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환경의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길이 단축할까

미 연구팀 “어릴적 열악한 가정 환경과 짧은 텔로미어 관련”

관련논문 31편 종합분석 “상관관계 근거 아직 약해” 주장도


00telo01.jpg »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텔로미어 부위(형광). 출처/ Wikimedia Commons


쁜 가정 환경이 텔로미어 길이를 줄여 생물학적 노화를 촉진한다?

미국의 아홉 살 소년 40명을 조사했더니 열악한 가정 환경을 겪는 소년들은 염색체 끝부분인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짧다는 '환경과 텔로미어 길이의 상관관계'가 관찰됐다고 미국 연구팀이 보고했다. 텔로미어는 의미 없이 염기서열이 단순 반복되는 염색체 말단 부위를 가리키는데, 세포가 복제·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닳아 없어져(짧아져), 텔로미어 길이는 생물학적 노화의 정도와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연구는 미국 과학저널 <미국 과학아카데미 회보(PNAS)> 온라인판에 실렸다.


과학저널 <네이처>의 보도와 출판된 논문을 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대니얼 노터먼(Daniel Notterman) 교수가 이끈 연구팀은 좋은 또는 나쁜 가정 환경에서 자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년 40명을 대상으로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했더니,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소년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19퍼센트가량 더 짧은 것으로 비교됐다고 보고했다. 텔로미어 길이가 더 짧다는 것은 생물학적 노화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풀이될 수 있으며, 최근에는 텔로미어 길이는 자연적 노화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만성 스트레스에 의해서도 짧아진다는 연구보고도 나와 주목받은 바 있다.


연구팀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운영하는 ‘취약가정과 아동복지 연구(Fragile Families and Child Wellbeing Study)’ 사업에 등록된 아홉살 소년 40명의 가정 환경 정보와 이들의 침에서 얻은 디엔에이 정보를 사용해 분석했다. 표본인 40명 중 절반은 어머니 교육 수준, 필요 소득 수준, 가정 안정성 같은 측면에서 좋은 환경에서 자란 이들이며, 비교 대상인 다른 절반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로 선발했다고 연구자들은 전했다.


이렇게 해서 40명의 가정 환경 정보와 측정된 텔로미어 길이를 여러 통계 기법으로 비교해 둘 사이의 상관성을 분석했다. 이들의 분석 결과에서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소년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좋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눈에 띄게 짧았으며, 또한 어머니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과 가족관계가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란 소년들의 텔로미어 길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더 긴 것으로 측정됐다고 한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도파민과 가정 환경, 그리고 텔로미어 길이의 상관성도 비교 분석했다. 그랬더니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분비·작용과 관련하는 유전자들에 민감도 높은 변이가 나타날수록 텔로미어 길이의 차이는 더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즉,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텔로미어 길이는 상호작용의 상관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들은 논문에서 "표본 숫자의 한계 때문에 [교육 수준, 소득 수준, 가족 안정성 등의] 각 측정값이 지닌 독립적 효과를 검사할 수는 없었다"면서도 "우리 연구는 어린 시절에 불우한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텔로미어 길이 단축과 연계되어 있음을 입증한다"고 제시했다.


텔로미어 길이와 사회경제 조건의 상관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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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회경제적 환경이 텔로미어 길이에 끼치는 영향과 그 상관성을 규명하려는 연구는 이번뿐이 아니라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 (예컨대 <플로스원(PLoS One)>에 실린 '텔로미어 길이는 사회적 패턴을 지니는가'). 텔로미어 길이가 뭐기에, 이런 주제의 연구들이 늘어났을까? 이번 논문의 연구자들은 연구 배경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디엔에이(DNA) 복제 과정에서, 염색체 말단은 염색체 복제와 세포분열의 주기 때마다 점점 짧아진다. 반복적 염기서열 구조를 지닌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 부근의 유전 정보를 손실되지 않게 보호하는 구실을 한다. 또한 텔로미어는 인접한 염색체 말단이 서로 뒤섞이지 않도록 막아준다. 세포 분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텔로미어 말단은 점점 짧아진다. 그래서 텔로미어는 '세포분열 시계(mitotic clock)'라고도 불린다. 점진적인 텔로미어 단축과 연계되어, 세포는 반복적 노쇠(replicative senescence)를 일으키는 신호전달의 사건을 활성화한다. 이런 연구보고에서 두드러진 바는, 스트레스가 텔로미어 염기쌍의 비효소적 가수분해를 촉진해 텔로미어의 반복적 단축을 증강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스트레스와 관련한 텔로미어 단축은 노화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리학적 풍화 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여러 연구에서는 스트레스와 텔로미어 길이 사이에 음의 연관성을 일으키는 몇 가지 행동의 매개요인 후보들이 제시됐다. 그런 것들에는 흡연, 정신질환(특히 우울증), 보살피기 스트레스, 비만이 포함된다. 사회적 박탈과 이런 매개요인 사이에 있는 강한 연계성을 고려하면, 사회적 지위와 사회적 박탈의 일부 측정값이 텔로미어 길이와도 연계된다는 발견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물음은 남는다. 과연 빈곤이나 불우한 가정처럼 나쁜 사회경제적 환경 조건이 어떤 스트레스를 일으키고, 그것이 텔로미어 길이를 짧아지게 해 생물학적 노화를 촉진한다는 것이 분명한 인과관계로 성립하는 것일까? 텔로미어 길이는 이런 모든 것을 인과적으로 보여주는 분명한 생체지표가 될 수 있을까? 관련 연구 보고들이 쌓이면서 그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근거들은 더 많아졌지만, 한편에서는 지금까지 연구결과들이 그 상관성을 보여주기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종합분석의 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난해 영국 의학연구회(MRC) 사회공중보건과학 연구단위 소속 연구팀은 "사회경제적 지위는 텔로미어 길이로 측정되듯이 생물확적 노화와 연계돼 있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국제 의학저널(Epidemiologic Reviews)에 발표했다. 텔로미어 길이와 사회경제적 환경의 상관성을 다룬 기존의 논문 31편을 이른바 '메타분석' 방법으로 분석한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부모의] 교육 수준과 관련해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이와 낮은 이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나타났다"면서 "[그러나] 현재시점의 사회경제적 상태와 텔로미어 길이의 연계성을 보여주는 증거(evidence)는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의 사회경제적 상태를 보여주는 부모의 교육 수준 차이가 텔로미어 길이 차이와 어느 정도 연계성을 보여주지만, 현재 시점의 사회경제적 상태의 차이는 별달리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31편 논문을 종합한] 이런 결과는 교육 수준으로 측정한 사회경제적 상태와 텔로미어 길이로 측정한 생물학적 노화 간의 연계성에 대해 약한 증거(weak evidence)를 보여준다. 다만 여기에서 살핀 사회경제적 상태들을 통틀어 일관된 발견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논문의 결론 부분인데, 기존 연구결과에 대해 상당히 신중한 평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

