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에서
»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에 그린 <까마귀가 나는 밀밭>. 당시 그는 정신병원에 수감된 상태였으나 이 작품 이후로도 자살하기 전까지 일곱 점의 그림을 더 그렸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지난 5월, 실험에 참여한 학부생들의 설문지를 정리하다가 놀랐다. 사회공포증이나 우울증, 아스퍼거장애 등을 이유로 치료와 처방을 받았다고 보고한 경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나눈 대화를 더듬어 보면, 그들은 별다른 치료나 처방 기록이 없는 ‘정상적인’ 학생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아픈’ 학생들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아픈’ 학생으로 만들었을까? 작지만 마음 속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의문이었다.
‘아픈’ 사람, 즉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에 대한 통념은 종종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한 예로, 연쇄살인범 검거 보도와 흔히 맞물려 등장하는 정신질환이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 혹은 ‘범죄자이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다’라는 식의 논리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조직적이고 전문적으로 범죄를 자행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전부가 보통 수준 이상의 사이코패스일 것이다. 정말 그럴까?
정신질환 오진에 대한 경계
이탈리아 팔레르모 대학의 시메티 교수 연구팀이 2014년 발표한 연구 결과[1]는 그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마피아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시칠리에서 수감 중인 마피아 단원과 일반 범죄자들을 비교한 결과, 마피아 단원 중 단 한 명도 사이코패스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지극히 정상이었으며 가족과 지인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정신장애와 관련된 ‘사회적 낙인’이 지닌 허점을 잘 보여준다.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제5판(DSM-IV)의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앨런 프랜시스는 최근 출간된 그의 저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원제 Saving Normal)>[2]에서 정신장애의 과잉진단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 한 사례가 자폐증일 것이다. 미국의 유명 매거진 <아틀란틱>이 4월에 실은 기사[3]에 따르면, 어린이 68명마다 1명 꼴로 자폐증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고 한다. 좀 더 이른 나이에 자폐증의 유무를 진단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자들이 다양한 실험을 고안해내고 있으며, 심지어 기하학적인 도형에 대한 선호나 날카로운 울음소리조차 자폐의 신호로 여겨져 이런저런 연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진단 연령이 어릴수록, 발달이 다소 늦은 아이들과 자폐 증상을 지닌 아이들을 명확히 구분할 확률은 떨어진다. 노스캐롤라이나-채플 힐 대학의 2007년 연구[4]에 따르면 두 살 무렵에 자폐증 진단을 받은 유아들이 네 살 무렵에 정상으로 진단되는 경우가 전체의 30퍼센트에 근접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오진은 단순히 오진으로 끝나지 않는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소속 심리학자 게르트 기거렌처는 그의 저서 <숫자에 속아 위험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원제 Calculated Risk)[5]에서, 위양성(false-positive) 판정, 즉 실제로는 질병이 없는데도 질병이 있다고 판정을 내리는 행위가 초래하는 심리적 비용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유방암, 에이즈, 자폐증과 같은 육체적/정신적 질병은 사회적 낙인과 그에 따른 심리적 고통도 함께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신장애가 지닌 사회적 성격 탓에, 무엇이 ‘장애’인가 아닌가는 쉽게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자폐증과 공감각: 장애는 '동전의 한 면'일 수도
이뿐만 아니라, ‘장애’라고 여겨지는 증상은 단지 동전의 한쪽 면일 수도 있다. 노스 캐롤라이나 채플-힐 대학에 있는 프랭크 포터 그레이엄 아동발달기관에서 실시한 2014년 연구[6]는 자폐 증상에 동반하는 뛰어난 시각적 능력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자폐아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사회적 기술을 익히고 활용하는 능력이 매우 뒤떨어지는 탓에 주변의 도움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가기 힘들지만, 반면에 타고난 시각적 능력을 바탕으로 사회적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 있어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자폐아는 무능력하다’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그들이 지닌 장애는 뛰어난 능력의 다른 얼굴일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인 특성과 종종 결부되곤 하는 공감각(synesthesia)도 역시 자폐증과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바론-코헨 연구팀은 2013년, 자폐증이 있는 성인과 일반인 집단에게 공감각 검사를 실시했다.[7] 놀랍게도 자폐증이 있는 성인 집단에서 공감각자가 발견된 비율이 세 배 가까이 높았는데, 발견된 공감각의 종류는 가장 자주 발견되는 색-자소 및 청-자소 뿐 아니라 맛, 냄새, 통증 등으로 다양했다.
