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학교는 조용한데 인터넷은 시끄러운 선거철이다 -소설

00fiction.jpg » 시각물 제작/ 김창대, 사진자료/ 김창대, 한겨레



#6. 수신과 치국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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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는 조용한데 인터넷은 시끄러운 선거철이다.

곧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 그리고 교육감을 뽑는다고 한다. 포털 사이트는 엄숙한 이름들로 도배됐다. 누구는 군대를 안 다녀왔고 누구는 비싼 집에 산단다. ‘공중파에 나오지 않는’ 자칭 진실들은 에스엔에스(SNS)를 떠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들어야 할’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은 밤새 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여론조사 결과의 퍼센티지 수치에 정치인들의 입가가 움찔움찔한다. 그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점잖게 비방을 한다. 누가 봐도 가망이 없는 정치인들은 자신들을 공중파에서 불러주지 않는다며, 그래서 인지도가 오르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그 내용을 자극적인 제목으로 승부하는 매체들이 받아 적어 준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저녁 시간이 되자 주성이가 ‘오늘은 맛난 것 좀 먹으러 가자’며 연구실 두 방을 배회했다. 허구한 날 맛난 것 타령이다. 나, 준상, 정길, 주성이 모였다. 오븐에 구운 치킨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학교를 나서니 확성기로 뽕짝이 울려퍼진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땅값 김창대가 올리고 못난 부채 김창대가 내린다 야이야이 야들아~ 7번 좀 찍어라 1번도 짜가 2번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정원(박사4년차, 31세): 근데 저거 말이 돼? 땅값을 올리면서 부채도 내린다는 게. 경제부양과 재정긴축을 동시에 하겠다는 거 아냐.

  준상(박4, 31): 아, 저거 유세하는 거였어? 곧 선거하니?

  주성(박1, 27): 아따, 이 형, 인터넷도 안 하시나. 그럼 저런 뽕짝을 클럽 홍보 차에서 틀겠어요? 

  준상: 야, 그거 부재자 신고 언제 해?

  주성: 아니, 하다못해 무한도전[1]도 안 보는 거예요? 이번에 부재자투표 없어지고 사전투표로 바뀌었잖아요.

  준상: 그래? 사전투표가 뭐야? 그거는 언제 신청해?

  주성: 신고 안 하고 그냥 신분증만 들고 가서 하면 되는 거예요. 공부만 하지 말고 세상 돌아가는 데도 관심 좀 가지세요, 좀.


하지만, 세상이 이토록 시끄러워질 동안 우리끼리 선거 이야기를 꺼낸 것도 방금이 처음이다. 학교는 조용하다. 위병소만 넘어가면 체감 온도가 5도는 낮아진다는 군대처럼, 학교 정문만 넘어가면 세상의 소음들에서 5데시벨(dB)[2]은 낮아지는 것 같다. 모두가 포털 사이트 뉴스를 탐독하지만, 아무도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논문과 프로젝트와 새로 나온 전자기기 소식들과 걸그룹 뮤직비디오만이 회자된다.



킨집에 도착했다.
 

  정길(박3, 33): 주성아, 어떻게 시켜야 되냐?

  주성(박1, 27): 우리가 네 명이니까…, 두 마리 시키면 되죠.

  정길: 두 마리? 너무 많은 거 아냐?

  주성: 원래 치킨은 한 마리가 2인분이에요, 모르세요?

  정원(박4, 31): 맞아요. 두 명에 한 마리가 표준인데.

  준상: 좀 많은 것 같은데….

  주성: 아따, 안 남아요. 일단 시키고 봐요.


텔레비전에는 평소 같으면 야구 중계가 켜져 있을 시간인데, 지금은 뉴스가 켜져 있다. 온 나라가 응당 선거에만 관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처럼 선거 이야기만을 늘어놓는다.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소식들이 들려온다.


친구를 잃고 싶지 않으면 종교 이야기와 정치 이야기는 안 해야 한다고 한다.[3] 우리가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우리가 친구가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도무지 다른 할 이야기가 없어서인지, 무엇이든 시작하면 이유에 이유를 찾아야 하는 과학자들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준상이가 말을 꺼냈다.


