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P사태:'고립된 성과경쟁' 비탈에 선 연구스트레스

   STAP 세포 연구부정 사태를 지켜보며


   ‘닥터K’ 류영준 강원대 교수의 글 

※ 이 글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의 생명과학계에 떠들썩한 화제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이른바 ‘스태프 세포(STAP 세포: ‘자극 촉발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 세포)’ 논문 취소와 연구부정 사태를 지켜보며, 류영준 강원대 교수가 생각을 정리해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보내온 것입니다. 그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의 논문조작 사건을 세상에 드러나게 했던 사건의 제보자이며 ‘닥터 K’로 알려졌던 분입니다.

-사이언스온  [사이언스온의 'STAP 세포 논란' 관련 글들]

00STAPcell.jpg » 약산성 자극으로 만들어진 STAP 세포의 줄기세포 성질을 확인하기 위해 STAP 세포를 쥐의 배아에 주입한 모습. 지난 7월2일 과학저널 <네이처>는 분화능력이 매우 뛰어난 이른바 ‘스태프(STAP) 줄기세포’를 간편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세기의 발견’이라는 평까지 받았던 ‘오보카타 논문’에 오류와 부정이 있다며, 관련 논문들을 모두 취소했다. 논문 발표 153일 만이었다. 출처/ Nature


타깝다.

2014년 과학사의 길에 또 한 명의 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지 만 3년밖에 되지 않은 30세의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 晴子). 7월2일 취소된 두 편의 <네이처> 논문과 박사학위 논문에서 드러난 그의 연구부정 행위는 더 이상 그에게 과학자의 겸허한 태도와 조작이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음을 충분히 확인해 주었다. 실제로 논문조작 파문 수습을 위해 구성된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리켄) 개혁위원회는 오보카타를 “연구자로서 윤리나 과학에 대해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가 결여돼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그는 리켄의 공식 조사결과를 부정하고 이의신청을 한 데 이어, 그도 모자라 스태프 세포의 분화능 검증에 필요한 키메라 마우스를 만들기 위해 와카야마 테류히코(若山 照彦) 야마나시대학 교수한테 건넨 스태프(STAP) 세포는 자신이 제공한 것이 맞지만 이후 작업은 자신이 알 수 없다며 밝혀지지 않은 누군가(?)의 구체적인 조작 행위로 이뤄진 것처럼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런 반발은 이에 앞서 분화능 검증 실험을 도와 논문이 게재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공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린 와카야마 교수의 조사결과 발표에 대한 반론이다. 와카야마는 오보카타에게 스태프 세포를 만들라고 자신이 건넨 마우스 세포와 다시 스태프 세포라며 오보카타로부터 받은 세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제3의 검증기관을 통해 확인했으며, 자신이 키메라를 만드는 실험에 사용한 세포는 스태프 세포가 아닌 배아줄기세포인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어디서 많이 본 낯설지 않은 상황이지 않은가. 지난 4월10일 열린 오보카타의 기자회견장. 수많은 카메라의 플래시를 이겨내며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하는 오보카타의 눈빛 연기도 누군가와 아주 닮아 있었다.

[☞ STAP: ‘자극 촉발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을 뜻하는 영어의 머릿글자를 따서 연구팀이 붙인 용어. 약산성 용액의 ‘자극’을 주었더니 갓 태어난 쥐의 세포가 분화 이전의 초기 세포 상태로 되돌아가 여러 기능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능’을 획득했다는 뜻이다. 유전자 조작이나 체세포 복제 없이 간편한 자극과 배양 처리로 매우 뛰어난 줄기세포를 얻을 수 있다고 연구팀은 제시했다.-사이언스온]


‘젊은 연구자가 주도한 조작’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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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태프 세포 논문조작 스캔들은 2005년 한국에서 일어난 ‘인간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즉 이른바 ‘황우석 스캔들’과 많은 점에서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서울대학교라는 국민적 자긍심이 뭉친 곳에서 일어났으며 당시 서울대 교수였던 황우석이 주인공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증’받은 그를 의심하는 일반인은 적었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던 당시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그는 이공계 부흥이라는 기대와 염원을 온몸으로 받았고 줄기세포 특허를 통한 국익창출이라는 지상과제의 짐을 지고서 상황을 이용했고 또 이용당했다.


