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양자컴 맞나" 학계는 '철저검증' 분위기

  이순칠 교수의 '2014 미국물리학회' 참가기

_aps.jpg ※ 이 글은 이순칠 카이스트 교수(물리학)의 미국물리학회 참가기입니다. 미국물리학회의 양자 컴퓨터 세션에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던 ‘디-웨이브’ 컴퓨터와 관련한 발표를 보고 듣고 느낀 점을 이 교수가 정리해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보내주셨습니다. 최근 ‘최초의 상업용 양자 컴퓨터’를 표방한 디-웨이브 컴퓨터의 성능과 관련한 연구논문이 발표되고 관련 뉴스가 보도되었던 터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독자들한테는 학계의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유익한 글이 될 듯하여, 이 교수의 글을 이곳에 싣습니다. -사이언스온

 00dwave1.jpg » 디-웨이브 시스템스가 128큐비트급으로 개발한 양자 컴퓨터용 프로세서('초전도 단열 양자 최적화 프로세서') 칩. 출처/ Wikimedia Commons


번 2014년 미국 물리학회에서 내가 들어가 본 발표회장 중 백미는 단연 양자 어닐링 계산 발표장이었다. 디-웨이브 시스템스(D-Wave Systems)라는 캐나다 회사가 양자 컴퓨터라고 개발하여 구글에 1000만 달러에 판 컴퓨터의 작동 원리라고 알려진 그 계산법 말이다. 2년 만에 미국물리학회에 와 보니 양자 컴퓨터 관련 발표가 눈에 띄게 많이 늘어나 있었다. 그간 나노기술이 쉬지 않고 눈부시게 발전했다는 증거이다. 미국물리학회는 해마다 3월에 열리는데, 전 세계에서 약 1만 명의 물리학자들이 모인다. 누군가 여기에 폭탄을 터뜨린다면 인류의 물리학 수준이 10년은 후퇴할 것이다.


미국물리학회에는 두 가지 종류의 발표가 있다. 일반 발표는 2분의 질문 시간을 포함하여 12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초청 강연은 30분이다. 10분의 발표 시간으로는 자기가 한 연구결과를 발표하기에도 빠듯하므로 일반 발표는 거의 처음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는 데 반해, 초청 강연은 서론을 자세히 이야기해주기 때문에 언제나 많은 청중이 몰린다.


양자 어닐링 계산 발표장은 여러 가지 방식의 양자 어닐링 계산법에 대한 일반 발표가 처음에 6개가 있고, 다음에 초청 강연에서 있었으며 후반에는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를 이용한 계산 결과에 대한 일반 발표들이 예정되어 있었다. 나는 디웨이브사의 컴퓨터에 대한 중간의 초청 강연과 후반의 일반 발표들은 들을 생각이었지만, 양자 컴퓨터 관련 발표장들은 비교적 자리가 많이 차는 편이었기 때문에 첫 발표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반부의 발표들을 꾸벅꾸벅 졸면서 듣고 있다가 한 발표가 끝날 때마다 사람들이 치는 박수 소리에 깜짝 놀라 깨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한번 졸다 깰 때마다 주변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 있었다.



관심 커진 양자컴퓨터…스몰린의 ‘대담한’ 강연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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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발표를 듣다가 우연히 다음 발표 제목을 본 순간,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초청 강연 바로 전의 마지막 일반 발표 제목이 ‘디-웨이브는 양자컴퓨터를 갖고 있는가(Does D-Wave have a quantum computer?)’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놀랍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대담한 제목의 일반 강연을 디웨이브사 컴퓨터에 대한 초청 강연 바로 앞에 하는가 하고 발표자의 이름을 보니 아이비엠(IBM)에 있는 스몰린(John Smolin)이었다! 찰스 베넷과 함께 양자 암호통신을 처음 발명한 양자정보과학 분야의 그 대가 말이다.


