조금씩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권대성(교수): 주성아, 2차는 어디로 가면 되냐?

2차 세계대전은 핵폭탄으로 종결되었지만, 우리들의 술자리는 핵폭탄부터 투하하고 2차로 이어질 모양이다. 근래에 잘 없던 일인데,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다.

  하주성(박1): 아, 그럼 제가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보아하니, 보영이가 꽤 많이 마신 모양이다. 여학생 들어왔다고 연계해서 마시게 하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주성이를 붙잡아 귓속말을 건넸다.

  김정원(박4): 야, 보영이 좀 데려가라. 많이 마신 것 같은데.

 

같이 나가면 어쨌거나 잠시 술도 안 마실 수 있고, 바깥 공기도 쐴 수 있으니까.
 

  하주성(박1): (손짓하며) 보영아, 같이 가자.

  권대성(교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야, 니네는 연애하냐?

  하주성(박1): 에이~ 교수님. 혼자 가기 심심해서 그런데, 좀 같이 가면 안 됩니까?

 

보영이는 술을 피해 도망 나갔다. 잠시 뒤, 주성이와 보영이가 돌아왔고, 우리는 근처 ‘정원맥주’로 옮겼다. 교수님이 함께하시기에, 아무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술을 마시다보면 제2차 정상상태(second wind)[3]로 접어드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오래달리기를 하다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태 뒤에 찾아오는 편안한 상태 말이다. 술이 술술 잘 들어가면서도, 이미 취한 상태 이상으로 더 취하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상태. 지금 내 상태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느낌일 뿐, 몸은 정직하게 섭취한 알코올의 양에 비례하여 반응한다.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갔던 순간 신호를 느낀 것이 되려 다행이라고나 할까? 무언가가 식도를 노크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토를 하면, 내가 술에 지는 것 같아 싫다. 정신을 부여잡으며 자꾸 침을 삼켜 진정시키려 애썼다. 그렇지만 만일의 사태를 위해 변기로 향한다.

 

읍… 꿀꺽. 꿀꺽. 꿀꺽. 읍… 토사물이 약간 새어나왔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완패할 것 같다. 계속해서 침을 삼키며 진정시켰다. 다행히 조금씩 안정이 되어 간다. 후. 잠시간 더 가만히 있다가 물을 내렸다. 아직 세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손을 씻는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꽤 벌겋다. 후. 하. 숨을 몇 번 크게 쉬었다.

 

나가려는데 한길이가 들어온다. 지체 없이 내가 방금 빠져나온 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토하는 소리. 연정이는 조금씩 내빼기도 하던데, 이 녀석은 정직하게 주는 대로 마신 모양이다.

 

문도 못 잠근 채로 토하고 있는 한길이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김정원(박4): “야, 정말 힘들면 말을 했어야지. 힘들면 술 주는 거 거절해도 돼. 그렇다고 누가 뭐라 그러지 않아.”

 

연구실 분위기라고는 알 턱이 없는 신입생에게 참 의미 없는 말을 뱉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여전히 껄껄껄 웃으며 술을 즐기던 교수님이 나에게 살짝 물어보신다.

  권대성(교수): 한길이 토한 거냐?

 

이럴 때 보면 소름 돋는다. 누가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투로 술만 마시고 먹이던 분이, 은근히 모두를 관찰하고 있다. 저래야 교수 하는 건가.

 

  김정원(박4): 네.

  권대성(교수): 그럼 들여보내. 니가 좀 데려다 주고 와라.

  김정원(박4): (한길이에게 다가가서) 야, 이만 들어가자.

  이한길(석1): 아님다. 괜차습니다.

  김정원(박4): 얌마. 교수님께서 들어가라셔. 가자.

  이한길(석1): 그래오? (눈을 꿈뻑한다.) 그럼, 드러가아조. (교수님을 바라보고 고개를 꾸뻑 숙이며) 교수니, 먼저 드러가보게습니다. 죄소압니다.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지만, 발음이 자꾸 새는 한길이를 데리고 나왔다. 자꾸 “저 혼자 갈 수 이씀다”, “안 이러서도 되는대”, “선배니, 감사함미다”만 연발한다. 숙취해소 음료를 하나 사 먹였다. 그래, 이 정도면 주사가 나쁘진 않다.

 

한길이를 기숙사에 넣어 놓고 나오니 메시지가 와 있다. 태진아노래방으로 옮겼으니 오라는 내용이다. 교수님도 함께 가셨다고 적혀 있다. 솔직히 가고 싶진 않다. 이미 마실 만큼 마셨으니까. 테이블에 맥주도 깔려 있을 것이 뻔하고. 하지만 그쪽으로 향했다. 교수님이 계시니까.

