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대의 "소설-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박사우울증’이라는 게 있습니다. 많은 대학원생이 흔히 겪는 우울한 증상을 뜻한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 ‘박사우울증’을 앓는 많은 이공계 대학원생의 삶을 소설 형식에 담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로 이해하며 보듬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카이스트 박사과정 김창대 님이 씁니다.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건지, 시간이 날 관리하는 건지…

00PhD6.jpg » 삽화 / 김창대, 그림재료/ openclipart.org



#5. 시간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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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모를 불안감에 깨어 보니 구글캘린더[1]가 깜빡인다.

“09:00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실습반”

조교 역할을 하러 갈 시간이다. 20분쯤 잔 건가….


저린 팔을 주무르며 일어나는 내 모습이 마리오네트[2] 같다. 구글캘린더가 날 조종하는 것 같다. 감정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프로그램을 깨우고 그것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캘린더에 일정을 넣은 것은 분명히 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소설을 읽었을 때, 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 로봇을 만든 것은 인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고등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방문한다는 가정만 없다면. 내가 지금 연구하는 컴퓨터도 인간이 뭘 시키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소위 인공지능이란 것마저 인간이 구현해놓은 것일 뿐이다. 1997년, 처음으로 체스 프로그램이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고 한다.[3]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반칙일 뿐이다. 인간 체스 챔피언과 대결한 것은 슈퍼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였으니까. 여러 명의 프로그래머들은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들을 미리 슈퍼컴퓨터에 일러주었고 슈퍼컴퓨터가 대신 계산을 수행한 것뿐이다.


하지만, 내가 일정을 입력해둔 캘린더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지금, 로봇에 의한 인간 지배는 허상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나는 시간을 관리할 만한 의지와 능력, 그리고 곳곳에 수많은 시계마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캘린더에 모든 걸 맡겨둔 채 내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체스 프로그램 제작자들도 매번 말의 움직임을 고민하는 대신 말의 움직임을 대신 고민해주고 선택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니까. 생각하기를 점점 더 귀찮아 하는 인간이 스스로 로봇을 만들고 거기에 지배 받기를 선택하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머리가 아직 멍하다. 느릿느릿 흐른다. 하지만 부유물이 잔뜩 떠다니는 느낌이다. 복잡하다. 카페인은 아직 심장을 간질인다. 심장이 빠르게 움찔거린다.

하지만, 조교 일은 하러 가야지. 주머니에 펜 하나만 찔러 넣고 컴퓨터 실습실로 향한다.


9시 3분 전, 건물에 도달했다. 9시 수업이 있는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들어가고 있다. 나도 거기에 올라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리도 빨리 걸어가는가?


아마 직접 물어본다면 모두가 “수업 가야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수업은 왜 가지? 신청했으니까. 신청은 왜 했지? 졸업 요건을 채우려고. 졸업 요건은 왜 채우지? 학사학위를 받아야 하니까. 학사학위는 왜 받지? 그래야 취업하기 좋으니까. 취업은 왜 하는데? 돈을 벌려고. 돈 벌어서 뭐하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먹고 사는 건 왜하는데? 음… 그럼 죽게?


우리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일까? 물론, 다른 방향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왜 가지? 신청했으니까. 신청은 왜 했지? 이 과목을 배우고 싶었거든. 왜 배우고 싶었는데? 의사가 되려고. 의사가 돼서 뭐하게? 우리 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거든. 난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돼서, 할머니 같은 사람을 살릴 거야. 언제부터 그 생각을 했어? 대학 가려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부터.


그리고 좀 더 고상한 방향으로도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왜 가지? 지식을 얻으려고. 지식은 왜 얻지? 배우고 싶으니까. 왜 배우고 싶은 건데? 배울 때 행복하니까. 왜 행복하려고 해? 불행한 건 싫잖아.