00J.Smolin.jpg » 존 스몰린. 출처/ physics.aps.org 강연장은 어느새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사회자가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중간의 빈 자리가 있는 곳은 좌우로 이동해서 모두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이색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강연장은 맨 앞자리까지 모두 채우고 설 수 있는 자리까지 사람들이 들어찼다. 드디어 스몰린의 발표 시간이 됐는데, 갑자기 지저분한 산발머리에 히피 같은 옷을 입고 내 앞에 앉아 있던 녀석이 발표하러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또 한 번 놀랐다.


몰린의 발표는 역시 대가다웠다. 슬라이드 첫 장에서 어떤 것이 양자계이며 어떤 것이 양자컴퓨터가 되는가 하는 근본 물음을 던지며 시작하여 구체적으로 어째서 디웨이브사의 컴퓨터가 양자컴퓨터가 아닌지 근거를 제시했다. 디웨이브사에서는 ‘양자 어닐링’ 계산을 하면 고전적 어닐링 과정과 다른 통계를 만들어낸다는 연구 결과를 자기네 컴퓨터가 양자컴퓨터라는 근거로 제시하는 모양인데, 스몰린은 자신이 수행한 고전적 어닐링 과정이 똑같은 결과를 보이는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일반 발표에 주어진 시간 10분은 이런 강연에 턱없이 짧았으므로 강연은 결과 요약도 없이 거기서 갑자기 끝이 나고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질문을 원하는 손이 올라갔으나 2분 동안에 3개의 질문만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 질문에 스몰리는 이렇게 답했다.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는 양자컴퓨터가 아니며 쓸모가 있는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두 번째 질문은 디웨이브 측을 대변하는듯한 사람의 반박이었는데 스몰리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들이 아무 것도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라고 질문을 일축해버렸다.


질문 시간이 끝나고 다시 한 번 요란한 박수 소리가 난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강연장을 빠져나가 다시 자리가 넉넉해지고 초청 강연이 시작되었다. 이 초청 강연은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로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는 강연이었는데, 스몰리 같은 대가가 엉터리라고 초를 치고 나갔으니 분위기가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점잖게 듣고 있었지만 초청 공연을 하는 젊은 여자는 강연 내내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나머지 일반 발표도 모두 디웨이브사 컴퓨터로 한 일에 대한 발표였는데 나는 더 듣지 않고 나와 버렸다. 나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나갔으며 아마도 그쪽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자기네들끼리 발표하고 토론하며 시간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발표를 하고 듣고 있었을까. 디웨이브사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져 버렸는데 과연 어떻게 끝이 날지 정말 궁금하다.



‘양자 어닐링 컴퓨터’의 성능과 쓰임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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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닐링(annealing)이란 우리 말로 ‘풀림’이라고 하며 열처리 기술의 일종이다. 금속 같은 물체의 온도를 높였다가 내리면 성질이 변화하는데, 온도를 천천히 내리면 ‘풀림’이라 하고 급속히 내리면 ‘담금질’이라고 한다. 철의 경우 담금질을 하면 단단하나 부러지기 쉬운 무쇠가 되고, 풀림을 하면 연성과 전성이 좋아진다. 곡식 같은 알갱이를 상자에 쏟아 붇고 나서 우리는 상자를 흔들어 전체의 부피가 줄어들게 하곤 한다. 이렇게 알갱이들이 빽빽이 쌓이는 과정을 물리적으로 표현하자면 개개의 알갱이들이 위치에너지가 가장 낮은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풀림은 이와 유사한 작업을 곡식 알갱이 대신 원자로 하는 것이다. 물체의 온도를 높여주면 원자들이 흔들리는데, 이 과정은 상자를 흔들어주는 과정에 해당한다. 그러다가 온도를 서서히 내려주면 원자들은 곡식 알갱이들이 빽빽이 쌓이듯이 가장 위치에너지가 낮은 자리를 각자 찾아간다.