  준상(박4, 31): 근데 이번엔 누구 찍어야 되냐?

  주성(박1, 27): 형, 주소지가 어디로 되어 있는데요?

  준상(무관심): 응, 서울.

  정길(박4, 33): 근데 현직 시장이란 사람 말이야, 그 사람 되고 나서 땅값 떨어졌다고 사람들이 엄청 싫어하던데.

  정원(박4, 31): 그건 땅도 가지고 있을 정도의 부자들 이야기 아니에요?


  정길(보수): 그건 그렇지, 그런데 딱히 뭐 한 것도 없지 않아?

  정원(진보): 왜 없어요. 심야버스도 만들었잖아요. 그 노숙자를 위해서 온돌 깐 것도 이번 시장이 했을 걸요?

  정길(보수): 난 그거 맘에 안 들던데. 왜 세금을 그런데 써야 해?

  정원(진보): 그렇다고 그 사람들 찬 데 자다 얼어 죽으면 어떡해요.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라도.

  주성(실용): 에이, 형들 그러지 마시고, 과학자답게 과학 분야로 토론을 해보시죠. 노숙자가 어쩌고는 그런 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알아서들 표를 줄 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과학 공약을 보고 뽑아줘야죠.


  정원(진보): 근데, 뭐, 공약이 있으면 뭐해 지키기는 하나.

  정길(보수): 그건 그래. 그리고 어차피 서울 시장들은 딱히 과학 정책 있는지도 모르겠던데. 대전시장쯤 돼야 과학 공약도 내는 거 아냐?

  주성(실용): 이번에 대전시장 후보가 무슨 과학산업단지 조성한다는 공약을 내던데요.

  정원(진보): 우리나라는 무슨 공약들이 전부 건설로 끝나는 건지 모르겠어. 과학 발전시키려면 과학단지 짓고, 패션 산업 육성 정책으로 어디 건물 짓고, 심지어 복지 정책으로 복지 센터 짓잖아.

  주성(실용): 헐. 그러게. 형, 그러지 말고 우리 건설 쪽으로 진출합시다. 먹고 살려면 그게 최고네.

  정길(보수): 하긴, 우리나라 세금이 건설 산업 쪽으로 많이 흘러들어가긴 하지.

  준상(무관심): 근데, 어쨌거나 그럼 우리는 뭐 보고 찍어요?

  주성(실용): 지난 번에 대학원총학생회에서 주소지 이전하자고 했잖아요. 그거 안 했어요?

  준상(무관심): 그런 메일이 왔어?

  주성(실용): 이 형 참, 사회에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아무 데도 관심이 없는 거였구나.

  정원(진보): 주성, 넌 주소지 이전 했냐?

  주성(실용): 저도 안 했죠.

  정원(진보): 푸하하, 그래놓고 무슨 말이 많아.

  주성(실용): 그거 하면 주민세인가, 그거 제가 내야 된다면서요.

  정원(진보): 그거 얼마 안 할 걸?

  주성(실용): 그냥 그런 거 신경 쓰기 귀찮아서요.

  정원(진보): 야, 그럼 과학 정책이고 뭐고 말을 말아라.


잠시 침묵.


  정길(박3, 33): 준상아, 너 학회 논문 준비하는 건 잘 돼 가냐?

  준상(박4, 31): 실험 중인데, 결과가 잘 나와야 말이죠.

  주성(박1, 27): 에이, 또 연구 얘기. 형들 오렌지캬라멜 까탈레나 안무 비디오[4] 봤어요? 대박이던데.

  정길: 아니. 뭔데? 봐봐.


치킨을 다 먹도록 우리는 텔레비전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




구실로 돌아와서 습관적으로 열어본 포털 사이트 뉴스도 선거 일색이다. 누구는 지지율이 떨어지고 누구는 단일화에 성공했다. 기사를 하나 더 클릭할까, 그만 논문을 읽기 시작할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한다. 먼저 자신을 수양해야, 한 집안을 바르게 할 수 있고, 그 후에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단계적이지 않다. 우리가 수신을 하고 있는 사이에 부모님의 벌이는 줄어들고 선거일은 다가오고 다른 나라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난다.


