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구자들의 "청춘 스케치"

연구의 맛과 멋을 배우는 젊은 연구자들이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그리고 사회와 만남에서 얻는 에피소드와 경험, 그리고 생활의 단상을 전합니다.

‘나는 정말 무얼 하고 싶었던걸까’…포닥의 늦은 ‘사춘기’

김연주의 “일본에서 배우는, 과학자로 살기”


[1]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리는 연구공간

00osaka1.jpg » 은퇴하시는 노교수님의 은퇴 기념으로 실험실 사람들은 스와로브스키(크리스탈 액서서리 브랜드)에 특별 주문해 제작한 파이펫을 드렸습니다. 크리스탈이 잔뜩 박힌 파이펫을 보고 놀라는 노교수님입니다. 사진/김연주


‘언제 4월이 된 거지……?’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본 오사카에 와서 두 번째로 맞는 ‘봄’입니다. 첫 해에는 그야말로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실험 주제에 적응 하느라 정신 없이 계절이 가는 줄 모르고 지냈는데 그래도 올 해에는 흘끔흘끔 창 밖도 보고 합니다.


어릴 적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적어 내라고 하실 때 아무 생각 없이 ‘과학자’라고 썼던 적이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과학, 연구에 투자하고 정말 ‘과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많은 시간과 엄청난 ‘기회비용’을 투자해서 학위까지 받고서, 좀 창피한 이야기지만, 여태까지 제 삶을 돌아보면 항상 상황에 떠밀려 깊이 생각 않고 선택해 왔고, 딱히 뭐가 되어야 하겠다거나 이 연구를 계속해서 뭘 하고 싶다거나 이런 걸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그런 걸 고민해야 할 시기를 맞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내가 열다섯 살 사춘기 학생도 아닌데 이제 와서 무슨…….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본’이라는 환경이, 비슷한 또는 훨씬 적은 또는 많은 나이의 일본인 연구자들이 자기 일을 대하는 태도와 그들이 보여주는 생각들이 저에게 때늦은 ‘사춘기’를 맞게 했더군요.



상하관계 뚜렷한 일본의 실험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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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총 인원 50명 정도로 꽤 큰 규모의 연구실입니다. 일흔이 다 된 노교수의 제자가 지난해에 연구실을 이어받아 정교수가 되었고(저를 고용한 분입니다), 이 교수님 아래로 조교수가 4명, 포스닥(박사 후 연구원)은 3명, 아래 박사과정이 4명, 석사과정은 5명, 그리고 그밖에 동물시설 관리 인원들과 비서들, 거기다가 비영리법인(NPO, 사회적인 과제 해결을 사명으로 하는 비영리법인) 관계자 등 전체 인원이 교수님 한 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런 상하관계를 좋아하고 전체에 묻어가기를 좋아하는 일본인의 어떤 문화도 거기에 섞여 있는 듯합니다. 물론 이런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있을 것입니다.


장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또한 외국인인 저에게는 가장 답답한 것은 일반 회사의 사무실과 같은 연구실의 공간 구성입니다. 몇 년 전에 ‘교수와 연구원의 책상 사이 거리가 가까울수록 연구 진행 속도가 빠르고 결과가 많이 나온다’는 어떤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실험실의 경우를 보면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저의 경우에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계속 감시 받는 듯한 느낌이고 그래서 답답하기도 합니다.

00osaka2.jpg » 일반 회사의 사무실을 연상하게 하는 연구소 사무실입니다. 교수님 자리는 왼쪽 칸막이 너머랍니다. 칸막이가 있는 자리는 교수님 이하 조교수 자리, 나머지는 관련 학생, 비서 등등이 줄지어 앉습니다.

오사카 의과대학 정교수로 부임하신 현재의 연구실책임자(PI)는 연구실을 국제적으로 키우려는 계획을 세우고서 외국인 연구자들을 받기 시작했는데, 현재 연구자로는 저뿐이지만 세계의 여러 공동 연구자들과 틈틈이 드나드는 외국 교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화의 기반은 아직 다 갖춰지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찌나 어려운 점이 많던지요. 일단 매뉴얼 하나 영어로 되어 있는 게 없습니다. 또한 영어로 제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연구실을 통틀어 다섯 명이 채 안됩니다. 대부분의 기기와 프로그램도 일본어로만 되어 있습니다. 여태까지 외국인 포스닥이 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군요. 또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외국인 포스닥으로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한국 사람’을 뽑은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한 거죠. 하지만, 박사학위를 이제 막 받은, 거기에다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야 하는 새내기 포스닥인 저에게는 너무 가혹한 환경이었습니다. 연구 주제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말이죠.



