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딸기는 씻었으나 배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00PhD_7.jpg » 그림제작 / 김창대, 그림재료/openclipart.org, 김창대




#7. 딸기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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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파티 시즌이다. 학생복지위원회에서 딸기를 판다는 자보가 붙었다. 교내 곳곳에 딸기를 모시고 사람들이 모인다. 점심시간을 틈타 딸기로 배를 불린다.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은 게임들을 한다. 손수건을 돌리고 유치한 노래를 부른다. 서로 사진기 가방을 확인한 다음, 그 중 가장 비싼 사진기를 들고 나온 사람이 두어 개 남은 딸기와 수북이 쌓인 딸기 꼭지를 예술사진 마냥 찍는다.


딸기파티는 20여 년 전 딸기 값 폭락으로 인근 농가가 힘들어지자 “술 대신 딸기를 먹어주자”며 시작됐다고 한다.[1] 올해 딸기 값은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과일이라곤 과일안주 외에는 구경하기 힘든 기숙사생들에게 좋은 일임에는 틀림없다.


또 주성이다. 딸기파티를 하자고 졸랐다. 그런 거 생각할 시간에 연구 생각이나 하라고 타박도 해봤다. 주성이는 잠시 두 귀의 달팽이관을 이었다. 한쪽 귀로 들어간 타박이 반대쪽으로 그대로 나갔다. 끝내 그 생각이 준상이를 통해 교수님 귀에 들어갔다. “그래? 한 번 해보지 뭐.” 이 한 마디로 연구실에서 딸기파티는 결정되었다.


주성이가 좋아한다는 죄로, 주성이와 내가 딸기를 사다가 씻기로 했다. 학생복지위원회에서 계약한 딸기를 사왔다. 제철이라서 지금 파는 걸 텐데, 썩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 과일인 게 어디야. 물 나오는 곳이라곤 화장실뿐이니 화장실에서 박스 위 비닐을 벗겼다.


  정원(박4, 31): 야, 딸기는 얼마나 깨끗이 씻으면 되는지 알아?

  주성(박1, 27): 그냥 대충 씻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정원(박4, 31): 역시 너답다. 어쨌든,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씻으면 돼.

  주성(박1, 27): 그래요? 그럼 그냥 갑시다. 이거 유기농이라면서요. (딸기 박스를 들고 가려는 시늉을 한다.)

  정원(박4, 31): 맞아. 그리고 여기 묻은 흙은 좀 먹어줘야 돼. 흙이 알고 보면 예방접종인 거 알지? 옛날 사람들이 건강한 게, 어릴 때 흙에 묻은 병균들을 조금씩 먹어줘서 그렇대. 미리 다 내성이 생긴 거지.


함께 웃었다. 그리고 다시 씻기 시작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은 이미 지났지만, 어쨌든 다른 사람들, 그리고 교수님도 먹을 거니까.


  정원(박4, 31): 나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주성(박1, 27): 뭐요?

  정원(박4, 31): 학부 때, 딸기파티를 하는데, 친구 한 명이 딸기를 씻어 왔거든. 그런데, 딸기는 씻었으나, 배열은 흐트러지지 않았어. 물은 묻어 있는데.

  주성(박1, 27): 헐. 대박. 그래서 그걸 먹었어요?

  정원(박4, 31): 잘 기억 안 나는데. 다시 씻어오라고 해서 다시 씻어 왔던가? 근데, 뭐, 배열만 흐트러트리고 다시 왔는지는 누가 알아.

  주성(박1, 27): 그런 거 생각하면, 지금 우리 껀 엄청 깨끗한데요. 무균처리래도 믿겠다.

  정원(박4, 31): 푸하하. 그래, 이만하면 됐다. 가자.




구실 전원이 모인 곳은 노천극장 근처 잔디밭이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구름 몇 점이 하늘의 예술 점수를 더해주었다. 보영이와 국현이가 김밥과 음료수를 늘어놓고 있다. 나머지는 준비해온 학교 신문을 방석 삼아 바닥에 깐다. 주성이와 함께 딸기 박스를 적당히 떨어뜨려 배치했다.


  주성(박1, 27): 아, 날씨 좋고. 이런 날엔 데이트나 가야 되는데. 보영아, 넌 데이트 안 가냐?

  정원(박4, 31): 야, 남자친구 있는지부터 물어봐야 되는 거 아냐? 아, 그새 혹시 생긴 거 아니지?

  보영(석2, 25): 아니에요.

  주성(박1, 27): 남자친구 아니더라도, 썸남이랑 말야.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2]

  준상(박4, 31): 야, 교수님 전화 왔다.


