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경험의 셈법: ‘100 + 10 ≠ 110’인 이유

[1] 마루-마무리의 규칙


00consumption2.jpg » 출처 / openclipart.org


은 좋다. 떡볶이를 주문했는데, 김밥말이 한두 개가 더 얹혀 오는 걸 굳이 마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로 생긴 분식집을 의식해 손님의 마음을 남달리 사로잡고 싶었거나, 뜸했던 손님한테 돌이 돼 가던 김밥말이를 처리하고 싶었다거나, 이유야 무엇이건 분식집 주인의 선의는 ‘덤 싫어하는 사람 없더라’는 상식적인 믿음에 합리적으로 기대어 있다.


00consum7.jpg 분식집만이 아니다. 사람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들을 ‘경험산업 종사자’라 부르려 한다 [1])에겐 즐거움이건 재미건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는 한, 더 많이 것을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 심하면 강박이 있다.[2]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하지 않거나 마찬가지다. 음식점부터 게임, 관광, 광고, 영화는 물론 공연, 전시까지 모두 그렇다. 자원이 허락한다면 메뉴 수도, 반찬 수도 더하고 볼거리도 더한다.


하지만 예민한 경험산업 종사자들이 이미 알게 모르게 간파하고 있는 것처럼 불행하게도 사람의 경험을 셈하는 데 ‘더하기’는 적절한 은유가 아니다. 단지 고통이나 기쁨 같은 경험을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다. 숫자로 나타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100의 고통에다 10의 고통을 더한다고 110의 고통이 되지는 않는다. 역시 100의 기쁨에다 10의 기쁨을 더한다고 110의 기쁨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덧셈은 경험을 셈할 때 몹시 무능한 연산이다. 기억 때문이다. 경험하는 나(experiencing self)는 110의 아픔과 즐거움을 고스란히 체험하지만, 기억하는 나(remembering self)는 다르다. 문제는 기억하는 자아만이 시간을 견디고 말할 권리를 고스란히 갖는다는 점이다.



경험의 순서가 만족감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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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셈이 아니라면 사람의 경험을 은유할 자격이 있는 연산법은 없는 걸까? ‘마루-마무리 규칙(peak-end rule)’이라는 대안이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라는 후광이 여전한, 곧 여든을 앞둔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교수와 동료들이 1990년대부터 줄곧 매진했던 연구 주제 가운데 하나다.[3]


00consum11.jpg 이야기는 1993년 카네만, 프레드릭슨, 슈라이버, 리델마이어가 발표한 실험 연구에서 시작한다.[4] 사람들에게 섭씨 14도의 차가운 물에 정해진 시간 동안 손을 담갔다가 그 경험이 어땠는지 묻는 것이 실험 내용이다. 짖궂다. 손은 시렵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온도다. 한 조건은 14도의 물에 60초 담그는 것으로 끝난다. 다른 조건에서는 14도의 찬물에 60초 담근 다음, 물 온도를 조금 올려 15도의 물에 30초 더 담그고 있도록 했다.


문제는 두 조건에서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90초 동안 찬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던 사람들이 60초 동안 담갔던 사람들보다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100의 고통에 10의 고통을 더했는데도 110만큼 고통스러웠다고 말하기는커녕 100보다 덜 고통스러웠단다. 14도나 15도나 손이 시리긴 마찬가지인데 30초나 더 있어야 했던 사람들이 왜 덜 고통스러웠다고 했을까. 언뜻 피학적으로 보이는 이 반응에 대해 연구자들이 제안한 마음의 연산이 ‘마루-마무리 규칙’이다. 전체 경험에 대한 평가는 얼마 동안 고통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웠던 수준(이것이 ‘마루’)과 끝날 때의 고통 수준(이것이 ‘마무리’)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통증에서 나타나는 마루-마무리 규칙은 이후에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믿음의 켜를 쌓아갔다. 1996년 리델마이어와 카네만은 결장경 검사를 할 때, 시술 말미에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덧붙이면 환자들이 덜 고통스럽다고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5] 결장경 검사를 하는 동안 경험한 통증에 대한 환자의 기억은 실제 겪은 통증보다 (시간이나 강도 면에서) 마루-마무리 규칙의 예측과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슈라이버와 카네만의 2000년 연구는 듣기 싫은 소음을 부정적 경험으로 활용해 마루-마무리 규칙이 나타남을 보였다.[6] 마루-마무리 규칙은 통증처럼 부정적인 경험에서도 마무리가 덜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객관적으로는 더 고통스러운 조건을 선호하고 선택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묘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



즐거운 경험에서, ‘제임스 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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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 같은 부정적 경험에서 확인된 마루-마무리 규칙이 즐거움이나 재미와 같은 긍정적인 경험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디너, 윌츠, 오이시의 2001년 연구다.[7] 대부분의 실험 참여자들이 환상적인 삶 뒤에 적당히 행복한 여생이 더해지는 것보다 그대로 갑자기 끝나는 편을 선호한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진들은 ‘제임스 딘 효과(James Dean effect)’라는 이름을 주었다.


