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충분한 잠이 뇌 발달 단계에 중요’ -초파리 실험
미 연구팀 "어릴적 잠 부족, 어른된 뒤 행동능력과 연관"
"수면신경회로 활성 억제하는 도파민 분비 적어 많은 잠"
» 잠 자는 아기.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동물은 왜 생애 중 많은 시간을 잠자며 보낼까? 생애 초기인 어린 시기에는 왜 유난히 더 많은 잠을 잘까? 생물학적으로 잠은 어떤 메커니즘을 거치며 어떤 기능을 하는 걸까?
잠의 생물학에 관한 여러 연구가 진행되면서 잠의 메커니즘을 일으키는 신경세포들도 발견되고 지난해엔 어른의 경우에 잠이 뇌에 쌓이는 노폐물을 씻어내는 기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쥐 실험 연구결과도 나와 주목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생애 초기에 유난히 많은 잠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적에 잠이 많은 것은 뇌가 성숙해가는 발달 단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연구진은 실험동물인 초파리를 대상으로 연구해 생애 초기의 초파리가 많은 잠을 자는 것은 수면을 일으키는 신경회로의 활성이 유지되기 때문이며 어릴 적에 잠을 충분히 못 잔 초파리는 성체가 되어 특정 행동 능력에서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페렐만의대의 신경과학 연구팀은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낸 논문의 서두에서 이번 연구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거의 50년 전에 제안된 ‘수면의 개체발생학’ 가설은 초기 발달 단계의 수면이 뇌를 패턴화(brain patterning)하는 데 중요하다고 추정한다. 하루 평균 수면량은 발달의 초기 단계 때 가장 많다는 것은 여러 종에서 나타나며, 실제로 인간 대상 연구에서도 발달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에 수면 장애는 나중에 심각하고도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낳을 수 있다고 제시된 바 있다. 그러나 …수면이 통상적으로 뇌의 구조적 성숙화에도 필수적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초파리(Drosophila)의 수면은 인간의 수면과 여러 가지 공통의 특성을 지닌다. 거기에는 개체발생학적 변화도 포함된다. 우리는 수면의 개체발생학(sleep ontogeny)을 관장하는 신경회로(neural circuitry)를 탐사하는 데 이 모델동물을 이용해 발달 단계의 수면 손실이 성체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살폈다.”
» 그림설명. 성체 발달 과정에서, 각성을 일으키는 특정한 도파민 뉴런이 점점 활성화하여, 초파리 뇌의 이른바 ‘수면센터’를 억제한다. 뉴런 활성을 보여주는 유전자 표지를 사용해서, 연구팀은 이 수면 영역이 어린 초파리에서 더욱 활성을 띠어 결국에 더 많은 잠을 자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출처/ 펜실베이니아대학 의대 M. Kayser
연구팀은 잠을 일으키는 '수면 중심(sleep center)'으로 알려진 수면 조절 신경회로(dFSB; dorsal fan-shaped body)의 활성을 조절하는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초파리 실험동물을 만들었다. 각성을 일으키는 데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적게 분비되면 수면 신경회로는 활성을 유지해 잠에 빠지게 하며, 반대로 도파민 분비가 많아지면 잠에서 깨어나게 한다.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어린 초파리에서는 도파민 신경세포(뉴런)의 활성이 낮기 때문에 수면 신경회로의 활성이 유지되면서 초파리가 많은 잠을 자게 되며, 도파민 분비를 증강하면 어린 초파리라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른 초파리에서도 도파민 분비를 줄이면 잠 자는 시간은 크게 늘어났다.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어릴 적에 잠이 많은 이유를 수면 신경회로 활성과 이를 조절하는 도파민 분비량의 관계로 설명해냈다(옆 그림 참조).