일동 침묵. 준상이가 교수님께 장소를 설명 드렸다. 잠시 후, 교수님 입장. 모두가 일어선다.


  대성(교수, 45): 자자, 앉어. 어이쿠, 무슨 딸기가 이리 많아.

  주성(박1, 27): 둘이서 한 박스씩 드시면 됩니다.

  대성(교수, 45): 아, 준상. 너도 메일 받았지. 너 아스플로스(ASPLOS)[3] 논문 됐더라.

  원식(박7, 35): 이야, 아스플로스(ASPLOS)라니, 대단한데.

  준상(박4, 31): 다 교수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이죠.

  대성(교수, 45): 니가 열심히 했지 뭐.

  보영(석2, 25): 축하해요, 오빠.

  정원(박4, 31): 축하해.


축하 직후에 밀려오는 자괴감과 시기를 애써 외면했다. 이미 프로포잘도 끝낸 내 동기, 준상이는 이로써 이력서가 또 한 줄 늘어났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까지도 써넣어야 분량이 겨우 채워지는 이력서 말이다. 쓰리다. 그런데 원식이 형은 정말로 축하하는 걸까? 지난 번 술 마시러 갔던 기억이 났다.[4] 아냐, 그래도 축하는 진심이겠지. 하지만, 나처럼, 드러내지 않은 속내도 있을 것 같다.


  정길(박3, 33): 아스플로스(ASPLOS)는 어디서 해?

  준상(박4, 31): 터키요.

  정길(박3, 33): 터키? 야, 터키 가면, 파묵칼레라고 있어. 거기 꼭 가봐라. 옛날에 가봤는데, 거기가 온천수 나오는 데거든. 죽여줘.[5]

  국현(박3, 28): 거기 쉬린제 마을이란 데가 와인이 싸대요.[6]

  원식(박7, 35): 나도 옛날에 학회로 터키 가봤는데. 거기 가면 꼭 케밥 먹어봐. 한국에서 파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

  준상(박4, 31): (교수님 눈치를 보며) 하하, 일단 발표 준비부터 하고요.


사람들은 참 지리 정보에 능통하다. 국내, 국외를 가리지 않고 지명이 하나 나오면 그와 관련된 온갖 정보들을 늘어놓는다. 거기 사는 아는 사람 이야기, 근처 맛집들, 여기서 거기로 가는 교통정보 등등.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는 거의 없다. 준상이도 학회 일정이 있으니 몇 군데 가보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는 정보가 모두 소진되기 전까지는, 주제를 바꾸지 않는다.


드디어 정보가 소진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조용히 딸기만 반복적으로 입에 넣는다. 침묵이 힘들었던 걸까, 교수님이 헛기침과 함께 말한다.


  대성(교수, 45): 딸기, 이거 맛이 괜찮네. 어디서 산 거야?

  정원(박4, 31): 학생복지위원회에서 파는 겁니다. 공동구매처럼요.

  대성(교수, 45): 그래? 날씨도 좋은데 같이 딸기 먹고 하니 좋네. 내가 다른 교수님들한테 딸기파티 한다고 했더니, 다들 자기네도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주성(박1, 27): 교수님, 제가 하자고 한 겁니다.

  대성(교수, 45): 알았어, 알았어. 그래,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다시 침묵. 모두가 교수님과 함께 나누어도 괜찮을 만한 대화주제를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윽고, 다시 교수님이 입을 여신다. 안도했다.


  대성(교수, 45): 그런데, 원식이. 여자친구랑 몇 년 됐댔지?

  원식(박7, 35): 이제 5년쨉니다.

  대성(교수, 45): 결혼 얘기 없어? 여자친구 나이도 좀 될 거 아냐.

  원식(박7, 35): 그게, 졸업을 먼저 해야….

  대성(교수, 45): 나도 박사과정 중에 결혼했어. 학생 때 해도 괜찮아. 결혼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그거 시간 내기도 좀 편하잖아. 직장 생활 하면서 결혼 준비한 친구들은 바빠서 못 해먹겠다고 하더라고.

  주성(박1, 27): 맞아요, 형. 학생 때 결혼해야, 모아둔 돈 없어도 좀 이해 받고 그러죠.



