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자의 "미술관 옆 실험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창의성, 독창성 등에서 공통점을 지닌다고 합니다. 실제로 최근 융합의 시도도 많습니다. 생물학과 물리학 연구자인 필자들이 과학과 예술의 소통 가능성을 살피는 실험에 나섭니다.

기계생명체, 살아 움직임의 욕망과 두려움

[2] 최우람 작가…생명은 움직인다 '키네틱 아트'


00CWR3.jpg » Custos Cavum, 2011, 최우람


명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에 <사이언스온>의 많은 독자들은 머리 속에 철학적, 과학적 정의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하며 환경의 변화에 맞게 진화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한다. 물리학적인 정의도 가능하다. 자신의 엔트로피를 낮추기 위해 음의 엔트로피를 흡수하여 유지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사실 생명은 항상성, 반응성, 세포성, 탄소유기물 등의 특징을 갖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 특성으로만 정의하기는 어렵다. 과학자들은 생명의 비밀을 풀기 위해 연구하지만 생명의 정의조차 내리기 힘들다. 과학자 외에도 생명 현상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이는 많은 예술 작가들이 ‘생각하는 동물’인 우리 인간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미술관 옆 실험실'에서 과학을 연구하는 박상준과 서범석은 기계 생명체를 주제로 작업을 하는 최우람 작가를 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우람 작가는 움직이는 예술인 ‘키네틱 아트’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2008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에 초청되었으며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그의 작품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Opertus Lunula Umbra)'가 전시되고 있다.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조각. Opertus Lunula Umbra, 2008, 최우람]
 
 

기계 생명체 : 욕망과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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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의 윗층에는 많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대부분은 미술 관련 서적이었지만 <시간의 역사>, <인공생명> 같은 책들이 눈에 띄었다. 최우람 작가는 천문학과 생물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어떻게 물질이 별이 되고 별에서 생명이 진화했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그의 호기심은 최우람 작가의 주요 수식어인 ‘기계 생명체’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 기계 생명체들은 느리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때문에 작품이 진짜 살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전통적인 의미의 조각은 움직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우람의 작품은 직접 보거나 최소한 동영상으로 감상해야 한다. 3차원 조각에 시간의 축을 더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화 <터미네이터 4: 구원>의 절정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터미네이터는 주인공의 총과 폭탄 세례를 맞는다. 폭발이 일어나 기계를 감싸고 있던 유기물 조직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지만 뼈대를 이루는 기계는 여전히 주인공을 향해 간다. 생명체와 기계의 특성을 극명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인간이 철기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원인은 철이 유기물보다 강인하기 때문이다. 철은 인간을 칼로 찌를 수도, 갑옷으로 몸을 보호할 수도 있다. 몸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에 희생되는 것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기계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동시에 그것에 지배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내포하고 있다.


그래도 주차된 차가 두렵지 않은 것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우람의 작품은 스스로 움직인다. 그래서 어떤 작품에서는 낯설음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작가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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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CWR2.jpg » 자화상, 1977. 최우람 작가가 일곱 살 때인 1977년에 그린 그림. 최우람은 예술가이자 동시에 과학자이다. 그의 작품은 그가 만든 물리 법칙과 생명의 원리를 충실히 따른다. 단지 전기를 먹고 몸은 금속과 반도체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먼 외계의 낯선 세계에서 차원을 뛰어넘어 온 듯한 독창적인 느낌을 준다. 최우람은 자신의 이름을 딴 ‘기계 생명체 연합 연구소(United Research of Anima Machine, URAM)’를 설립하여 새로운 기계동물을 발견하여 전시회를 통해 세상에 보고하고 있다. 우람연구소는 우리가 현재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현대의 기계 생명체를 세계 최초로 이름을 부여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최우람은 기계 생명체의 이름을 지어줄 때 분류학에서 사용하는 이명법이나 삼명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린네에 의해 확립된 이명법은 생물학에서 종의 이름을 지을 때 쓰이는 명명법이다. 종의 이름은 속명과 종명 두개로 구성되어있다. 예쁜꼬마선충의 경우 Caenorhabditis elegans (시노랩디티스 엘레강스)라는 학명을 갖고 있다. 학명은 라틴어로 구성되어 있어 전세계에서 공식적으로 통용된다.


우람의 할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 자동차의 엔지니어였으며 부모님은 모두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래서 그는 어린 시절 자연스레 로봇을 그렸고,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도 평범한 그 또래와 마찬가지로 입시제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과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수학에 흥미가 없었던 최우람은 재능이 있는 미술을 전공하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대학시절 과제로 시작한 키네틱 아트에서 자신의 오래 전 꿈을 다시 발견한다. 생명체와 같이 움직이는 로봇을 만드는 어린 시절의 꿈.