본 스캔들의 배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노벨상을 받은 연구자만도 여럿인 연구소다. 200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노요리 료지(野依 良治)가 현 연구소장이며, 불과 몇 년 뒤엔 영광의 ‘설립 100주년 기념식’을 해야 하는 일본의 자랑스런 연구소가 조작의 장소가 되었다.
일본 명문인 와세다대학 출신의 30세 여성 과학자인 오보카타 연구원은 이공계 기피 현상을 타계할 여성 과학자의 롤 모델로 기대를 모았고 리켄과 언론도 역시 이를 이용했다.


그와 함께한 교신 공저자들의 면면은 정말이지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과학계의 선배들이다. 세계 최초의 마우스 복제를 성공한 와카야마 교수, 그리고 <사이언스>나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만 해도 몇 편인 유명한 줄기세포 연구자 요시키 사사이(笹井 芳樹) 리켄 부센터장, 사람 귀 연골 조직을 등에 지고 있는 누드마우스 개발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학 브리검여성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의 찰스 바칸티(Charles A. Vacanti) 마취과 교수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른바 ‘스펙’으로 보면 황우석 스캔들보다 더 낫다.


하지만 조작의 주체를 보면 다른 면이 있다. 황우석처럼 나이 많은 연구책임자가 조작의 주체와 객체가 된 한국의 경우에 비해, 실험을 실제로 수행한 실무 연구자 격인 제1저자가 주도했다는 점, 그 자신이 유명한 공저자들을 섭외하고 역할을 나누어 주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했고, 공동 교신저자의 역할까지 모두 수행했다는 점이 달랐다. 황우석 스캔들보다 훨씬 더 치밀하고 정교한 세팅이다.



바칸티와 오보카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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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관심의 초점이 젊은 이공계 여성 오보카타에 맞춰진 선정적인 시각으로 전체 내용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게 보인다. 논문의 전체 그림에서 보면, 하버드대학의 마취과 의사인 바칸티 교수가 스태프 세포의 개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으며, 박사학위 대학원과정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이역만리 타향인 바칸티의 연구실에서 분화능 검증의 책임을 떠맡은 것은 오보카타였다.


다시 말해, 이 <네이처> 논문의 실질적인 교신 책임저자는 바칸티라는 사실을 주목하자. 바칸티는 평소 자신들이 분화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해온 세포(포자 같은 세포, spore-like cell)가 실제로 분화능을 지니는 오랫동안 증명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후 혜성처럼 나타나 그와 인연이 된 오보카타가 이를 해결해 주었다. 즉 바칸티에게 오보카타는 애제자였고, 바칸티는 이런 오보카타의 역할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녔다. 논란의 중에서도 “보스톤으로 돌아오라”며 오보카타를 감싼 바칸티의 언행도 논란이 되었다.


는 바칸티의 ‘포자 같은 세포(spore-like cell)’ 가설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칸티는 그의 가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오보카타는 바칸티 실험실에서 이에 대한 실질적인 현상을 눈으로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일던 와중에도 바칸티는 “증거가 될 만한 동영상도 가지고 있다”며 나서기도 했으며, 사태 내내 그리고 지금도 그런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포자 같은 세포’ 가설: 바칸티 교수 연구팀은 2001년에 1~2 마이크론 크기이며 곰팡이 포자처럼 거동하면서 비정형의 작은 핵 안에 ’최소 유전체(minimal genome)’을 지니는 듯한 포자 줄기세포를 발견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사이언스온]