“동물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생애 초기의 많은 잠은 이 시기에 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연구논문에서 우리는 뇌의 구조 발달 과정에서 잠이 행하는 특정한 기능을 규명했다. 이에 더해 우리는 어린 초파리들의 잠을 제어하는 신경회로를 찾아냈다. 초파리에서 수면 개체발생학(sleep ontogeny)은 다음과 같은 발달 프로그램에 의해 제어된다. 즉, 어린 초파리들에서는 dFSB(수면 조절 신경회로의 하나)에 뻗어 있는 도파민 뉴런들의 활성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잠을 촉발하는 이 영역(dFSB)의 활성이 증대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연구팀은 '어린 동물에게 잠은 왜 중요한가? 이런 잠의 패턴을 바꾸면 어떤 영향이 생길까?'라는 물음에 한 가지 답이 될 만한 또 다른 실험 결과를 함께 발표했다. 이들은 도파민 분비를 증강해 어릴 적에 잠을 잘 못 잔 초파리들이 어른이 됐을 때 이들과 달리 어릴 적에 잠을 제대로 잔 초파리 대조군과 어떤 행동 차이를 보이는지 관찰했다. 초파리 수명은 2주가량에 불과해 실험실에서는 초파리의 생애 전 과정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연구팀은 비교 대상으로 이미 많이 연구된 초파리의 구애와 짝짓기 행동 차이를 살피기로 했다. 실험 결과에서는 어릴 적에 많은 잠을 자지 못한 초파리들은 어른이 됐을 때 구애 행동에서 뒤쳐지는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전했다(참조: 펜실베이니아대학 보도자료).
어릴 적에 잠이 부족했던 초파리가 나중에 구애와 짝짓기 행동에서 뒤쳐지는 능력을 보인 것은 구애 행동과 연관되는 후각 신경의 특정 부분(후각신경사구체, glomerulus)이 어릴 적의 발달 단계에서 적절하게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연구팀은 풀이했다. 이번 연구는 잠과 관련한 새로운 신경 연결망을 찾아낸 것은 아니지만 '생애 초기의 많은 잠'과 관련한 신경회로를 추적하고 그 메커니즘을 설명해냈으며, 어린 시절의 수면 부족이 나중에 어떤 행동 능력의 차이와도 연관될 수 있음을 동물 실험 수준에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연구팀은 논문 결론에서 “결정적인 발달 시기의 잠은 훗날 생기는 질병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논문 초록
“대개 동물은 성체 시기에 비해 어린 시절에 잠을 더 많이 자는데, 그 초기 수면의 기능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초파리를 이용해, 우리는 어린 초파리에 나타나는 더 많은 잠이 더 높은 각성 문턱과 수면 박탈 저항성과 관련 있음을 발견했다. 초과 수면은 수면 촉진 영역에 대한 특정 도파민 회로의 억제가 감소할 때 나타난다. 어린 초파리를 대상으로 이런 회로를 실험에서 과활성화하면 수면 상실이 초래되고, 성체가 되었을 때 구애 행동에서 부족함(deficit)이 지속된다. 이런 부족함은 부화 이후에 넓리 수면에 의존하는 성장을 통상으로 보여주는 단일 후각신경 사구체(토리, glomerulus)의 발달 장애를 동반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는 잠이 종 번식에서 중요한 성체 행동을 일으키는 통상적 두뇌 발달을 촉진한다는 것을 입증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뇌 영역들이 생애 초기에 수면 동요에 매우 취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논문 초록)
사구체(토리,glomerulus): 후각신경 축삭들이 모여 실타래처럼 뭉쳐 있는 구조.(위키미디어 설명 참조)
■ 사이언스 저널 에디터의 '요약소개'
“우화 직후의 어린 초파리들은 잠을 많이 자며 잘 깨지 않는다. 며칠 지나면서 이 초파리들은 잠을 덜 자며 더 쉽게 깨어닌다. Kayser 등은 어린 초파리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다른 잠 패턴이 뇌의 올바른 발달에 중요함(critical)을 보여준다. 어린 초파리들의 잠이 흐트러질 때 도파민 신호전달도 또한 흐트러지며, 구애 행동 신경회로에 있는 후각신경사구체(토리)가 적절하게 발달하지 못해, 초파리는 결국에 미숙한 구애 행동을 보이며 번식에 실패한다.”(논문 요약소개)
오철우기자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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