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깐깐한 논문토론 문화..STAP 발표 직후부터 의문 꼬리

김연주의 “일본에서 배우는, 과학자로 살기”


[2] 세미나, 랩미팅, 저널클럽…토론과 소통

00discussion1.jpg » 세미나 시간입니다. 기본 4시간 정도에서 길게는 5-6시간 계속되는 세미나에 지칠 만도 한데, 모두 열정이 대단합니다. 사진/김연주


‘골든 위크’(일본에서 4월 말~5월 초 공휴일이 모여 있는 일주일)를 앞둔 4월 마지막 주 월요일, 하지만 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월요일을 보냈습니다. 4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있을 ‘월례 세미나’에서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인데요, 월례세미나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연구소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한 달간의 연구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입니다. 보통은 3개월에 한 번씩 차례가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연구소의 전체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표해야 하고, 개인별로 적어도 30-40분 간 발표해야 해서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처음 몇 달은 3개월에 한 번씩 박사과정 졸업 구두시험을 보는 기분이 들기까지 했으니까요.


기본적으로는 매주 수요일에, 실험실 세미나가 있습니다. 이곳은 제가 있던 어느 실험실보다 랩 세미나가 규칙적이고 잘 진행되는 곳입니다. 연말연시에 있는 장기간의 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취소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혹시 교수님이 출장을 가거나 학회 등의 행사가 있을 경우엔 요일을 변경해서라도 꼭 하는 편입니다. 공식적으로 정해진 시간은 오후 4시부터 8시로 장장 네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데 심심치 않게 밤 9시를 훌쩍 넘기며 할 때도 있습니다. 초반엔 4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또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흘러 수요일이 어찌나 자주 오는 것만 같던지요. 지금은 많이 적응되었지만, 여전히 수요일이 지나면 이제 주말인가 싶고 또 그러면서 동시에 다음 주에 있을 세미나를 걱정합니다.



의심과 비판은 논문 읽기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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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 열리는 학생 대상의 ‘저널 클럽’까지 생각하면, 일본 연구소 생활에서 세미나와 토론(디스커션)이 차지하는 비율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매주 세미나의 구성은, 첫 번째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논문 한 편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 때 논문의 선정과 접근 방식이 조금 독특한데요, 우선 논문 선정은 최근에 <사이언스>나 <네이처>와 깉은 임펙트(영향력) 있는 저널에 일본인 저자가 제1저자로 참여해 발표한 논문이 1순위로 선정됩니다. 언젠가 한 번은 한국인 주저자의 논문이 선정된 적도 있었는데요 지난 2년 간의 수많은 세미나를 생각해보면 한국인이나 미국인 등 기타 연구자들의 논문이 선정된 경우는 20%도 안 되는 듯하고, 그나마도 대부분 제가 선정하고 발표한 경우랍니다. 물론 일본인이 이 분야에서 좋은 논문을 많이 발표하는 상황도 일본인 저자 논문을 자주 다루는 이유가 되는 것 같구요, 또는 ‘자신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 뭐 이런 철학이 깔려 있기도 한 듯합니다.


한 논문을 매우 비판적으로 읽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아직 많이 배워야 하고 과학자로서 갈 길이 먼 저나 학생들에게 이런 논문 읽기 방법은 좀 어려운 숙제인데요, 준비된 논문 소개 자료를 보면서 항상 (대부분의 경우에) 논문의 허점을 찾아내서 ‘이건 왜 이렇지요? 그 결과가 왜 그런 결론을 낸 거지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대답하기도 쉽지 않고, 어떨 때는 너무나 비판적인 반응에 ‘…제가 한 것이 아닌데요’ 이런 답변을 하고 마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비판적 토론의 경향은 전체 분위기와 교수님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의 교수님은 항상 ‘나는 내가 본 것만 믿는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고 어떤 논문을 참고문헌(레퍼런스)으로 들고가도 일단은 의심부터 하십니다. 일단 논문 소개 시간에 선정된 논문들이 임펙트 팩터(피인용 지수, 영향력 지수)가 꽤 높은 논문들이고, 또 일본인의 논문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친분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이견을 제기하거나 덮어놓고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1월 마지막 주 수요일, 또 어김없이 세미나가 열렸고, 제가 STAP 세포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도 바로 이 자리였습니다.



전체메일 통한 'STAP 토론' 활발…‘오보짓하다’ 유행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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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소개 시간, 장황한 도입부와 저자들의 소개 그리고 세계적인 반응과 함께 'STAP 세포'에 관한 논문이 소개되었습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이 논문 소개를 들으면서 저는 ‘이야, 정말 대단한 발견을 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는데요, 교수님과 연구교수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습니다. 각각의 사진과 데이터를 샅샅이 분석하고 종국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정말 대단한 발견이지만 제시된 자료들에 허점이 있는 것 같고 너무 허황된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많은 실험결과를 보였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실, 그 세미나가 끝나고 난 뒤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서 STAP 세포와 오보가타 연구원에 대한 일본과 전세계의 뜨거운 반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 잡지에서는 연일 STAP 세포에 관한 기사들을 보도했고, 저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일본인들은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는 오보카타 연구원에 관한 일화나 뉴스 보도내용을 이야기하고는 했으니까요.


