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어른이 된다는 게 크는 건 줄 알았더니, 굳는 거더라


00phd__13.jpg » 출처 / openclipart.org





#13.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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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길에 들른 식당, 혼자 식판을 놓고 앉았는데 누가 부른다.

  “조교님? 혼자 오셨어요?”


프로그래밍 기초반 여학생이다. 프로그래밍을 해 본 경험은 없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실습도 똘똘하게 잘하는, 귀여운 학생이다. 성격도 활달한 편이라 실습 시간에 농담도 많이 주고받았다.


  “아, 네.”

거짓말을 할 순 없어 진실을 이야기했다.


아무리 친한 학생이더라도, 실습실이 아닌 공간에서 만난다는 게 그리 기꺼운 일은 아니다. 조교의 탈을 쓰고 있지 않은 순간에는 평범한 학생이고 싶으니까. 특히 지금처럼 혼자 밥을 먹고 있을 땐 더더욱 마주치고 싶지 않다. 나야 익숙하고 편하지만, 자칫 처량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근데 뭐, 학생도 비슷한 상황 같으니까. 아직 대학교 1학년 밖에 안 된 학생이 왜 벌써부터 혼자 밥을 먹지? 역시 요즘 애들은 개인주의가… 아참, 나도 혼자 밥을 먹고 있지.


  “그럼, 여기 앉아도 되죠?”

학생이 앞자리에 식판을 내려놓는다.


밥을 혼자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 옛날에는 좋아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불편하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지 못한 채, 내가 괜찮은 상태라는 듯이 있어야 하니까. 뭐라도 공감거리를 찾아 이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제길, 게다가 조교와 학생 사이니까 뭔가 좋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조교님, 프로그래밍이 너무 어려워요.”

학생이 가장 전형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역시나, 점심시간이 조교 활동 시간이 될 것 같다. 하긴, 학생이 조교를 만나서 무슨 얘길 하겠나.

전형적으로 되받아칠까도 생각해봤다. ‘하다 보면 잘 될 거예요’라며 공감 못할 희망을 줄 수도, ‘맞아요, 저도 처음엔 힘들었어요’라며 공감하는 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레퍼토리는 따로 있다. 특히 이 학생처럼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면.


  “왜요, 잘 하고 있잖아요.”

  “제가 뭘 잘 해요.”

  “에이, 실습 시간 때 하는 거 제가 다 보고 있잖아요.”

  “실습 때도 맨날 제일 늦게 나가잖아요.”


실습 시간은 그 날 주어진 과제를 다 하는 순서대로 먼저 나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먼저 나가느냐를 가지고도 묘한 경쟁과 열등감이 형성된다. 프로그래밍 경험이 많은 애들이 얼마 안 돼서 나가버리는 것이야 그렇다 치지만, 그런 학생들과 짝이 되어 자신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로 먼저 나가버리는 학생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못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정말 문제이긴 하다.


  “프로그래밍을 대학 와서 처음 해보는 거라면서요. 그 정도면 정말 잘 하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학생들은 제대로 이해도 안 하고 시키는 것만 대충대충 하고 가는데, 학생은 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늦게 가는 거잖아요.”

  “지난 번 숙제도 밤 새가면서 했단 말예요. 다른 애들은 몇 시간 만에 해내던데.”


자기가 못한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걸까? 아니면, 모범생들한테 흔한 겸손한 척일까? 시험 보러 와서는 ‘공부 하나도 안 했어’라고들 하는 그런 거. 어쨌거나, 내가 ‘그래, 너 못 해. 열심히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진 자신이 못 한다는 증거만 계속 찾을 것 같다. 그렇다고 못한다고 말해줄 순 없다.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란 말이다. 처음 하는데 그 정도 속도로 알아듣고 해내고 있는 거 보면. 왜 더 잘 하는 사람과만 비교하고 있는 걸까?


  “그래서 몇 점 받았는데요?”

  “점수는 잘 받긴 했는데요…”


이런 말을 할 땐 보통 5점 이하로 깎인 것을 의미한다.

  “에이, 그럼 잘 한 거네요. 그리고 원래 숙제는 밤새서 하는 게 정상이에요. 몇 시간 만에 끝냈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잘 했던 사람들이든지, 아니면 친구 껄 보고 베껴가면서 해낸 사람들이든지, 둘 중 하나일 걸요? 안 그래요?”