물론, 이런 괴상한 문답법을 거치지 않는다면, 혹자들은 “배움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어서”라거나 “99%에게 유익한 지식을 창조해내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서” 같은 질 좋은 문구를 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바삐 걷는 저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것이다. 돈 버는 게 인생의 목표인 자들마저, 지금 이 순간 움직이는 이유는 “수업 갈 시간이니까”일 것이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돕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대해 한 심리학자가 조사해보았다.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였고, 심지어 길에 쓰러진 사람을 돕는 것에 대한 설교 준비를 시킨 직후에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절반도 안 되는 사람만이 쓰러진 사람을 도왔다고 한다. 하지만 양심만 문제인 건 아니었다. “가능한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자 10%도 안 되는 사람만이 쓰러진 사람을 도운 것이다.[4]

‘~할 시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묻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목적까지도.




습실에 도착하니, 앞에 있던 대장 조교가 오늘 실습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전공을 가리지 않고 모든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이다. 프로그래밍과는 거리가 먼 학생들도 많이 들어야 해서 실습할 때 도움이 많이 필요하고, 그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이미 여러 번 해봤던 조교라 내용도 다 안다. 뒷자리에 앉아 게임이나 켠다.


캔디크러쉬사가, 여전히 342판. 탐욕 알고리즘(greedy algorithm)[5]을 적용해볼까 싶다. 간단히 말해서, 현재 상황만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하는 방식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계속하면 궁극적으로는 최적해(optimal solution)를 찾게 될 수 있을 때 이 방식을 적용한다. 또, 많은 문제들에 탐욕 알고리즘을 적용하면 최적은 아니더라도 최적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다.


옆을 보니 다른 조교들도 다들 얼굴을 파묻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갑자기 지금 다 뭐하고 있는 건가 싶다. 탐욕 알고리즘을 적용한다면 지금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10~20분이면 끝날 이 시간에 굳이 다른 일을 하기도 그렇다. 논문을 읽기도 집중이 잘 안 될 것 같고. 그냥 게임이나 계속한다.


실습이 시작된다. 게임을 그만두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벌써 다섯 번째 실습이라 학생들의 얼굴도 꽤 친숙하다. 스무 살, 아무 것도 모르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흘려버리기 마련이지만.

학생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미지 파일 불러오려면 어떻게 해요?”

 “그거, 지난 시간에 했잖아요.”

 “생각 안 나요.”

그냥 가르쳐 줄까, 하다가 자존심을 세웠다.

 “과목 홈페이지 보면, 미디어 렉쳐 노트라고 있어요. 그거 보시면 나와요.”

잠시 뒤 돌아보니 다른 조교가 이미지 파일을 어떻게 불러오는지 가르쳐 주고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든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이거 무슨 에러인지 모르겠어요.”

 “봅시다…. 음, 여기 g, r, t라고 써있네요. 이거 g, e, t라고 쓰려던 것 맞죠?”

 “헐, 그러네요?”

 “원래 에러의 90%는 오타 때문에 나는 거예요. 힘내세요.”


한 건 올렸으니 다른 데로 가려는 걸 학생이 붙잡는다.

 “조교님, 이거 실행 한 번만 시켜보고요.”

 “넵,”

다시 학생이 만지는 컴퓨터를 쳐다본다.

 “어? 왜 안 되지? 조교님, 이거 프로그램이 여기서 여기로 와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학생 말이 맞긴 한데, 코드에서 어디가 틀렸는지는 얼른 보이지 않는다.

 “음, 그럼 여기다가 출력문을 써서 이 변수랑 이 변수 내용을 출력시켜 볼래요? 여기요.”

 “네.”

 “그리고 실행시켜 보세요.”

 “이거 하면 뭐가 되는 건데요?”

 “음…. 제가 생각할 시간을 벌어요.”

학생이 웃는다. 뭐, 사실이니까. 계속 코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무래도 문제가 안 보인다. 이게 여기로 가서, 여기로 가야하는 것 같은데….

 “실행됐어요.”

 “이 값이 왜 이렇지? 아! 여기 이게 잘못 됐네요. 이 함수는 반환 값이 있는 게 아니라 파라미터를 직접 바꿔요.”[6]

 “아아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뿌듯하다.


또 다른 학생이 손을 든다.