00Dwave.jpg » 최초의 상업용 양자컴퓨터를 표방한 '디-웨이브 양자컴퓨터'. 출처/ D-Wave Systems 주어진 원자들을 쌓을 때 가장 위치에너지가 낮은 안정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라는 문제는 물리학자들이 즐겨 푸는 퀴즈이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원리를 알아도 복잡해서 못 푸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심지어 답도 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자연의 모습이 바로 개개의 입자들이 최소 위치에너지 상태를 찾아간 상태이니까. 이를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못 푸는 문제를 꼭 수식으로 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연현상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예를 들어 경제학이나 네트워크 연구 분야 등에서 관심이 있는 함수가 여러 개 알갱이들의 위치에너지 함수와 형태가 동일하다면, 그 함수의 최소값은 자연현상을 관찰함으로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한 것이 어닐링 계산이다.


자 어닐링이 고전적 어닐링과 다른 점은 원자세계에 소위 '터널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터널 효과란 높은 담을 넘을 에너지가 없어도 벽을 수없이 부딪치다 보면 한번쯤 통과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매우 양자적인 현상이며 고전적인 세상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어닐링은 알갱이들이 벽을 넘어 위치에너지가 더 낮은 상태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과정인데, 양자 어닐링에서는 추가로 터널 현상 때문에 더 빨리 알갱이들이 제 위치를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디웨이브사의 컴퓨터는 이 양자 어닐링 현상을 관측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알갱이들의 최소 에너지를 찾는 것과 동일한 문제를 자기네 컴퓨터에서 풀어보니, 고전적 컴퓨터에서 어닐링 현상을 모사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문제를 풀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몰리의 주장은 물론 ‘별 차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발표회장에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의 트로이어(Matthias Troyer)는 디웨이브사 컴퓨터가 그들 주장대로 양자어닐링을 하기는 하는데, 양자어닐링은 모델에 따라 고전 어닐링보다 빠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취지의 초청 강연을 했다. 트로이어의 이날 발표를 정리한 논문이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디웨이브사의 컴퓨터에 대한 그간의 논란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도대체 그 회사에서 만든 것이 뭐냐는 것이었는데, 요즘은 그 컴퓨터가 양자 어닐링을 할 수 있는 컴퓨터임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양자 어닐링은 특정한 문제만 풀 수 있으며 일반적인 계산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말하는 양자컴퓨터는 아니다. 양자적 현상을 이용한 또 다른 형태의 컴퓨터이며, 사실 그런 특이한 물건을 만든 것만도 훌륭한 일이다.


두 번째는 양자 어닐링이 과연 쓸모가 있느냐는 것으로, 이것이 아직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이 부분은 아직 어느 쪽으로도 증명이 된 것은 아니며, 쓸모가 있는 특별한 경우가 있기는 할 것 같은데 디웨이브 측에서 워낙 과대 광고를 해댔기 때문에 반대쪽 물리학자들도 쓸모가 없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천만 달러의 가치를 가질 컴퓨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구글, 록히드, 나사(NASA) 같은 기관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구입을 했는지 정말 궁금하다.


자컴퓨터 연구는 나노기술이 아직 충분히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전이 느리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디웨이브사의 컴퓨터 덕에 세간의 관심이 다시 커진 걸 반가워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회사가 나중에 사기꾼으로 취급되어 전체 양자컴퓨터 분야 연구에 독이 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물리학자들이 이 회사의 컴퓨터를 철저히 검증하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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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순칠


 현재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자연과학대학장)로 재직 중이며 핵자기공명 장치를 이용한 연구용 양자 컴퓨터를 만들어 발표한 바 있다. 대중과학서 <양자컴퓨터>(2003)를 썼다.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고침] 글 중에 IBM에 있는 연구자 '스몰린'은 Lee Smolin이 아니라 John Smolin이기에 바로잡습니다. Lee Smolin으로 착각하여 인물 사진이 잘못 들어갔기에 사진을 교체했습니다. 원고의 손질 과정에서 편집자의 착오로 실수가 빚어졌습니다. 필자와 독자께 사과드립니다. 2014년 7월2일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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