  “음… 그런 거 같긴 한데요…”

  “그런데 뭐가 문제에요. 그리고 어차피 결과만 중요한 세상 아니에요? 못 하면 밤새서 좋은 결과 남기면 되는 거지.”


너무 격앙된 걸까? 하지만 좀 강하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정말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실습 때 친해 놓은 게 있으니까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겠지? 앞으로도 좀 더 잘 챙겨줘야겠다.


 그런데, 조교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 하세요?”

  “제가 이 바닥에서 10년째에요. 제가 for문[1]을 써도 수백 번, 수천 번은 더 썼어요. 1학년 과목쯤은 당연히 쉽죠.”

  “저도 조교님처럼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돼요?”

  “그냥 많이 하면 돼요. 저도 프로그래밍 처음 배울 땐 정말 힘들었어요. 한 10년쯤 해봅시다. 잘 하나 못 하나.”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2] 어떤 일을 1만 시간 동안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반론도 있다. 노력을 한다고 최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최고가 되지 못할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노력이 성공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확실하다.[3]


그런데 우리는 늘 쉬운 길만을 찾는다. 나도 얼떨결에 걸려 얻은 논문 하나로 졸업했으면 참 좋겠으니까. 그래, 그러면 나도 마음잡고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일까? 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의 가장 큰 함정은, 1만 시간을 넘긴 사람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당장 전 세계 우리 분야의 박사 4년차 이상 모든 연구원들부터 해서….[4]

00phd_pic13.jpg » 사진제공 / 김창대



시 정적이 흘렀다. 자주 들어 지겨운 질문들이라 짧게 끝낸 게 실수다. 그냥 좋은 이야기 길게길게 해볼 걸. 이번엔 먼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혼자 먹어요?”

  “제가 어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아침 수업을 못 갔거든요. 원래 수업 같이 듣는 애들이랑 밥을 먹는데, 오늘은 늦었어요.”

  “어이구. 몇 시까지 했길래요?”

  “세 시쯤에 자러 들어갔거든요. 아침에 알람 들었는데 다시 잠들었어요. 아침 수업 출석 체크 했다는 데 어쩌죠?”

  “세 시요? 뭘 그리 늦게까지 했어요.”

  “오늘 일반물리 과목 퀴즈 보거든요.”

  “퀴즈, 그거 점수 얼마 들어가지도 않잖아요. 공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다 부질없는 짓이에요.”

  “학점은 잘 받아야죠.”

  “그렇게까지 무리하면서 살지 않아도 돼요. 지금이야 학점 소수점 첫째 자리에 그렇게 목숨 걸고 그러지만, 나중 되면 다 거기서 거기에요.”

  “친구들은 다 이렇게 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세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면서 살아도 돼요. 1학년 때 공부 좀 안 한다고 인생 안 망가져요.”


내가 대학교 1학년이고, 어떤 나이 지긋한 선배가 (11살 차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금 주위 모두가 보고서 하나, 시험 하나에 목매다는데, 부모님도 선배들도 학점 이야기만 하는데 나 혼자 유유자적할 수 있을까? 가정법은 집어치우자. 나도 그 땐 목매달았다. 나도 새벽 세 시 넘기기 일쑤였고, 아침 수업 빼먹기 일쑤였다. 시험 잘 보고도 출석 점수가 안 좋아 C학점을 받기도 했다.


물론, 그걸 후회하기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냥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건강하게 살았어도 됐을 것 같다. 학점 약간 낮아진다고 해도 대학원은 붙었을 것 같고, 취업에 큰 장애물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몸과 마음이 건강해져서 지금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 그 때야, 학점 0.1이 오르면 행복은 10점쯤 오를 것 같았지만.


그런데 학생 표정이 좀 굳은 것 같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정말 전산과 올 생각 없어요?”


우리 학교는 1학년에는 학과 없이 입학해서 2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을 결정한다.


  “제가 어떻게 가요. 이렇게 못 하는데.”

  “아, 정말, 잘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처음 해보는데 그 정도로 이해하는 거면 정말 소질 있는 거예요. 제가 조교 한 두 번 한 게 아니에요. 정말 잘 하는 편이라니까요.”

  “저보다 잘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데요.”

  “정보올림피아드 한 애들이요? 그거 별 거 아니에요. 3학년만 가도 티도 안 나요. 뭐,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 날린 애들이야 계속 잘 하긴 하는데, 어차피 걔네랑 우리는 클래스가 다르잖아요. 프로그래밍 재밌어 하잖아요. 그럼 가는 거죠!”

