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세상살이에서, 문득 드러나는 유사성
[3] 듀얼리티, 이중성
누구나 자신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에는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뒤 듣는 노래의 가사는 전부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한 번 쯤 해본 분들이 많을 겁니다. 또한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우린 참 잘 통하고 잘 맞는 것 같다고 느낀 분들도 많겠지요. 이는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끼리의 공감대 형성 혹은 감정이입의 결과이자, 우리에게 사랑과 이별이라는 감정이 그만큼 보편적이기 때문이겠지요.
보편적 감정 때문은 아니지만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혹은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잘 눈에 띄기에 벌어지는 일들도 있습니다.
대학생 시절에, 명동 거리를 지나다가 한 옷가게에서 예쁜 하얀색 티셔츠를 보았습니다. 오른쪽 팔 부분에는 영어로 ‘피아르엘(PRL)’이라고 쓰여 있었지요. 물리학 연구자들한테는 <네이처>나 <사이언스>보다 더 익숙한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의 약칭이 PRL인지라, 당연히 제게는 그런 문자로 읽혔습니다. 그래서 ‘아니, 하다하다 이제는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관련 상품들도 출시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폴로 랄프 로렌’ 매장이었지요. 또 얼마 전엔 퇴근 뒤 저녁식사를 하며 류현진 선수의 선발경기를 보던 중에 두 팀의 선발 출전 선수 중 3명이 당시 제가 열심히 읽고 있던 논문 저자들의 성과 같다는 것을 문득 발견하곤 신기하게 느껴져 제 에스엔에스(SNS) 계정에도 그런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론·개념의 대응원리 '이중성'
이 모든 것은 물론 우연의 일치이고, 이런 것들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한다면 과학자로서 문제가 많은 것이겠지만 괜히 홀로 의미심장함을 느끼기도 했지요. 이렇게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자신을 투영하며 공감을 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사성들은 과연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거시적으로 보면 결국 세상은 단순하기 때문인 것인지 그것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추상적인 학문에서는 어떨까요?
수학과 물리학의 많은 발전도 역시 어떤 체계 내에서 유사성을 찾거나 물리적 대상 간의 관계를 찾는 데에서 이뤄진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시답지 않은 세속의 예들과 달리, 서로 상관없어 보이거나 관련지을 어떠한 선험적인 이유가 없는 두 체계나 이론들에서 유의미한 대응이 이루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영어로는 듀얼리티(duality), 한국어로는 이중성이라고 표현하지요.
정확한 대응 원리를 모두 이해하고 난 뒤라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다지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다만, 보통은 대응원리가 밝혀지기 전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치를 통해 그런 이중성들을 관찰하게 되면 어떤 경이로움이나 신기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이는 자연의 숨은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자연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물리학의 역사를 보더라도, 가장 중요한 발견이 새로운 이중성을 찾음으로써 시작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19세기에 전기장과 자기장 사이의 관련성은 고전 전자기학의 완전한 이해를 가능하게 했고, 더 나아간 전기-자기 이중성은 20세기 중후반 양자장론을 이해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까요. 또한 20세기 초반에 입자와 파동 간의 이중성은 양자역학의 탄생을 이끌었고, 가장 최근에는 서로 다른 차원의 두 이론 간의 홀로그래피 이중성[1]이 초끈 이론의 발전을 도모했습니다.
» [그림1] 떠 있는 공이 바닥에 투영돼 영향을 끼치는 가상의 상황을 표현한 그림. 공에 대한 모든 정보가 표면에 들어있는 경우를 가정할 때, 공 없이 표면만을 분석하여 공의 성질들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A이론은 공의 물리, B이론은 표면의 물리라고 한다면, A이론과 B이론은 이중성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공의 정보가 어떻게 바닥에 투영됐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낸 뒤라면 모든 것이 분명하겠지만, 이를 모를 때에는 두 이론의 유사성들이 매우 놀랍게 생각될 것이다.
물리학자 특히 이론물리학자라면 누구나 새로운 이중성을 주창하기를 바라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새로운 물리학을 열 가능성이 있고, 원래 구별된 두 이론이나 물리현상을 통일되고 한 단계 진보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니, 보통 원형의 이중성이 처음 등장하면 이를 더 밝혀내고 발전시키는 분야에서 훨씬 많은 논문이 쏟아지지요. 생각해보니 제가 쓴 논문들도 모두 한 가지 이중성을 연구한 것이었다는 게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중성이 처음 주창됐을 때는 이 사실이 놀라운 대신 많은 것이 분명하진 않을 것이고 완성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많은 후속 연구들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한편 현재 작업 중인 제 연구에서도 이론들끼리 연결하는 큰 이중성은 아니지만 작은 대응 관계 하나가 어려웠던 계산을 쉽게 만들어주는 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자연 그 깊은 곳엔 단순함의 아름다움 있을까?
» [그림 2] 홀로그래피 이중성의 대표 물리학자인 Juan Maldacena (왼쪽)과 그의 동료 중 하나인 Oleg Lunin (오른쪽). 출처/ 주[2]
어떤 부분에서 보자면, 물리학이란 것 자체가 추상적인 수학의 세계와 실제적인 물리적 객체 간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이미 하나의 입장이자 견해이지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한 예로 모교의 교수님이시자, 제 친구동료인 J박사의 지도교수님이었던 P교수님이 일전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새로운 수학 관계식을 얻었고 그 내용을 논문 내에서 표현할 때, 무엇무엇을 찾아냈다(found)는 표현보다는 구성했다(constructed)는 표현을 선호하신다고. 그렇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자연을 모델링하기 위해 인간이 구성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유무와 별도로 자연 세계에 원래부터 존재해 있었고 이를 발견해 나가는 것들이 물리법칙이란 관점입니다. 그래서 신의 마음을 읽겠다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태도가 더 마음에 듭니다.
만일 자연의 기본 힘이 20개 쯤 있다거나, 물리법칙이 시간에 따라 마구 변하다면 어떨까요? 또한 미시세계나 거시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물리 현상들이 항상 무시할 수 없는 비선형성을 갖고 있다면 어떨까요? 물리학의 발전과 그에 따른 많은 응용기술들이 지금만큼 발전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물리법칙의 가장 놀라운 신비로움은 이를 알아낼 희망이 있다는 것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알려진 자연의 기본 힘은 4개이고, 어제의 물리법칙은 오늘과 다르지 않고 내일도 그대로일거라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이며 많은 간단한 물리현상들은 선형근사가 가능함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더 나아가 다양한 이중성 관계들이 수학과 물리학에 존재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놀랍냔 말입니다.
사람이 지조가 없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이중성”을 띈 사람이라면 안 되겠지만, 물리학에서 나타나는 “이중성”은 자연을 깊게 이해하는데 분명 많은 도움을 줍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논리적 근거는 없겠지만 세상살이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공감대 형성 그리고 깨알 같은 연관성들은 분명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확신합니다.◑
[주]
[1] 홀로그래피 이중성 : 3차원 공간의 정보를 2차원 내에 투영시켜 구현한 홀로그램처럼 (N+1)차원의 이론과 N차원 이론이 동등할 때 이를 홀로그래피 이중성이라 부른다. 이의 대표적인 논문은 Juan Maldacena가 쓴 다음 논문인데 http://arxiv.org/abs/hep-th/9711200 현재까지 무려 약 10,000번 인용이 되었다.
[2] http://www.wimklerkx.nl/EN/PROJECTS/TH.html
김민규 헝가리 위그너물리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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