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계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려면?

인공지능 이해를 위한 물음들


00AI.jpg » 최근 개봉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그녀)>의 한 장면. 인간이 아닌 지적 존재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


공지능이 ‘뜨고’ 있다. 이달부터 통신사 에이피(Associated Press)의 주식 관련 기사는 인공지능에 바탕한 시스템이 직접 작성한다고 한다. 스포츠 기사의 통계 수치 부분은 인공지능 시스템이 작성하긴 했지만, 한 편의 기사를 통째로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만이 아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아마존의 무인배송 드론부터 구글과 빙(bing)의 기계번역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은 놀라울 만큼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스티븐 호킹을 비롯해 몇몇 전문가들은 ‘수퍼 지능(Superintelligence)’의 위협을 우려하기도 했다.


인공지능(혹은 로봇), 즉 사람처럼 생각할 줄 아는 기계는 산업혁명 이래 늘 인류의 관심사였다. 다양한 공상과학 소설이 저마다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그려냈다.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R.U.R)>을 시작으로,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 등장하는 멋진 슈퍼컴퓨터 마이크라든가, 얼마 전 한국에 개봉해 상영 중인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까지.


자연히 질문이 뒤따른다. 정말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을까? 기계가 사람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처럼 지각하는 몸'…관념과 상징의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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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필요해 보이는 건 인간처럼 지각하는 몸이다. 인간은 보고, 듣고, 맛보며, 냄새 맡고, 느낀다. 몸으로써 ‘바깥 세상’의 색, 소리, 맛, 향기, (압력과 통증을 포함한) 촉감을 안다. 바깥 세상은 오감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재구성된다.


간의 오감 중 가장 강력한 게 시각이다. 시각 경험 중에서 색을 예로 들어보자. 에바 헬러의 <색의 유혹>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색은 흰색과 검은색이다. 흰색은 빛, 검은색은 어둠에서 왔다. 흰색과 검은색은 간상체(망막에 있는 두 종류의 시세포 중 간체세포 끝에 있는 감광부(感光部))가 처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감각, 즉 밝음과 어두움에 대응하는 색채다. 


포식자를 피해 숨어 들어간 동굴 속의 어둠을 밝히는 아침의 빛은 분명 원시인들에게 감동적인 경험이었을 테다. 밝음/어두움이라는 큰 개념은 낮/밤, 옳음/그름, 선/악, 아폴론/디오니소스 등,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들을 담는 그릇 노릇을 한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 일컬어지는 고차원적 사고, 그 사고의 틀을 짜주는 큰 개념이며 상징들이 몸으로 느낀 감각에 바탕을 둔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몸이 놓인 공간에 대한 지각도 한몫 한다. ‘나’를 기준으로 위/아래와 하늘/땅이 나뉘어지며, 이걸 바탕으로 조금 더 추상적인 양/음, 가벼움/무거움 등의 개념이 생겨난다. 위/아래라는 기초적 신체 지각은 다시 좋음/나쁨이라는 이성적 평가, 심지어 즐거움/슬픔 같은 정서적 상태와도 연결된다. 마이어와 로빈슨이 2004년 <심리 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긍정적 단어(사랑, 정의, 아름다움 등)가 화면의 위쪽에 나타날 때 더 빠르게 반응했다. 부정적 단어(미움, 잔인함, 추함 등)는 화면의 아래쪽에 나타날 때 더 반응이 빨랐다. 긍정적 단어를 듣고 소리내어 평가한 직후 버튼을 누르게 했을 때에도 위쪽 버튼을 누를 때가 더 빨랐다. 위/아래라는 공간적 개념에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며, 생각 및 감정의 틀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잘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간이 몸으로 느낀 바는 종교적 상징처럼 한층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그의 저작 <성과 속>에서 하늘/땅이라는 개념의 쌍이 어떻게 ‘아득한 신(dei otiosi)’과 ‘대지모신(terra mater)’를 상징하는지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기리야마족은 이렇게 말한다. ‘물루구(신)은 위에 있고, 마귀들은 밑에 있다.’ 팡족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느자메(신)은 위에 있고, 인간은 밑에 있다’. 리그베다에서는 말한다. ’너의 어머니인 대지로 기어서 가라’. 