한 데자뷰가 일어났다. 회식 때마다 한 번쯤 있는 대화. 공통의 관심사며 안전한 대화 주제. 그러나 딱 한 사람만, 당사자만 속 쓰린 대화 주제다. 다들 삼촌이며 이모를 자처하고 나선다. 친척 어른 사단 콤보인 “공부 잘 하고 있지?”, “취직 어디로 하니?”, “결혼 언제 하니?”, “아기 소식은 없어?” 중에서 이 정도 나이에다가 학생이라면 결혼 이야기가 가장 적절하니까. 결국 할 말이 없는 거겠지.[7]


원식이 형도 결혼은 빨리 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쯤 여자 친구 부모님께서 언제 박사 사위를 데려올 거냐고 여자 친구를 볶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아 놓은 돈도 없을 테니 그것도 걱정일 것이다. 그러니 졸업 걱정을 가장 많이 하겠지.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면, 대출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쯤 산학장학생[8]을 알아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취기가 올라 ‘깨어 있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될 때쯤이 아니면, 원식이 형이 자기 걱정을 다 늘어놓을 기회는 주지 않는다. 그저 결혼에 대한 자기 생각들을 늘어놓을 뿐. 원식이 형도, 술에 기대지 않고는 이야기를 늘리지 않는다. 탈출구만 찾는다.


  정길(박3, 33): 주성아, 너 그거 봤냐. 여자들이 얼굴 큰 남자에게 더 매력을 느낀대.[9]
  주성(박1, 27): 에이, 그럼 정원이 형은 왜 아직 솔로에요?
교수님을 포함하여 일동 웃음.

  정원(박4, 31): 야 이 자식아. 뭐라고?

  주성(박1, 27): 농담이에요. 크크크크. 근데 보영아, 정말 그래? 우리 연구실에서 정원이 형이 제일 매력적이야? 크크크크크크크크.

  보영(석2, 25): …….


보영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서만 노력했다. 이럴 때면 세상의 모든 여성을 대표해야 하는 보영이.


저 쪽에서 학부생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보인다. 잔디밭에 덜렁 눌러앉아 큰 소리로 웃는다. 나도 친구들과 딸기파티를 할 때는 굳이 뭘 깔고 앉지 않았는데. 교수님을 맨바닥에 앉으시게 하기 뭐해서 준비한 신문지다. 학부생들이 서로 얼굴에 딸기를 찍어 먹던 생크림을 묻히기 시작한다. 엉켜서 바닥을 구른다. 도망가고, 또 부딪힌다. 흔들리는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신문지를 벗어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설익은 농담이나 던지고 있는데.


흔히들 고등학교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한다. 대학만 가도 재지 않고 만나는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난 몇 명 만났다. 물론 같은 수준의 대학 학생이라, ‘측정’이 끝난 상태였을 수도 있지만. 또, 직장 사람들은 친구일 수 없다고 한다. 서로에게 친절하지만, 사생활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이일까? 친구일까, 같은 학교 동문일까, 같이 일하는 사람일까.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딸기파티까지 했지만, 사진 속 대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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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상영 기자, ‘KAIST 딸기 파티 아십니까?’…“3000박스 넘는 딸기 팔렸다”, http://www.hellodd.com/news/article.html?no=30786

[2] 소유 X 정기고, <썸> http://www.youtube.com/watch?v=z9Z6TaUSe-Y

[3] 아스플로스(ASPLOS, Architectural Support for Programming Languages and Operating Systems): 매해 열리는 컴퓨터 관련 국제학회로, 중앙처리장치 등의 하드웨어와 운영체제 등을 폭넓게 다룬다. http://asplos15.bilkent.edu.tr/ 읽을 때는 “아스플로스”라고 읽는다.

[4] 3화 '매몰비용' 참고. http://scienceon.hani.co.kr/158831

[5] “[터키여행] 죽기전에 가봐야할 여행지로 선정된 파묵칼레” http://goo.gl/TWC7Nn (http://mudaebboo.tistory.com/)

[6] “[터키여행]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터키여행, 터키여행의 유명 관광지소개” http://pann.news.nate.com/info/315826214

[7] 친척 사단 콤보는 아이가 생기고 나면 “아이는”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되풀이 된다. “아이는 공부 잘 하고 있지?”, “아이는 취직 어디로 하니?”, “아이는 결혼 언제 하니?”, “아이는 아기 소식 없어?” 김두식 선생님은 이를 “친척이나 친지 관계라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주는 무한순환 질문일 뿐”이라고 했다. -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창비 출판, 105-107쪽

[8] 산학장학생: 기업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 학비와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원한다. 대부분의 경우, 장학금 수혜 기간에 비례하는 기간에 의무적으로 회사에서 일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취직이 한 회사로 제한되는 대신, 보장도 되는 것이다.

[9] 구자윤 기자, “女, 얼굴 큰 男에게 더 매력 느낀다”, http://goo.gl/SvFHvK  (http://www.fnnews.com)



   작가의 말



사실 저는 얼굴이 큰 편입니다.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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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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