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제가 쓴 논문이 아니라서요”


pic10.jpg » 사진 / 김창대



#10.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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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은 머리를 각성시킨다. 더 자기 위한 각성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들을 고려하여 가장 늦게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을 도출해낸다. 모든 우선 순위는 재조정된다. 아침밥 생략은 일순위다. 샤워는 되도록 생략하고 머리 감는 데 필요한 시간만 남긴다. 계산이 끝나면 알람을 다시 맞추고 잔다. 애석하게도 알람은 순식간에 다시 울린다.


인간은 매일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존재이다. 어제 5분 만에 머리를 감았다면 오늘은 4분 만에도 감을 수 있다. 어제 1킬로미터를 15분에 걸었다면, 오늘은 13분 만에도 걸을 수 있다. 그러니 나는 3분을 더 잘 수 있다. 하지만 3분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시간이 아니다. 채 잠이 들기도 전에 지나버린다.


인간은 영장류이다. 희생이란 걸 할 수 있다. 물론 피피티가 완벽하다면 발표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말을 잘 한다. 피피티가 희생해도 된다. 그러니 어제 밤에 만들어둔 것으로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니 잠깐 더 자도 된다.


태양을 거슬러 자외선 차단 크림을 만들어낸 인간도, 지구의 자전과 공전만큼은 숭배한다. 시계란 우상을 만들어두고 굴복한다. 그러니까, 결국 일어났다는 말이다. 느지막히.



늘은 논문 스터디, 내가 공부한 논문을 발표할 차례인 날. 시작은 2시부터다. 연구실에 도착한 건 12시 50분. 점심도 포기하고 우유 자판기에서 초코 우유를 하나 뽑아 왔다. 컴퓨터 마우스를 휙휙 대니 어제 밤에 만든 피피티 파일이 뜬다. 자, 보자. 그림 몇 개를 아직 안 넣었는데…, 애니메이션 효과도 몇 개 더 넣어야 하고….


초코 우유를 깠다. 두어 모금 마신다. 당이 차오른다. 가물었던 췌장에서 인슐린이 새어나올 틈을 엿보기 시작한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아씨, 급한데. 연구실을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아들! 뭐하다 전화를 늦게 받니?”

   “연구실에 있었어요. 왜요?”

   “왜긴 왜야, 아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하랬잖니!”

   “아, 제가 전화를 좀 안 했죠?”

   “열흘도 넘었다. 목소리 까먹겠다. 뭐하고 있었어?”

   “아, 엄마. 조금 이따 2시부터 발표가 있어요.”

   “그래? 그럼 후딱 준비해야겠네? 울 아들 잘 해라~”

   “네, 엄마. 그럼 끊어요.”

   “그래. 전화 좀 꼬박 꼬박 하고 그래!”

   “알았어요.”


전화를 안 하려고 안 하는 건 아닌데. 항상 집에 전화 한 번 해야지 싶은 시간은 밤 11시도 훌쩍 넘는 시간이다. 밤의 감성이 돋으면서 엄마 생각도 나는 걸까? 너무 늦었으니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다가 그렇게도 늦어지고 그러는 것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일주일은 전화 안 해도 되겠군.


전화를 마치고 들어가는데 기똥찬 말이 떠올랐다. 그래, 이런 말로 발표를 시작하자.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아이디어가 하나씩 생각난다니까. [1]



후 2시. 사람들이 모였다. 교수님은 다른 일이 있으신지 못 오셨다. 발표를 시작했다.

   “오늘 제가 발표할 논문은 Utility-based Cache Partitioning[2]이란 논문으로 마이크로(MICRO)[3] 2006년도에 발표된 논문입니다.”


그리고 아까 떠올랐던 말을 이었다.