00consum8.jpg 바움가트너, 수잔, 패짓은 1997년 긍정적 느낌을 이끌어내기 위한 광고 중에서 강력한 정점과 긍정적 결말을 가진 광고가 더 높게 평가된다는 것을 보였다.[8] 1993년 프레드릭슨과 카네만의 연구는 긍정적 경험을 위한 소재로 즐거움의 정도와 길이가 저마다 다른 동영상을 사용했다.[9] 사람들은 영상을 보고 난 뒤,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 평가할 때 전체 경험의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전체 에피소드 중 한두 순간에 기대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경험시간 무시(duration neglect)’라고 불렀다.


시먼슨, 카먼, 오커리의 1994년 연구는 추가 정보 제공이나 프로모션이 오히려 브랜드를 더 낮게 평가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10] 심지어 추가 정보가 긍정적으로 보이고, 프로모션이 전적으로 선택사항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11] 긍정적인 경험에 대한 마루-마무리 규칙의 전언은 이렇다. 무척 괜찮은 선물을 한 가지 준 뒤에 덤으로 (역시 좋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맘에 드는 선물을 보태면 긍정적인 느낌은 전체적으로 오히려 낮아진다. 통증에서 그런 것처럼 즐거움에서도 사람들은 객관적으로는 더 낮은 수준의 즐거움을 객관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즐거움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경험 순서와 만족의 상관관계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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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해 시시하다면 박수를 보낸다. 뭔가 연구자들이 실수한 건 아닐까 의심스럽거나, 좀 더 궁금하다면 조금 더 들려드릴 우화가 있다. 2008년 두, 루퍼트, 월포드가 발표한 연구에 담긴 이야기다.[12] 논문 제목이 “긍정적인 경험의 평가: 마루-마무리 규칙(Evaluation of pleasurable experiences: The peak-end rule)”인 만큼 역시 긍정적 경험에서 마루-마무리 규칙이 나타나는지 살펴보기 위한 연구다. 이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경험은 디브이디(DVD) 선물이다. 자선기부에 대한 답례로 원하는 DVD를 우편으로 보내준다.


00consum10.jpg 먼저, 이메일을 통해 DVD 영화의 목록을 주고 고르도록 했다. 사용된 목록은 두 종류다. 목록 A는 로튼 토마토(www.rottentomatoes.com)에서 관객 점수를 기준으로 매우 높게 평가 받은 10개의 영화, 목록 B는 목록 A에 속한 영화처럼 높진 않더라도 나름 대로 좋은 평가를 받은 10개의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눈치 챘겠지만, 목록 A에서 영화를 고르는 것은 높은 수준의 긍정적 경험, 목록 B에서 고르는 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긍정적 경험을 구분하기 위한 준비다.


실험 조건에 따라 집단을 다섯으로 나누었다. A 집단은 목록 A에서만 DVD를 받는 집단이다. A+B 집단은 목록 A에서 첫 번째 DVD를 받고 난 뒤에 목록 B에서 하나 더 고를 기회를 준 경우다. 그리고 이 두 집단의 차이를 좀 더 명확히 살피기 위해 세 개의 조건을 더 배정했다. B 집단, B+A 집단, A+A 집단이다. 모든 DVD를 다 받은 뒤에는 1이 ‘아주 조금 좋았다’. 7이 ‘최고로 좋았다’로 매겨지는 7점 척도 평가에서 DVD를 받은 전체 경험이 얼마나 좋았는지 물었다. 아래 표가 그 결과다. 7점이 최고로 좋았다는 응답이고 4점이 중간 정도 좋았다는 응답임을 감안하고 평균값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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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집단과 A+B 집단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13] 반면에 A 집단과 B+A 집단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차이가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즐거움 뒤에 고만고만한 수준의 즐거움을 더하면 전체적인 즐거움에 평가가 오히려 낮아진다는 마루-마무리 규칙의 연산이 나타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단순해 보이는 실험결과에는 마루-마무리 규칙의 중요한 세 가지 특징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마루-마무리 규칙은 두 개를 받는 것이 (주의의 분산 등으로) 하나를 받는 것보다 덜 즐거운 것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A+A 집단이 A 집단보다 더 높은 평균값을 보인 결과를 봐주길 바란다(물론 그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지만). 두 번째, 마루-마무리 규칙에서는 순서가 핵심 요소다. B+A 집단과 A+B 집단의 평균값 차이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세 번째, 마루-마무리 규칙은 서로 다른 경험이 하나의 사건으로 뭉뚱그려져 인식될 경우에 작용한다. 혹시 사람들이 이를 따로 평가해 마지막에 받게 되는 DVD의 영향이 전체 경험을 전적으로 좌지우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A+B 집단과 B 집단 사이의 큰 차이를 셈해 보면 된다.