  "텔로미어 길이가 생물학적 노화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marker)가 될 수 있으며, 이는 강하게 사회적 패턴을 지닐 수 있다고 기대할(expect) 만한 강력한 선험적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런 기대는 이번 논문에서 종합한 증거에서 나오지는 않았다. 높은 사회경제적 상태와 낮은 사회경제적 상태를 대비하는 메타분석에서는 더 높은 사회경제적 상태와 더 긴 텔로미어 사이에 연계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혼재되어 있음(mixed evidence)이 확인되었다. 그것은 사회경제적 상태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사회경제적 상태가 텔로미어 길이와 연계되어 있는지에 관한 물음에 초점을 맞추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며, 특히 규모가 크고 대표성을 지니는 추적연구(longitudinal studies)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연구의 필요성을 아직 결론적이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면서 정당화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논문)


여러 상황들을 보면, 생물 바깥에 있는 사회경제적 상태(SES)가 생물학적 현상, 특히 노화·수명과 관련된 텔로미어 길이에 끼치는 영향을 다루는 연구는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그러나 현재 수준에서는 사회적 환경과 연계된 영향의 생체지표(biomarker)로서 텔로미어 길이의 지위는 아직 굳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빈곤이나 가정 환경 같은 사회경제적 조건이 생물학적 현상에 어떤 실제적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하려는 연구는 텔로미어 길이 측정을 중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PNAS 논문 초록

 “불리한 사회 환경은 나쁜 건강 상태와 연계된다. 이는 부분적으로 만성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 텔로미어 길이는 만성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생체지표로서 사용되어 왔다. 성인의 텔로미어 길이는 불리한 사회적 지위와 우울함을 비롯해 다양한 상황에서 짧아진다. 우리는 이런 관찰 결과를 아프리칸-아메리칸 어린이한테서 확인해보고자 ‘취약가정과 아동복지 연구(Fragile Families and Child Wellbeing Study)’에 참여한 9세 소년 40명의 데이터를 사용했다. 우리는 불리한 환경 노출이 9세 무렵에 측정한 텔로미어 길이 단축 현상과 연계되어 있다고 보고한다. 우리는 적은 소득, 어머니의 낮은 교육, 불안정한 가정 구조, 열악한 보육과 텔로미어 길이 간에는 두드러진 연계성이 있음을 보고한다. 이런 효과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경로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조절되었다. 감수성 편차 가설(differential susceptibility hypothesis)과 일치해, 아주 높은 유전자 민감도(genetic sensitivity scores)를 지닌 피실험자는 불리한 사회 환경에 노출될 때 가장 짧은 텔로미어 길이를 나타냈으며 유리한 환경에 노출될 때 가장 긴 텔로미어 길이를 나타냈다.”


오철우기자cheolwoo@hani.co.kr

@한겨레 과학웹진 사이언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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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우 한겨레신문사 과학담당 기자, 사이언스온 운영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부, 사회부, 문화부, 생활과학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과학담당 기자로 일했다. <과학의 수사학>, <과학의 언어>, <온도계의 철학> 등을 번역했으며, <갈릴레오의 두 우주체제에 관한 대화>를 썼다.
이메일 :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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