  “에이, 너무 띄워주지 마세요.”

  “그럼 어느 과 생각하고 있는데요?”

  “화학과요.”

  “왜요?”

  “제가 화학 경시를 했거든요. 뭐 못 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적성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느냐가 적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얼마나 잘 참아낼 수 있느냐’, 이걸 적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전산이 재밌다, 그러면 끝인 거죠.”

  “그래도 전산은, 좀…. 아빠가 전산과는 가지 말랬어요.”

  “아버지께서요? 왜요?”

  “아빠가 아이티(IT) 쪽에 근무하시거든요.”

  “아, 죄송해요. 그럼 인정. 안 오셔도 돼요.”

  “하하하하. 이렇게 빨리 포기하시는 거예요?”

  “업계에서 오랫동안 근무해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을 제가 어떻게 이겨요. 그것도 자기 딸한테 시키기 싫다는 건데.”

  “그런데, 전산과 대학원은 어때요? 거기선 어떤 거 하는 거예요?”

  “정말 자세~하게 한 번 말씀드려요?”

  “아, 아뇨. 그냥 대충….”


아, 어렵다. 이걸 무슨 수로 설명한담. 대학교 1학년에게 예능 보고 게임한다고 말할 수는 없고….


  “제가 하는 건 주로 운영체제에 관련된 건데요, 그냥 그것들을 어떻게 고치면 성능이 더 좋아질까, 혹은 전기를 덜 먹을까 그런 거 연구해요.”

  “아, 그럼 막 윈도우즈 같은 거 만드는 거예요?”

  “하하하, 그걸 어떻게 만들어요. 그냥 이미 있는 걸, 일부분 고쳐보고 그러는 수준이에요. 운영체제를 만드는 건 큰 회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야 가능한 거고요.”

  “아….”


대학원에서는 엄청 대단한 걸 할 줄 알고 있었을 텐데. 환상을 깨뜨린 것 같아 좀 미안했다. 그래서 덧붙였다.


  “그렇게 우리가 고쳐보면서 만들어낸 기술들을, 회사에서 적용해서 제품을 만드는 거죠.”

  “그럼, 대학원은 재미있어요?”


재미…라니. 최근에 재미를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음, 사실 재미를 느낄 기회는 별로 없어요. 실습 시간에 하시는 건 간단해서 몇 십 분이면 다 구현하고, 바로 돌아가는 것도 확인해볼 수 있잖아요. 그치만 대학원에서 하는 일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구현만 해도 엄청 오래 걸리고요, 그러고 나면 그게 진짜로 성능이 올라가는지 확인해 봐야 해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결론을 내리고 나면, 또 그게 가치가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다른 사람이 했던 것은 아닌지, 검증을 받아야 하고요. 세계 최초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지거든요.”

  “헐. 정말 힘들겠네요.”

  “뭐, 그렇긴 해요. 되게 막막하고요.”

  “근데 그런 데를 오라고 한 거예요, 아까?”

  “누가 대학원 오랬어요? 전산 전공하랬죠. 대학원 오는 건, 저부터 말려 드릴게요. 그리고 어차피 인생살이 다 힘들어요. 안 힘든 게 없어요.”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대학생 시절 겪은 재밌는 일들 몇 가지를 이야기해주며 마저 밥을 먹었다. 아주 다행히도, 식사 후에 갈 곳은 나와 정반대의 방향이라, 바로 헤어질 수 있었다.



득, 학생과 나눈 대화가 다시 떠올랐다. 하나 하나 곱씹어보니, 전부 다른 사람과 나눠봤던 대화들이다. 그것도 여러 번.


어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예전에 들었던 말을 또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서 그렇겠거니 싶으면서도 조금은 짜증도 났다. 새로운 생각은 잘 못 해내는 것 같아서, 저렇게 굳어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어느덧 나에게도 그런 모습을 발견한다. 핑계는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보니, 가장 안전하면서도 재미있는 레퍼토리만 꺼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을 두 번째 만났는데, 지난번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나도 어른들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니 생각이 더 굳어가는 것 같다. 말을 반복하는 그 순간마다 내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내 생각이 맞는다는 확신이 더 커지게 되고, 다음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같은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반복.


다시 생각해보면 내 생각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첫째, 이 학생이 지금 전산을 재밌어 하고 있긴 하지만, 이미 잘 하고 있는 학생들을 이기기는 힘들 수도 있다. 이미 잘 하는 학생들도 재미있어 할 수도 있으니까. 또, 잘 하는 학생들이 노력까지 한다면, 어쩌면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제논의 역설처럼.