연구자들은 자폐증과 공감각의 관계를 뇌 신경망의 ‘가지치기’에서 찾고자 했다. 충분한 ‘가지치기’가 일어나지 않은 탓에 사라져야 할 뇌내 신경망이 그대로 남아, 공감각 혹은 자폐증이라는 서로 다른 두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자폐증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이미 밝혀진 바 있고, 공감각 역시 관련된 유전자가 X염색체에 있을 가능성(통상 공감각은 남성에 비해 여성한테서 6배 정도 더 빈번하게 발견된다)을 고려한다면, 이 둘은 같은 줄기에서 자라난 다른 두 가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글만 박사가 2007년 제작한 공감각 검사 결과[8]에 따르면, 필자인 나 역시 색-자소 공감각자에 해당된다. 자폐아들이 자신의 과다감각(sensory overload)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제작한 동영상[9]을 보면서 낯설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과다감각까진 아니더라도, 개념이나 논리, 복잡한 계획을 색이나 형태로 대신하는 일은 숨쉬듯이 자연스러우며 시끄러운 소리나 빛 등 오감에 유난히 예민한 편이다. 정도의 차이, 즉 연속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한쪽 끝에는 무감각, 맞은편 끝에는 과다감각이 자리하는 그런 2차원의 축 위 어딘가에 선 채 우리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도 내가 서 있는 지점은 무감각에서는 조금 멀고 과다감각에서는 약간 더 가까운 지점일 것이다.
장애와 능력의 이분법은 생각 외로 모호하다
최근의 여러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고려할 때, ‘비정상’과 ‘정상’, 혹은 ‘장애’와 ‘능력’의 이분법은 생각 외로 모호하다. 경계가 모호해도 문제가 되지만, 충분한 논의 및 심사숙고를 거치지 않은 채 섣불리 경계를 나누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일찍이 푸코는 ‘지식권력‘(power knowledge)이라는 개념을 들어 지식을 통제하는 권한은 곧 타자에게 가하는 권력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누군가를 ‘정상’ 혹은 ‘비정상’으로 지칭하는 일은 상대의 사회적 지위를 정해주는 ‘권력’의 행사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누구의 무엇을 가리켜 ‘비정상’ 혹은 ‘장애’라 판단을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쉬워서도 안 된다. 몇십 년에 걸쳐 수 차례 개정을 거쳐온 학술서에 의거한 판단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될 순 없다.
문득 정규재 논설의원이 <한국경제> 칼럼에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겨냥하며 했던 말, ‘감정조절 장애에 함몰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던 말과 그에 따른 논란[10]을 상기한다. 너무나 멀쩡해 보이던 학부생들이 설문지에 기록한 우울증 및 사회공포증 병력을 보며 놀랐던 일을 상기한다. 정신장애 진단이 어쩔 수 없이 수반하는 사회적 낙인에 대해, 또한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 입을 크고작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무엇이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을까. 그들 전부가 정말로 '아픈 사람'들일까. 혹은 무엇이 그들을 '아픈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주]
[1] Schimmenti, A., Capri`, C., La Barbera, D. and Caretti, V. (2014), Mafia and psychopathy. Criminal Behaviour and Mental Health. doi: 10.1002/cbm.1902
[2] Frances, A. (2013). Saving normal: An insider’s revolt against out-of-control psychiatric diagnosis, DSM-5, Big Pharma, and the medicalization of ordinary life.
[3] 어린이 68명마다 1명 꼴로 자폐증 진단이 내려진다는 <아틀란틱>의 기사: http://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14/04/1-in-68-children-now-has-a-diagnosis-of-autism-spectrum-disorder-why/360482/
[4] Zwaigenbaum, L., Thurm, A., Stone, W., Baranek, G., Bryson, S., Iverson, J., ... & Sigman, M. (2007). Studying the emergence of autism spectrum disorders in high-risk infants: methodological and practical issues. Journal of autism and developmental disorders, 37(3), 466-480.
[5] Gigerenzer, G. (2002). Calculated risks: How to know when numbers deceive you. Simon and Schuster.
[6] Hume, K., Boyd, B. A., Hamm, J. V., & Kucharczyk, S. (2014). Supporting Independence in Adolescents on the Autism Spectrum. Remedial and Special Education, 35(2), 102-113.
[7] Baron-Cohen, S., Johnson, D., Asher, J., Wheelwright, S., Fisher, S. E., Gregersen, P. K., & Allison, C. (2013). Is synaesthesia more common in autism?. Molecular autism, 4(1), 40.
[8] Eagleman, D. M., Kagan, A. D., Nelson, S. S., Sagaram, D., & Sarma, A. K. (2007). A standardized test battery for the study of synesthesia. Journal of neuroscience methods, 159(1), 139-145.
[9] 자폐아들의 과다감각을 동영상으로 직접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매셔블의 기사: http://mashable.com/2014/04/23/autism-simulations/
[10] 세월호 참사 5일 후, 정규재 논설위원이 <한국경제>에 쓴 2014년 4월 22일자 칼럼 <이제는 슬픔과 분노를 누그러뜨릴 때>.: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42193961
김서경 미국 일리노이대학 인지신경과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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