‘기껏 잘 놀고 난 뒤’에 웬 불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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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잘 놀고, 보고, 먹고, 듣고 나서 왜 난리인가”는 말을 곧잘 듣는다. 할 만큼 최선을 다해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었다고 생각한 경험산업 종사자가 고객, 사용자, 관객의 가혹한 평가를 받고 나서 배신감에 치떨며 내뱉는 말이다. 덧셈의 은유로 사람의 경험을 이해한다면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루-마무리 규칙이 들려준 마음의 연산을 참조하면 ‘기껏 잘 놀고, 보고, 먹고, 듣고 난 뒤’이기 때문에 ‘더 난리’일 수밖에 없음을 비로소 헤아릴 수 있게 된다.


경험산업 종사자들은 마음의 평화와 업무의 성과를 위해 한 사람의 고객, 사용자, 관객에게 두 가지의 자아가 있음을 새겨 두어야 한다. 하나는 경험하는 자아(experiencing self)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하는 자아(remembering self)다.[14]


00consum4.jpg 마루-마무리 규칙은 두 자아가 보여주는 불화의 한 장면을 크로키한 풍경일 뿐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고스란히 모든 것을 몸소 겪지만 발언권이 없다. 기억하는 자아만이 경험을 요약하고, 평가하며, 그 결과를 다음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기억하는 자아는 마루 경험(peak experience)과 마지막에 겪은 경험을 몹시 편애한다. 현명한 경험산업 종사자에게 이 두 자아와 어떻게 관계를 꾸려갈 지에 대한 저마다의 그림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경험하는 자아를 위해 서비스를 마련하고는 기억하는 자아와 대결하며 부질없는 좌절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마루-마무리 규칙이라는 우화(allegory)를 읽어내는 키워드는 이름 속에 포함된 ‘마루’와 ‘마무리’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단은 마루 경험(peak experience)이 중요하다. 기억하고 싶은, 기억되고야 마는 경험을 빚어낼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운운하는 일이 도처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도 얼마간은 마루-마무리 규칙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루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몰라서 못하는 사람이 있나. 고작 모든 경험산업 종사자의 영원한 숙제를 새삼 강조하는 것이라면 마루-마무리 규칙을 애써 읽고 참조한 보람이 없다.



‘마무리가 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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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좀 더 솔깃한 부분은 마무리 쪽에 있다. 마루-마무리 규칙에서 ‘마무리’는 전체 경험의 긍정적인 수준을 낮출 수도 있지만, 그리 좋지 않았던 앞선 경험을 얼마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이기도 하다. 뭔가 잘못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것을 마무리에 준비해야 한다. 억지스럽지만, 50의 즐거움을 가진 경험 A와 100의 즐거움을 가진 경험 B로 전체 경험을 구성해 준비했다고 하자. 이 때 순서는 ‘B → A’가 아니라 ‘A → B’여야 한다(이유가 떠오르지 않으시다면 조금 쉬셨다가, 마음 평안하실 때 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내려오시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런데 뭔가 문제가 생겨서 A에서 50이 아니라 10 정도 밖에 즐거움을 주지 못했다.


이때 마루-마무리 규칙은 다정하게 너무 낙담할 필요가 없다고 속삭인다. B로 100의 즐거움을 계획대로 잘 빚어낼 수만 있다면, 그 결과는 단순히 110이 아니라 그 이상일 수 있다. ‘마무리’ 경험은 이처럼 각별하다. 사려깊은 레스토랑에서 디저트에 그리 공을 들이는 이유도, 해피 엔딩이 통속성의 돌팔매에도 온갖 이야기에 살아남아 여전히 해피할 수밖에 없는 비밀도 여기에 숨겨져 있다.