 “조교님, 첫 번째 과제 다 했는데요.”

 “코드를 먼저 좀 볼까요? 음…. 실행시켜 보세요. 34랑 16을 넣어보시고요. 네, 잘 나오네요. 다음 과제 계속 하시면 됩니다.”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 실습조교를 하다보면 학생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모르겠다고 징징대며 무조건 빨리 끝내려고만 하는 학생,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 그리고 이미 다 알아서 잘 하는 학생. 공통 필수 과목이라 어렵지 않은 내용만 가르치다보니 프로그래밍을 배운 경험이 조금만 있어도 거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는 실습 시간이 별 의미가 없다. 다 아는 것, 너무 간단한 것을 굳이 다시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단지 학점만을 위해 실습에 참여한다. 그렇다고 이 부류의 학생들만을 위해 추가 과제를 내주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니 어쩔 수가 없다.


모르겠다고 징징대기만 하는 부류에게도 실습이 짜증날 뿐이다. 그들 역시 실습은 학점만을 위한 것이다. 자기는 전산학과에 진학하지 않을 테니 대충 해도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생물을 전공하는 친구가 나에게 프로그래밍을 물어보며 학부 1학년 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이야기해줘도 소용이 없다.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 이들만이 지금 배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보 같은 실수도 하지만 새로운 깨달음(사실 수업 시간 때 이미 다 배운 것이지만)도 얻는다. 그러다보니 조교를 하면서도 많이 대화하게 된다. 친해져서 농도 많이 치게 된다. 참 예쁘다. 보람이 느껴진다.




교 일이 끝나면 또 얼마지 않아 다음 일정이 있다. 그리고 또 다음 일정이 있다. 그 일정들 사이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분명 내가 결정한 일정들인데,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건지 시간이 날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교를 하는 동안, 그러니까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을 돕는 동안만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관리하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순전히 학생이 질문하려고 올린 손만 바지런히 쫓아다녀야 하는 시간인데도, 내 존재가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잘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그것의 관리를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효율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에도 탐욕 알고리즘이 통한다면, 지금 이 한 순간의 의미를 찾는 것이 궁극적인 최적일 텐데 말이다.


* * *


[1] 구글캘린더: 구글에서 제공하는 일정관리 서비스. https://www.google.com/calendar/

[2] 마리오네트: 인형 등의 물체에 줄을 달아 위에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 (설명의 출처는 http://ko.wikipedia.org/wiki/%EB%A7%9D%EC%84%9D%EC%A4%91)

[3] 1997년 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 블루는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 그랜드마스터 가리 카스파로프를 시간 제한이 있는 정식 대국에서 이겼다.  http://ko.wikipedia.org/wiki/%EB%94%A5_%EB%B8%94%EB%A3%A8

[4] 리처드 와이즈먼, <괴짜심리학>. 인용한 부분은 다음 기사를 참고하여 작성하였다. “목사 vs. 자동차 판매상, 누가 더 정직할까”(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1052)

[5] 알고리즘(algorithm):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순서대로 기술해 놓은 것. 가장 유명한 알고리즘으로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 있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6] 몰라도 인생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 ^_^




   작가의 말

얼마 전에 영화 <한공주>를 보았어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요, 사실 그런 영화인 줄 모르고 봤어요. 그래서 작가의 상상력이 참 잔혹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게 대부분 사실에 기반을 둔 영화라는 걸 알고서는, 참, 별 생각이 안 들었어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뭘 어찌할지, 난 작은 한 명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만에 하나 앞으로 저 주변에라도 있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게 되었어요.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굳이 마주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예술의 역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공부에만 매몰되어 가는 것 같을 때는, 좀 더 거시적으로 더 오래 고민해볼 수 있는 영화 한 편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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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대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
20대를 공대에서 보내고 30대도 공대에서 맞이한 전산학도. 그리고 소설 쓰는 사람. 무언가를 고찰하여 글로 표현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용감한 작가들> 회원이며 페이스북 페이지 <글 쓰는 김창대>를 운영 중이다.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이메일 : holypsy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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