[Custos Cavum, 2011, 최우람. 구멍의 수호자]


위의 작품을 보라. 물개의 앙상한 뼈를 연상시키는 이 철제구조물은 얼핏 보면 고물을 모아다 용접해 놓은 흔한 재활용 작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몇 초만 더 관찰하면 빛을 반사한 금속 표면의 아름다움 외에도 굉장히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생명체가 물질대사를 위해 기체를 교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영원히 작동할 것 같은 기계지만 마치 죽음에 임박한 듯이 들숨은 천천히 들이쉬지만 날숨은 거칠게 내쉰다. 갈비뼈 중간중간에 동충하초를 연상시키는 무엇인가가 자라고 있다. 그것들 또한 손짓하듯 움직이고 있다. 이 간단한 움직임만으로도 작가는 기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생명은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살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animal이라는 말은 숨쉬다를 뜻하는 라틴어 animalis에서 파생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동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의 방식대로 숨을 쉰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허파로 호흡을 하고 어류는 아가미로 호흡한다. 식물은 기공을 통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한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 지식을 환기한다고 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이 숨을 쉰다는 것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최우람의 작품에서 느끼게 되었다.



기계 생명체들의 복제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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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계 생명체들은 서울 연희동의 작업실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대형 작품을 만들기 위해 일반주택의 벽을 허물어 만든 작업실은 밖에서 보기에 괴상한 공장에 가까웠다. 작업실에는 ‘공통조상’에 해당하는 프로토타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프로토타입들은 작품 설계에서 완성된 작품이 나오기 전에 시험버전으로 만들어진, 마치 자궁에서 발생을 멈춘 태아 같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패작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살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시험 버전을 만들고 개조하는 공학적인 방법을 이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삐걱대는 소리를 잡아야 하고 설치된 작품의 유지 관리가 쉽도록 메뉴얼까지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반복은 1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고 한다. 개발 과정에서 외부 형태는 비슷하지만 내부의 작동 원리가 통째로 바뀐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율적인 작업을 위해 우람 연구소의 10여명의 협력자(staff)들이 모여 분업을 통해 작품을 복제/생산(reproduce)한다. 작가 한 명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우람 작가는 설계를 도맡아 하고 회로 담당자와 기계 담당자 등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조각을  전공한 그의 부인은 운영자로 일하고 있다. 실제로 이 작업실은 출퇴근부를 기록하는 ‘우람 디자인’이라는 정식 회사다.


작업실 한 귀퉁이에 철을 깎고 붙일 때 쓰는 각종 기계 및 공구가 놓여 있었고 ‘도구는 쓰고 나면 제자리에’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배기장치가 되어 있는 작은 방에는 페인트 및 화학 약품들이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다. 작업실이 운영되는 원리가 머리에 들어오자 이곳이 실험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과학자들은 무언가를 분해/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근본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는 반면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만이 다른 것 같았다.



창조주와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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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인조인간 데이빗은 자신의 설계자(엔지니어)를 찾아나선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당신들의 창조주가 그럴 만한 능력이 있어서 당신을 창조했다고 한다면, 당신들은 얼마나 실망스러울까요?”


나의 어릴 적 레고(LEGO)로는 로봇이나 우주선이 단골이었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나의 창조물을 본다는 것이 즐거웠다. 지금은 여행을 하거나 영화를 볼 때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우람은 어린 아이처럼 자신의 생명체를 만들어 세상에 보고하고 있다. 최우람만의 물리 법칙과 생명의 원리로 생명체를 정교하게 ‘설계’한다. 작가는 작품에 붙여주던 신화를 공부하다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우연이 아닌듯 그의 작품은 최근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최근에 작품 허수아비,우로보로스, 파빌리온(Pavillion), 회전 목마를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기존의 방식을 탈피하여 새로운 작업을 보여준다. 또 기존 작품의 제목이 기계 생명체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집중한 반면, 최근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와 세계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즉 최근 작품에 작가의 의도와 세계관이 강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작가는 작품에 어떤 의미를 담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은 작품을 창조할 때 거기에 의미를 담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지구에 태어났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우리의 직관을 배반한다. 우리는 우연히 나타난 자기복제 분자가 진화를 거듭한 결과물이라는 것이 현대 과학자들의 주된 추측이다. 난 인조인간 데이비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우리 존재에 특별한 이유는 없어. 그러나 나는 너를 만들어서 즐거웠다”


□ 최우람 작가의 홈페이지(www.uram.net)에 가면 초기부터 최근까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서범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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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범석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유전과 발생 연구실, 박사후연구원
‘유전과발생’ 실험실에서 예쁜꼬마선충의 텔로미어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2015년 가을 이후 박사후연구원). 예술에 관해 무관심하다 우연히 들른 갤러리에서 예술이 주는 낯선 느낌에 반하게 되었다. 과학과 예술의 창작과정에 관심이 많다. 길고양이 홍시와 반시를 키우고 있으며, '엘레강스 펜클럽' 연재 글을 쓰기도 했다.
이메일 : phybio@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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