00consum9.jpg 하지만, 과연 모든 경험산업 종사자들이 이 ‘마무리’를 그만큼 각별히 준비하고 있는지는 곱씹어 생각해 볼 일이다. 자신이 마련한 경험의 전체 과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느 단계를 마무리로 생각하고 있는지부터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 고객, 사용자, 관객의 경험 과정과 나란히 두고 그 마무리가 잘 맞는지 살펴야 한다면 요즘 다양하게 논의되는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의 방법론에서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 그렇게 ‘마무리’가 확인되면 그 단계에서 고객, 사용자, 관객과 어떻게 함께 경험을 빚어낼지를 제한된 자원을 집중해 공을 들여야 한다.


들어오는 손님에게 웃는 낯으로 “어서 오세요”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나갈 땐 아무 말 없는 점포 사장님이 하는 실수를 수많은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들이 늘 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긴 쉽지 않다. 하물며 계산이 끝난 고객을 대하는 레스토랑 매니저의 태도는 어떤가? 전시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선 영혼마저 팔 것 같던 미술관이, 정작 전시를 보고 난 뒤의 관람객과는 막 이혼 서류에 도장 찍은 배우자처럼 아무런 커뮤니케이션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문제다. 공들인 전체 과정을 깎아 먹지 않을 정도로, 아니면 앞의 실수를 만회할 정도로 정말 ‘good’한 ‘bye’가 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은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험하는 자아, 기억하는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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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외에도 마루-마무리 규칙의 주변에서 주어 올릴 만한 이야기들이 몇 가지 더 있다. 만약 100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경험과 10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경험이 있는데, 100을 마무리에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서로 다른 두 개의 개별적인 경험으로 분리하는 것이 더 낫다. 마루-마무리 규칙은 서로 다른 경험이 하나의 경험으로 묶여 구성되는 경우에만 적용되니까.


00consum12.jpg 당신이 떡볶이는 기가 막히지만 어묵은 그저 그런 집의 분식집 주인이라고 하자. 떡볶이를 사러온 손님에게 어묵을 덤으로 얹어 주려면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 있는 떡볶이를 주기 전에 어묵을 ‘먼저’ 서비스로 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경험을 분리하는 것이다. 떡볶이는 떡볶이대로 주고, 뒤에 날이 몹시 추운 날 문득 길을 지나가는 그 손님을 불러 세워 그저 그런 어묵 한 꼬치를 거저 건네는 것이다. 당신이 감당해야 하는 어묵 한 꼬치의 비용은 동일하겠지만 그 효과는 흑과 백처럼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즐거움과 재미 같은 긍정적 경험을 주된 ‘상품’으로 삼는 일이라면 의도와 관계없이 부정적인 경험도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이 경우에도 마루-마무리 규칙은 조금은 위안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노력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불편함을 끼칠 수밖에 없다면 그 불편함은 가능한 한 하나로 묶어서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


이 때 순서는 가장 덜한 불편이 맨 마지막 순서에 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동하기 쉬울 것 같아 말을 보태자면, 가장 덜한 불편을 맨 마지막에 ‘알려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 가장 마지막에 겪는 불편이 가장 덜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 고객, 사용자, 관객이 불편을 느끼는 시간이 객관적으로 더 늘어나더라도 가장 덜한 불편을 뒤에 하나 보태는 것도 좋다. 물론, 이때 당신은 경험하는 자아가 아니라 기억하는 자아를 상대하고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고객의 마음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물론, 곧 달아나겠지만.



[주]



[1] 이후에는 이들을 ‘경험산업 종사자’라고 부르려 한다. 조셉 파인과 제인스 길모어가 1998년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에서 처음 말한 ‘경험경제’라는 표현을 가져다 쓰곤 있지만, 꼭 뿌리가 거기에 있지는 않다. 또 반드시 제공한 경험의 댓가로 돈을 받는 경우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영리건 비영리건,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이들을 뭉뚱그려 언급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다른 말이 없기 때문에 이 말을 쓴다. 더 좋은 말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2] 경험을 ‘준다’, ‘안긴다’라는 표현은 말을 더 고르지 못하고 편의에 굴복한 표현임을 사과드린다. 경험이란 선물처럼 그렇게 완성된 것을 전달하는 형태로 전달되지 않는다. 실제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러저러한 경험이 가능한 조건들을 요모조모 궁리해 마련하고, 그 조건들이 잘 구현되도록 노동한 뒤, 기다리는 것이다. 경험을 빚어내고 발전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것은 모두 독자, 관객, 관람객, 이용자, 소비자, 참여자의 몫이다.