둘째, 학점 대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겨보려다가, 말 그대로 학점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도 대학원도 못 올 정도의 학점이 나왔을 수도 있다. 정말 인생 망가질 수도 있다.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고 한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단정할 수는 없다.


텔레비전에도 나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급작스런 암 선고를 받고 나니, 몸 축내가며 일했던 시간이 후회된다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이게 다 뭔가 하는 생각에 일을 확 줄이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며, 여러분도 지금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대개 ‘몸을 혹사시키며 살았던 세월’의 결과물에 의지해서 살고 있더라. 그 때 얻었던 능력 혹은 재산 덕에 지금의 여유가 가능하더라. 나는 이미 대학원까지 온 주제에, 학생의 상황도 모른 채로 단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지만, 아마도, 다른 학생을 만난다면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하겠지. 이렇게 꼰대가 되어 가는 건 아닐까? ‘소통은 듣는 것’이라고 열심히 가르치는 통에 정작 자신은 들을 기회를 놓치는 그런 어른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긴 참 싫은데, 안 그럴 순 없는 걸까?


그래, 내 나이 서른하나, 스무 살 땐 확고하게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던 그 나이, 이 나이를 먹어놓고 꼰대가 아니길 바라는 것도 과욕이겠다. 차라리 내가 꼰대임을 인정하고 조심 조심 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땐 어른이 된다는 게 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굳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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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or문: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정해진 횟수만큼 반복해서 실행하려할 때 쓰는 문법. 많은 경우 ‘for’라는 단어로 시작하기 때문에 ‘for문’으로 불린다.

[2] 이상훈, <1만 시간의 법칙>, 위즈덤하우스. “1만 시간의 법칙”은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저서 <아웃라이어: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에 나온 것으로 유명해졌다.

[3] 충분조건, 필요조건: 강원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내가 대한민국에서 돈이 제일 많다”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 때, 그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것을 “충분조건”이라고 한다. 만약, 그 사람이 “강원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자. 이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조건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주장은 보나마나 거짓이다. 따라서 그 사람의 주장이 참이려면 이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것을 “필요조건”이라고 한다.

[4] 박사 4년차면, 보통 전공 공부를 10년쯤 하게 된다. 학부 때는 전공 공부 이외의 것도 많이 하니까 10년을 평균해서 하루에 4시간씩 공부한다고 가정하자. 보수적으로 잡아서 평일에만 한다고 하자. 또, 1년은 55주이지만 휴가와 각종 공휴일을 제하기 위해 5주를 빼자. 그러면 일주일에 20시간씩 50주이므로 1년에 1000시간이 나온다. 그러니 박사 4년차만 되도 1만 시간은 채우게 된다.

[5] 제논의 역설: 거북이와 토끼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1m 앞서서 출발한다고 하자. 토끼가 1m를 쫓아갈 동안 거북이는 얼마간의 거리를 갔을 것이고, 그만큼의 거리를 토끼가 다시 쫓아가는 동안 또 거북이는 얼마간의 거리를 갔을 것이다. 따라서 토끼는 거북이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는 제논이 만들어서 ‘제논의 역설’이라 칭한다. 물론 ‘역설’이며, 틀렸다.  http://ko.wikipedia.org/wiki/%EC%A0%9C%EB%85%BC%EC%9D%98_%EC%97%AD%EC%84%A4


   ■ 작가의 말

이번 편을 써놓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소설을 한 편 한 편 써나가면, 내 생각이 하나 하나 정리되고, 그렇다면 내 생각이 조금 더 굳어져 가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내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그 생각을 딛고 더 발전해나갈 가능성도 없어지는 거겠죠? 아래쪽의 시멘트가 굳어야 위쪽의 시멘트를 올릴 수 있는 것처럼요. (물론, 안 그래서 사고 나는 경우도 있지만.)


서태지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어요.


“매년 내 방 문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 버린 건 아닐까” (서태지 7집 <로보트> 중)


적어도 저는 누운 키는 계속 자라고 있으니까, 아직 사고가 멈추진 않은 것 같아요. ^^


※ 누운 키: 누웠을 때 땅바닥으로부터 가장 높이 솟아 있는 곳까지의 거리로,

제 경우엔 배 중앙 부분까지의 거리입니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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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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