 

 

리 교수님이 권위적인 편은 아니다. 지금 내가 노래방에 안 가고 들어가겠다고 연락을 하면, 뒤끝 없이 잘 들어가라고 하실 분이다. 연구 지도를 할 때도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끝까지 들어보고, 되도록 그 아이디어를 살리는 방향으로 말씀해주신다. 어떤 교수님은 뭘 말해도 단점만 속속들이 찾아내어 기운 빠지게 하기 일쑤라던데. 또, 학생들이 슬럼프에 빠졌을 때도, 잘 다독여 주신다. 어떤 교수님은 툭하면 화를 내고, 심하면 재떨이를 던지기도 한다던데. 학생들이 연구실에서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고 있어도, 그거 재밌냐고 물어보기도 하신다. 다른 연구실은 연구실 내에선 게임이나 예능은 절대 금지라던데. 출퇴근 시간도 정해두지 않고 학생들의 생활패턴을 존중하신다. 주말에는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아서 긴다. 술자리는 최선을 다해 끝까지 남는다. 한길이야 신입생이라 토하는 것도 들킨 거지, 사실 다른 학생들은 토하는 것도 안 걸리게 한다. 그리고 다시 마신다. 또, 교수님이 ‘제안’을 하면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인다. 교수님의 아이디어는 늘 내 아이디어보다 우선이다. 슬럼프에 빠져 우울할 때도 절대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다가 교수님 발소리가 들리면 후딱 Alt-Tab[4]을 누른다. 물론, 출퇴근 시간까지 교수님과 맞추는 건 너무 힘들어 포기했지만, 주말에 연구실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다른 약속들은 알아서 취소한다.


교수님은 우리를 그저 늦잠 자는 학생, 주말에 별 할 일 없는 학생쯤으로 아실지 모른다. 자신이 전혀 권위적이지 않으며, 특히 술은 절대 강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백조처럼, 교수님께는 최대한 자유롭고 편안한 척하는 모습만 보여드리면서, 물밑으로 열심히 물길질을 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교수님은 정말 권위적인 편은 아니다. 강압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도 하신다. 하지만 교수와 대학원생, 평가하는 사람과 그 평가에 의해 너무도 많은 것이 결정되는 사람의 사이에서, 참으로 인격적인 관계는 가능한 걸까?


노래방에 가니 옛 가요들이 흘러나온다. 교수님의 청춘 시절 노래부터, 교수님이 신세대 코스프레가 정말로 가능했던 약 10년 전 노래까지가 그 범주다. 교수님이 포크송을 부르시면 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시면 다함께 일어나 몸을 흔들고, 약간 지치신다 싶으면 최신 가요로 재롱잔치를 벌인다. 아니나 다를까, 맥주도 피처 두 개를 더 비웠다.


즐거웠다. 진심으로. 내가 옛날 노래라고 싫어하는 건 아니고, 교수님의 포크송도 꽤 운치 있어 좋다. 어차피 취해서 별 부끄러움도 없는 차에 댄스곡에 몸을 흔드는 것도 신난다. 술 마시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술을 마시며 이렇게 늦게까지 놀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오늘 밤은 숙취로 밤새 뒤척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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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학적 귀납법: 어떤 명제(주장)이 무한개의 자연수에 대해 성립함을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증명 방법이다. 먼저, 어떤 명제가 1에 대해 성립함을 보인다. 그 다음, 그 명제가 일반적인 자연수 k에 대해 성립한다고 가정할 경우, k+1에 대해서도 성립함을 보인다. 그러면 1에 대해서 성립하였으므로 2에 대해서도 성립하고, 2에 대해서 성립하였으므로 3에 대해서 성립하고, 이런 식으로 무한개의 자연수에 대해서 모두 성립하는 것을 보일 수 있다.

[2] 공리: 어떤 이론 체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근거가 되는 명제. 너무도 자명한 사실들을 골라 증명 없이 맞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이용해 다른 명제들을 증명한다. 대표적인 공리로는 “두 점이 주어졌을 때, 그 두 점을 통과하는 직선을 그을 수 있다.”가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A%B3%B5%EB%A6%AC

[3] 제2차 정상상태(second wind):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3287&cid=40942&categoryId=32783

[4] Alt-Tab: 윈도우 운영체제를 쓰는 경우, 키보드의 Alt 키를 누른 상태로 Tab 키를 누르면 현재 앞에 떠 있는 프로그램에서 다른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하다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순식간에 누르는 키조합이다. 당연히, 이 키조합을 누르면 바로 인터넷 강의가 뜨도록 준비해놓는다.

 

   작가의 말

소설을 쓰면서 가장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 하나가 “그거 다 실화지?”입니다. 실화가 아니라고 하면 문학평론 수업에서 배웠다면서 소설에는 작가의 경험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고, 어차피 다 네가 경험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하지요.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물론 제 경험이 하나도 안 섞였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경험은 일부인데다가, 많은 상상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미 설정한 소설 내 인물에 적용시키기 위해 많이 바꾸지요. 그러다보면 제 경험과는 많이 달라져요. 또, 소재로 삼는 것 중에는 제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굳이 이 말을 쓰는 것은, 특히 오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꾸며 쓴 이야기입니다. 제 지도교수님은 이 소설에 나오는 교수님보다도 좋은 분이거든요. 공식입장이 그런게 아니라 정말로 그렇습니다. 단적으로, 저는 제가 먼저 교수님께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불편할까 싶어 절대 먼저 페이스북 친구 맺자고 하신 적이 없으세요. 또, 페이스북 친구이기 때문에 제 소설이 꾸준히 올라오는 걸 알고 계실 텐데도, 소설에 대해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신 분이에요. 일부러 관심을 안 가지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연구가 아닌 일도 공개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소설은 대학원생의 평균에 가깝게 써야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제 경험과는 다르게 썼습니다.


그러니 오해 마세요. 혹시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제 상상력을 칭찬해 주시거나, 제 주변 사람들을 격려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도 열심히 상상해서 써볼게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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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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