[3] 2002년 노벨경제학상, 정확히 말한다면 노벨을 기념하기 위해 스웨덴 은행이 수여하는 경제학상의 수상자는 둘이었다. 카네만 교수와 조지 메이슨대의 버논 스미스(Vernon Smith) 교수다. 카네만 교수는 판단,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 스미스 교수는 경제학에 ‘실험’이라는 경험적인 연구방법을 도입한 것에 대해(특히 선택적 시장 기제에 대한 연구에서) 평가를 받았다. 1978년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이 처음이 맞다면, 심리학자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이로써 아마 두 번째 일 것이다. 카네만의 중요한 업적의 대부분은 스탠포드 대학의 에이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함께였다. 오죽하면 ‘트버스키 앤 카네만’이 한 사람의 이름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트버스키가 살아 있었다면 세 명의 공동 수상이 되었을 텐데 무척 안타까와했던 기억이 난다. 트버스키 교수는 1996년 피부암의 일종인 전이 흑색종으로 사망했다. 혹시나 찾아 보았더니, 그 때 촉촉한 마음으로 읽었던 추도문이 아직 남아 있다( http://historicalsociety.stanford.edu/pdfmem/TverskyA.pdf ).

[4] Kahneman, D., Fredrickson, B. L., Schreiber, C. A., & Redelmeier, D. A. (1993). When more pain is preferred to less: Adding a better end. Psychological Science, 4, 401-405.

[5] Redelmeier, D. A., & Kahneman, D. (1996). Patients‘ memories of painful medical treatment: Real-time and retrospective evaluations of two minimally invasive procedures. Pain, 66, 3-8.

[6] Schreiber, C. A., & Kahneman, D. (2000). Determinants of the remembered utility of aversive sounds. Journal of Experiment Psychology, 129, 27-42.

[7] Diener, E., Wirtz, D., & Oishi, S. (2001). End effects of rated life quality: The James Dean effect. Psychological Science, 12, 124-128.

[8] Baumgartner, H., Sujan, M., & Padgett, D. (1997). Patterns of affective reactions to advertisement: The integration of moment-to-moment responses into overall judgements.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32, 219-232.

[9] Fredrickson, B. L., & Kahneman, D. (1993). Duration neglect in retrospective evaluations of affective episodes. Journal of Personality & Social Psychology, 65, 44-55.

[10] Simonson, I., Carmon, Z., & O’Curry, S. (1994). Experimental evidence on the negative effect of product features and sales promotions on brand choice. Marketing Science, 13, 23-40.

[11] 이들의 연구에서는 상품, 프로모션, 추가정보에 대한 정보가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에 마루-마무리 규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지금 함께 논의하고 있는 연구들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추가정보나 프로모션의 존재가 주 제품에 대한 이런저런 추론을 이끌어내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느슨한 실험설계(뭔가 제품에 문제가 있으니까, 프로모션을 하는 거 아니야? 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2] Do, A. M., Rupert, A. V., & Wolford, G. (2008). Evaluation of pleasurable experiences: The peak-end rule. Psychonomic Bulletin & Review, 15(1), 96-98.

[13] 통계에 기댄 보고서에 눈 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라는 말에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그 뜻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해가 있는 것 같아 읽는데 번거로울 주를 단다. ‘통계적으로 의미있다’는 말은 연구자의 주장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말이 아니다. 각별히 뭔가 의미 있다거나 눈여겨봐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단지, 통계적인 오류로 생겼을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것에서 그 차이가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끌어내는 수사를 사용한다. 설혹 수사에 매료될지언정, 통계적 유의성이 과학적 주장이 가질 수 있는 의미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주문처럼 외워볼 필요가 있다.

[14] 카네만 교수의 이 구분은 ‘과학적인 관점에서는’ 이제 농담이 되어 버린 프로이트의 의식, 무의식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마음의 이분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도형, 공부하는 것이 일인 회사의 부장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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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주)NIR 부장
사람의 마음이 남긴 무늬(또는 얼룩?)라면 뭐든 관심있는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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