   “중국집 가서 짜장면, 짬뽕에 앞서 탕수육만 먼저 드셔본 적 있으실 겁니다. 패스트푸드점에 가서도 햄버거보다 감자튀김만 먼저 먹어버리기도 하는데요. 먼저 먹는 정도면 다행인데, 누구 한 명이 재빨리 다 먹어치우면 짜증나잖아요. 그런데 바로 중앙처리장치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공유되는 캐시메모리를 하나의 프로그램이 많이 잡아먹어버리기도 하는 것이죠. 더 큰 문제는, 캐시메모리는 많이 잡아먹으면서도 정작 성능은 별로 올라가지 않는 프로그램도 많다는 것입니다. 왜, 어떤 친구들은 자기가 음식 다 먹어버리고도 배고프다고 하잖아요. 난 조금만 더 먹어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는데 말이죠. 이 논문은 바로 그런 현상을 해결해서 전체적인 성능을 올리려는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사람들이 웃는다. 뿌듯하다. 그러면서 문득 이걸로 다른 사람들은 웃을까 생각해봤다. 다들 중국집 가서 탕수육에 먼저 젓가락을 댈 테니 공감 포인트는 있을 것이다. 허나 너무 식상하다. 여기서는 예상 외의 것과 연결시킨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연결된 것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연구실 사람들만이 웃을 수 있다. 같은 것을 공부한다는 것은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삼 연구실 사람들이 좋아진다.


막 두 번째 장으로 넘어가려는데, 준상이가 손을 든다.


   “그런데 캐시는 way-partitioning하겠다는 건가요?”


‘way-partitioning’이라는 단어, 석사과정 학생들은 당연히 잘 모를 것이다. 두어 장 뒤에 설명해놓은 단어다. 지금 아는 체하고 싶은 건가? 그래, 순수한 궁금증이겠지. 준상이만 알아들으라고 짧게 대답했다.


   “네.”

   “이거 실험을 어떻게 했어요?”


박사 4년차나 된 주제에 논문발표를 하면서 실험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면, 왕따를 당한대도 할 말이 없다. 그걸 왜 지금 묻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 바닥에서 캐시 연구를 했다 하면 뻔하지. 시뮬레이터[4]에 제안한 기능을 구현해 넣고 실험했겠지. 가장 잘 알 만한 사람이 왜 묻니.


우리나라 학생들은 그렇게도 질문을 안 한다고 한다. 주입식 교육에 세뇌당한 건지, 경쟁이 생활화된 문화에서 모른다는 걸 드러내 보일 수가 없는 건지, 인내심이 좋아 언젠가는 말해줄 걸 굳게 믿고 기다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질문은 권장해야 하고 질문을 받으면 절대 귀찮아하지 말아야 한다고 EBS가 알려줬다. 그러니 대답을 했다.


   “자체 제작 시뮬레이터를 써서 실험했습니다.”

   “실험할 때 설정 값들을 어떻게 했는지는 아직 안 나왔지만, 캐시메모리에 way-partitioning을 넣으면 캐시메모리 접근 속도가 느려져야 되는 것이잖아요. 그런 효과가 정확하게 반영되어 있나요?”


래, 이거 질문하려고 그 뻔한 질문들을 한 거구나. 아오.


첫째, 왜 초장부터 부정적인 질문을 해서 다 된 밥은커녕 갓 앉혀 놓은 밥에 재를 뿌리나? 처음에 논문의 핵심을 요약한 건 전체 그림을 그려두고 상세 내용을 들으라는 의미다. 이런 질문 받으려고 멋들어진 비유를 생각해낸 게 아니란 말이다. 비평을 하고 싶으면 끝까지 듣고 나서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둘째, 아직 안 나온 정도가 아니라, 아직 첫 장이다. 실험 설정 값들이야 당연히 나중에 보여줄 것이니 그 때 확인해보고 질문하면 될 게 아닌가. 혹시 빼먹고 안 보여준다면, 그 때 따지면 된다.


셋째, 정확한 답변을 하려면 결국 반도체에 직접 구현해보는 방법밖에 없다. 여기에는 매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그래서 우리 분야에서는 직접 구현하지 않고 시뮬레이터를 사용해서 실제 구현 시의 성능 향상을 예측만 해본다. 정확도를 약간 희생하는 대신, 더 다양한 기법들을 시도해보기 위한 것이다. 이걸 잘 알 만한 사람이 왜 묻는 것인가.