인간은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높은 곳, 아득한 하늘의 궁륭을 떠받칠 더 큰 존재를 상상했고 또한, 땅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죽어 묻힐 곳, 다시 돌아갈 품을 지닌 존재를 상상했다. 이는 인간이 오감을 통해 느낀 세상의 모습이 종교적 상징으로 반영된 하나의 사례다.


인간은 몸을 통해 세상을 느끼고, 그렇게 느낀 바는 고차원적 사고의 바탕이 되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기계가 ‘사람과 꼭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 만일 감각을 바탕으로 생겨난 개념을 기계가 이해할 수 있으려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인간의 것과 같은 감각 기관을,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인간의 것과 같은 오감을 정보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완전히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속성의 정보를 다루는 수용기는 필요할 것이다.


시각은 비교적 쉬워 보인다. 색채의 경우 푸리에 변환 등을 사용하여, 가시광선이 지닌 단-중-장파장의 스펙트럼을 그에 대응하는 RGB값으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형태의 경우, 주어진 이미지에 활성화된 뉴런의 신호를 그림으로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신경과학이 발전했다 (Nishimoto et al., 2011). 그러나 인간의 몸은 단순한 시각수용기 이상의 것으로, 색채와 밝기뿐 아니라 소리, 냄새, 온도와 공간감, 그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신체 내부의 상태를 모두 동시에 받아들인다. 엉키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로 복잡하다. 오감에서 오는 정보를 한데 모아 처리하는 대뇌피질 영역이 있을 정도인데, 각회(angular gyrus)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기계의 ‘몸’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몸을 통해 얻어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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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사 등에서 로봇공학의 추이를 엿보면, ‘기계 몸’을 만드는 건 크게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마음을 지닌 인공지능에 대해 논한 호프스태터의 <더 마인즈 아이(The Mind’s I)>가 처음 출간된 1981년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전망이 좋아 보인다. 그러니, 인간처럼 오감을 받아들여 완벽하게 처리할 줄 아는 기계를 만들어냈다고 상상해보자. 그리하여 빛의 파장, 음파, 온도, 압력 등을 기계 내에서 색채나 소리 등의 정보로 변환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나타난다. ‘정보’는 곧 ‘느낌’인가?


인간의 눈에 들어온 가시광선의 장파장은 단순한 빛의 파장이 아니다. 그것은 빨강이다. 그렇다면 빨강이란 무엇인가? 거기에 파랑이란 이름을 붙이면 더이상 빨강이 아니게 되는가? 내가 본 빨강과 남이 본 빨강이 정말 똑같은 '빨강'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처럼,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경험의 문제에 주목한 사람이 철학자 차머스였다. 그는 문제를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로 나누었다. 쉬운 문제는 앞서 말한 문제들과 비슷하다. 즉, 어떻게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는가? 처리한 정보를 어떻게 잘 엮어 하나로 만들까? 말하자면 ‘기계 몸’을 만들어, 몸이 받아들인 물리적 정보를 그에 대응하는 값으로 변환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다. 그렇다면 어려운 문제란 무엇인가?


머스는 얘기한다. “우리가 생각하며 느낄 때는, 정보-처리의 소용돌이뿐 아니라, 주관적(인 감각)이란 것이 역시 존재한다.” 기계에게 어떻게 그 주관적 감각, 장파장을 보며 빨강이라 느끼는 “특별한 감각”(차머스는 퀄리아/qualia라 불렀다)을 똑같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그 느낌을 기계가 ‘빨강’이라 부르게 할 수 있을까? 현재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의식 연구는 아직 “어려운 문제”의 답을 내지 못한 상태다. 인간이 퀄리아를 느끼는 방식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계가 인간처럼 빨강을 느끼게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즉 인간이 생각하는 다양한 개념과 개념에서 오는 느낌을 직관적인 수준에서 ‘납득’하려면 오감으로 처리된 정보의 질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이 내 위에 있다는 감각, 빛이 희고 어둠이 검다는 감각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말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인간처럼 느끼고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어내는 일은 아득할 정도로 어렵다.