“STAP 세포는 있다!”. 오보카타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은 황우석 전 교수가 말한 “하나면 어떻고 11개면 어떤가? 우리에겐 원천기술이 있다”라는 말과 아주 유사한 힘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2005년 당시, 황우석이 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었나? 그는 2004년 발표한 첫 번째 줄기세포 ‘엔티-1(SNUNT-1)’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실제 자신이 만들진 않았지만) ‘이제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으니 앞으로 시간과 회수만 보장된다면 언제든 다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이런 믿음에는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으니 다른 증거는 한낱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암묵적인 긍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NT-1이 체세포 핵이식이 아니라는 수 차례의 독립적인 과학적 증거가 나와도 그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믿는 구석’은 그 매서운 여론의 바람이 불어도 그가 스스로 지탱하게 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오보카타에게 이런 ‘믿는 구석’은 바칸티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논문 발표 이후 국내외 과학자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재현 실험을 수행한 실제 실험실에서 스태프 세포의 초기단계 실험인 ‘낮은 pH(약산성)에 노출시키고서 2일 뒤의 반응에서 분화능의 지표 유전자(단백질)인 Oct-4의 발현이 확인되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재현되었다고 할 수 없다. 논문이 성립되기 위해 시행했던 첩첩 산중의 전 분화능 검증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즉 현상을 본 것과 실제 줄기세포 주로 만들어 테라토마(teratoma) 생성까지 확인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 사이의 크고도 넓은 간극을 오보카타는 2년 간의 걸친 조작으로 메워버렸다.



가능성 있는 가설, 하지만 증명과정은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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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카타의 연구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바칸티는 세포에 거의 치명적인(sub-lethal) 수준인 낮은 pH 환경에다 분화가 완료된 일반 세포를 노출시키면 그 세포가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 되어 분화능을 획득한다는 사실을 하버드 실험실에서 관찰했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데 오랫동안 실패해오던 차에 오보카타가 이 미션을 넘겨받았다. 이후 오보카타는 박사학위를 어찌어찌 받고서 준비한 논문의 개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거부되는 2년 간의 힘든 시간을 보낸다.


시기에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인 와카야마 박사가 리켄에 있음을 알게 되고, 사사이 박사의 도움으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리켄에 취직한다. 핵심적인 분화능 검증 과정에 주요 책임저자인 바칸티를 제치고, 일본 리켄의 유명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오보카타는 이 시점을 분기로 코디네이터로서 연구중심에 서게 된다.


오보카타는 2년 간에 걸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논문 제출을 계속했으며, 조작으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많은 사람이 논문의 검증 시스템을 문제 삼고 있으나, 오보카타 논문을 준비하던 2년동안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논문 검증시스템은 비교적 잘 기능한 것으로 보인다. 오보카타가 제출한 논문을 지속적으로 게재 거절했고, 심지어 일부 심사자(reviewer)는 사진 조작에 대한 지적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조작을 작심한 연구자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오보카타의 사례를 통해 더욱 확인되는 장면이다. 이후 오보카타는 와카야마의 도움으로 키메라 제작과 테라토마까지 증명하며 STAP(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 자극 촉발에 의한 다분화능 획득)라는 이름을 부여해 과학저널 <네이처>에 그 성과를 발표한다(Article 1편과 Letter 1편). 한국의 설 명절 연휴 기간이던 2014년 1월30일의 일이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획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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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로그래밍". 이 단어는 나에게 얼마나 가슴 설레는 단어인지 모른다. 세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니. 이미 어른이 된 세포를 다시 갓 태어난 아기 상태의 세포로 되돌아갈 수 있다. 혹자는 타임머신에 비유하기도 하고 또 불로(不老)의 개념에 비유하기도 했다.


개념은 1950년대 후반에 존 고든(John Gurdon)이 아프리카발톱개구리(Xenopus)의 올챙이 세포를 개구리 알에 넣어 온전한 개체를 탄생시키며 처음으로 증명하였다. 이후 양, 쥐 등 포유류까지 체세포 복제로 만들어냄으로써 개체 발생의 응용 단계가 확인되었다. 그 개념을 인간 난자에 적용해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도 만들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야마나카 신야와 제임스 톰슨(James A Thomson)이 각각 난자 없이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런 “리프로그래밍”을 밝힌 공로로 고든과 신야는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다. 야마나카처럼 세포 내부에 그 무엇을 넣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 환경을 바꿈으로써 그런 효과를 만들 수 있단다. “우와!” 내 입에선 놀라움의 탄성이 절로 흘러 나왔다. 오랜 동안 세포생물학적 접근법의 노력을 한번에 우습게 만들어 버린 형국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생물학자들이 받은 상실감은 허탈함을 넘어 충격적이었다. 믿기 어려웠지만 있음직한 가설이었다. “학부에서 생물학이 아닌 화학을 전공했다? 생각과 시선이 달라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한 현상을 보았구나”, “세포가 거의 죽다 살아나니 그렇게 변하는 구나. 죽은 사람을 죽여 다한 후에야 산사람을 볼 수 있다(殺盡死人 方見活人)는 말이 현실화하는구나”라며 나는 흥분했다. 최근의 연구 경향도 세포 외 조직(Extracellular matrix)이나 물리적 자극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도 한몫 했다.