넷째, 반도체에 직접 구현을 한다고 해도, 결국 어떤 기술을 사용해 구현하느냐에 따라 캐시 메모리 접근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전자과 연구자들의 전공 분야이다. 우리 분야가 할 일이 아니다. 이것 역시, 알 만한 사람이.


결론적으로, 내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고 준상이도 그걸 안다. 나는 그저 논문에 나온 말을 인용할 수밖에.


   “음, 논문에 보면, 제시된 기법에서 사용되는 회로들은 critical path에 있지 않아서 캐시 메모리 동작 속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나와 있긴 한데요.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반도체에 구현해보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네요.”


그렇게도 질문을 안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라, 질문에 서투른 걸까? 아니면 나도 그렇게도 질문을 안 하는 우리나라 학생이라서 질문 자체를 싫어하는 걸까?


준상이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어째서 critical path에 없는지, 그 이유는 나와 있나요? 제가 보기엔 critical path일 것 같은데…”


아오, 발표 진행 좀 하자.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논문에서는 그렇게 가정했습니다. 더 질문 없으시면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과학이란 게 공리(公理, axiom)라는 벽돌로 쌓은 성이다. 말이 좋아 공리지, ‘아주 그럴듯한 가정’일 뿐이다. 공리가 무너지면 그 공리를 기반으로 한 이론들은 무너진다. 반면, 공리가 없다면 아무 것도 쌓을 수 없다. ‘이렇게 가정했다’라는 말은 결국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것이다.



문 스터디는 다 함께 논문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발표 도중에라도 질문을 하는 것이 권장된다. 보통은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배경지식이 부족한 경우에 질문을 한다. 혹은 발표가 끝나고 나서 “이런 방식을 사용해도 문제를 풀 수 있지 않을까요?”라든가 “이런 문제도 파생될 것 같은데, 더 연구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같은 매우 발전적인, 그러니까 잘하면 후속 논문을 쓸 수도 있을 법한, 질문들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유형의 질문들도 많이 나온다.


첫째, 조금만 기다리면 당연히 설명할 것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 발표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그러면 탕수육을 어떻게 나누어 먹으면 될까요? 모두가 가장 배부를 수 있도록 나누어 먹자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입니다. 무성이는 많이 먹어야 배부르고, 철수는 조금만 먹어도 배부르며, 한길이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도무지 배가 부르지 않는다고 합시다. 이 때, 무성이에게 탕수육을 많이 주고, 철수는 조금만 주고, 한길이에게는 거의 주지 않는 것이, 한정된 탕수육으로 모두를 가장 만족시키는 방법일 것입니다. 한길이는 많이 줘봤자 배가 안 부를 테니까요. 그러니까 공리주의[5]라 할 수 있죠.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거요.”


그러자 길영이가 질문을 했다.

   “그러면, 누가 얼마나 먹어야 배부른지는 어떻게 알죠?”


그것은 바로 다음에 설명할 내용이었다.

예전엔 이런 질문이 참 싫었다. 청소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청소를 시키면 청소가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그런데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방법을 찾아냈는데,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 순서대로 설명하기’이다.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을 좇아 슬라이드를 구성하는 것이다. 오래도록 함께 생활해온 연구실 사람들 대상으로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긴, 이 바닥 사람들 생각의 흐름이 다 거기서 거기긴 하지.


오늘도 다음과 같이 답하면서 희열을 느꼈다.

   “대본대로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다음 장을 보실까요?”


째, 실험 결과에서 예외의 경우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 분야가 세상의 이치를 하나의 수식으로 표현하길 시도하는 이론물리학도 아니거늘, 어떤 기법이든 늘 예외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한길이는 많이 줘봤자 배부르지 않을 테니 탕수육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일정 양 이상을 먹지 못하면 배가 고파 실신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배부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어제 밤에 먹은 야식도 영향을 미치고, 오늘 마신 물의 양도 영향을 미칠 뿐더러,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밥을 차려준 방식, 현재 몸무게, 먹기 위해 사는지 살기 위해 먹는지 등등이 모두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왜 예외가 생겼는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논문에 설명되어 있는 경우에는 표시해놓았다가 질문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대답해주곤 하지만, 아무 설명이 없는 경우도 있다. 저자들도 모르는 거겠지 뭐.