00discussion3.jpg » 한동안 매체의 반응이 뜨거웠지요. 아무래도 황우석 교수와 비교해서 보도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얘기거리입니다. 이 사진은 제가 찍은 건 아니구요 구글에서 찾아서 편집한 사진입니다. 지만 오래지 않아 논문의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제가 처음으로 생각한 것은, 한 두달 전의 세미나 시간이 떠오르면서 ‘아니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미리 눈치를 챈거지?’였습니다. 처음 문제점이 제기된 뒤에도 오랫동안 진위 여부에 대한 논쟁도 뜨거웠습니다. 사실 제가 있는 이곳 연구소는 일본의 '스펌에그 소사이어티(Sperm-Egg Society: 여성과 남성의 생식 분야에 대한 지식 및 정보의 공유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학회. 일본 전역의 연구자와 의사로 구성)에 속해 있어서 이 협회에 속한 일본 전역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전체메일 형식으로 받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분야가 유사해서인지 정말 많은 의견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재현 실험을 시도해보던 젊은 연구자들의 일부는 장기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결과를 얻을 수 없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는지 하나하나 꼬집어서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고, 신랄한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메일에 대해 논문의 공저자들과 친분관계가 있거나 그들을 신뢰하는 조금 높은 연령층의 연구자들은 ‘젊은 패기에 의한 예의 없는 행동’이라면서 오히려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저희 실험실의 노교수님 한 분도 세미나 시간마다 STAP 세포의 존재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세계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일본도 전세계도 너무도 큰 사안이라 쉽사리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모두 논문과 STAP 세포가 날조된 이야기라는 점을 인정했고, 심지어 일본 사회에서는 ‘오보짓하다’ 혹은 ‘오보○○’ 같은 신조어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발표자료 준비 과정에서 사진을 잘못 추가하거나 데이터의 신빙성이 떨어질 경우 이런 단어를 사용해서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는데요 ‘지금 오보짓하는 거냐?’고 말하거나 이름을 바꿔 부르면서 놀리는 것입니다. 오보가타 연구원의 ‘세기의 연구결과’가 결국에는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지금은 이런 코미디의 한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으니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요. 어찌되었든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는 학생들이나 저나 논문을 읽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연구소 전체적으로도 재현 가능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단체 메일도 몇 통이나 받았습니다.



소통과 정보공유를 강조하는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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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치열한 논문 소개의 시간이 끝나면 매주 실험 진행상황과 다음의 계획 등을 발표하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현실적으로 일주일 동안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사람들 앞에 내세울 만한 실험결과를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수요일 아침이면 스트레스로 인한 속쓰림을 호소하는 것은 비단 저 뿐만이 아닙니다.


지만 반복되는 발표를 통해 느낀 점은 확실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겁니다. 일단, 실험실 멤버의 실험 상황이라든가 내용을 몇 번이고 듣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연구작업에 대해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경우 매번 교수님과 연구교수의 확인을 받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적고 실험 진행이 빠릅니다. 다른 사람의 진행 정도를 보고 스스로 자극도 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사실 같은 이야기를 매번 반복해서 말하는 경우도 있고, 왜 일주일 간 한 일이 고작 이것뿐인가에 대해 변명을 늘어 놓는 경우도 있어서 초반엔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서 세미나를 할 필요가 있는가, 수요일 오후 금쪽 같은 네 시간을 이런 것에 투자해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여러 모로 도움이 된다는 결론입니다.


매주 반복되는 실험 진행사항의 보고, 그리고 각자의 실험 진행에 대한 공유와 토의 등을 볼 때 이곳 연구소는 소통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00discussion2.jpg »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매번 모두에게 보여줄 만한 실험 결과를 발표하기란 쉽지 않아요.

한 가지는 정보 공유입니다. 이곳 실험실에서 모든 사람들의 컴퓨터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한국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실 멤버의 컴퓨터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두 도메인 사용자 서버에 각자의 폴더를 가지고 있으며 누구든 언제든지 들어가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폴더에는 모든 실험 내용, 결과, 세미나자료, 참고논문, 준비 중인 원고 등등 모든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또한 전반적인 프로토콜, 시약의 위치, 연구비 사용내역 등등 모든 내용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일본어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 꼭 필요해서 검색하지 않는 한 알기는 쉽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연결은 실험실 내의 모든 기기와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도 예외가 아니라서 실험실 내의 장비를 이용해서 데이터를 얻은 후 공유 폴더에 저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험을 마친 뒤 발표자료 준비라던가 논문을 쓸 때에 데이터를 사용하기가 매우 쉽고, 유에스비(USB)를 이용해서 옮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고를 덜어 주기도 하고 여러 모로 효율적인 운용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단기간 방문하는 연구원이라든지 은퇴하는 경우에도 모든 자료들이 서버에 남기 때문에 자료보존 차원에서도 무척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역시 모든 자료들이 노출되어 있고 누구든 언제든지 편집하거나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는 느낌도 있는데요 처음엔 조금 거부감이 있었지만 익숙해지고 보니 매우 효율적이고 이렇게 큰 규모의 실험실의 유기적인 운영을 위해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실험실마다 스타일이 있고 분위기가 있지만, 제가 과거 경험한 연구실의 경우에는 모두 세미나와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반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지금도 어느 정도 헤매고 있지만, 슬슬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정 결과가 없을 때는 같은 내용을 다른 방법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또는 미뤄뒀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매주 수요일을 버티고 있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리는 이런 경험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이 글을 쓰는 오늘은 목요일 오전입니다. 일주일 중 가장 마음이 편한 시간인데요 슬슬 다음주 세미나 걱정을 시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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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오사카대학교 미생물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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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일본 오사카대학 미생물병연구소 특임연구원
오사카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유전자(불임 관련) 조작 동물모델을 만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요즘 ‘열심히 하는 건 누구나 한다. 문제는 잘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요?
이메일 : kimyeonjoo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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