현장에 돌아온 노교수, 전문인 뺨치는 NPO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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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일반 회사와 학교들은 한 해의 마무리를 3월에 하고, 4월부터 학교의 경우 신학기가 시작되고, 회사도 모든 업무를 시작합니다. 대부분 일본 회사에서 신입사원은 4월에만 입사가 가능해 대학 졸업 뒤 4월에 입사하지 못하면 1년을 재수한다고 합니다. 포스닥도 예외가 아니어서 저도 이 즈음에 제 계약을 해야만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석사과정 뒤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은, 석사과정 1년을 마치고 난 뒤 2~3개월가량 취업 활동을 합니다. 학교에 소속된 채로 면접을 보러 다니고 필요한 시험을 봅니다. 졸업 뒤의 일자리가 구해지면 다시 진행하던 연구를 마무리하고, 석사과정 졸업 뒤 4월부터 회사로 출근하는 시스템입니다. 우리 실험실의 내년 졸업 예정 학생의 경우도 얼마 전에 입사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도 좀 하려고 합니다. 지난 가을, 꽤 규모가 큰 은퇴식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며 해마다 후보자로 점쳐질 정도로, 유전자 조작 동물, 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는 알아 주는 분이라고 합니다. 50년 이상을 한 가지 연구만 줄곧 해오면서 현재까지 이 실험실을 키워오신 분인데, 은퇴 후에 다시 ‘계약직 연구자의 신분’으로 돌아와 실험실에 남아서 아직도 파이펫을 잡고 계십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은퇴 직전에 일본 정부의 과제를 수주하는데 성공해서 이후 3~5년간의 자신의 펀드를 넉넉히 확보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제자였던 젊은 교수에게 자기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기는 작은 실험실 책상 하나에 포스닥과 같은 위치에서 관심 있던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논문도 내고 과제도 수행하고 가끔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하십니다. 은퇴식 자리에서 노교수의 이런 행보에 대해 조금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교수로서 바쁜 일정이나 의무 등에서 벗어나서 이제 비로소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연구비를 확보할 수 있는 한 실험실에 남고 싶다’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열정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실험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원들 중에 엔피오(NPO)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사회·예술·과학 등 분야에서 이런 비영리기구의 활동이 매우 활발한 것 같습니다. 저희 실험실의 경우에 이들은 실험실 유지와 운영을 돕는 역할을 하는데요, 줄기세포 배양 배지의 관리, 제조뿐 아니라 외부에서 유전자 조작 동물 제작 의뢰를 수행하고, 다른 조교수들의 연구를 보조하는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실험보조원(테크니션)이 아닌 전문연구원인데 대체 어떤 식으로 교육을 받아서 이 정도로 실험을 잘 진행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테크닉의 측면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이며 실제로 실험실에서 나가는 많은 논문의 실험을 이들이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자세히 소개해 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말씀 드린 것만 봐도 일본 과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숨은 일꾼들 임을 조금 느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배들을 깨우는 새내기의 포부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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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osaka3.jpg »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입니다. 올해, 오사카에 벚꽃이 만발하는 기간은 3월30일부터 4월15일까지 약 2주 정도입니다. 4월이 되어 새로운 신입생들도 들어오고 새로운 연구 보조인력도 고용되었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전체 메일로 자기 소개와 포부, 계획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한 석사과정 신입생은 자기 인생의 목표가 ‘과학 교과서에 나올 만한 발견을 하는 것’이랍니다. 어찌 보면 그맘때에 품을 만한 야심만만하고 거창한 꿈인듯한데요, 하지만 찬찬히 그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가 과연 과학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했고 과연 내 인생의 목표는 뭐였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연구보조원의 메일을 보고는 또 깜짝 놀랐습니다. 잠깐 소개할까 합니다.


“여러분,

올해부터 신세를 지게 된 연구보조원 아무개입니다.

 [……]

이곳에 오기 전에는 남편의 유학에 편승해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2년반 정도 일했고, 귀국한 뒤 3년간은 이웃에 있는 단백질 연구소에서 기술 보좌원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소속된 연구실에서 다룬 동물은 히드라, 닭, 메추라기, 곰, 마우스, 도마뱀, 두꺼비 등으로 발생, 번식, 재생학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직배양, 이식 등 세세한 작업을 할 기회가 많이 있었으며 매니퓰레이터(manipulator)를 사용한 핵치환 작업 및 주입 등을 좋아합니다. 언젠가는 파리, 선충, 해파리 등을 제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


사실 편지에는 한국말로 다 번역할 수 없는 동물 이름도 좀 더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발생, 재생학 연구가 훨씬 다양한 동물을 대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놀랐습니다. 한편으론 연구실책임자(PI)가 올해는 어떤 실험을 진행하려고 이렇게 다양한 동물의 배아를 다뤄본 보조원을 채용했나 하는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기까지, 제가 몸담고 있는 실험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간단히 소개해 보았습니다. 의사소통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어떻게 보면 학위과정 때보다 훨씬 더 고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주제 아래에 모여서, 너무나도 잘 운영되고 있는 일본의 실험실을 찬찬히 파헤쳐보고,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을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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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오사카대학교 미생물연구소 연구원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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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일본 오사카대학 미생물병연구소 특임연구원
오사카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유전자(불임 관련) 조작 동물모델을 만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데 요즘 ‘열심히 하는 건 누구나 한다. 문제는 잘 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건 왜일까요?
이메일 : kimyeonjoo8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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