논문 투고 번갈아 가며 부정행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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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같은 큰 과학저널에서 논문을 검증했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를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이후 과학계 내부에는 자아성찰의 분위기와 함께 학술지 검증 과정에서 연구진실성 검증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향후 원고 심사를 철저하게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사이언스>의 케네디 편집장은 한국을 비롯해 (쉽게 신뢰하기 힘든) 제3국의 연구논문에 대해서는 더 철저한 검증 과정을 적용하라며 차별의 수위까지 높였다. 이후 연구 표절을 걸러내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사용하기도 하고 증명 실험을 추가하는 등 각종 노력을 했다.


구기관들은 연구윤리 교육과 함께 연구노트 사용 강화 등을 중심으로 연구원 단속을 강화했지만, 이번 오보카타의 행태는 이런 노력을 비웃었다. 오보카타는 위의 연구결과를 2012년 4월 처음 <네이처>에 논문으로 제출했으나 거부됐고, 3개월 뒤인 7월에 <사이언스>에 다시 논문을 제출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사이언스> 논문 검증 과정에서 ‘사진 잘라 붙이기’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오보카타는 <사이언스> 심사자의 사진 지적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네이처>에 다시 냈다는 것이다(RIKEN 보고서 참조).


2년에 걸쳐 조작의 부정 행위는 <네이처>와 <사이언스>를 번갈아 가며 투고하며 논문 게재가 “성사될 때까지” 계속됐던 것으로 보인다. 얼마나 처절한 그리고 섬뜩한 추진력인가. 그러니 이렇게 연구자가 마음을 먹고 조작을 하면 논문 심사자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한들 알 수 없다. 나도 한 달에 3~4개씩 국제학술지의 논문 심사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런 점에서는 솔직히 자신이 서지 않는다. 연구자가 제출한 증거를 바탕으로 심사하는 것이지 제출된 증거가 조작되었는지 의심하는 것은 심사 행위와 조금 다른 레벨의 “의심”이다. 그러나 실제 조작이 의심된다 하더라도 저자들에게 조작이 의심되니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다만 편집자가 관리 차원에서 못 믿을 만한 상황이면 심사 전에 논문을 거절한다거나 예외적으로 증거를 요청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연구자가 제출한 결과는 기본적으로 진실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논문 조작을 한 연구자를 엄격히 구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연구부정은 심연에서 시작해 자기기만으로 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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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전 교수의 연구부정과 논문조작 사건, 그 태풍을 지나며 나는 몇 가지 인상적인 현상(?)을 보고 또 느꼈다. 연구부정의 시작은 아주 개인적이며 은밀하다. 연구자 자신도 모를 만한 심연의 은밀한 움직임에서 시작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먼저 속이는 자기기만이 선행된다. 이후 자신이 믿는 ‘그것’이 있으므로 나머지 것은 조작해도 된다는 자기 확신에 빠진다.


오보카타는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와세다대학 화학과에 입학하고 이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쳤다. 단지 박사과정 동안에 하버드대학의 바칸티 연구실에 가서 고생을 했다. 바칸티는 그간 이루지 못한 자신의 역작인 “포자 같은 세포(spore-like cell)”의 분화능 검증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과업을 오보카타에게 준다. 압력이나 강압은 없었을 것이다. 오보카타가 힘들게 타향살이를 하며 어렵게 준비한 논문을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제출했으나 수 차례 거부당했다. 그가 느낀 현실의 벽은 높았을 것이다. 사사이 부센터장도 오보카타가 이처럼 고생한 경험에 대해 “힘들었을 것”이라며 간단히 언급하기도 했다.