단 인간처럼 이해하고 느끼는 과정 없이, 단순히 주어진 정보를 ‘판독’하여 처리하는 기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A라는 정보를 토대로 B라는 값, 모양, 패턴을 만들어내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은 현재까지 발전한 '머신 러닝' 기술에 힘입어 더욱 정교해져 가고 있다. 아이폰의 시리(Siri)라든가, 얼마 전 프린스턴대학 연구진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며 자신있게 내놓은 우크라이나 출신 소년을 흉내낸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 (http://www.princetonai.com/ * 현재는 테스트가 잠시 중단된 상태다)은 좋은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계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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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공지능 혹은 기계가 인간과 똑같이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답해보았다. 기계가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으려면, 먼저 인간처럼 오감을 지각하고 처리하는 몸이 필요하며, 그 다음으로는 몸을 통해 받아들인 감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감안할 때, 인간과 닮은 기계 몸은 비교적 전망이 좋아 보이지만, 인간의 ‘느낌’마저 똑같이 재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순히 필요성만을 고려한다면, 인공지능이 꼭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껴야 할 이유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너무 ‘닮은’ 기계에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게다가 인간을 닮았다며 만들어낸 존재가 반드시 인간과 꼭같으리란 보장도 없다. 가령 영화 <그녀>에 등장하는 사만사는 몸이 없다는 특징 덕분에 오히려 수천, 수만 명의 인간과 동시에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며, 주인공인 테오도르에게 ‘당신이란 행간을 읽으면 내가 너무 느려져 멈춰버려요’라고도 말한다.


그런데도 인간과 닮은 존재를 만들어내는 일, 닮았되 닮지 않게 만들어진 존재를 이해하는 일은 모두 궁극적으로는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매일 아침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현실의 어려움을 떠나, 혹은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서서,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기계 혹은 인공지능의 존재는, 한번쯤 상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충분히.


[참고문헌]


에이피(AP) 관련 기사: http://www.businessinsider.com/business-news-robots-2014-6

인공지능에 관한 스티븐 호킹의 인터뷰: http://www.businessinsider.com/stephen-hawking-on-artificial-intelligence-2014-5


에바 헬러, <색의 유혹>, 이영희 역, 예담, 2002

Chalmers, D. J. (1995). Facing up to the problem of consciousness. 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2(3), 200-219.

Eliade, M. (1959). The sacred and the profane (Vol. 11). London: Harcourt Brace Jovanovich.

Hofstadter, D. R., & Dennett, D. C. (2006). The Mind‘s I: Fantasies and Reflections on Self & Soul.

Meier, B. P., & Robinson, M. D. (2004). Why the Sunny Side Is Up Associations Between Affect and Vertical Position. Psychological science,15(4), 243-247.

Nishimoto, S., Vu, A. T., Naselaris, T., Benjamini, Y., Yu, B., & Gallant, J. L. (2011). Reconstructing visual experiences from brain activity evoked by natural movies. Current Biology, 21(19), 1641-1646.


김서경 미국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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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경 미국 일리노이대학(어바나-샴페인) 인지신경과학 박사과정
10년차 INTP. 종교는 대우주의 의지와 문학. 좋아하는 것은 호르차타. 질 좋은 편지지. 요가 매트 위에 누워서 듣는 말러. 거의 모든 계절의 꽃. 보이지 않는 것들. 망설이는 순간. 싫어하는 것은 사람 키치. 잿빛으로 변하는 윈도우즈 바탕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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