셋째, 논문에 대한 불만 표출이다. 비교 실험이 충분하지 않을 때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예를 들어 탕수육을 나누어 먹는 방법에는 몸무게가 많은 순으로 많은 양을 먹는 방법, 돈을 많이 낸 순으로 많은 양을 먹는 방법, 한 입에 많은 개수의 탕수육을 넣을 수 있는 순서로 많은 양을 먹는 방법 등이 있는데, 왜 이 모든 방법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반문하고 싶어진다. “전부 실험하기 힘들어서 안 했겠지. 너 같으면 그걸 다 하고 싶겠냐?”


넷째, “이 논문이 왜 뽑혔는지 모르겠다”는 질문이다. 약간의 장점이 있는 논문이지만 이렇게 좋은 학회에 뽑힌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질문한 사람은 어떤 논문을 썼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떠올리고, 비어 있는 내 이력서를 떠올리고, 생각을 멈춘다.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하다 지쳤을 때, 최후의 핑계는 이것이다.


   “제가 쓴 논문이 아니라서요.”


그러면 한바탕 웃고, 질문이 넘겨진다. 내가 책임질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는 내가 쓸 논문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절망한다.


표를 잘 하고 나면, 허무하다. 다시 한 번 ‘내가 쓴 논문이 아니어서’다. 이 논문처럼 아이디어도 간단하고, 비교 실험도 부족하고 예외 경우도 많은 논문이 출판될 동안, 나는 뭐하고 있었나 싶어서다. 한 시간 남짓의 스터디, 이거 하자고 잠을 줄이고 아침과 점심을 포기했는데, 이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 모르겠어서다. 물론 좋게 보자면 다른 사람의 공부를 돕는 일이고 스스로도 논문을 자세히 읽는 훈련일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난 언제 졸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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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같은 유명한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음 글에 나와 있다. “창의력의 대가들은 이렇게 아이디어를 얻는다”, 허핑턴 포스트, 2014년 7월 23일, http://www.huffingtonpost.kr/2014/07/23/story_n_5612022.html

[2] Moinuddin K. Qureshi and Yale N. Patt. 2006. Utility-Based Cache Partitioning: A Low-Overhead, High-Performance, Runtime Mechanism to Partition Shared Caches. In Proceedings of the 39th Annual IEEE/ACM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 (MICRO 39). IEEE Computer Society, Washington, DC, USA, 423-432. 논문스터디에서는 주로 최근 2~3년 안에 나온 논문들을 발표한다. 하지만 본 소설에서는 전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다소 오래된 논문을 인용하였다.

[3] 마이크로(MICRO): 컴퓨터구조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학회들 중 하나. 정식명칭은 “International Symposium on Microarchitecture”이며, 보통 줄여서 마이크로(MICRO)라 부른다.

[4] 시뮬레이터(simulator): 실제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 혹은 기계. 중앙처리장치(CPU)는 실제로 반도체로 만들어서 테스트하기엔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따라서 중앙처리장치(CPU)의 동작을 흉내 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새로운 기능 혹은 구조를 추가해 테스트해보며 연구하기도 한다.

[5] 공리주의, http://ko.wikipedia.org/wiki/%EA%B3%B5%EB%A6%AC%EC%A3%BC%EC%9D%98


   작가의 말

그러고 보니 저도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지 꽤 오래된 것 같네요. 딸들은 매일 전화하기도 하던데. 아들만 둘을 낳은 어머니가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것도 아니다, 라고 하죠. 모든 것이 부모님의 책임인양. 하지만 부모님도 아들일지 딸일지조차 선택하지 못했어요. 그저 나온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키워 온 것이죠.

  오늘은 어머니께 전화 한 통 드려야겠어요. 그렇다고 딸처럼 매일 전화를 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아들노릇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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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논문, 발표, PPT, 질문, 설명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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