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크 초파리’의 뒷걸음질 신경세포들

오스트리아 연구팀, 열유전학 기법 이용해 탐색

“앞으로 걷기 기본 신경회로 꺼 뒷걸음질” 추정



논문 부록에 실린 문워크 초파리 실험 동영상들을 자세히 보려면

http://www.sciencemag.org/content/suppl/2014/04/02/344.6179.97.DC1.html


느 때와 다를 바 없이 포근한 곳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나른한 오후, 바람이 한 움큼 훅 불어닥치더니 누군가 몸을 낚아챕니다. 아둥바둥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노력해도 도통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을 때쯤 온몸이 다시 자유로워지고 눈앞에 길고 좁은 통로가 보입니다. ‘탈출해야 해!’ 이곳이 어딘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갑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 앞이 분명 투명하건만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할까요? 다시금 몸을 밀어봐도 길이 없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뒤로 가려고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결국 지쳐 잠시 쉬었다가 낑낑 겨우 뒤로 돌아 다시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이런, 반대쪽도 막혀 있네요. 어떻게 할까요? 지칠 때까지 일단 움직여봐야 하지 않겠어요?



‘열유전학’ 이용한 뒷걸음질 초파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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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들으면 잔인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분자병리학연구소(IMP) 연구진이 초파리가 뒤로 걷을 수 있게 하는 신경세포를 찾는 데 이용한 분석법에 대한 것입니다(<사이언스> 논문, 4월4일). 많은 동물은 평소엔 앞으로 가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뒤로 물러섭니다. 그런데 이때 뇌에서 대체 어떤 명령이 내려와 뒷걸음질 치게 하는지 또 그때에 어떤 신경세포가 작용하는지 등은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경세포와 명령 체계가 초파리를 뒷걸음질 치게 하는지 밝히고자, 연구진은 온도를 바꿔 신경을 끄고 켤 수 있는 열유전학(thermogenetics) 기법을 이용했습니다.


유전학 기법은 기존 광유전학 기법처럼 특정 조건에서 열리고 닫히는 ‘이온 통로(ion channel) 단백질’을 이용해 신경세포를 끄고 켤 수 있는 기법입니다. 이 실험에서는 섭씨 약 30도에서 통로를 여는 ‘TrpA1’ 단백질로 신경세포 작동을 조절했습니다. 초파리는 성장하면 몸이 불투명해져 광유전학 기법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열유전학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진은 돌연변이 초파리 총 3470 종류를 분석해 뒤로 걷는 초파리를 골라냈습니다. 이들은 초파리가 옆으로 움직이긴 어려운 좁은 통로로 고리를 만들고 이곳에 초파리를 집어 넣었습니다. 그리고 신경세포 스위치가 꺼지는 섭씨 22도에서, 그리고 스위치가 켜지는 섭씨 30도에서 각각 초파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분석하여, 스위치가 켜졌을 때는 뒤로 계속 걷는 초파리를 찾았습니다.(사진 1) 이 독특한 행동을 보이는 초파리는 마이클 잭슨의 춤 이름을 따 “문워크 초파리(moonwalker)”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s2.jpg » 사진 1. (a) 왼쪽에 있는 초파리는 신경세포 스위치가 꺼진 상태로, 앞으로 걷습니다. (b) 가운데 있는 초파리는 왼쪽에서 온도를 높여 신경세포 스위치만 켠 상태로, 뒤로 걷습니다. (c) 오른쪽에 있는 일반 초파리와 비교해보면 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논문 부록의 동영상 'movie S2'http://www.sciencemag.org/content/suppl/2014/04/02/344.6179.97.DC1.html

연구진은 이 신경세포들이 정말로 뒷걸음질 행동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몇 가지 실험을 더 진행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신경전달물질을 차단해 이 신경세포들이 작동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뒷걸음질 치게 하는 신경세포들이 작동하지 않는 초파리는 직선 통로에서는 벽에 부딪혀도 뒤로 물러서지 못하고 앞으로 걷게 됩니다.(사진 2) 그래도 계속 부딪치면 멈춰 서 있다가 애써 몸의 방향을 반대쪽으로 틀고 나서야 다시 직진합니다. 이 신경세포들이 작동하는 일반 초파리가 벽에 닿으면 한동안 뒷걸음질 치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것입니다.

s3.jpg » 사진 2. (a) 왼쪽 일반 초파리는 벽에 닿으면 결국 뒤로 물러납니다. (b) 반면 신경전달물질이 차단되어 특정 신경세포들이 차단된 문워크 초파리는 계속 앞으로 걷습니다. 출처/ 논문 부록의 동영상 'movie S3' http://www.sciencemag.org/content/suppl/2014/04/02/344.6179.97.DC1.html


'문워크' 일으키는 하행과 상행의 신경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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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신경세포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연구진은 문워크 초파리의 신경세포에 특정 단백질이 만들어지도록 한 뒤 이 단백질에 결합하는 염색용 항체를 이용해 이 신경세포들을 식별해냈고, 그 결과 ‘문워크 신경세포’ 후보 7개를 찾아냈습니다. 이후 이 신경세포 7개 중 일부에만 ‘TrpA1’ 단백질이 발현되는 새로운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고, 이 초파리들로 뒷걸음질 실험을 반복해 신경세포 7개 중 2개가 뒷걸음질과 관련됨을 알아냈습니다. 이 둘은 뇌에서 내려온 신호를 전달하는 하행 신경세포(descending neuron)와 뇌로 신호를 올려보내는 상행 신경세포(ascending neuron)였으며, 각각 문워크 하행 신경세포(Moonwalk Descending Neuron; MDN), 문워크 상행 신경세포(Moonwalk Ascending Neuron; MAN)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지막으로 이 두 신경세포가 어떻게 뒷걸음질 행동을 조절하는지 확인하고자 연구진은 하행 신경세포와 상행 신경세포를 따로따로 켜고 끌 수 있는 돌연변이 초파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중 하행 신경세포가 켜지면 초파리는 뒷걸음질 행동을 보였고 꺼지면 뒷걸음질 치지 못했기 때문에 하행 신경세포, 즉 MDN이 뒷걸음질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행 신경세포만 켜졌을 때 뒤로 걸은 총 이동거리는 하행과 상행 신경세포가 모두 다 켜졌을 때와 비슷하게 나타났으나, 둘 다 켜졌을 때에는 한 번 움직일 때 ‘더 오래’ 뒤로 걷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따라서 상행 신경세포는 초파리가 앞으로 걷는 것을 막아 뒤로 걷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했으며, 실제로 상행 신경세포만 켜졌을 때는 초파리가 머뭇거리는 것을 더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상행 신경세포는 초파리 다리 근육이 작동하는 순서와 시기를 뒤집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하행 신경세포는 앞으로 걷는다는 동물의 기본 설정을 끄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늘어 놓으며 논문을 끝맺었습니다.


‘뒤로 걷게 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면, 앞으로 걷게 하는 신경세포는 없을까요? 또는 (그런 신경세포는 따로 없는) 대신에 보통은 앞으로 걷고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면서 방향을 바꾸게 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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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포스텍 생명과학과 학부생, 과학저널리즘 동아리 ‘과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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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대학원생(석사과정)
“먹고 살 걱정 하는 세상을 넘어, 놀고 즐길 수 있는 세상으로.” 포스텍에서 학부를 졸업하고서 2015년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 생명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학을 즐기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는 열정과 기쁨을 다른 사람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세상을 지향합니다.
이메일 : ecologicalj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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