는 “이런 상황”이 그를 조작의 유혹에 빠뜨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상황”. 말도 통하지 않는 먼 타향에서 석사 때의 경험만으로 역부족이다. 배울 만한 선배도 없이 혼자서 준비한 박사학위에는 미국 국립보건원의 홈페이지 사진, 바이오기업의 홈페이지 사진 등을 따 조작에 사용하였고, 이후 이렇게 조작된 박사학위 논문에 사용된 그림을 이름만 바꾸어 <네이처> 논문에 재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만천하에 그의 조작이 밝혀졌는데도 담대하게 카메라 앞에 서서 ‘경험 부족’이라는 말로 무마하려 했다(4월9일 기자회견). 나는 그 화면을 보며 또 한번 데자뷰를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구분한다. 스트레스에 못 이기거나 강압으로 조작을 한 사람과 자기 기만으로 스스로 조작을 한 사람은 다르다. 그러므로 오보카타는 황우석과 다르지 않다.  



고립된 연구환경, 극심한 연구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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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논문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이런 연구부정의 재발을 막을 유일한 방법인가? 나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로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다른 곳도 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의사이다. 연구자들에게 적용 가능한 경험을 잠시 볼까 한다. 의사들의 교육 시스템은 도제 시스템의 연장이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후배들은 선배들한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도움을 받는다. 이후 인턴, 레지던트 과정도 다를 것이 없이 후배들의 교육을 위해 선배들은 자신을 희생하며 자신이 교육받은 내용을 후배들에게 전수한다. 이것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닌, 하지 않으면 평가에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돼 감점 요인이 된다.


이미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여러 훌륭한 연구실도 있다. 하지만 내가 몸 담았던 과거의 실험실처럼 그런 시스템이 없는 곳이 더 많다. 그때 느낀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가슴을 차갑게 만든다. 체계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이 없이 주먹구구로 일을 배웠다. 나중에 내가 선배가 되어 보니 선배들도 왜 그래야 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희망도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마음이 맞는 선배들은 자신의 후배를 챙긴다. 그러나 이런 ‘끼리끼리’ 문화는 서로 팀을 나눠 반목했고, 어린 나이 또래의 미성숙한 상태의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 갈등의 해소도 쉽지 않았다. 자신의 기술이 곧 자신의 자리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서로 자기 기술을 숨기기에 바빴고, 그 조그만 기술을 전수해주기를 꺼렸다. 연구자는 아이디어와 논리로 차이를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오보카타의 연구과정은 내가 겪었던 것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또 자신의 연구성과를 큰 저널에 내고 싶어질수록 남에게 자신의 실험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 정도를 넘어선 경우에는 경쟁자를 방해하기도 하다. 함께 실험실을 쓰는 경쟁자가 배양하는 세포에 이물질을 집어넣는 경우도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큰 연구실일수록 심하고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심해진다.


험은 기본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 매일 실패의 연속이다.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연구자의 자존감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고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는 의구심에 스스로 무너진다. 이런 상황에서 결과를 내야 하는 책임자는 당연히 압박을 가하고 연구원은 진로에 대해 결정해야 한다. 누구한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스트레스 상황이 길어지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논문을 내야 졸업할 수 있고 졸업을 해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초조함이 계속 짓누른다. 자신이 해온 행위에 대한 무의미와 무기력은 소위 스팩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지금도 어느 실험실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며 조작의 유혹을 받는 연구원들에게 우리가 무언가 해주어야 할 때는 아닌가 싶다.


논문이 발표된 지 약 5개월 만인 2014년 7월2일. 와카야마가 제3의 독립된 연구기관에 의뢰한 결과 자신이 오보카타한테서 받은 세포가 스태프 세포가 아님을 확인했기에 분화능 실험은 거짓이라는 요지의 발표를 했다. 이 발표로 논문의 핵심사항이 조작된 것이 확인되었으니, 그간 버티던 오보카타와 바칸티를 포함하여 논문 저자들의 전원 합의로 <네이처> 논문이 철회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검증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오보카타 연구원의 박사학위 논문의 문제점, 출신 대학인 와세다대학의 연구실 논문 검증 문제, 불투명했던 오보카타의 리켄 취직 과정, 하버드대학의 바칸티 교수에 대한 평가 등 후폭풍이 계속될 전망이다. 자기기만과 조작의 말로는 너무도 뻔하다. 인간 오보카타씨, 이제 그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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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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