박사과정이란 게 어찌 보면 고3 수험생처럼 자기 공부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긴 하다. 부모 봉양은 잠시 미뤄두고 “몇 년 만 더 참아. 내가 팽팽 놀게 해줄게”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만 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투표권을 가진 성인으로서, 게다가 지식을 쌓는 것이 업인 사람으로서의 책무는, 미뤄두기엔 너무 현재적이다. 당장 우리 대학 국고보조금에 대한 것이고 우리 연구실 연구비에 대한 것이고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것이고 버스 요금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책무를 적극 감당하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느 당에 들어가 활동하거나 사회단체에라도 참여하기엔 시간이 없다. 물론 연구를 대단히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구실에 붙어 있기는 해야 하거니와, 그런 일들을 한다고 해서 남은 시간 동안 연구에 집중하게 될 리도 만무하기에. 그렇다고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니, 내 영향력은 4000만 분의 1일 뿐이다. 내가 서울 시민이니 서울시장 선거만 고려한다 해도 844만 분의 1, 투표율이 50%가 안 되는 나쁜 상황을 가정해도 400만 분의 1이다.[5] 내 한 표로 세상을 바꿀 순 있긴 한 걸까. 투표가 아니라 여론이 세상을 바꾸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SNS 시대, 직접 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이다. 하지만 모두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실상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흐드러지는 트윗들은 그대로 흐트러지곤 한다. 주옥 같은 트윗에 눈길이 머무르는 시간도 평소의 스크롤 속도에 좌우될 뿐이다.[6] 게다가 애초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골라 듣는 SNS에서, 내가 어느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당장 나부터도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언팔 하곤 하는데.


무기력한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는데 나만 나이가 들고 책임이 더해진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정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내 논문, 내가 무기력해 하는 사이에, 연차만 더해지고 부모님이 나이가 드신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는….


* * *


[1] MBC <무한도전> 2014년 5월 3일, 10일, 17일, 24일(50:50~), 31일 방영분. MBC 홈페이지(http://www.imbc.com)와 pooq(http://www.pooq.co.kr) 등에서 정당하게 다시 보기와 내려 받기를 하실 수 있습니다.

[2] 데시벨(decibel, dB): 소리의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상용로그에 10을 곱한 값을 사용하므로, 10데시벨이 높아지면 소리가 10배 커졌음을 나타낸다. 본문처럼 7데시벨이 낮아지는 경우 소리 크기가 약 1/3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도서관이 40데시벨, 지하철 내부가 80데시벨, 비행기 소리가 120데시벨쯤 된다고 한다.

[3] 탈무드에 있는 말이라고도 하고 소설 <카르마의 구슬>에 나왔다고도 하는데 원전은 확인하지 못 했어요. 이건 논문이 아니라 소설이니까 좀 봐주세요.

[4] ORANGE CARAMEL(오렌지캬라멜) _ 까탈레나(Catallena) _ Dance Only. http://www.youtube.com/watch?v=HxZvLRPF2j0 공중파에 꾸며 입고 나와서 추는 것보다 좋다. 추천.

[5] 김연정 기자, “6·4 지방선거 노장년 유권자 늘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4/05/26/story_n_5390260.html?utm_hp_ref=kr-politics

[6] 심지어 사람들은 기사를 읽지도 않고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Daniel Terdiman, “News flash: People rarely read before tweeting stories” http://www.cnet.com/news/news-flash-people-rarely-read-before-tweeting-stories/



  작가의 말

전국에 흩어져 계신 대학원생 여러분, 현 거주지로 주소를 이전하지 않으셨다면 꼭 사전투표에 참여하세요! 부재자 등록과정이 없어지는 통에 (저처럼) 선거공보를 못 받으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http://policy.nec.go.kr/ 에 가보세요.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선택하시면 후보자 목록이 나오고 선거공보도 보실 수 있습니다. 레이니스트에서 제공하는 공약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http://www.rainist.com/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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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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